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유리 Dec 10. 2016

마지막 해녀, 죽성 영순씨

김유리가 만난 지구인 24 _ 죽성 해녀 허영순




아직도 부산에는 해녀가 있다. 풍덩, 바다에 뛰어든다. 잠수복을 입은 육십네 살의 육신이 푸른 바다에 잠긴다. 기장군 죽성 바다는 속이 맑아 해산물이 훤히 보인다. 닳은 관절을 삐걱거리며 지상의 힘겨운 걸음을 옮기던 두 다리는 힘차게 움직이며 바다 속으로 긴 숨을 옮긴다. 50년이 넘게 지속된 잠수는 남편을 뒷바라지 하고, 아이를 키우고, 집과 가게를 마련하게 했다. 죽성 <해녀집>의 하루는 그렇게 시작된다. 그녀가 오전에 손수 건져 올린 해산물을 가게로 가져오면 남편과 며느리가 씻고 다듬어 한 그릇 푸짐한 해물탕을 끓여내는 것이다.        






Q . 언제부터 해녀 일을 하셨나요?    


A . 열세살 부터 해녀를 해서, 여기까지 왔어요. 남편 사업 뒷바라지 하고 자식 공부 시키고요. 십년 전에 <해녀집>을 차렸어요.    



Q . 처음 바다에 들어간 날이 기억나세요?    


A . 죽성에서 태어나서 쭉 여기 살았어요. 할아버지 때부터 지금까지 쭉. 아버지가 8살 때 돌아가셨어요. 오빠 한분, 남동생 둘이었어요. 나는 딸이니까 동생들 키우고 오빠 공부 시켜야 했어요. 

 처음 바다에 들어간 게 열세 살, 한여름 이예요. 음력 7월. 이웃의 (해녀)선배가 ‘바다에 가보자’라는 거예요. 해녀를 배우라는 거예요. 나는 바다에 못 가는데 어떡하지, 하니까 배우면 된대요. 통을 가져가서 안고 바다로 나갔는데, 물 밑으로 못 내려가겠어요. 그런데 머리를 물 밑으로 처박아 넣는 거예요. 그래서 아우성을 치니까, 이래야 배운다는 거예요. 그렇게 한번 하고 두 번 하고, 한 달쯤 되니까 좀 배우겠더라고요. 그래서 바다 다녀가지고 동생들 공부시켰어요. 해녀들은 자기가 일 해서 살림을 다 이끌어요.     





Q . 언제까지 해녀 일을 하셨어요?    


A . 지금까지 하고 있어요. 오늘 아침에도 9시에 바다 나갔다 왔어요. 9시에 들어가서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해요. 한시나, 두시 쯤 되면 나와요. 오만 거를 다 잡아요. 성게철이면 성게 잡고, 전복 잡고, 문어도 잡고요. 오늘은 군소 잡아 왔어요.     



Q . 겨울엔 힘들지 않으세요?    


A . 괜찮아요. 파도만 안치면 괜찮아요.     



Q . <해녀집>은 언제부터 하셨어요?    


A . 10년 됐어요. 그 전부터 여기 해산물 집들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어요.     





Q . 결혼은 언제 하셨나요?     


A . 스물두 살 때 결혼했어요. 신앙촌에서 중매를 해 줘서. 우리 남편은 강원도 거진 사람이에요. 올해가 결혼한 지 41년 째예요. 우리 아들이 41살이고요. 남편은 평생 대리석 일을 했어요. 옛날엔 대리석 공장을 했어요. 돌을 캐 와서 가공하는 일이지요.     



Q . 지금 해녀들이 몇 분 정도 계시나요?    


A . 스물 몇 명 정도 돼요. 옛날에는 훨씬 많았어요. 한 오십 명? 거의 다 돌아가셨어요. 연세가 많아서. 우리가 잡은 것들을 일본에 수출 했어요. 우리는 내 살기 위해서도 일 하지만, 나라를 위해서도 일 했어요. 외화를 벌어오니까요. 주로 말똥성게를 많이 수출했어요.    





