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리가 만난 지구인 31 _ 무슬림 이동하
이태원에 이슬람성원이 있다는 걸 안 것은 이태원에 도착한 직후였다. 태어나서 처음 해 본 서울여행이었다. 나는 스물 몇 살의 대찬 아가씨였고, 단지 궁금하다는 이유만으로 스스럼없이 성원에 들어섰다. 모스크는 몹시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이태원 주택가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긴 옷을 입은 외국인들이 몇 명 보였고, 나는 그들을 무심하게 지나쳐 예배당으로 들어갔다. 와, 예쁘다. 나도 모르게 경탄이 터져 나왔다. 예배당에서 경전을 읽던 중년의 한국인 남자가 자신의 입술에 가만히 손가락을 갖다 댔다. 쉿, 여기서는 조용히 하셔야 합니다. 나는 그의 곁에 앉아 ‘평화’에 관한 긴 이야기를 들었다. 그가 내가 만난 첫 번째 무슬림이었다. 이동하 씨는 두 번째 무슬림인 셈이다.
Q . 금샘외국인센터장이신데, 그곳은 어떤 곳인가요?
A . 2002년에 터전이 시작됐는데, 한해 전에 남산동 부산이슬람성원에서 근무했어요. 산업연수생들이 외국에서 많이 들어왔지만, 사회는 다문화에 관한 이해가 전무한 상태였어요. 제가 외국에 체류 할 때, 우리 이슬람 안에서는 ‘형제’를 강조하니까 도움을 많이 받았거든요. 한국 들어온 후엔 그 도움을 돌려줘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살기 시작하면 집도 얻어야 되고, 직업도 구해야 되고, 몸 아프면 병원도 가고, 세간살이 구하는 자잘한 것까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해요. 제가 외국에서 그랬던 것 처럼요. 이후로 그 일을 계속 해 오다가, 2013년에 정부 시택으로 각 경찰서마다 ‘외국인도움센터’를 만드는 사업을 했어요. 그때부터 이 타이틀을 걸고 센터를 시작했어요. 외사계 직원분이 부산문화재단에 연결을 시켜줬어요. 외사파트나 문화재단이나 도움을 많이 주셨어요.
Q . 경찰청 외사 파트에서 왜 도움을 주셨죠?
A . 외사 파트는 외국인의 범죄를 사전에 예방해야 하고, 동향도 파악해야 하기 때문에 일단 도움을 먼저 주는 쪽이에요. 그래야 소스를 받을 수 있잖아요. 외국인 두들겨 잡는 곳이 아니에요. 온천장, 부산대 지하철역에서 경찰들이랑 같이 공연도 했었어요.
Q . 2003년 당시, 다문화에 대한 이해가 없을 때는 어떤 일이 있었나요?
A . 외국인근로자들에 대한 시스템이 없으니까, 체불, 구타, 인신비방이 다분히 발생했죠. 더 큰 문제는 노동 강도가 심하다는 거고요. 통역도 안 되고요. 그 부분을 지속적으로 도와줬죠. 사업주들 마인드가 ‘돈 벌러 왔으니까 뼈 빠지게 돈 벌어라’라는 거였거든요. 지금은 외국인근로자들 노조도 있으니까 많이 낫죠.
Q . 외국어를 전공하셨나요?
A . 원래 전공이 아랍어 인데, 아랍어는 잘 못하고, 인도네시아어를 잘 해요.
Q . 외국엔 어디 계셨어요?
A . 동남아시아쪽에 있었어요. 공부하러 가서 여기저기 많이 다니고요. 들락날락 하면서 꽤 오랜시간. 집사람도 말레이시아 사람이예요. 제 종교도 이슬람이예요. 무슬림이죠.
Q . 동남아엔 어떻게 이슬람이 전파되었나요?
A . 300년 쯤 전에 아랍 상인들이 들어가면서 이슬람을 전파시켰어요. 이슬람은 현지 문화를 먼저 존중해주거든요. 그래서 많이 전파됐죠. 가보면 전통 이슬람에서는 좀 벗어난 문화가 많이 남아 있어요.
Q . 종교 생활을 하신지 얼마나 되셨어요?
A . 86년도에 몸을 담았으니까, 30년 정도 됐어요. 이 종교를 믿어야 겠다, 라는 부분에 관해서는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하지 않아요. 난 좋아서 선택했지만, 이슬람 신자가 아닌 사람에게 그런 이야기 하면 은연중에 종교를 강요하는 게 되는 것 같아요. 이슬람에서는 큰 정신 중의 하나가 ‘종교를 남에게 강요하면 안 된다’라는 거예요.
Q . 이슬람은 종교 생활을 어떻게 하나요?
A . 카펫을 깔고, 하루 다섯 번 기도를 해요. 장소 불문하고요. 지켜야 하는 룰을 평소 생활에서 지키고요. ‘할랄’은 ‘허락된 것’이고, ‘하람’은 금지된 것이에요. 먹거리에만 한전 되는 것이 아니라 생활 전반에 관한 것이예요. 그래서 ‘할랄적 삶’을 살아야 하는 거죠. ‘너희들에게 금하는 것보다 허용된 게 더 많니라’는 말씀도 있어요. 이슬람에서는 남녀 관계에서, 외도나 매춘에 대해 처벌을 해요. 하람이죠. 반대로 결혼을 통한 관계는 허용돼요. 이건 할랄이죠. 결혼을 통해서 합법적으로 행하라는 거죠.
