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리가 만난 지구인 36 _ 공시생 박준혁
그의 작은 고시원 방은 공무원 시험에 관한 책들로 가득했다. 책장 하나를 가득 채운 공시 책들은 두껍고 무거웠다. 국어, 영어, 국사, 복지학. 더해서 형법, 행정법, 교정학 ..... 책들은 죄다 손때가 묻어 있었고, 더러는 들고 다니기 가볍게 하려고 반으로 잘려 있었다. 3년째예요. 그는 수줍게 웃었다.
고시원이랑 학원만 왔다갔다 해요. 혈기왕성한 애들이 아침 7시 반부터 저녁 늦게까지 이백 명, 삼백 명 모여서 공부하는 걸 보고 있으면 다들 고등학생이 된 것 같아요. 20대부터 40대까지 다 모여 있는 데도요. 잘생기고 예쁜 애들도 많은데, 분위기가 다들 칙칙해요.
‘칙칙하다’라고 말하며, 그는 웃음을 터뜨렸다.
Q .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 이름은 박준혁이고요, 28살이에요. 대학 졸업한지 3년 됐어요. 사회복지학을 전공했고요. 지금은 교정직 공무원을 준비하고 있어요.
Q . 사회복지학을 전공했는데 왜 교정직을 지원하세요?
A . 고등학교때부터 사회복지를 굉장히 하고 싶었어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자원봉사를 나가면서 약 400~500시간 정도 되는 봉사활동을 했어요. 그러면서 고등학교 3학년이 되던 해에 전국청소년자원봉사대회에서 금상을 탈 정도였으니까요.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대학 졸업하고 1년차에, 사회복지직 공무원에 필기 합격했어요. 하지만 면접에서 탈락했고, 그러면서 멘붕 상태에 빠졌어요. 어영부영 1년이 흘러갔고, 다시 정신 차려서 지금은 바짝 공부하고 있어요. 교정직이 경력채용도 있고 공채도 있고, 하니까 두 번의 기회가 있는 거죠. 그래서 교정직으로 시험을 준비하고 있어요. 사실 하나의 직렬을 준비하는 사람은 잘 없어요. 무조건 들어가는 게 우선이니까요. 내년에도 사회복지직 다시 치고 싶고, 교정직도 치고 싶은데, 같은 날 치니까 교정직을 치려고 해요, 교정직이 뽑는 인원이 더 많기 때문에 확률적으로 높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어떻게 보면 하고 싶은 직렬은 사회복지 일지 몰라요. 근데 확률적으로 교정직에 지원할 수밖에 없어요.
Q . 대학 시절은 어땠나요?
A . 고등학교 때의 자원봉사를 바탕으로 공부를 하니 흥미를 더 가질 수 있었어요. 어찌 보면 내가 활동했던 것들을 글로 배우는 거니까 이해도 빨랐어요. 그래서 줄곧 성적은 좋았던 것 같아요. 평점 4.37로 졸업했거든요.
Q . 공무원 시험을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은 때는 언제였어요?
A . 군대를 갔다 온 뒤에요. 막연하게 생각은 하고 있었죠. 복지 현장으로 나갈지, 다른 직업을 가질 지요. 선배들 중엔 공무원 시험 준비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우리 학교에선 신설 학과였거든요. 남자는 군대를 갔다 온 후에는 나중을 생각해보는 것 같아요. 그 중에 제일 큰 게 직업이 아닐까 생각돼요. 내가 이 일을 해서 밥은 먹고 살 수 있을지, 내 처나 내 가족이 그 돈으로 부족함 없이 살 수 있을 지를요. 그래서인지 남자 선배들은 사회복지를 하면 돈벌이가 약하니까 따로 기술을 배운다든가 급여가 좋은 공장으로 간다든가 해요. ‘사회복지사 둘이 만나면 차상위계층’이란 말이 있을 정도예요. 하지만 여자들은 회사 경리 정도의 페이는 되니까 사회복지 일을 해요. 하지만 전부 다는 아니고요. 몇몇은 결혼을 하기도 해요. 잘 풀리면 은행 같은데 들어가기도 하고요. 메이저 은행은 아니고요.
Q . 시험 준비 하면서 제일 힘든 건 뭐였어요?
