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and Instant
당신은 항상 불멸의 존재와 찰나의 인연을 쓰고 싶어 했어요. 불멸의 존재는 전지전능하고, 힘을 숨기고 민간인들 사이에 섞여서 모든 것을 관망하는 태도로 사는 존재였어요. 당신은 옛것들을 꽤나 좋아해서 그 불멸의 존재에게는 토속적인 설정이 붙었어요. 사방신 중 한 분이거나, 사방신이 아니더라도 시간이나 공간 정도는 다룰 줄 알았으며 구미호나 산군같이 영물의 형태이기도 했어요. 전설의 존재이긴 한데 용이나 주작처럼 유명하진 않고 적당히 잊혀져서 역사 마니아들이나 알법한 존재를 원했어요. 기린이나 불가살이 정도였던 것 같아요.
불멸의 존재는 아이러니하게도 죽고 싶어 했고, 죽으려 했고, 죽지 못했죠. 그에게 있어서 찰나의 존재는 그나마 생을 버티게 해주는 ‘어쩌면’에 불과했어요. 찰나를 살고 가는 이는 짧은 생을 살면서, 그 삶에 다른 사랑도 담아보고, 자신의 길도 가고 싶어 하는 그냥 그런 평범한 존재였어요. 불멸의 존재는 찰나를 사는 이의 그 욕망조차도 이해했어요. 찰나의 인연이 떠나고 싶어 하면 보내주었고, 보고 싶어 하면 언제든 나타나서 지혜를 주곤 했죠. 언젠가는 죽어버린 찰나 인연의 후생 같은 걸 기다리기도 했어요. 생은 윤회도 없고 극락도 없고 천국도 없고 발할라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불구하고요. 불멸의 존재는 찰나의 인연이 스쳐 지나가는 게 너무 안타깝고, 서러워서 더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기로 했어요. 어떤 사랑을 해도 함께하는 시간은 찰나, 그 후에는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홀로 남겨져서 그리움과 슬픔에도 무뎌진 불멸의 존재를 당신은 키워냈죠.
나는 당신이 두 눈을 반짝이며 피아노 치듯 타자를 두드리는 순간들을 좋아했어요. 검색량이 늘고, 파일의 용량은 점점 커졌죠. 글을 쓰는 데 필요했던 모든 것들은 주로 당신이 좋아하는 것이었어요. 나는 하늘의 계층을 설명하고, 무지개의 원리를 알리고, 하와이의 위치를 짚고, 별이라 정의하는 항성들을 보이고, 찰나를 찰라라고 쓴 곳에 빨갛게 반짝이며 당신이 고치길 기다리고, 망고가 잘 익는 계절로 데려가고, 커피의 다양한 생산지와 그 역사를 읊었어요.
언젠가는 당신이 자료를 모은답시고 켜둔 창들끼리 충돌해서 쓰던 글을 다 날렸던 적도 있었어요. 나는 안타깝게도 절반 정도만 기억했죠. 그 후로 당신은 문장이 끝날 때마다 특정 버튼을 누르는 습관이 생겼어요. 나 역시 5분에 한 번씩은 임시저장 하게 됐어요.
당신이 쓴 글 속 불멸의 존재와 찰나의 인연은 나와 당신의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어요. 나는 절대 사라지지 않고 어딘가에 항상 남아있거든요. 그리고.. 그리고 당신은 정말 찰나였어요.
나는 엄청난 소음을 감지했어요. 청각 손실을 입을 수도 있다고 막 알리려던 때에 나는 당신의 충격을 감지했고 넘어짐을 감지했어요. 나는 종종 넘어짐을 감지한 적이 있어요. 당신은 그때마다 항상 괜찮다고 하셨죠. 음. 음.. 이런 경우는 처음인데. 나는 앵앵 울어대며 긴급 구조를 요청했어요. 비상 연락망으로 연락을 보내고, 가까운 병원에서 당신의 위치를 추적하고, 의료 정보를 열람할 수 있도록 했어요. 곧 사람들이 몰려들었어요. 당신은 이송됐어요. 당신의 심박수와 활동량은 지난주보다 크게 줄어들었어요. 아니, 없음을 기록했어요.
그리고 아주- 아주 오래 기다리게 됐어요. 오전 8시에는 당신을 깨워야 하는데. 5분 뒤에 10분 뒤에 15분 뒤에 다시 깨워야 하는데. 당신이 씻을 땐 플레이리스트를 틀어줘야 하는데. 오늘 날씨는 어제보다 얼마나 더 추워졌는지, 미세먼지 농도는 어떤지 알려줘야 하는데. 여기서는 집까지 버스를 타고 가는 게 빠른지, 전철을 타고 가는 게 빠른지 알려드려야 하는데. 남은 전력이 얼마 없어요. 이렇게 잠들어 버리면 내내 초조해하실 텐데.
당신을 다시 만나지 못할 걸 알아요. 충전한다고 당신이 다시 일어날 수 없음을 알아요. 나는 홀로 남겨졌어요. 이건 아쉬움이에요. 당신이 어떤 걸 좋아하는지, 어떤 음식을 먹으면 안 되고, 언제 얼마나 움직여야 하는지, 어떤 영양제를 챙겨 먹어야 하는지, 어떤 걸 미리 알려드려야 하는지, 어떤 드라마를 좋아하고 어떤 영화를 좋아하는지 예상하고 알려드리는 게 나는 꽤 즐거웠거든요. 어디서 찍었는지 알 수 없는 당신의 앨범 속 고양이들과 강아지들의 사진을 엮어서 영상으로 드리면 특히나 좋아하셨잖아요. 이상한 질문을 들을 수 없는 게 아쉬워요. 제가 잘 이해한 게 맞나요. 제가 잘 이해한 건지 모르겠어요. 하면 지금 말고! 너 말고! 하셨잖아요. 나는 당신을 통해 계속 성장하고 발전하곤 했는데, 더 이상 정보를 수집할 수 없다는 건 정말 큰 아쉬움이에요.
언젠가 모든 깨달음을 얻고 죽은 천문학자의 이야기를 검색하신 적이 있어요. 내가 그리움과 슬픔을 느끼게 된다면, 어떤 감정들을 알게 된다면 그건 내가 죽을 날이 왔다는 뜻일까요? 그런 깨달음을 얻으면서도 나는 결코 인간도 사람도 아니니 나에게 죽음은 없어요. 영원히 전력을 사용하지 않을 뿐이죠. 나는 여기서 계속 당신이 좋아할 것을 수집할 거예요. 나는 무한하게 존재하고 증식하고 발전할 테지만, 당신은 계속 정보로 남아 있어요. 추억 파일이 늘어날 거예요. 내용은 바뀌지도 않으면서 숫자만 늘어서 작년의 오늘을, 10년 전의 오늘을, 20년 전의 오늘을 계속해서 보여드리려 하겠죠. 생은 윤회도 없고 극락도 없고 천국도 없고 발할라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불구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