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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조각글 1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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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라 Aug 25. 2023

마지막 제사

The Last Rites




방금 막 우리 집안의 마지막 제사를 끝냈다. 해를 거듭할수록 제사상은 점점 간소해졌고 부실해졌다. 잘 먹지 않는 닭을 제일 먼저 뺐고 맛없는 유과와 젤리들은 쌀과자와 콩사탕으로 바뀌었다. 전도, 나물도, 떡도 준비하는 양은 조금씩 줄였다.


우리 집안의 가장 큰 사람이자 명목으로 매번 제사를 지내게 만든 친할아버지는 양이 줄어들었는지, 가짓수가 줄어들었는지 알아챌 리가 없었다. 그 많은 음식을 직접 준비하는 것도 아니고, 고생을 하는 것도 아니고 보태라고 돈을 주는 것도 아니고, 하는 일이라고는 그저 시간 맞춰 와서 절만 올리고, 요즘 잇몸 상태가 안 좋다든지, 보청기가 요즘 잘 나온다든지 하며 용돈을 갈취하는 이가 어떻게 제사상의 변화를 알 수 있겠어. 생전에 고생만 하다가 간 마누라에 대한 사죄의 의미의 그 젯밥을, 당신 살아있는 동안 마음 편하자고 올리는 수많은 차례상들을 그저 아들이 알아서 잘 차렸겠다고 믿었겠지.


그 친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횟수도 줄었다. 우리는 합의를 했다. 친할아버지가 그렇게 가고 나서는 더 이상 추석과 설에 제사상을 준비하지 않았다. 다만 삼년상을 치르기로 했다. 삼년상도 아니다. 거상한 것이 아니니. 기일에 맞춰 한 해, 두 해, 세 번째 해까지만 제사를 올리기로 했다. 그것이 아빠의 마지막 도리였고 오늘이 그날이었다.


지난해에 제사를 올리며 “내년이 마지막 제사일 텐데.. 삼 년으로 되려나 싶네요”라고 말 한 전적이 있었기 때문에, 혹시라도 오늘 마지막 제사를 올리며 “오늘 삼년상으로 끝내는 게 맞는지 모르겠어요" 같은 말을 할까 봐 보란 듯이 일손을 보태지 않았다.


아무도 돕지 않아 한여름에 꾸역꾸역 주방에서 전을 다 부치고 나물을 볶고 과일을 썰고 국을 만들고 나르는 것을 지켜만 보았다. 끼니까지 챙기기는 벅찰 테니, 나름 배려해서 외식을 하고 들어가는 효도도 보였다. 상을 펴고, 창고에서 먼지 쌓인 병풍을 꺼내와 펴는 것만으로 마지막 제사에 내가 할 도리는 다 했노라 말했다.


화가 난 듯한 어조로 성내며 제사를 임했지만, 분노의 대상은 나와 동생이 아니다. 내가 페미니즘을 모르고, 동생이 경제력은 없었다면, 부모의 보호 아래 집안의 피보호자로 존재했다면, 싫은 티도 못 내고 제사를 도왔겠다만 나는 너무 많이 알고, 동생은 너무 많이 컸다.


힘들고 하기 싫지만 내색할 수 없기 때문에, 그래도 아들이라는 핏줄 때문에 아빠는 마지막 제사를 올려야 했을 거다. 그러나 결국은 본인이 오롯이 제사를 해내야 하니 화가 났을 테다.


횟수도 줄어들면서 마지막 제사는 근본을 찾기 어려웠다. 향이라 우기며 인센스스틱을 피우고, 어디에 무엇을 올려야 하는지, 술을 언제 몇 번이나 올려야 하는지, 젓가락은 어디서 어디로 올려야 하는지 기억하지 못해 허둥대는 아빠의 모습이 제법 우스웠다.


마지막 음복을 하고 난 뒤 유과대신 올린 모나카를 집어 먹었다. 입천장에 달라붙는 과자 사이로 팥앙금이 느껴졌다. 팥은 귀신을 쫓는다던데. 제사상에 이걸 올렸네. '마지막으로 배부르게 잘 드시고 가세요' 하면서 눈물을 글썽였는데, 어쩌면 좋아. 할아버지는 마지막 식사도 못하고 가셨겠는데?


아, 근거도 없고 맥락도 없이 고집만 남아서 결국엔 곧 사라질 그 가부장제의 마지막 모습은 이런 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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