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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리 Mar 02. 2017

귀가 들리지 않는 남자, 길을 찾지 못하는 여자.

김유리가 만난 지구인 8 _ 수화통역가, 사회복지사 서영주

   

 


 그녀는 남편과 함께 2년 6개월간 세계여행을 했다. 배낭을 짊어지고 숙소에서 숙소로, 캠핑장에서 캠핑장으로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다. 결혼하자마자 떠난 여행이다. 그녀의 남편은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이고, 그녀는 길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비장애인 사회에 선뜻 발 딛기가 불편했던 남자와 그룹 홈에서 10년간 무보수로 일했던 여자. 어딘가에 묶였던 두 사람이 만나 전혀 새로운 삶을 만들어 냈다. ‘청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결혼’에 사람들은 색안경을 꼈다. 누군가는 함부로 단정하고, 누군가는 안됐다고도 생각했고, 또 누군가는 그녀 혼자 삶을 짊어 질거라 생각했다. 책임감 없는 오지라퍼들 사이로 당당하게 손을 잡고 여행을 떠난 그녀. 그녀와 그가 여행에서 얻은 건 무엇이었을까.    





        

Q . 당신과 남편은 어떤 사람들인가요?    


A . 저는 수화통역사고요, 사회복지사이기도 하고, 한때는 논술 지도도 했고요. 남편은 청각 언어 장애가 있고, 서양화 전공했고, 사진가로 활동하고 있어요. 처음 만났을 때 남편 성품에 반했어요. 착한데도 선이 분명한 사람. 비바람이 치는 날 같이 거리를 걸어가는데, 길에 비닐이 버려져 있어서 내가 그걸 밟고 미끄덩, 한 거예요. 안 넘어졌으니까 그냥 가도 되는데, 남편은 다른 사람 또 미끄러진다고 그 비닐을 주워서 쓰레기통에 넣었어요. 다음 사람을 위한 배려, 내가 조금 귀찮아도 변화를 주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었어요. 그런 점에서 통하는 것도 많고, 공유 할 수 있는 것도 많았어요.  


 내가 많은 사람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것도 중요하고 의미 있지만, 한 사람 인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도 좋겠다 싶었어요. 그런데 결혼 하면서 사회적 편견을 많이 경험했어요.  


   





Q . 어떤 편견이었어요?  

  

A . 남편이 귀가 안 들리니까, 생각도 짧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요. 남편의 의견이 필요한 상황이면 내가 한번 통역을 해야 되잖아요. 그래서 시간이 걸리는 건데 사람들은 ‘이 사람이 뭘 잘 모르는 구나’라고 생각해요. 전혀 그런 게 아닌데. 장애 때문에 일상적인 일을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정말 편견에 지나지 않아요.  


 둘이 식당에 들어가서 수화로 얘기하고 있으면 사람들이 ‘벙어리 부부’라며 쑥덕거려요. 둘 다 못 듣는 줄 알고요. 심하게는 ‘병신’이란 표현을 쓰는 사람도 있어요. 국내 여행하다 만난 어느 숙소 주인은 체크인 하는 동안 내가 남편 말을 통역하니까, 계속 쯧쯔쯔 혀를 찼어요. 안됐다고. 아가씨는 멀쩡하게 생겼구만, 그래요. 그래서,

‘아저씨 그림 잘 그리세요? 사진은 잘 찍으세요?’ 라고 기습적으로 물으니까 대답을 못해요. 

‘우리 신랑은 둘 다 참 잘하는데, 지금 보여드릴 수 없어서 안타깝네요.’라고 그랬죠. 아저씨가 엄청 민망해 했어요. 


 장애인이 포함된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이나 장애인 가족이 외려 차별을 하는 경우도 있어요.


 남편이랑 같이 사이버 대학에서 사회복지 수업을 들을 때 였어요. 나는 인터넷 강의를 들으면서 공부하지만, 수화 영상이 없으니까 남편은 오로지 책만 봐야 했거든요. 남들보다 공부하는데 시간이 더 걸릴 수밖에 없어요. 기말 시험은 정해진 시간 안에 100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글자를 읽는 속도가 느린 청각장애인이 그 시험에 적합하지 않은 건 당연하잖아요. 거기에 대해서 질문 메일을 보냈더니 사회복지학과 교수라는 사람이 ‘장애인이라고 차별대우 해줄수가 없다’라는 거예요. 차별과 차이를 이해 못하는 거죠. 청각장애인도 공부 할 수 있는 대학이라고 해서 등록했는데 수화 영상도 지원 안 해놓고 시험은 비장애인하고 똑같이 치라니요. 교수를 설득해서 결국 기말고사 대신 논문을 제출했어요. 그것도 일주일 안에 쓰래요. 남편은 일주일 안에 해냈고, ‘사회복지에 종사하는 사람조차 차별과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다’라고 썼어요. 논문은 잘 통과되었고요. 


