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부터 발끝까지, 온 몸과 영혼을 갈아넣으면..
피아노를 연주할 때, 내 몸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그 어떤 영감과 감성에 휩쌓여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 어떤 나도 모를 즉흥적이고도 천재적인 재능이란 것이 갑자기 샘솟아서 휘리릭. 멋들어지게 한 곡을 연주하게 되는 것일까?
사실, 피아노를 칠 때,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나는 곳은 무대 위에서 이다. 무대에서만큼은 그 동안의 지난했던 연습과정이 모두 사라지고, 축약되어 어떤 감정만 남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무대가 더 공포스러운 것 같기도 하다. 무대는, 그런 어떤 광기를 경험하는 성스러운 곳이고, 내려오고나면 연주자라는 한 작은 인간은 허무함과 공허함에 휩싸여 바람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어, 한동안은 다시는 피아노를 쳐다보고 싶어지지 않는, 그런 공간이다.
하지만, 무대에 올라가기 직전까지, 우리는 그런 광기를 전혀 거의 경험하지 않는다. 피아노를 배우는 과정은 오히려 굉장히 이성적이고 차갑다.
일단 우리는 눈으로 악보를 살핀다. 시작하기 전에 악보를 훑어보는 과정은 굉장한 집중력과 스피드가 필요한 일이다. 요점만 간단히 콕콕집어 앞으로의 연주에 생각할 것들을 머릿속에 저장한다. 눈으로 들어간 정보는 손끝이라는 미세 근육에 명령을 전달한다. 어떤 건반위에서 어떤 손으로 어떤 세기로 어떤 빠르기로, 어떤 높이에서 연주를 시작할 것인지 매우매우 세밀하게 명령을 내린다. 우리는 절대로, 도를 치시오. 라고 명령을 내리지 않는다. 우리는,
가운데에 있는 도라는 건반에 오른손 3번이라는 손가락으로 약 한 뼘정도를 들어올렸다가 약간 중간속도로 내려오면서 손끝을 사용해 깃털처럼 가볍게 건반을 내려치는데, 절대로 과도하게 때리는 소리는 나지 않게 조절해야해. 사뿐사뿐. 걸어가는 발레리나같은 사운드를 낼거야.
식의 명령을 내린다. 그러는 사이 두뇌는 아마도 미친듯이 한, 200번 정도 회전을 할 것이다. 그런 과정을 음표수만큼 반복한다. 손을 움직이면서 우리는 발로는 페달을 밟는다. 1초라는 시간이 길게 느껴질만큼 다양한 포인트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페달을 바꿔간다.
온 몸을 사용해 프레이즈를 표현해 나가면서, 곡에 대한 이미지를 떠올린다. 이쯤에서 두뇌는 거의 몇만번의 회전을 할 거라고 생각한다. 멜로디가 반음 내려갈때 느껴지는 슬픔, 엄청난 진행의 코드로 퍼부어 내는 절규와 분노, 자포자기하는 마음의 Minor Chord, 위풍당당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폴로네이즈의 상쾌한 리듬. 연주하는 동안 연인에게 배신당한 여자도 되었다가, 혁명에 실패하였으나 희망을 가져보는 위대한 혁명가가 되었다가, 천사가 되었다가, 악마가 되었다가. 말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 음악으로 전달되는, 하지만, 백마디 말보다 강렬한 메시지를 느껴야만 표현을 할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R0JKCYZ8hng
위의 비디오를 봐도, 정말 공감이 가는 것이, 온 두뇌가 풀가동되면서 그것도 한꺼번에 일을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또 한번 해 보면 얼마나 멋진 기분인지! 내가 제자들에게 잘 하는 말이 있다.
피아노 잘 치면 성적도 좋아진다. 피아노치면, 두뇌에 기름칠하는 것 같아. 공부를 효과적으로 할수 있게 해주고, 네가 배운 내용을 잘 종합하고 기억하게 도와줄거야.
내가 피아노를 칠 때면 항상 느끼는 것이 이런 것이라, 도저히 그 중독을 멈출 수가 없어서 전공까지 하게 되었나보다. 화성인, 이래도 피아노 안 배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