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지킨다는 것에 대해

by 유라

남의 기분을 생각하느냐고 정작 스스로의 상태와 기분은 무시한 기억이 많다. 그것들이 쌓여 더 괜찮은 나를 만들었는지를 생각해 보면 분명 도움이 된 부분도 있겠지만 매사 피곤하고 어디든 머리만 댈 수 있다면 잠을 잘 수 있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계약직으로 어떤 회사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어떤 상사를 만났었다. 지금은 괜찮아졌을지 모르겠지만 계약직에 대한 처우가 존재하지 않았었다. 매사 어떤 일이든지 진심으로 해왔던 터라 뭐든 열심히만 하자고 생각했다. 그래서 퇴근시간이 되어도 퇴근하지 않고 더 할 것이 없는지에 대해 고민하며 상사가 퇴근하라고 말을 할 때까지 의자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며 업무는 자연스레 더 많아지게 되었고 야근을 하는 날이 많아졌다. 처음에는 상사도 미안하다며 말을 하기도 했었지만 점차 말까지 사라지게 되었다. 야근을 한다고 해서 수당이나 저녁밥을 사주는 그런 혜택은 존재하지 않았다. 나와 함께 일하는 또 다른 계약직 직원이 있어 함께 힘을 내자며 다른 사람들이 다 퇴근한 그 사무실에서 간식하나 먹지 않고 그저 일만 했었다. 당시 회사에서 집까지 대중교통으로 1시간 30분이 넘게 걸렸었는데 막차시간까지 일을 하다 동료와 함께 부랴부랴 사무실 문을 닫고 지하철역까지 뛰어가는 날들이 점점 많아졌다.

그러던 목요일 어느 날, 일을 어느 정도 마쳤는데 6시 직전이었다. 야근이 생길 것 같은 약간의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상사가 얘기했다.

내일 오전 10시 30분까지 정리해서 자료 준비해 와.

정리해야 할 업무가 꽤 많았어서 나와 동료는 자연스럽게 야근을 하게 되었다. 각자 자리에서 업무를 보고 있는데 다른 직원 분들은 하나둘씩 퇴근을 했고 여느 때와 같이 사무실에는 우리 둘만 남게 되었다. 한참 일하고 있는데 동료가 말을 자신의 핸드폰을 건네며 내 자리로 걸어왔다.

유라 님, 혹시 이 문자 보셨어요?

핸드폰에 있는 문자에는 우리가 야근을 매일 하니 다음 날 출근 시간을 조금 늦춰줄 수 있냐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상사는 야근이 대수냐며, 본인 때는 야근 매일 했고 당연하게 했다고 적혀있었다. 그러면서 점심을 처먹을 거면 점심 전에 오고 아니면 오후 시간 때에 출근해도 된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처먹는다는 워딩에 시선이 쏠렸다. 동료는 '처먹다'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 문장을 보고 기분이 너무 나쁘다며 해당 문자를 나에게 보여준 것이다.

해당 문자를 보고 나도 기분이 안 좋을 수밖에 없었다. 계약직인 것을 알지만 왜 이렇게까지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지 돌아보았다. 너무 간단했다. 우리 말고는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이 없기에 우리가 하지 않으면 업무에 차질이 생긴다. 그래서 일을 안 할 수가 없게 만들었다. 업무에 차질이 생기면 결국 모두에게 피해가 가고, 그것이 우리가 바라는 것은 아니었기에 어떻게든 기한을 맞추려고 했다.

대화를 하고 있는 것도 시간을 보내는 것이기에 막차시간까지 일을 끝냈다. 그리고 노트북을 들고 각자 집으로 귀가해 새벽까지 일을 했다. 새벽 4시쯤 동료에게서 연락이 왔다.

유라 님, 진짜 미안한데 저 조금만 자도 될까요? 너무 피곤해서 아예 집중이 안 돼요.

네, 얼른 주무세요. 저도 조금만 더 하다가 2,3시간 정도만 자고 일어날게요. 미안해하지 마시고, 얼른 주무세요. 고생하셨어요.

그렇게 시간 내에 맞춰 우리는 일을 끝낼 수 있었고 상사에게 보고를 했다. 상사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우리의 작업물을 보고 말했다.

이렇게 해오면 어떡해? 퀄리티가 너무 떨어지잖아? 이거 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려? 더 정리해서 다시 해와.

우리는 다음 날 역시 사무실에서 작업을 하며 일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고생했다, 수고했다 같은 말을 바란 것은 아니었지만 비난하는 말이 나올 줄은 몰랐다. 그래도 기대를 했던 것은 아니었기에 실망도 하지는 않았지만 당시를 생각해 보면 저 피드백을 들으면서도 마무리를 하면서 스스로 계속 괜찮다고 되뇌었던 것 같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이때를 생각하면 스스로를 지키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 지금은 나를 더 지키려고 애를 쓰고 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렇게까지 버텼던 시간은 누구도 책임져주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나를 위해, 나를 잃지 않기 위해 돌보는 시간을 가지려 노력한다. 운동을 하는 것처럼, 일을 나가는 것처럼 나를 돌보는 시간이 무조건 필요하다. 내일의 내가 너무 아프지 않고 지치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지키는 시간을 꼭 갖기를 바란다.



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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