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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레어 Nov 04. 2021

감정의 예방주사

콩쿨, 다시는 안나가.

제자들을 가르치다보면, 일년에 한번씩은 꼭, 콩쿨을 준비하게 된다. 콩쿨을 준비하는 과정을 말그대로 쉽지 않다. 일단, 아이들에게 적합한 곡을 골라줘야 하고, 기존에 해오던 연습에 두배, 세배로 연습을 시켜야 한다. 교사로서는 아이들이 억지로가 아니라 필요에 의해서 연습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해야 하는데, 하루 이틀 하는 연습이 아니라 길게는 3~6개월이상 같은 곡을 연주해야 하기 때문에 만만한 일이 아니다. 콩쿨에 나간다면 보통 가르치는 제자중에 단 한명만 내보내는 경우는 거의 없고, 한명, 두명, 준비하다보면 점점 늘어나서 6~7명, 많게는 10명 넘게 콩쿨을 다 같이 준비하는 경우도 있다. 


엄청나게 피곤한 일이지만 무대와 상이 주는 중독성, 엄청난 성취감, 그리고 눈에 띄게 달라지는 연주실력 등등의 이유로 한번씩 꼭 나가게 된다. 캐나다에 와서도 결국 올 봄에 콩쿨에 나갔는데.. 9명이 참가, 감사하게도 6명이 1등상을 하게 되어 진짜 기쁘고 행복했었다. 


아이들이 받아온 상장과 상금. 어찌나 기쁘던지!


콩쿨에 나갔다 오면, 오만가지 감정이 교차를 한다. 일단은 교사로서는 정말 진심으로 힘들게 노력한 아이가 받았으면 좋겠는데, 결과는 늘 예상외로 살짝 운이 좋았던 아이가 더 좋은 경우가 있다. 늘 희비가 엇갈리는 콩쿨 결과이다. 반대로 정말 잘하는 아이들이 잘 받는 경우도 물론 있다.


콩쿨을 준비하면서 아이들은 어쩌면 인생에 처음으로 실패라는 것을 맛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에 뒤따라 오는 슬럼프라는 것을 경험하게 될지도 모른다. 나도 교사로서 아이가 콩쿨에 나갔다가 기대한 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때의 실망감에 대해 안스럽고 미안한 마음이 크다. 하지만 어디 우리 인생에 실패 없는 인생이 있을까? 크고 작은 실패는 늘 우리를 따라다닌다.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도 성적이 안 나올 수도 있고, 가고 싶은 대학에 못 들어갈 수도 있다.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을 못 할 수도 있고, 취직이 안 되서 속상한 시기를 지나게 될 수도 있다. 


아이들이 콩쿨의 실패라는 작은 실패를 통해 큰 실패도 이겨낼 수 있는 마음의 면역력이 생겼으면 좋겠다. 실패가 어떤 면에서는 익숙해져서, (많이 하라는 뜻이 아니라.) 인생의 어려움을 극복해 내는데에 포기가 아니라 다시 도전해 보자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콩쿨에서 상 못받은 것이 결코 헛된 일이 아니다.


생각보다 좋은 결과를 받아 어쩌면 우월감에 차 있는 친구들은, 반드시 다음 콩쿨을 원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보통 그런 친구들은 연습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 과정과 노력없이 결과를 얻으려고 하는경우이다. 이런 경우가 사실 실패의 고배를 마시고 다시 도전하는 친구들보다 훨씬 어렵다. 이런경우 과거의 화려한 수상경력에 못미치는 결과가 100% 나오게 되어 있는데, 그 이유를 우리 모두가 알고 있지만, 본인은 인정하지 못한다. 보통 피아노를 '끊게' 되는 경우가 많다. 


노력의 과정을 달게 받아들이고 눈부신 발전을 이루는 아이들이 있는가하면, 지난한 반복훈련에 지쳐, 다시는 피아노는 보고 싶지도 않아 이번 콩쿨을 "계기로" 그만두는 친구들도 있다. 


꼭 콩쿨에 나가지 않더라도, 비교와 질투라는 엄청난 시험에 걸려드는 친구들도 있다. 같은 반 친구는 어디까지 진도나갔는지, 자기 언니는 어디까지 배웠는지, 나는 왜 오늘 2곡만 배웠는지 등등. 매 시간 물어보는 아이들도 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할 필요없이, 너 자신의 속도와 본인자신이 얼마나 늘었는지를 보고 판단하라고 말해주지만, 속마음은 알길이 없다. 정답은 너도 알고, 나도 알지만, 사람 많이 어디 그렇던가?


피아노를 배우는 시기의 아이들은 모든 삶의 경험이 처음이고 낯설다. 피아노를 배우면서 느끼기 시작하는 이런 여러가지 감정들이 엄마의 눈으로 보면 때로는 걱정도 되고, 안스럽기도 하겠지만, 오랜 시간 피아노를 가르치고 아이들을 대해오면서 내가 느낀 점은 설사 부정적인 감정들을 경험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사실 그런 것들이 우리 인생의 더 큰 문제들에서 겪게되는 어려움에 비교를 한다면 매우 작은 부분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통해 경험한 감정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 줄수 있는 계기가 생긴다는 점이 포인트라고 할 수 있겠다.


늘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하던 아이가 작은 실패를 맛보았을때의 좌절감에 대해 인생에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날 수 있음을 알려주고, 그럴때, 잠시 마음이 힘들수 있지만, 다시 마음을 다잡고 열심히 하다보면 좋은 결과가 있을 수 있고, 혹시 원하는 결과가 일어나지 않더라도, "괜찮다"라고 말해줄수 있다면 진짜 멋지지 않을까? 어쩌면 아이는 평생 이런 말을 기억하고, 마음이 누구보다도 건강한 아이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아이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비교의 늪에 빠져 있는 아이에게, 우리 인생에서 늘 1등만이 의미있는 일은 아니라고, 네가 하는 일을 사랑하고 즐기고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이 지구에서 피아노를 제일 잘치는 1등이 된다고 해서 행복해 지는 것이 아님을. 행복의 파랑새는 건강한 마음에 이미 살고 있음을. 누구보다 잘쳐서 기분좋은게 아니라 내가 어제보다 나아진 것에 대해서 자부심을 느껴보자고, 말해준다면, 이 아이는 이 험하고 경쟁 심한 사회에서도 행복한 사람으로 살아 갈 수 있지 않을까?


피아노 교육은 이런 면에서 감정의 예방주사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이들이 실제 인생에서 경험해 볼수 있는 다양한 감정들을 미리 접하게 해주고, 그럴 때의 대응방식이나 극복방법을 이야기 해줄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피아노를 잘 치던, 못 치던, 상관없이, 피아노 레슨비 값어치 이상의 교육을 시켰다고 나는 믿는다.


이제 어쩌나, 피아노 배워서 머리도 좋아지고, 마음도 튼튼해지겠네. 

꼭 그렇게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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