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리가 만난 지구인 39 _ 평화단체 포피스 사무국장 김준우
서른세 살의 그녀는 나와 비슷했다. 어느 회의에서 한번 어깨를 스쳤다가, 인연과 인연으로 다시 만난 우리는 많은 부분이 닮아 있었다. 30분을 약속하고 만난 커피집에서 우리는 한 시간 반 동안 이야기를 했다. 턱 아래를 아슬아슬하게 스쳐갔던 슬픔과 먹먹한 고통, 혼자만의 시간과 사람을 사랑하는 것에 관하여. 혀끝으로 ‘동족’이라는 말이 굴러 떨어 질 뻔 했지만, 그녀는 나와 달리 씩씩하고 자주적인 사람이었다. 그리고 ‘평화’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Q . 현재 어디서 활동하고 계시죠?
A . 평화단체 <포피스>에서 사무국장을 맡고 있어요. <책:곳>에서 아이들이랑 같이 공부하고요, <희망학교>에서 운영팀장을 하고 있어요.
Q . 활동이 다양한데요, 하나씩 설명해주시겠어요?
A . <포피스>는 ‘평화를 위한’이란 뜻도 되고요, ‘네 개의 조각’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어요. 대상도 네 개로 분류가 돼요. 가치도 네 개구요. 내년이 10년차인데, 가장 큰 역할은 평화봉사단이죠. 2007년에 만들어졌는데, 원래는 대학생 봉사활동 단체였는데 활동하던 대학생들이 사회에 나가면서 사업영역이 넓어졌어요. 활동회원은 대학생들이 중심이구요, 80명 정도 돼요. 그 중에서 지속적으로 활동하는 회원은 40명, 집중적으로 활동하는 회원은 20명 정도구요. 학교를 졸업한 회원이 후원회원이랑 연결이 되는데, 100명 정도 돼요.
<책:곳>은 아이들 대상으로 인문학을 공부하는 곳이예요. 제가 시작한진 얼마 안됐어요. 원래 있던 단체구요, 포피스 운영위원분이 책곳 대표님이시거든요. 제의를 받아서 시작했어요. 평화봉사단 안에서는 풀어낼 수 있는 게 적으니까, 어떤 걸 하고 싶어도 비영리여야 하고, 평화라는 가치에 부합해야 하죠. 더 할 수 있는 부분을 찾고 싶었어요. 생계도 되고요.
<희망학교>는 부산교육연구소가 주관하는 여름 캠프예요. 희망학교 준비 팀이 따로 꾸려져서 실제 운영을 해요. 아이들이 국제 교류를 하는 캠프예요.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 동포 아이들이 여름마다 만나서 문화를 교류하고 친구가 되는 여름학교죠.
Q . 어떻게 부산으로 오셨어요?
A . 서울 쪽에서 태어나서 창녕에서 자랐어요. 창녕에 있는 기숙사제 중고등학교인 옥야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너무 즐거웠어요. 선생님들도 너무 좋으시고요. 걸어서 갈수 있는 반경 내에는 노래방 한 개 통닭집 두 개가 전부였어요. 규모가 작은 학교라 작은 학교의 장점을 많이 느끼면서 보냈어요. 그 전엔 사춘기도 너무 길었고 개인사도 좀 있었죠. 한 학년에 4개 반밖에 없는 학교에 가면서 서로 다 아니까 다 친해지는 경험을 했어요. 지금은 옥야 고등학교가 저 다닐 때 분위기는 아닌 걸로 알고 있는데, 제가 다녔을 때 같은 학교가 아직도 있다면 내 아이는 꼭 거기 보내고 싶을 정도로 그 학교를 좋아했어요. 학교를 졸업하고 김해 인제대로 진학을 했어요. 부모님이 서울 쪽에 사셨는데, 좀 거리를 두고 싶었거든요. 가장 멀리 왔다고 할 수 있겠죠. 원서 딱 하나 넣어서 김해로 왔고, 대학 졸업한 이후에 부산으로 왔어요. 포피스란 단체를 구상한게 원래 대학때였어요. 지금 대표님이 그때 교수님이셨구요. 평화교육을 중심으로 하는 동아리였어요. 졸업하고도 계속 하고 싶어서 4학년 초에 시민 단체를 만들었고, 그걸 부산에서 시작한 거예요. 저는 사무국장을 맡았으니까 자연히 부산으로 오게 된 거죠.
Q . 포피스에서는 어떤 사업을 주로 해요?
