목표를 달성한 후로 당장의 목표가 사라졌다. 날은 더워졌고 해는 너무 일찍 뜬다. 아침부터 제습기를 틀어야 할 정도로 습하고 바람은 한 방향으로만 불고 불면증에서 조금씩 벗어나면서 취침 시간도 기상 시간도 늦어지기 시작했다. 여러 상황 속에서도 꾸역꾸역 달리기를 이어가고 있다 보니 이 모든 걸 또 나의 부족함으로 돌리려는 나쁜 목소리가 스멀스멀 깨어나지 뭔가.
그래서 오늘 자유롭게 달리다가 문득 소리를 질렀다. 바닷물이 높이 차올라 반쯤 사라진 여의 끝에서, 바다와 해를 바라보며 외쳤다.
그렇게 시작된 대화는 언제나처럼 일방적이었다. 내가 뭐라고 하든 무심하게 신발 밑창을 적시며 밀려오는 파도는 철썩 소리를 내며 나에게 물장난을 쳤다.
"그래, 가라는 거지?"
심통 난 아이처럼 물방울을 맞으며 묻다가,
"그래, 이제는 들어주는 걸 넘어 대답도 해주는 사람들 속으로 가야지. 그래도 돌아오면 나를 품어줄 거지?"
했다.
또 한 번 파도가 쳤다. 닿을 듯 말 듯 , 내가 디디고 선 길을 반쯤 덮으며.
정시의 배려
비가 안 오면 제지기오름에 또 갈 생각이라 된장국에 밥을 든든히 먹었다. 아침 내내 하늘을 살피다가 저녁 전까지는 맑을 것 같아 뛰쳐나왔다. 어마어마한 조경과 넓은 부지가 부러운 초등학교 건너편 정류장인데 20분째 사람이 아무도 없다. 버스 배차간격이 죄다 길어서 주요 정류장 배차 시간표가 아예 붙어 있는 데다 대강 가늠해 보아도 꽤 잘 지켜지는 편이다. 승객이 적은 정류장이다 보니 사람이 있으면 일단 문부터 열어주고 보는 게 버스 놓칠 일은 거의 없겠다. 그래서인지 드물게 승객이 있어도 탈 시간 맞춰 나오지 미리 나와 기다리는 사람은 잘 없다. 나 홀로 정류장을 지켜야 했다.
여기는 고령 인구가 많고 유소년 인구가 귀해서 버스 운행 문화가 매우 친절하다. 내가 일어서 있지 않아도 버스를 탈 승객일 수 있다는 걸 당연시하고 기다려주기 때문에 열린 문 사이로 눈짓으로, 목례로 안 탄다고 말해야 했다. 하차할 때도 승객이 일어서서 대기하지 않아도 기다려준다. 급하게 운행하는 탓에 흔들리는 버스에서 미리 일어나 서서 대기하면서도 문이 닫힐세라 급히 내려야 하고 그러다 다리에 멍이 드는 일이 잦았던 서울 시내버스와는 너무나 다르다.
그렇게 승객들을 기다리지만 결코 밀리지 않고 정시에 도착하는 버스들. 당연한 일이 정말 당연하려면 역시 여유가 필요한 모양이다.
바다의 조각가
검은 모래 해변에 또 방문했다. 날이 궂어서 파도가 높았다. 파도소리는 더욱 선명했다.
부드러운 검은 모래는 신비롭고, 맨질맨질한 돌멩이들은 마치 공룡알 같다. 땅이 낳고 바다가 파도로 품은 알. 수천 마리가 태어나도 살아남는 건 한 마리뿐이라는 거북이의 삶처럼 저 돌멩이들이 모두 생명이 되더라도 바다 깊은 곳으로 돌아가는 건 단 한 마리 일지도 모른다. 형제들의 목숨을 등에 지고 홀로 아주 긴 세월을 견디는 삶은 축복일까 저주일까.
이 해변의 신비는 어디서 밀려왔는지 모를 잔해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돌멩이만큼이나 반질반질한 나뭇가지들, 이번에는 미리 큰 나뭇가지 두어 개를 손에 집었더니 거친 표면이 하나도 없었다. 다듬어진 게 분명했다. 누군가 사포로 신경 써서 다듬은 것마냥 매끈했다. 바다가 조각한 것일까? 그렇다면 파도는 정말 훌륭한 조각가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