금요일마다 합동 예배가 행해지는데, 한국 여건상 직장 때문에 힘드니까. 유학생들은 예배에 오곤 하죠. 생활 속에서 지키는 룰이 많으니까 타 종교인들이 보면 타이트하게 느끼기도 하죠.
Q . 이슬람이 일부다처제에 대한 편견이 있죠?
A . 이 부분이 중요해요. 말씀드릴게요. 종교상의 룰은 처를 4인까지 두는 게 가능해요. 2016년 기준으로 전 세계 인구 18억 5천만 명 중에서, 일부일처를 지향하는 문화는 97%예요. 왜 그런 결과가 나올까요? 무슬림이 그렇게 많은데요. 처를 한명 감당하기도 힘들어요. 보통 남자는요. 거기다 첫 번째 처가 동의하지 않으면 두 번째 처를 얻을 수 없어요. 그래도 남편이 원하면 이슬람에선 이혼할 수도 있어요. 나머지 3%는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한 것 같아요. 처를 많이 둬서요. 간혹 처가 두 명 세 명인 사람을 보기도 하는데, ‘부럽다’라는 생각보단 ‘힘들겠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해요.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나서 함께 살기가 한명도 힘든데, 두 명 세 명이라니요. 이슬람에선 남편이 가족을 부양해서 가장의 역할을 다 해야 하는 의무가 있어요. 일부다처제는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아요.
Q . 다른 편견은 뭐가 있죠?
A . 무지 않죠.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는 의미로 부산문화재단과 사업을 함께 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이슬람에서는 풍악을 울리거나, 시끄럽게 떠들거나, 장례식 때 소리 높여 곡을 하는 것 들을 꺼려해요. 결혼식 같은 특별한 날에만 가무를 허용하고요. 이슬람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신께서 부여한 감성과 이성 중에, 바로 이성에 의존해요. 항상 깨어 있어야 해요. 깨어 있어야 신께서 나에게 부여한 명령을 지켜나갈 수 있잖아요. 이런 부분 특성이 있다는 걸 이해시키는 거죠.
Q . 무슬림이 되면서 가장 좋은 점은 뭐였어요?
A . 내가 이 종교를 선택했고, 가장 소중한 존재인 ‘가족’을 얻었지요. 우리 집사람도, 아이도 이슬람 신자예요. 이슬람에선 ‘움마’라고 하는 공동체 문화가 있는데, 공동체의 시작은 가정에서부터예요. 가장은 가사 일을 도와야 하는 의무도 있어요. 가정적이어야 해요. 어떤 한국남자들처럼 집안에만 퍼져 있으면 안돼요. 여자는 자녀 양육을 해야 하고요. 가정이 이런 조화의 최소 기본 단위고, 친족, 사회 순으로 더 넓게 퍼져 나가요. 어려울 때마다 우리 가족은 종교로 다 풀었어요. 만족해요.
Q . 이슬람에서 가장 중요한 정신은 뭔가요?
A . ‘평화’예요. 신이 만들어 놓은 질서 속의 평화. 신의 틀은 인류 보편적인 사고예요. 이슬람이 보편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어떻게 세계 3대 종교가 됐겠어요. 저는 한국에서는 소수지만, 이곳을 나가면 다수예요. 테러리스트가 많지 않냐는 오해에 대해서는 이제 일일이 대응 할 수도 없어요. 세계 인구 중에 세 명 중의 한명이 이슬람 신자인데. 그런 오해를 받아도 관대하게 품어요. 그게 이슬람의 정신이니까요.
서울 성원에서 만난 남자에게 기독교 신자였던 나는 ‘우리는 같은 신을 믿고 있지요’라고 대답했다. 이슬람의 역사와 선지자들은 기독교의 그것과 어느 정도 맥락을 같이 한다. 논란이 있을 수 있는 문제이나 당시의 나에겐 그들이 나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신의 이름을 훔쳐 저지르는 전쟁에 그들이 어떤 책임을 져야 할까. 나의 종교 역시 긴 살육의 역사를 책임지지 않는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슬람은 많은 오해와 편견 속에서 자라고 있다. 관습과 율법이 다르다고 이들을 배척할 것인가. 그의 말대로, 한국 밖을 벗어나면 그가 다수다. 무슬림이 아니라는 이유로 차별받을 수 없듯이, 무슬림이라는 이유로 차별 받을 수는 없다.
[김유리의 지구인 프로젝트]
「김유리의 지구인 프로젝트」는
부산문화재단의 문화다양성 확산을 위한 무지개다리 사업 일환으로 추진됩니다.
우리가 속칭 ‘소수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어쩌면, 인종이나 민족, 장애, 성별, 외모, 학력, 가족 구성, 지역, 사회적 신분 등
사회가 정한 틀에 의해 소수자로 분류된 건 아닐까요.
김유리의 지구인 프로젝트는 우리 모두 다 소수자라고 생각 합니다.
그래서 ‘부산에 살고 있으면서 사회적 편견을 경험한 40인의 지구인 에피소드’를 기록해
그동안 깨닫지 못했거나 무관심 했던 우리 안의 배타성에 대해 함께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부디 40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서 마음에 작은 파도가 일렁이기를 소망해 봅니다.
_ 부산문화재단 × 김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