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을 배우는 시간>, 코르넬리아 토프, 서교책방
2025년 5월 15일 '가장 가난한 대통령'이라 불리던 우루과이 전 대통령, 호세 무히카가 별세했다. 호세 무히카는 검소하고 청렴하여 국민의 높은 신망을 받았다. 아래 말은 내 마음에 와닿았던 그의 명언이다.
“생각이 같은 사람을 존중하는 건 쉽지만, 민주주의란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것이다.”
나와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는 일은 쉽지 않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이 맞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자신의 말에 또 다른 말을 보탠다. 때때로 서로의 의견이 충돌하면 상대 의견이나 생각을 힐책과 공격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존중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의사소통이 이렇게나 어렵다. 때문에 다른 사람의 생각을 존중한다는 것은 매우 큰 노력을 요구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알고리즘은 현대 의사소통 문제를 악화시킨다. 우리는 편향적인 시각으로만 보기 쉬운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 알고리즘은 연령대, 성별, 지역, 관심사, 검색어 유입 등 모든 정보를 종합하여 개인 맞춤 정보로 보여준다. 검색 수가 많으면 연관 자료, 영상까지 계속 볼 수 있다. 알차고 유익하다.
하지만 알고리즘이 문제인 이유는 나의 관심사와 반대되는 정보는 쉽게 얻을 수 없어서다. 각자 자신이 자주 이용하는 SNS를 떠올려보자. 한 정보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일 경우 비슷한 내용들이 반복적으로 노출된다. 하나의 정보에만 몰두하고 편식하면 특정 믿음과 행동의 근거가 된다. 그 상태에서 정 반대의 의견을 가진 사람을 만나서 대화를 나눠본 적이 있는가? 순간적으로 거부감이 든다. 그 거북함을 없애고 싶다. 거북함을 없애는 방법은 상대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하게 만들면 된다. 그래서 말에 말을 보탠다.
의사소통이란 무엇인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뜻이 서로 통함'이다. 공통의 이해를 도모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그래서 나는 의사소통은 시소와 같다고 생각한다. 두 사람이 서로 발을 굴러야 놀이가 진행된다. 한 사람이 밑으로 내려가면 위에 있는 사람은 아랫사람이 발을 굴러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공통의 이해란 '내 의견도 어느 정도 맞고, 너의 의견도 어느 정도 맞다'라고 합의하는 것이 아닐까. 나의 의견에 100% 동의하도록 상대의 의견을 뜯어고치는 것은 의사소통이 아니다.
나는 다른 사람의 의견을 잘 받아들이는 편인가. 한 주제에 중립적이라면 "그래? 그럴 수 있겠다."라고 말하는 편이다. 하지만 나의 가치관과 상반된 의견을 들으면 즉각적으로 거부감이 든다. 몸짓, 자세, 표정, 또는 억양에서 그 거부감이 드러난다. 내 의견을 피력하려 나름의 근거를 보태기 시작한다.
보태고 덧붙이는 말들 사이에서 같은 대화가 반복된다 느껴본 적 있지 않은가? 피로감이 쌓인다. 반복되는 말은 대화가 아니라 소음이다. 그래서 어느 순간 귀를 닫는다.
어떻게 하면 그 피로감을 없앨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타인과 나 사이에 공통의 이해를 도모할 수 있을까?
답은 '침묵'이다. 내 의견을 보태기 전에 상대의 말을 다 들어보자. 열심히 새로운 내 취향, 가치관을 알아내려고 주의 깊게 나를 살피는 알고리즘처럼, 틀에 박힌 내 뇌에 새로운 생각을 심어주는 거다. 깊게 뿌리내리고 있던 내 마음에 희미한 의심이 들 수도 있다. '내가 확고하게 믿던 일이 사실이 아닐 가능성도 있을까.' 그러면 멈춰있던 시소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침묵을 배우는 시간>을 통해 의사소통을 배워보는 것은 어떨까.
글유랑
초안: 2025년 5월 15일 목요일 오후 10시
수정 1: 2025년 5월 16일 금요일 오후 12시 26분
수정 2: 2025년 6월 4일 수요일 오전 10시 55분
수정 3: 2025년 6월 5일 목요일 오후 3시 05분
수정 4: 2025년 6월 13일 금요일 오후 10시 52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