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유리 Dec 15. 2016

누가 대리기사를 힘들게 하는가

김유리가 만난 지구인 28 _ 여성대리운전 기사 이영란

   



어느 해 크리스마스, 남포동 ATM기 앞이었다. 시간은 벌써 저녁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택시비를 인출하기 위해 ATM기가 설치된 작은 공간에 들어섰다. 얇은 모직 코트를 입은 한 남자가 대리운전 호출이 흘러나오는 단말기를 들고 그 안에 서 있었다. 남자는 크리스마스 기분에 들뜬 시내를 창밖으로 바라보았고, 조금 우울한 얼굴이었다. 남자의 핸드폰에 전화가 걸려왔고, 나는 그의 통화를 엿들을 수 있었다. 통화음이 커서 상대편의 목소리가 나에게도 들렸다. 그의 어린 아이인 것 같았다. 아빠, 언제 와? 아이는 커다란 음성으로 외쳤다. 아빠인 남자는 더듬거리며, 아빠 바쁘다, 라고 대답했고, 핸드폰 속 아이는 우는 것 같았다. 한참동안 아이가 우는 소리를 듣고 있던 남자는 울컥, 아빠 오늘 집에 못 간다! 하는 한마디를 뱉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리고 종료 버튼을 누른 전화기를 한참동안 내려다보고 서 있었다. 그때 나는 ‘가족’과 ‘대리기사’가 얼마나 양립하기 어려운 것인지 깨달았다. 지구 위의 모든 사람들이 가족과 함께 있어야 할 시간에 그는 ATM기 앞에서 추위를 피하고 있었다. 그는 그날 얼마를 벌었을까.         






Q . 자기소개를 해 주시겠어요?    


A . 55세, 8년째 대리운전 일을 하고 있는 이영란입니다.     



Q . 주말에 제일 바쁘신가요?    


A . 기사님마다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날이 제일 바쁘다고는 할 수 없겠네요. 요일마다 평이합니다.    






Q . 여성으로 일하기 힘든 직업이죠.    


A . 힘들 긴 하죠. 해운대 구청 근처에서 콜을 받는데, 여성 대리운전 기사라고 거부하는 콜을 4개 연달아 받아 취소되었던 날도 있었어요. 한번만 더 거부하면 대리운전을 그만두려고 생각했는데, 5번째엔 성공해서 여기까지 왔을지도 몰라요. 여성대리기사라는 직업은 여성의 관점에서 대리기사 일을 이야기 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대리기사의 애환이 일 자체로 커요. 혹 여성성을 잊을 나이라서 대리기사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닌지(웃음).

 아르바이트 하는 개념으로 하는 줄 아는 분들이 많긴 하지만, IMF이후 실업이 장기화 되니까 전업으로 하시는 분들이 70% 이상이예요. 특히 부산엔 나이 많으신 분들이 많고요. 부산이 고령화 사회니까요. 30~40%는 10년 이상의 경력자 들이예요.




Q . 처음 대리운전을 하시게 된 계기가 어떻게 되시나요?    


A . 돈을 벌어야 하니까 생활 정보지를 펼쳤는데, 대리운전 기사 모집 광고가 제일 많았어요. 면허증 하나만 있으면 되고 월 200만원을 보장한다는 문구가 있으니까 ‘낚였’어요. 200까지 벌기는 힘들어요. 8년 전 첫 회사에 갔을 때는, 보험료, PDA단말기 사용료, 통신료 다 떼고 다니까 오히려 마이너스 였어요. 빠릿빠릿한 사람들은 200도 벌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저는 그때 초보였으니까요. 길도 잘 모르고 콜의 흐름도 모르고, 콜 발생지역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는 주급 내고 나면 남는 게 없었어요. 그 회사는 도저히 안돼서 3주 만에 그만두고, 다른 회사로 갔어요.       





Q . 대리운전 기사님들의 수입 시스템은 어떻게 되나요?    


A . 크게 보면 ‘주급’을 내는 회사가 있고요, ‘콜’ 당 얼마를 내는 회사가 있어요. 주급을 내면 돈을 벌기가 굉장히 힘들어요. 일정 돈을 먼저 내고 일해서, 콜을 열 개를 타든 백 개를 타든 나머지는 다 자기 거라고 하니까 혹하긴 쉽죠. 주급은 한 콜 당 수수료를 계산해봤을 때 하루에 8개를 타야 낼 수 있는 금액이에요. 하지만 콜 발생률, 대리 기사 수를 봤을 땐 하루 8콜 타기가 정말 어려워요. 하지만 콜 당 수수료 보다 더 수입이 있을 거라는 회사 말에 혹해요. 희망고문이에요. 그럼 과도한 노동을 하게 되고, 건강을 해치는 일이 잦아요. 노동을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건 물론이고요.   


 콜 당 수수료 떼어가는 회사는 한 콜 당 3천원을 떼어가요. 그 콜이 얼마짜리이든 간에. 문제는요, 부산시내에서 최장 거리를 가도 18000원이 끝이에요. 더 먼 거리 가는 콜은 정말 잘 없고요. 보통은 시내콜이니까 만 원 짜리 콜이 80%에 가까워요. 그럼 30%를 회사가 가져가는 거잖아요. 거기다가 원래는 회사가 부담해야 하는 보험 금액을 콜비에서 떼요. 자기들이 오더를 받아서 기사들에게 분배를 하는 방식이잖아요. 그럼 당연히 회사가 그 보험료를 내야 하는 건데, 일단 보험료 내 놓고 기사들에게 그 비용을 나눠 내게 하는 거예요. 이러는 게 관행적으로 굉장히 오래됐어요. 옛날엔 회사가 다 책임졌다고 하더라구요. 단체보험이니까 유동성도 많고요. 그거 합치면 3천원이 아니라 4천원을 가져가는 거예요. 거기다 보험료가 어떻게 납부 되는지, 내가 낸 보험료가 어디로 가는지 투명하게 공개 되지도 못해요.          



