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리가 만난 지구인 32 _ 전공과 다른 직업을 선택한 이상명
그는 물고기를 좋아한다고 했다. 대학 때 부산으로 와 투어(鬪魚) 네 마리를 기르고 있는 그의 방엔 어항이 네 개다. 물고기 ‘베타’는 수컷끼리 싸우기 때문에 각각의 어항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했다.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자연대생, 문화 예술을 좋아하는 공대생으로 산 그는 지금 부산문화재단에서 일하고 있다. 주력 생활과 전공을 몇 번이나 바꿔 온 그의 삶은 어떤 질서를 가지고 있을까, 나는 그 질서의 패턴이 궁금했다.
Q . 상명 씨는 어떤 분이신가요?
A . 1987년에 밀양에서 태어났어요. 부모님이랑 아둘 둘 있는 집의 막내예요. 부경대 수산생명학부에서 공부했어요. 수계 어류를 관리하고 진단하는 과예요. 수계 질병 원인인 물을 공부해보고 싶어서 석사는 환경공학을 전공했고요. 어렸을 때부터 취미로 바이올린을 했는데, 악기는 지금까지 계속 하고 있어요. 문화예술에 관심이 많아서 아트 페어에서 자원 활동을 많이 했구요. 지금은 부산문화재단에서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어요. 올해 12월 31일이 마지막 날이에요.
Q . 바이올린을 처음 손에 잡은 날이 기억나요?
A . 피아노 학원에 다녔어요. 여섯 살때부터요. 동네 피아노 학원이라 칸막이 없는 큰 방 하나에 피아노가 여러 대니까, 엄청 번잡스러웠어요. 주눅도 많이 들고요. 그래도 피아노 대회를 계속 나갔던 이유가, 대회를 나가면 이모나 삼촌들이 수고했다고 레고를 선물해주시는 거예요. 레고를 갖고 싶어서 대회를 계속 나갔어요. 근데 학원에서 소리에 집중을 못하니까 점점 피아노가 재미가 없어지던 참에, 원장선생님 딸이 바이올린을 하는 걸 봤어요. 바이올린을 배우면 원장 선생님 사랑을 더 받을 것 같아서 바이올린으로 바꿨는데, 선생님이 레슨을 따로 받을 것을 권해서 레슨을 받기 시작했어요. 형이랑 태권도 도장도 다녀봤는데, 형이랑 대련을 자꾸 시키니까 제가 맞기만 하는 거예요. 태권도 같은 운동은 영 아닌 것 같았어요. 바이올린만 오래 배웠어요. 전학가면서 잠깐 놨다가, 특기 적성으로 바이올린을 다시 했어요.
Q . 시키면 시키는 대로 열심히 하는 학생이었을 것 같아요.
A . 싫어도 싫다고 말을 잘 못하거든요. 엄마가 몇시간 연습하라고 하면 그대로 했어요. 그래서 틀에 박힌 직업, 군무원이나 그런 걸 해야 되나 생각하기도 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물고기를 쭉 키웠으니까 대학 전공을 그 쪽으로 선택하긴 했는데, 나 같이 능동적이지 않은 학생에겐 연구 개발을 해야 하는 삶이 맞지 않는다고 점점 느끼기도 했어요.
Q . 물고기를 키운 게 전공 선택에 영향을 미쳤네요.
A .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이 열대어를 많이 키우셨어요. 물고기는 엄청 잘 죽어요. 환경이 어땠길래 죽지?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죠. 관리를 잘 해줘도 죽는 경우가 있어요. 지금 혼자 사는 집에서도 물고기를 키우는데, 아무리 비싼 필터에 좋은 사료, 좋은 박테리아를 넣어줘도 죽는 일이 있어요. 집에서 어머니가 항아리에 키우는 물고기보다 더 약해요. 과학보다 엄마 손이 더 좋은 가 봐요(웃음). 제가 입학 할 때는 우리나라에 세군데 밖에 물고기 질병 관련 과가 없었어요. 그래서 밀양에서 부경대로 왔어요.
Q . 부산 왔을 때 어땠어요?
A . 신세계였어요.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문화 예술을 더 자주 접할 수 있고, 음악 활동을 할 수 있는 게 좋았어요. 우리 학교엔 음대가 없는데 저만 바이올린 케이스를 메고 다녔죠. 학교에 생긴 오케스트라 1기로 활동했는데, 너무 재미있었어요. 이작 팔만 같은 주자를 좋아했어요. 요즘은 김봄소리나 김다미 같은 젊은 연주자들이 좋아요. 소설가 피천득의 외손자인 스테만 피 재키브도 좋아해요. 클래식에도 아이돌이 있어요. 그런 연주자들 보러 다녀요. 국제음악제 자원활동 했을 때, 그런 분들이랑 같이 밥 먹고, 옆방에서 자고 하는 게 너무 신기했어요. 저런 분들이랑 같이 일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상상도 많이 했고요. 그래서 부산문화재단으로 왔어요. 문화 복지팀인데, 팀웍도 좋고 너무 재미있어요. 퇴사 할 생각하면 슬퍼요.
