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지 않아도 사람을 만났던 날

by 유라

나는 사람을 만날 때 항상 웃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밝은 표정이어야 하고, 분위기를 망치면 안 되고, 괜히 조용해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람을 만나기 전에는 마음부터 준비하곤 했다. 힘든 일은 나의 사생활이고 그것을 표출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티 내지 말자고 다짐했다. 그런 날들이 쌓이니 언젠가부터는 마음의 준비도 필요 없이 사람을 보는 순간 표정이 밝게 바뀌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사람들을 만나면 아주 완벽하게 모습을 감췄다.

살면서 여러 가지 일을 겪었다. 친구들이나 사람들을 더 이상 만나지 않고 집에 숨었다. 몇 달이 지나고 친한 친구가 연락이 왔다. 핑계를 대고는 나가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 친구가 집으로 찾아왔다. 분명 표정을 잘 숨긴다고 생각했는데 그날은 억지로 웃을 힘이 없었다. 그래서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아무 표정 없이 친구를 맞이했다. 정돈되어 있지 않은 내 얼굴을 보더니 친구는 말했다.

밥 먹었어?

아니, 아직.

그래? 나도 안 먹었는데, 같이 밥 먹자.

신기하게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분위기가 망가지지도 않았고 친구도 무슨 일이 있냐고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았다. 그저 평소보단 조금 조용한 대화가 오갔고 조금 느린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그날 친구가 집에 돌아가면서 말했다.

앞으로도 종종 같이 밥 먹자.

분명 무엇인가를 많이 물어볼 줄 알았다.

왜 연락이 안 된 건지,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는 건지, 왜 이러고 있는 건지 등등, 이렇게 있으면 안 된다고 얘기할 줄 알았는데 정작 별 말을 하지 않고 밥만 먹어도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것이 가능해지는 게 충격이었다.

나는 그동안 사람을 만난다는 걸 너무 어렵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밝아야 하고, 재미있어야 하고, 분위기를 잘 맞춰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사람들이 계속 연락을 이어갈 것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하며 살았다. 그런데 어쩌면 사람 사이의 시간은 그렇게 완벽하게 웃기만 한 필요가 없었다. 가끔은 말이 조금 줄어들어도 괜찮고, 표정이 조금 무거워도 괜찮고, 그저 같은 공간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때가 있었다.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쓰며 사람을 만난다. 괜찮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마음, 좋은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 상대를 실망시키면 안 된다는 생각. 그런 마음이 쌓이다 보면 사람을 만나는 일 자체가 어느 순간 부담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어떤 날은 사람이 싫은 것이 아닌 잘해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사람을 피하게 되는 것 같다. 그날 이후로 나는 조금 덜 노력해 보기로 했다.

억지로 웃지 않고, 괜히 분위기를 책임지려 하지 않으며 말이 없으면 없는 대로 두었다. 그렇게 해도 사람들은 내 곁에 잘 있어 주었다. 그리고 가끔은 웃지 않아도 함께 있어주는 사람이 진짜 편한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그날 덕분에 점점 억지로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 천천히 줄어들었다. 그래도 걱정하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가끔은 그냥 있는 그대로의 얼굴로 마주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느꼈다. 심지어는 부정적인 감정을 나눈다고 해도 괜찮다. 되려 대화들이 더 풍부해졌다. 감정을 나누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기를 바란다.


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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