Q . 회사마다 콜 프로그램이 다른가요?    


A . 네, 통합되면 되는데, 회사마다 다른 프로그램을 깔라고 해요. 그러면 다른 회사 콜을 받으면 보험료를 또 중복으로 내야 해요. 대리보험이고 운전자는 한 사람인데 회사마다 보험료를 내게 해요.     





Q . 만원 받아서 4천원 떼고, 그게 끝인가요?    


A . 아니에요. ‘합류차’란 게 있어요. 대리기사들이 운전해서 차를 갖다 놓고 나면 콜 받을 수 있는 지역으로 와야 하잖아요. 밤이라서 교통수단도 달리 없으니까요. 합류차가 셔틀처럼 돌면서 대리 기사들을 태워요. 그 합류차 운영비를 ‘출근비’라는 명목으로 또 가져가요. 6~7년 전에는 그 합류차 비용이 수수료 삼천 원 안에 다 포함이 됐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회사가 ‘출근비’를 단말기 켜자마자 가져가더라구요. 출근비 삼천 원을 매일 또 받아가요. 거기다 프로그램 사용비 500원도 더 받고요. 그날 운행을 안 해도 단말기만 켜면 출근비는 빠져 나가요. 돌려주지 않아요. 그럼 대체 얼마가 남겠어요. 하룻밤에 몇 콜을 타야 되겠어요.     



Q . 불만을 제기하는 기사들이 있지 않나요?    


A . 당연히 다들 불만이죠. 근데 어느 기사가 항의를 하면, 그 기사는 운행을 못하게 프로그램에 락(rock)을 잠궈 버려요. 그냥 일을 못하게 하는 거예요. 임금이나, 인격이나, 안전에 대한 부분을 요구 할 수밖에 없는데, 그러면 그냥 락을 잠그고. 그런 부분에 대해서 ‘서비스 연맹’ 이란 게 만들어졌어요. 단체 행동을 할 수 있게요. 여러 사람이 함께 요구할수록 일하는 환경이 좋아지잖아요. 회사가 더 이상 폭리를 취하지 못하게 해야 해요. 

 손님이 힘들게 한다? 아니요. 회사가 힘들게 해요. 회사는 대리운전을 해서 돈을 버는 것보단 대리기사들에게서 부당하게 가져가는 걸로 돈을 더 버는 것 같아요.     



Q . 사실은, 대리기사들이 하는 노동에 비해 턱없이 적은 돈을 받고 있다는 거군요.    


A . 구조가 문제예요. 이렇게 해도 회사가 끄떡도 없는 구조. 노동의 강도는 높아지고 벌이가 안 되면, 노동의 질이 보장이 안 되잖아요. 그럼 사고도 많이 나겠죠. 결국은 소비자에게 피해가 돌아가는 구조예요.            






다시 어느 해 크리스마스의 밤, 나는 김해에서 부산으로 가는 국도를 달리고 있었다. 황량한 국도 주변의 공터 부근에서 한 중년의 여자가 내 차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도로엔 내차 하나  뿐 이어서, 그녀가 나를 향해 뭔가 요청하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차를 세우고 차창을 내리자 그녀는, ‘대리기사인데 부산에서 김해까지 왔다. 부산 가시는 길이면 가시는 데까지 태워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녀와 함께 구포로 가는 십 여분 동안, 그녀는 차 히터 송풍구에 언 손을 녹이며 수줍게 웃었다. 김해까지 와야 이만 오천 원을 버는 데 돌아갈 방법이 없다고 했다. 저 아니면 뭘 타려고 그러셨어요, 라고 묻자, 그녀는 ‘화물트럭한테 태워 달라고 그래요’라고 대답했다. 도저히 ‘이 일은 위험하지 않나요’라고 물을 수 없었다. 위험한 일이다, 그러나 그녀는 대리운전을 해야 하는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영란은 그런 것보다 더 힘든 게 대리운전 회사의 착취라고 말한다. 밤을 새워 낯선 사람의 차에 타고 낯선 차를 얻어 타고 취객을 견디는 일보다 더 힘든 건 그 고생을 한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것. 우리는 더 근본적인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 그들을 위험하게 만드는 건 사람일까, 아니면 구조일까.





[김유리의 지구인 프로젝트]


「김유리의 지구인 프로젝트」는 
 부산문화재단의 문화다양성 확산을 위한 무지개다리 사업 일환으로 추진됩니다. 
 우리가 속칭 ‘소수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어쩌면, 인종이나 민족, 장애, 성별, 외모, 학력, 가족 구성, 지역, 사회적 신분 등 
 사회가 정한 틀에 의해 소수자로 분류된 건 아닐까요. 
 김유리의 지구인 프로젝트는 우리 모두 다 소수자라고 생각 합니다. 
 그래서 ‘부산에 살고 있으면서 사회적 편견을 경험한 40인의 지구인 에피소드’를 기록해 
 그동안 깨닫지 못했거나 무관심 했던 우리 안의 배타성에 대해 함께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부디 40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서 마음에 작은 파도가 일렁이기를 소망해 봅니다.  

                                                                      _ 부산문화재단 × 김유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