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리가 만난 지구인 38 _ 주거 공동체 ‘잘자리’ 식구 오용택
‘집’을 찾는 청년들에게 집은 한글자보다 무거운 존재이다. 조금만 발 뻗고 누울 자리가 더 있으면 40여 만 원을 훌쩍 넘는 월세, 아르바이트를 해도 몇 달에 별수 없는 보증금이 무게를 더한다. 청년 뿐 만 아니라 혼자 살아가는 모든 세대에게 집은 같은 추를 단다. 나는 어디에 눕고 어디서 잠을 잘까. ‘잘자리’는 대안 없이 주거의 비용을 지나치게 요구하는 사회에게 대안을 준다.
Q . 지금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요?
A . 지식·문화콘텐츠 연구소 ㈜리멘에서 PD로 일하고 있어요. 스물여덟 살이고요. 공동체 은행 ‘빈고’의 부산지역 활동가이기도 해요. ‘빈고’는 자치, 공유, 환대의 문화를 공유하는 대안 금융이예요. 빈고는 서울에서 처음 만들어졌는데, 주거 문제가 심각하니까 보증금을 이용요금을 내고 빌려주는 은행이에요. 흔히 친구들끼리 같이 살면서 월세나 보증금을 나눠 내잖아요. 한명이 보증금을 더 많이 내거나, 월세를 더 부담하거나 하면 권력 관계도 생기죠. 다툼이 일어났을 때 오히려 피해자가 집을 떠나야 하는 상황도 있고요. 보증금을 은행에 넣고, 은행에서 다시 빌려서 해결하는 방식으로 하면 그 문제에서 벗어나요. 그래서 공동체 은행 ‘빈고’가 시작되었어요. 현재는 전국단위로 있고요. 이용자들은 나이대가 다양해요.
Q . 주거공동체 ‘잘자리’도 비슷한 맥락에서 출발했을 것 같아요.
A . 처음 이걸 만든 건 제 친구 였어요. 저는 그 집에 들어간거고요. 그 친구가 ‘빈고’를 만든 사람들의 주거 공동체인 ‘빈집’을 보고 ‘잘자리’를 만들었어요. 총 2개 집이 있는데, 광안동, 망미동에 한 개씩 있어요. 보증금은 빈고를 이용하고요, 월세는 나눠서 부담하고, 빈고 이용 수입인 일정 금액, 그리고 공과금을 나눠서 내죠. 이사하거나 가구를 바꾼다거나 하는 약간의 여윳돈을 만들어 놓기도 해요. 겨울엔 공과금이 많이 나오니까 1년을 고르게 돈을 받아요. 다른 계절에 조금 남으면 모아뒀다가 공과금 많이 나오면 써요. 단기로 투숙하는 ‘단투’, 장기로 투숙하는 ‘장투’로 나뉘는데요, 장투는 월단위로 계산하고 단투는 일단위로 계산해요. 생활 할 수 있는 최소 단위의 이익은 장투에서 나오고 기타 수익은 단투에서 나와요. 사람들이 꾸준히 유입되니까 세 명정도 있으면 유지는 돼요. 지금은 6명이 사니까 별 문제는 없죠. 내년엔 재계약을 하던가 이사를 해야 하니까 그런 부분만 고민해요.
Q . 왜 문화 활동가가 됐어요?
A . 특별한 이유는 없었어요. 다만 대안금융 관련해서 관심이 많았어요.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했고요.
Q . 부산에 어떻게 살게 되셨어요?
A . 마산에서 태어나서 고등학교 까지 다니고, 대학을 부산으로 왔어요. 처음 왔을 땐 잘 몰라서 하숙을 했죠. 작년 2월부터 잘자리에 들어왔고요.
Q . 주거는 어떤 형식으로 함께 하나요?
A . 각자 방이 있고, 부엌이나 욕실은 공용 공간이에요. 주거 공간을 함께 쓴다는 것 말고는 함께 하는 게 없어요. 함께 해야 하는 이벤트나 행사가 따로 없으니까 우리가 오래 가는 것 같아요. 주인도 따로 없으니까 각자 책임감도 느끼고요.
Q . ‘잘자리’는 더 확장될 계획인가요?
A . 지금 2호까지 마련했으니까, 더 많아질 순 있어요. 다만 ‘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더 나서야 해요.
공동체 은행 ‘빈고’와 ‘잘자리’는 간단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보증금이 없다면 낮은 이자로 빌려주자, 집이 없다면 집을 주자, 라는 생각은 사실 인간의 기본권에 관한 이야기에 기인한다. 짐을 나누어 져서 조금 더 가볍게 하자는 대안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 아닌가. 오늘도, 내일도 콘텐츠 코리아 랩의 한 테이블에서 더 나은 기획을 하는 잘자리의 식구 오용택은,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잘 살아가고 있다. 나는 간절히 이 주거 공동체가 지속되기를, 더 확장되기를 바란다. 노후를 보장하지 않는 이 사회에서 내 몸 하나 눕힐 공간을 저렴한 월세로 제공할 장치가 있다는 건 얼마나 위로가 되는 일인가. 언젠가 나도, 그들에게 합류하기를 바란다. 감히, ‘청년’의 이름을 빌린다.
[김유리의 지구인 프로젝트]
「김유리의 지구인 프로젝트」는
부산문화재단의 문화다양성 확산을 위한 무지개다리 사업 일환으로 추진됩니다.
우리가 속칭 ‘소수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어쩌면, 인종이나 민족, 장애, 성별, 외모, 학력, 가족 구성, 지역, 사회적 신분 등
사회가 정한 틀에 의해 소수자로 분류된 건 아닐까요.
김유리의 지구인 프로젝트는 우리 모두 다 소수자라고 생각 합니다.
그래서 ‘부산에 살고 있으면서 사회적 편견을 경험한 40인의 지구인 에피소드’를 기록해
그동안 깨닫지 못했거나 무관심 했던 우리 안의 배타성에 대해 함께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부디 40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서 마음에 작은 파도가 일렁이기를 소망해 봅니다.
_ 부산문화재단 × 김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