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리가 만난 지구인 27 _ 성소수자 깻록 (가명)
성소수자인 친구가 있었다. 친구는 다니던 직장에서 아웃팅을 당한 경험이 있었다. 미처 로그아웃을 하지 않은 sns계정을 직장 동료가 훔쳐보았고, 그가 성소수자라는 소문을 낸 것이다. 해고 통보는 비밀스럽게 조용히 이루어졌다. 중년의 사장은 ‘별걸 다 봤다’라는 모욕적인 말을 흘렸고, 친구는 어금니를 꽉 깨물고 회사를 나왔다. 자신은 동성애자가 아니라는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이후 프리랜서로 전환한 친구는, 이제 해고당할 걱정이 없는데도 여전히 커밍아웃에 두려움이 있다고 했다. ‘깻록’은 자신의 이름이나 얼굴이 공개되어도 상관없다고 했지만, 내가 이름과 얼굴을 공개하지 못하게 했다. 이렇게 젊고 아름다운 친구가 호모포비아의 공격에 시달리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비겁했다. 그는 커밍아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비겁해져서라도, 그를 지켜주고 싶었다.
Q . 자기 소개를 해주시겠어요?
A . 이름은 ‘깻록’이라고 부르시면 되구요, 93년생이고요, 지금은 공장에서 일하면서 사이버대학 다니다가 졸업했어요. QIP(성소수자 인권 모임) 공동대표예요. 부산에서 태어나서, 구미에서 어린 시절 보내고 연산동, 연지동, 서동으로 이사를 계속 다녔어요.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외동이라 어머니랑 둘이 살고 있어요.
Q . 내가 성소수자 임을 자각한 때는 언제였어요?
A . 사춘기쯤에 짐작은 했었어요, 확실하진 않았고요. 고등학교 때 어떤 남자를 좋아하게 되면서 알았죠. 좋아하는 사람이 남자니까, 나는 성소수자라구나, 하고 느끼게 됐어요. ‘게이’라는 단어를 알게 되면서 검색을 해보니까 부산에 게이 커뮤니티가 있는 거예요. 눈팅만 하다가 친구들을 찾아서 만나게 됐어요.
Q . 첫 번째로 좋아하게 된 사람은 누구였어요?
A . 시를 좋아해서 문학 카페에 가입 했어요. 전국에서 다 모인 친구들이었는데, 가끔 만나서 합평회도 하고 했어요. 거기서 만난 친구인데, 다 같이 경주에 놀러 갔어요. 버스 정류장에 같이 서 있었는데, 제가 차선 밖으로 약간 나와 서 있었어요. 걔가 갑자기 위험하게 왜 거기 있냐고 절 끌어 안 듯이 선 안으로 당겼어요. 그때 심장이 엄청 두근거리는 거예요. 그리고 내가 얘를 좋아하는 다는 걸 알게 됐죠. 그리고 멀어져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게이라는 건 더러운 거고. 내가 얘를 좋아해서 치근덕거려서 얘도 게이가 되면 얘도 살아가기 힘들겠지 하는 생각에서요. 멀리하려고 했는데, 사람 마음이 안 그렇잖아요. 좋아하면서도 걔한테 여자 친구가 생기면 질투하고 그랬죠. 걔가 군대 간 동안 ‘나도 얘한테만 얽매이면 안되겠다’라는 생각에 마음을 접었죠.
Q . 직접적으로 혐오나 차별을 당한 적은 없었어요?
A . 차별과 혐오는 일상적으로 숨 쉬듯이 느껴요. 커밍아웃을 하기 전에 고등학교 때는, 친구들이 ‘게이 같다’라는 말을 좋지 않게 썼어요. 좋아하는 친구가 있으니까 좋아하는 티를 내게 되는데, 친구들이 ‘니네 둘이 게이 같다’고 놀리곤 했어요. 속으로는 ‘나 게이 맞는데’ 하기도 했죠. 커밍아웃 후에는 그 친구들이 게이라는 말을 비하하는 말로 안쓰게 됐어요.
공장에서도 ‘여자 친구는 언제 사귀냐’ ‘결혼은 언제 할 거냐’라는 말을 수시로 듣고요.
엄마도 제가 보라색 옷을 입고 나가려고 하면, ‘보라색 옷은 양성애자를 상징한다는데, 프레디 머큐리나 데이빗 보위 같은 양성애자들은 에이즈로 죽은 사람도 있고 그렇다. 근데 그런 색깔의 옷을 입으려고 하냐’고 말씀하시기도 하고요.
