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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리 Mar 02. 2017

선생님은 오타쿠

김유리가 만난 지구인 7 _ 국어교사 이시영




 그의 복층 원룸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세 개의 거대한 모니터였다. 게임용으로 하나, 웹 써핑 용으로 하나, 영화나 애니메이션, 드라마를 보는데 하나를 쓰고 있다고 했다. 바탕화면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모니터 곁으로 국어 교육 관련 서적들이 즐비했다. 그가 국어 교사라는 것을 그때 알았다. 방은 두 개의 세계가 절반씩 나누고 있는 듯 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 필요한 책들과 한국 소설들, 반대편엔 피규어와 게임 씨디와 만화책들. 그리고 세 개의 모니터. 그는 전화로 한참 헤드폰을 중고 거래하는 중이었다. 제가 지금은 일이 있어서요. 도착하면 전화 드릴께요.......만원 깎자고요? 예, 그러지요 뭐. 중고 거래를 할 때도 까듯하고 예의 바른 천상 선생. 그는 자신의 직업도 좋아했고, 아이들도 좋아했고, 특별한 것 같으면서도 특별하지 않은 자신의 취미 역시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Q . 현재 하시는 일은 뭔가요?   

 

A . 기간제 교사로 고등학교에서 국어 과목을 담당하고 있어요. 국어를 평생 할 줄 몰랐어요. 평생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도 안 하고요. 올해 사십이니까, 길게 봐도 4년 쯤 더 할 수 있지 않을까요?  


  

Q . 중고 거래 하고 계셨어요?    


A . 새 헤드폰이 갖고 싶어서요. 가지고 있던 걸 오늘 팔아요. 학교에서 담임 맡은 이후에 받는 스트레스가 장난 아니었어요. 학생들은 무조건 대학에 진학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고, 나는 걔들을 대학에 보내야 하고요. 아이들이 측은 할 때가 많아요. 대학에 가고 나서는 취업을 해야 하는데, 취업을 하는 아이들은 정해져 있는 게 현실이거든요. 아이들이 점점 희망을 잃어가는 게 눈에 보여요. 미래에 대해 엄청 걱정하거나 아예 대학을 포기하고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극과 극 이예요.

 이런 와중에, ‘새로운 기기’를 사면 행복해요. 크기가 큰 텔레비전이나 헤드폰을 사는 거. 최근에 UHD 50인치 텔레비전을 샀어요. 몇 달을 모아서 장만했어요. 화면이 생동감 넘치고, 영화 볼 때 느낌도 다르고, 너무 좋아요.     







Q . 인생 최고의 기기는 뭐였어요?   

 

A . 100인치 화면을 선사해주었던 프로젝터, 게임기, 컴퓨터 같은 것들이죠. 맥북도 포함되고, 에스프레소 머신도 인생 템이었어요. 현재는 기어 VR을 기다리고 있어요. 가상현실을 체험 할 수 있는 거. 독신남의 인생에 단비 같은 존재예요(웃음). 어릴 때부터 얼리어답터로 살았어요. 대학 때도 아르바이트 열심히 해서 새로 나온 CD플레이어나 MD를 사곤 했어요. 새로운 걸  사면 쓰던 걸 가급적 빨리 팔아요. 기기는 골동품이 아니라서 시간이 지날수록 가격이 떨어지니까요. 나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덕 봤죠. 새로운 게 나오면 항상 내가 먼저 써 보고 얘기해주고 추천해주니까. 사람들은 컴퓨터니 음향기기, 영상 기기 사기 전에 항상 나한테 의논해요. 


    

Q . 어렸을 때 좋아했던 건 뭐였어요?   

 

A . 대우에서 만든 재믹스, 일본에서 수입한 패미콤이 최고였어요. 패미콤으론 오락실 게임을 거의 다 할 수 있었어요. 차세대 게임기로 슈퍼 패미콤이 나와서 한 시절을 풍미했지요. 그래픽과 게임성이 획기적이었거든요. 만화책은 여전히 좋아해요. 서재 하나 만들 정도로 많이 모았어요. 만화를 좋아하니까 자연스럽게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게 됐어요. 드래곤볼, 슬램덩크, 원피스, 나루토, 블리치, 다 좋아해요. 이런 걸 좋아하니까 학생들하고 이야기도 잘 통하고요.  


