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의 <청춘의 문장들>을 읽으며 떠올린 나의 <사춘기의 문장들>
청춘에 관해 써 내려간 김연수의 산문집 <청춘의 문장들>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나의 청춘에 관한 기록은 어떤 문장의 나열이 될까 생각하게 된다. 나는 한창 청춘의 시기를 지나고 있으므로, 현재보다 더 청춘인 때를 떠올리자면 사춘기 때라 할 수 있겠다. 지독한 사춘기 앓던 고1 여름, 나는 처음 김연수를 접했고 그 가운데 ‘에곤쉴레’가 있었다.
그 당시 나는 독서라는 것을 해보겠답시고 생전 가지도 않던 학교 도서관을 찾았다. 그때 내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은 것이 바로 김연수의 소설 <밤은 노래한다>였다. 그만 표지에 반해버린 것이다. 책을 빌리러 왔다는 사실도 까맣게 잊은 채 그 자리에 멈춰 책 표지만 몇 분이고 들여다봤다. 건조한 색채와 불안한 드로잉 라인에서 느껴지는 무기력함, 말라비틀어진 주인공의 퀭한 눈에 흐르는 광기. 그 당시 나는 어쩐지 아픔을 가진 것들이 멋져 보이던 사춘기 소녀였던 터라, 그 넘치는 퇴폐에 매료되었다.
그러나 나는 명백히 빌리러 온 책이 있었고, 더 끌리는 책을 빌리더라도 대세에 아무 지장 없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미련한 고등학생이었기에 예정대로 <상실의 시대>를 가지고 도서관을 나왔다. 나는 그 허무하고도 절절한 러브스토리를 읽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소설의 표지를 떠올렸다. 그 그림을 자꾸만 떠올리게 하는데 불을 지폈던 것이 바로 라디오헤드의 <NUDE>였다. 그림에 못지않은 무기력하고 건조한 이 음악을 듣고 있자면, 그림 속의 해골 같은 주인공이 비틀비틀 걸어 나오는 모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상상의 내용은 대략 이러하다. 화면은 분당 8 프레임으로 뚝뚝 끊기고 구불구불 흐르는 드로잉 라인과 필름 영화 속 노이즈 효과가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제 몸을 가누기도 힘든 주인공이 무언가를 갈구하는 표정으로 계속해서 앞으로 걸어나가다 마침내 새가 되어 날아간다. 내용은 참 진부하기 이를 데가 없는데, 공중에 떠다니는 듯한 음정과 간지러운 톰 요크의 목소리가 그림과 너무 맞아떨어져서 언젠간 이런 영상을 만들겠노라고 연신 다짐해댔다. 실천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나는 김연수 덕분에 에곤쉴레를 알게 됐고 그가 서른도 채 되기 전에 요절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천재는 단명한다더니 그의 비극이, 못 다 그린 그림이, 그를 더욱 멋있게 만들었다. (그 당시 나는 사춘기였으므로.) 그렇게 나는 ‘에곤쉴레 병’에 걸려 핸드폰과 컴퓨터 배경화면을 그의 그림으로 도배하였고, 누군가 그림에 대해 물을 때 ‘에곤쉴레’ 라는 네 글자를 말하며 어쩐지 고독한 표정을 짓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후 이 책은 표지만으로 소장가치가 있다며 서점으로 달려가 <밤은 노래한다>를 구매하였지만 완독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책 표지에 대한 선호와 책 내용에 대한 선호는 엄연히 별개라는 사실을 그때 처음 깨달았다. 그러나 함께 구매했던 김연수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은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어쨌든 나와 김연수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청춘의 문장들>은 글쓰기 모임을 하겠답시고 독립서점에 들렀다가 책방지기가 아주 강력하게 이 책을 추천하는 바람에 사게 된 것이니, 김연수와 나는 자꾸만 만나게 되는 끈질긴 인연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8년 전 에곤쉴레를 알게 해 준 김연수라는 작가에게 감사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김연수의 책을 다시 만나도록 해 준 그 책방지기에게 무한한 감사를 표하고 싶다.
그리고 최근에 내가 좋아하는 이재민 디자이너가 <청춘의 문장들> 출간 15주년 기념 특별판의 표지를 디자인하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김연수 작가는 아무래도 책 표지로 내 취향을 저격하는데 도가 튼 모양이다.
김연수에 대한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는 이쯤 하고 다음화부터는 <청춘의 문장들>에 대한 본격적인 감상문을 다루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