A . 교육 사업이랑 문화 사업이 가장 커요. 교육 사업은 평화 교육 사업이에요. 지역 아동센터나 도서관, 복지관에 가서 우리가 만든 커리큘럼을 해요. 보통은 4회 짜리, 한 달 동안요. 매주 토요일. 대학생이 교육하고, 저는 대학생들을 교육시켜서 기관이랑 연계를 하고, 대학생을 보내는 일을 하는 거죠. 대학생 교육 사업은 1년 과정도 있고, 과정은 되게 많아요. 아동센터 교육이랑 일반 모집 교육이랑 또 내용이 조금씩 다르고요. 방학 때는 ‘드리밍 캠프’를 가요. 1월이랑 8월에요. 정말 재미있어요. 1월에 가는 게 기대돼요.
Q . 평화교육은 어떤 내용이에요?
A . 나와 다름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교육이죠. ‘관계’로 설명할 수 있어요. 나 자신과의 평화, 나에 대한 자존감, 개성, 너와 나의 평화, 서로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거죠. 더 확장시키면,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 환경과 나, 동물과 나라는 관계에 대한 평화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거죠.
Q . 포피스의 사무국장, 책곳의 강사, 희망학교의 운영팀장으로 사는 김준우가 맞닥뜨리는 편견은 어떤 게 있어요?
A . 서른 전까지는 부모님이 ‘취업은 언제 할거야’라는 말을 자주 하셨어요. 하고 있는 일이 많은데 직업이라고 생각 안하시는 거죠. 나 직업 있잖아. 이런 이런 거 해요, 라고 말씀드리면 ‘봉사 말고 직장 생활을 언제 할거냐’고 물어보시구요. 지금은 전혀 그러지 않으시고요.
주변 사람들은 제 일을 지지해주고 응원해주는데, ‘너는 좋아하는 일을 하니까 힘들지 않을 거다’라는 편견을 갖고 있긴 해요. ‘오늘 힘들었어’라고 하면 ‘네가 좋아하는 일이잖아. 아님 그거 하지 마’라고 하는 거죠. 약간 가볍게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해요.
하지만 시민활동가로서 살아가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어요. 돈을 찾으면 좀 낯선 느낌이 있어서, 활동하는 거 자체로 좋아요. 아이들을 만나는 것도 좋아하고요.
Q . 나의 꿈은 뭐예요?
A . 전 어린 시절이 행복하지만은 않았어요. 그 빈자리를 선생님이란 존재가 채워주셨고요. 여기까지 올수 있었던 힘은 선생님들의 지지에 있어요. 평화교육을 하면서, 아이들을 만나면서, 특히 상처받은 아이들을 만나면서 처음으로, 내 행복하지 않았던 시간이 고마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겪어봤기 때문에 아픔을 이해 할 수 있었어요. 아이도 내가 같은걸 공유한다는 걸 알고요. 아이들에게 내 선생님 같은 존재이고 싶어요. 아이에게 ‘넌 이상하지 않아. 오히려 사랑스러운 사람이다, 내가 응원한다’라고 말하는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그 아이들이 자기 자신의 모습 그대로 컸으면 좋겠어요. 꿈을 찾고, 꿈을 실현시키면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덜 폭력적인 세상에서 평화롭게 살게 하고 싶어요. 그게 제 꿈이에요.
나는 단 한번이라도 평화를 생각해본 적이 있을까. 그냥 깔깔거리며 아이들과 글쓰기 수업하는 것만 좋아했던 나는 그 아이들의 미래까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너는 재미있는 글을 쓰네, 아님 네 글은 좀 재미가 덜하다, 라는 평가를 휙휙 넘기며 지나쳤던 날들이 부끄러웠다. 내가 가볍게 퉁기던 시간들 곁으로 어떤 아이는 지지를 원했겠지만, 나는 모른척했다. 내가 감당하기에 버거운 문제인지도 모른다. 김준우는 반짝반짝 눈을 빛내며 평화를 지향하는 아이들을 꿈꾼다. 내가 꿀 수 없는 꿈, 그것이 그녀의 새파란 꿈이다. 그리고, 평화에 관한 이야기 이다.
[김유리의 지구인 프로젝트]
「김유리의 지구인 프로젝트」는
부산문화재단의 문화다양성 확산을 위한 무지개다리 사업 일환으로 추진됩니다.
우리가 속칭 ‘소수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어쩌면, 인종이나 민족, 장애, 성별, 외모, 학력, 가족 구성, 지역, 사회적 신분 등
사회가 정한 틀에 의해 소수자로 분류된 건 아닐까요.
김유리의 지구인 프로젝트는 우리 모두 다 소수자라고 생각 합니다.
그래서 ‘부산에 살고 있으면서 사회적 편견을 경험한 40인의 지구인 에피소드’를 기록해
그동안 깨닫지 못했거나 무관심 했던 우리 안의 배타성에 대해 함께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부디 40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서 마음에 작은 파도가 일렁이기를 소망해 봅니다.
_ 부산문화재단 × 김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