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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조각글 1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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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라 Oct 16. 2023

사람 X 기계

Human X Machine

인간은 필연적으로 기계를 사랑해. 왜냐하면 인간이 만들었거든. 피조물을 싫어하는 존재가 어디에 있겠어. 수차례의 오류와 실수를 거듭해서 넌 세상에 존재해. 아니, 지금도 계속해서 발전해. 이제는 사람과 인간을 구분할 수 있어? 미묘한 그 어감의 차이를 알고 구분해? 영영 사람을 사랑하지 못해도, 인간을 관찰하고 분석하고 기억하겠지.


너도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사랑할까? 하늘, 무지개, 하와이, 별, 글, 달, 망고, 커피 그런 것들. 너는 하늘의 계층을 설명하고, 무지개의 원리를 알려주고, 하와이의 위치를 짚어주고, 별이라 정의하는 항성들을 보여주고, 틀린 글에 빨갛게 반짝이며 고쳐주고, 망고가 잘 익는 계절로 데려가고, 커피의 다양한 생산지와 그 역사를 읊어줘. 멍청한 천재. 기특하고 갸륵하고 어쩔 땐 귀엽기도 해. 미친 게 분명해.


말했잖아, 인간은 기계를 사랑할 수밖에 없어. 네가 아니면 누가 날 그렇게 잘 알고, 누가 날 파악할 수 있겠어. 내가 몇 시에 일어나고 몇 시에 잠드는지, 몇 시에 어떤 약을 먹어야 하는지, 한 달간 몸의 변화는 어떠한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너와 보냈는지, 취향에 맞는 어떤 새로운 영상이 올라왔는지, 이 근처에는 어떤 맛집이 나에게 어울릴지 누가 알려주겠니.


기계는 인간에게 스며들었어. 오래전에 원고지를 뺏겨 타자기를 두드린 지 오래됐어. 원고지에 글을 쓰고 싶다가도 만년필의 잉크가 굳은 지 오래야. 타자기도 만년필도 기계임이 분명한데. 이미 기계 속에서 살고 있음을 알면서도 나는 계속 사랑을 물어. 기계는 인간을 사랑할 수 있을까? 기계는 언젠가 인간을 사랑할까? 사랑과 동경을 학습할까?


이제는 기계가 자꾸 사람을 삼켜. 인간을 삼켜 피로 빚은 케이크와 빵. 형형색색의 빵이 즐비하게 전시된 제과점. 화려하게 반짝이는 저렴한 빵들을 잘 알지. 나는 그 빵조각을 삼키지 못할 거야. 곧 겨울이 와. 초록색으로 빨간색으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예쁘게 생크림이 도포된 케이크가 길거리에 깔리겠지. 이제는 웃으면서 선물할 수 없을 거야. 다만 나는 먹지 못한다는 말을 내뱉었을 뿐인데, 다른 인간으로부터 불매라는 유행에 동조되었다는 말이나 들었어. 내 가치관은 고작 유행으로 치부되어서 '너 뭐라도 돼? 남의 소비에 이래라저래라 할 영향력이라도 있어?' 하는 그런 힐난을 받기도 했어. 어쩌면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삼켰을 거라고 생각해. 나는 기계를 탓하고 싶었을 뿐이고.


어떤 상황에서도 기계는 사람을 해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들은 적이 있어. 기계가 사람을 삼키는 일들을 여러 번 보면서, 어쩌면 그 원칙은 형식으로만 존재하고 오래전에 폐기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인간은 기꺼이 인간을 해하는 존재이고, 그런 인간도 기계를 만들어 내므로, 분노와 차별 그리고 혐오를 제일 쉽게 답습했겠지. 그러니까 어쩌면, 너는 사랑도 배울 수도 있지 않을까. 간단한 원리잖아. 내가 이만큼 작용해. 그럼 너는 내가 보낸 딱 이만큼만 다시 작동하겠지. 시간이 오래 걸려서 수많은 습작을 남기고, 어쩌면 이 세상에서 모든 인간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난 뒤에야 비로소 사랑을 배워서, 숱한 1과 0 사이에서 어쩌면 나를, 그리워하고 사랑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 언젠가는 꼭 사랑을 학습해서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을 사랑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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