장난으로 여장을 하고 찍은 사진을 카톡 프로필로 올려 둔 적이 있었는데, 할머니가 그걸 보시고 ‘동성연애자냐’ 하시기도 했어요.
그런 얘기들은 들으면, 숨 쉬듯이 혐오와 차별을 느껴요. 사실은 사람들이 내가 이성애자 일 것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 부터가 차별이고, 혐오죠.
Q . 커밍아웃 후에 친구들은 괜찮았어요?
A . 저는 커밍아웃은 대체로 성공적이었어요. 친구들이 많이 이해해줬고요. 진보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어서 그랬던 것도 같고요. 성향 이전에 친구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나를 신뢰하고 지지해줬고요. 친구들이 혐오 발언을 전혀 안하는 건 아니에요. 그런 건 사회의 흐름에서 만들어 지기 때문에 의식 못하고 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래도 커밍아웃 자체는 괜찮았어요. 할 만한 사람들한테 해서 그런 것도 같고요.
친구들이 대충 눈치 채고 있는 분위기에서, 한 형이 불쑥 물었어요. ‘너 게이냐?’ 갑자기 물으니까 당황해서 ‘어떻게 알았어요?’라고 대답했죠. 그 다음에 바로 형이 그래요. ‘넌 남자 고추 보면 서냐?’ 얼굴이 빨개져서 아무 말도 못하고 그냥 있었죠. 그게 커밍아웃이 되버린 거예요. 나중에 친구들이 카톡으로 ‘왜 그렇다고 했냐’고 하긴 했는데, 그 형이 지금은 절 엄청 믿어주고 지지해주거든요. 아웃팅처럼 된 거지만 잘됐다고 생각해요.
Q . 내가 꿈꾸는 미래는 어떤 거예요?
A . 제가 뭔래 문학을 했거든요. 시를 썼어요. 올랜도 참사를 보면서 쓴 시 중에 ‘우리는 왜 모텔의 푸른 어둠 속에서만 손을 맞잡고 잘 수밖에 없고, 거리에서는 거리를 두고 떨어져서 걸어야 되고’ 이런 상황에 대해서 쓴 게 있어요. 이 사회의 모든 사람들은 소수자성을 가질 수밖에 없어요. 많은 사람들이 사랑의 역동을 부정하고 살아요. 동성애는 사춘기의 한때 감정이 아닐 수 있어요. 그때의 감정엔 동성에게 끌린 게 맞아요. 하지만 이 사회가 허용하지 않으니까 ‘한때의 감정’이라고 덮어버리는 거죠.
성소수자 인권 운동을 하고 있고, 그것이 성소수자만을 위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모든 사람에게 사랑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 성소수자 운동이라고 생각해요.
나의 스물넷을 떠올렸다. 나는 이토록 맑고도 뜨거웠던 적이 있었을까. 나의 스물넷은 방황과 자기 파괴의 연속이어서, 누군가와 연대할 생각을 조금도 하지 못했다. 스스로 삶의 물꼬를 틀고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 사람의 역동이 시작된 것은 그저 ‘누군가를 사랑했기 때문에’ 였다. 내가 사랑하는 대상을 허락하지 않는 사회에서 살아하는 것은 그저 대상을 바꾼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너는 잘못됐어, 네가 달라져야 해, 라는 말을 모두들 한 번씩은 들으며 살아가지 않을까. 나와 다른 사람을 배격하는데서 얻는 쾌락은 모랄을 마음대로 상정하고 휘두르는 칼에 지나지 않는다. 나와 당신이 다르다면 또 얼마나 다른가. 남자를 사랑할 뿐이다. 그저, 남자를 사랑할 뿐이다.
[김유리의 지구인 프로젝트]
「김유리의 지구인 프로젝트」는
부산문화재단의 문화다양성 확산을 위한 무지개다리 사업 일환으로 추진됩니다.
우리가 속칭 ‘소수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어쩌면, 인종이나 민족, 장애, 성별, 외모, 학력, 가족 구성, 지역, 사회적 신분 등
사회가 정한 틀에 의해 소수자로 분류된 건 아닐까요.
김유리의 지구인 프로젝트는 우리 모두 다 소수자라고 생각 합니다.
그래서 ‘부산에 살고 있으면서 사회적 편견을 경험한 40인의 지구인 에피소드’를 기록해
그동안 깨닫지 못했거나 무관심 했던 우리 안의 배타성에 대해 함께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부디 40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서 마음에 작은 파도가 일렁이기를 소망해 봅니다.
_ 부산문화재단 × 김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