A . 내가 하는 일을 인정받지 못해요. 그냥 노는 사람으로 생각해요. 나는 아침부터 밤까지 계속 공부하는데, 그래도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는 일이 없는 사람처럼 느껴지나 봐요. 친구를 만나기에도 껄끄럽고, 페이가 얼마 되지 않는 복지관이지만 돈을 버는 걸 보면서 나는 뭘 하고 있냐는 자괴감이 듭니다. 하지만 복지관에 취직을 하고 싶은 마음은 없는 것 같아요. 너무 보수가 약해요. 그리고 선택의 폭이 없다는 게 제일 힘들어요. 다른 직업을 생각하기가 힘들잖아요.
Q . 부모님은 어떤 기대를 하고 계세요?
A . 공무원 되는 거, 그게 소원이라고 어머니가 말씀하세요. 제 부모님 뿐 만 아니라 많은 부모님의 소원이지 않을까요? 어쩌면 20대의 소원일지도 모르죠. 원래 제 나이였으면 부모님 대엔 결혼 하고 아이 낳고 할 땐데, 아직 부모님 손을 빌려야 한다는 것도 그렇고, 직업을 얻어야 경제적인 독립과 함께 심리적인 독립도 할 수 있으니까요,
Q . 공무원이 된 이후엔 어떻게 살고 싶어요?
A . 간섭 받지 않고 살고 싶어요. 누구에게든. 내가 이제까지 못했던 거, 하고 싶었던 거 하고 싶어요. 여행도 다니고 싶은 욕구가 제일 크고요, 여행에 필요한 것들 배우고 싶어요. 이를테면 외국어라든가 하는 거요. 여행 가는 나 자신이 상상이 잘 안될 정도로 지금은 힘들어요.
공무원이 되면 장기적으로 뭘, 하겠다는 생각을 할 겨를은 없었어요. 20대는 다 그렇지 않아요?
Q . 20대들의 삶이 어떻다고 생각해요?
A . 어둠 속에 빛 한줄기가 있는데, 그게 공무원인 거죠.
Q . 내가 상상하는 나의 미래는 어떤 거예요?
A . 평범하게, 직장 다니면서 지내는 거요. 경제적으로 스트레스 덜 받으면서요.
고시원 벽은 얇았다. 옆방에선 재채기 소리, 핸드폰 진동소리, 낮잠을 자는 사람의 코고는 소리가 둔탁하게 들렸다. 공부 하는 동안엔 그 소리가 별로 들리지 않지만, 잠을 자려고 누우면 선명하게 들린다고 했다. 나는 이 좁은 방에 누워 작은 천정을 들여다보며 잠드는 한 청년을 상상했다. 사각의 미래는 어떤 빛을 가지고 있을까. 아직은 지치지 않았고, 아직은 들뜨지도 않은 이 젊음이 감당해야 하는 취직 준비는 견딜 한 할 만큼만 무거운 걸까. 고시원을 떠나면서, 나는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았다. 무거운 가방을 멘 청년 두 명이 연이어 고시원으로 들어가는 광경이 보였다. 저들 역시 비슷한 무게를 지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 똑같이 보며 잠드는 사각의 풍경은 저마다 다른 색깔이겠지만, 나는 어쩐지 그들이 몇 명이 아니라 몇 만 명 같다고 느꼈다.
[김유리의 지구인 프로젝트]
「김유리의 지구인 프로젝트」는
부산문화재단의 문화다양성 확산을 위한 무지개다리 사업 일환으로 추진됩니다.
우리가 속칭 ‘소수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어쩌면, 인종이나 민족, 장애, 성별, 외모, 학력, 가족 구성, 지역, 사회적 신분 등
사회가 정한 틀에 의해 소수자로 분류된 건 아닐까요.
김유리의 지구인 프로젝트는 우리 모두 다 소수자라고 생각 합니다.
그래서 ‘부산에 살고 있으면서 사회적 편견을 경험한 40인의 지구인 에피소드’를 기록해
그동안 깨닫지 못했거나 무관심 했던 우리 안의 배타성에 대해 함께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부디 40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서 마음에 작은 파도가 일렁이기를 소망해 봅니다.
_ 부산문화재단 × 김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