Q . 학교 다닐 때, 내가주변 사람들과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A . 보통의 남자들은 클래식과도 거리가 멀고, 저랑 성향이 좀 다르기도 했어요. 근데 제가 친한 사람들은 저랑 다들 비슷했어요. 대학원 다닐 때 실험실에서 연구하고 밤샘하고 하는 건 의외로 재미있었거든요. 주변 상황이 그러면 맞춰서 잘 하는 편이라서 ‘쟤는 왜 다르지’하는 사람은 못 만났어요. 클래식을 좋아하니까, 가요 프로그램을 잘 못 봐요. 저는 재미가 없더라고요. 그 시간에 <다큐 3일>이나 <예술 무대>를 보는 걸 더 재미있어 하니까 조금 다르긴 했어요. 대학 와선 오히려 삶의 질이 높아졌다고 생각한 게, 저 같은 애들이 있더라구요. 친구 중에 법대 다니다가 편입을 해서 화학과 와서, 의전 준비하는 친구가 있거든요. 페이 닥터라도 해서 음악을 할 거래요. 저보다 더 다양한 삶을 사는 친구가 있으니까, 저는 덜한 편이죠. 팀 <아재스>라는 앙상블 팀을 하는데, 다 제 또래인데 각각 다 다양해요. 전공도 다 다르고 살아온 배경도 다른데 공통적으로 어렸을 때 음악을 했어요. 그런 것처럼 친구들도 나도 마음에 품고 있는 음악을 가지고 살아가는 거죠. 재미있어요.
Q . 물고기를 좋아하는 것과, 음악을 좋아하는 것 사이에 어떤 맥락이 보여요.
A . 내 자신의 세계를 본다는 거요. 한 마리 물고기를 두세 시간 보고 있을 때도 있거든요. 음악 듣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저는 두세 가지 일을 한 번에 잘 못해요. 한 가지 일만 하는 편인데, 그렇게 조용히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좋아요. 연주도 연구도 마찬가지잖아요. 한가지에만 집중하는 게 좋아요.
Q . 전공과 다른 취업을 했을 때, 부모님의 반응은 어땠어요?
A . 대학 오고 취업 하면서 부산에서 따로 사니까, 구체적은 반응은 잘 모르겠어요. 어렸을때부터 부모님의 뜻을 거스른 적이 없었어요. 이 학교에서 공부하라면 공부하고, 저 기숙사 들어가라면 들어가고요. 술도 대학 와서 처음 마셨어요. 조금 더 어렸을 때부터 새로운 걸 해봤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은 들어요. 조금 더 주도적인 프로젝트를 더 해봤겠죠. 부모님은 ‘공부 시켰는데, 낼 모레 전공 시험인데 음악을 하러 가냐’ ‘석사까지 시켜놨는데 문화예술 한다’는 말씀을 하시기도 했어요. 근데 요즘엔 조금 달라지셨어요. ‘네가 하는 걸 존중한다.’ ‘네가 즐거우면 된 거다’라고 하세요. 문화 예술 일 하면서 회사 나가는 게 너무 즐겁다는 말 자주 했고, 실제로도 그랬거든요. 그런 모습 보고 달라지신 것 같아요.
Q . 계약이 끝나면 뭘 할거예요?
A . ‘독트리아’라는 프로젝트 이름을 붙여봤어요. 독일이나 오스트리아가 음악으로 유명하니까, 가서 부딪혀보고 싶어요. 설 전에는 돌아올 거예요. 내년이면 서른한 살이에요. 이렇게 방황해도 되나 싶지만, 막상 이렇게 살아보니까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렸을 때부턴 서른세 살에 결혼할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걸 버리는 대신에 다른 삶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단기직이라도 이쪽 일을 계속 하고 싶어요.
Q . 물고기 이름이 뭐예요?
A . 투어 인데, 베타를 네 마리 키워요. 같이 넣어 두면 싸우니까 어항 네 개에 한 마리씩 둬요. 지금은 ‘크리스탈 레드 쉬림프’를 키우고 있고요. 새우인데, 너무 예뻐요.
바이올린 플레이어, 물고기, 공대생, 새우와 베타, 문화와 예술, 부산 문화재단. 마치 그는 필요 한 것과 필요하지 않은 것, 양쪽을 다 잘 채운 사람 같았다. 잦은 웃음으로 연주하는 화법엔 따뜻함이 가득했다. ‘하고 싶은 일’을 늘 잘해온 만족감이 배어 있는 탓 일까. 두 팔이 닿는 거리만큼의 세계 안에서 깊은 우물을 파고 조용히 내면을 들여다보는 작업들, 그를 관통하는 것은 그런 질서다. 그 우물은 깊이를 알 수 없다. 다만, 맑고 청량하다.
[김유리의 지구인 프로젝트]
「김유리의 지구인 프로젝트」는
부산문화재단의 문화다양성 확산을 위한 무지개다리 사업 일환으로 추진됩니다.
우리가 속칭 ‘소수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어쩌면, 인종이나 민족, 장애, 성별, 외모, 학력, 가족 구성, 지역, 사회적 신분 등
사회가 정한 틀에 의해 소수자로 분류된 건 아닐까요.
김유리의 지구인 프로젝트는 우리 모두 다 소수자라고 생각 합니다.
그래서 ‘부산에 살고 있으면서 사회적 편견을 경험한 40인의 지구인 에피소드’를 기록해
그동안 깨닫지 못했거나 무관심 했던 우리 안의 배타성에 대해 함께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부디 40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서 마음에 작은 파도가 일렁이기를 소망해 봅니다.
_ 부산문화재단 × 김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