Q . 바다에 들어가면 어떠세요?    


A . 나는 바다가 참 좋아요. 아직도. 헤엄치는 것도 좋고, 물이 맑으면 맑을수록 고기 노는 게 잘 보이거든요. 그러면 내 마음도 포근해요. 물에 들어가면 다 보여요. 얼마나 좋아요. 물도 맑고 고기도 놀고 풀도 많고.     



Q . 한번 잠수하면 얼마나 있으세요?    


A . 3분이었어요. 옛날엔. 요즘은 어떤지 잘 모르겠어요. 안 재봐서.     



Q . 해녀 일을 하면서 가장 힘든 점은 뭔가요?    


A . 요즘은 다리가 아파서 깊은 데를 못 가요. 올라올 때 숨이 참 가쁘거든요. 그럴 때 제일 힘들어요. 바다를 많이 다니다보니 혈액순환이 안돼서 쥐가 잘 내려요. 10년 전에는 내 키보다 열길 깊은 곳도 다녔거든요. 요즘엔 얕은 곳만 다녀요.  





Q . 가장 자랑스러운 건 어떤 건가요?    


A . 내가 직접 잡은 것들로 음식 준비 하는 거요. 해산물도 그렇고, 반찬도 그렇고요. 채소 절임도 다 내손으로 직접 다 해요. 내손으로 한 거 아니면 안 해요. 직접 잡아서 파는 집은 우리 집 밖에 없어요.      



Q . 지금 해녀들 중에서 젊은 사람들은 없나요?    


A . (웃음)내가 제일 젊어요. 다 70대예요. 내가 54년생인데 최고 젊어요. 젊은 사람들 오면, 배우면 다 할 수 있어요. 한 일 년 배우면 기술자가 돼요.      



Q . 가족에게 하고 싶은 말씀은 없으세요?    


A . 항상 내가 사랑하는 우리 남편(웃음)! 41년을 살았지요.             








 동그랗고 천진한 얼굴은 햇볕에 그을려 있었다. 몇 천 년 전에도, 몇 백 년 전에도 먹고 팔 것을 구하기 위해 바다로 들어가는 여자들이 있었다. 뜨겁고도 찬 바다에 몸을 던져 수직으로 잠영하며 바다에서 나는 각종의 것을 숨의 길이만큼 딴 뒤에야 솟아올라, 푸우, 긴 숨을 내쉬는 딸들은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직업 중의 하나를 이어오고 있다. 인간의 역사에 이토록 역동적이고 주체적이며, 힘 있는 여성의 집단이 또 있을까. 스무 명 남짓 남은 죽성의 해녀들은 아직도 나이를 잊고 바다에 뛰어든다. 오래 참은 뒤에야 고래처럼 거대한 숨을 한번 쉰다.  




[김유리의 지구인 프로젝트]


「김유리의 지구인 프로젝트」는 
 부산문화재단의 문화다양성 확산을 위한 무지개다리 사업 일환으로 추진됩니다. 
 우리가 속칭 ‘소수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어쩌면, 인종이나 민족, 장애, 성별, 외모, 학력, 가족 구성, 지역, 사회적 신분 등 
 사회가 정한 틀에 의해 소수자로 분류된 건 아닐까요. 
 김유리의 지구인 프로젝트는 우리 모두 다 소수자라고 생각 합니다. 
 그래서 ‘부산에 살고 있으면서 사회적 편견을 경험한 40인의 지구인 에피소드’를 기록해 
 그동안 깨닫지 못했거나 무관심 했던 우리 안의 배타성에 대해 함께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부디 40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서 마음에 작은 파도가 일렁이기를 소망해 봅니다.  

                                                                      _ 부산문화재단 × 김유리         




작가의 이전글 그리고 신은 엄마를 창조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