  






Q .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은 언제예요?  

  

A . 큰 화면으로 웹써핑 할 때가 가장 좋아요. 집에 오자마자 네스프레소로 커피 한잔 내리고, 마시면서 50인치 화면으로 한국 드라마, 일본 드라마, 미국 드라마를 취향대로 골라 봐요. 오타쿠는 외롭지 않다는 말을 믿어요. 혼자 살아도 심심하지 않아요. 내일도 새로운 컨텐츠가 나올테니까. 학생들이 가끔 집에 놀러오는데, 내 집에 오면 왜 내가 혼자 사는지, 왜 이런 취미를 가지고 있는지 이해를 하고 가요. 쌤, 심심하지 않겠네요, 하면서. 


    

Q . 독신남에 오타쿠로써 명절에 괴롭지 않아요? 

   

A . 다행스럽게도, 우리 집 친척들은 ‘명절에 해선 안 될 얘기’를 절대 하지 않아요. 원래 그랬어요. 진학, 결혼, 취업에 대해 묻는 일이 전혀 없었어요. 그래서 압박을 안 받았고요. 내가 좋아하는 대로 살아도 우리 부모님도 뭐라 안 하시겠구나, 생각했어요. 주변 사람들도 대놓고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 하지 않아요. 인복이 많은 것 같아요.  


  




Q . 내 인생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나요?   

 

A . 막 사는 듯(웃음). 낼모레면 실버 보험 들 나인데, 취미생활에만 몰두하고 있으니까요. 간경화를 앓는데서 영향을 받은 것도 같은데, 살아 있는 동안 즐겁게 살고 싶어요. 피규어를 학교 내 책상 위에 장식하기도 해요. 옆자리 선생님이랑 취미가 같아서 이야기도 많이 하고, 친한 사람 있으니까 학교 다니기도 즐거워요.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그는 BNO헤드폰을 사기 위해 수영 로터리로 갔다. 저녁 9시였다. 직거래엔 시간이 중요하지 않군요, 시동을 걸기 전, 그에게 말했다. 직거래는 언제나 준비되어 있어야 해요. 그는 유쾌하게 대답하고, 설레는 얼굴로 차를 몰고 떠났다. 그와 동갑인 나에게 어쩔 수 없이 묻게 되었다. 난 뭘 할 때 제일 즐겁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몰두했던 취미는 다 잊은 지 오래였다. 내가 놓아버린 음악과, 게임과, 만화와, 영화는 지금 어느 구석에서 주인을 기다릴까. 문득 <토이 스토리3>의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어릴 때의 장난감들과 이별하는 청년과, 그의 뒷모습을 보는 그의 장난감들이 손을 흔드는 장면 말이다. 꼭 이별해야 했을까?   




        

                              

 [김유리의 지구인 프로젝트]


「김유리의 지구인 프로젝트」는 
 부산문화재단의 문화다양성 확산을 위한 무지개다리 사업 일환으로 추진됩니다. 
 우리가 속칭 ‘소수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어쩌면, 인종이나 민족, 장애, 성별, 외모, 학력, 가족 구성, 지역, 사회적 신분 등 
 사회가 정한 틀에 의해 소수자로 분류된 건 아닐까요. 
 김유리의 지구인 프로젝트는 우리 모두 다 소수자라고 생각 합니다. 
 그래서 ‘부산에 살고 있으면서 사회적 편견을 경험한 40인의 지구인 에피소드’를 기록해 
 그동안 깨닫지 못했거나 무관심 했던 우리 안의 배타성에 대해 함께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부디 40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서 마음에 작은 파도가 일렁이기를 소망해 봅니다.  

                                                                      _ 부산문화재단 × 김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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