 남편이 조리사 자격증을 딸 때는 인권위원회까지 가야하는 상황이 펼쳐졌어요. 모자란 사람도 아니고 아이도 아니잖아요. 귀가 안 들릴 뿐이잖아요. 요리학원에 갔는데, 원장이 대놓고 그래요. ‘우리는 장애인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 말 뿐 이예요. 장애인은 안 된다. 불과 칼을 사용하는 일이라서 안 된대요. 다른 요리 학원에 가도 다 마찬가지 일거래요. 설득 하다 하다 안돼서 인권위원회에 제소 했어요. 인권위에서도 차별금지 조항에 해당된다고 제소를 받아줬고요. 


 근데 인권위 담당 직원이, 청각장애인인 걸 알고 있으면서도 남편한테 ‘전화’를 한 거예요. 몇 번이나. 전화 안 받는 다고 메일이 왔어요. 제소인이 전화를 받지 않아서 요리학원 원장과 통화를 했는데, 원장이 반성하고 있으니 잘 풀래요. 청각 장애인한테 전화 못 받았다고 하는 게 말이 되냐고 다시 항의를 했더니 담당자가 서울에서 부산까지 내려왔어요. 그제야 인권위 사과랑, 원장 사과를 동시에 받았어요. 


 원장님이 그래요. ‘나도 지체 장애인 아들이 있다. 장애인들은 이거 저거 많이 하고 싶어 하지만 그때마다 번번이 상처만 받게 된다. 장애인 부모로써 상처받게 하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그랬다.’라고 그래요. 사과는 받아들였는데, 이 말은 꼭 해야 했어요.


‘내가 나서서 다른 사람의 아픔을 그런 식으로 해결하려 하는 건 잘못된 생각이에요.’ 라고요.   





Q . 결혼 하고 바로 세계 여행을 떠나셨죠?


A . 편견 이전에 우리 스스로 극복하고 싶었어요. 우리 삶을 더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2년 반 동안 배낭여행으로 세계를 돌아다녔어요. 중국 푼밍으로 제일 처음 들어가서, 중국에서 인도로, 다시 아프리카 대륙으로, 남아공에서 이집트로 가서 중동 쪽 요르단 들어가서, 이란 시리아를 거쳐서 육로로 터키로 갔죠. 터키에서 루마니아, 불가리아로 가서 좀 오래 쉬다가 튀니지로 갔어요. 다시 프랑스로 가서 3개월 동안 서유럽 캠핑 여행을 했어요. 그리고 영국, 영국에서 캐나다로, 캐나다 횡단 여행하고 미국 갔다가, 남미 쭉 돌고 브라질에서 한국 들어왔어요. 돌아올 땐 비행기 삯이 모자라기도 했어요(웃음).  


  

Q . 여행하면서 남편과의 사이는 어땠어요?  

  

A . 변화를 겪으면서 우리는 더 단단해졌어요. 서로 몰랐던 부분이 많았거든요. 중국에서 3개월 보낼 때는 많이 싸웠어요. 근데 문화권이 다른 곳으로 갈수록 남편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난 너무 길치라서 숙소 밖만 벗어나면 길을 잃어버렸거든요. 숙소 안에서도 방을 잃어버릴 정도인데 뭐. 근데 남편은 길을 너무 잘 찾아 다녔어요. 반면에 남편은 귀가 안 들리니까 자기가 뭘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내가 가서 항상 통역을 해야 해요. 서로가 채워야 되는 부분이 있으니까 의지가 많이 됐어요. 완벽한 사람들끼리 만났다면 헤어졌을지 몰라요. 하지만 부족하면서도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Q . 여행의 끝에 뭐가 있었어요?   

 

A . 첫 번째는, 정말 다양한 사람을 만나게 된 거요. 여행에서 만난 친구들이 아직도 우리를 만나러 한국에 들러요. 친구들이 가장 많이 남았죠.


 두 번째는, 다양한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됐다는 거예요. 한자리에 가만히 있으면 잘 안변하잖아요. 부딪히고 겪으면서 나를 다시 발견해요. 그건 남편도 마찬가지 였어요. 가는 데마다 만나는 사람들 사진을 찍어주면, 사람들이 남편한테 카메라 기능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거든요. 남편은 전문가니까 잘 가르쳐 주고요. 그러면서 남편도 자신감을 많이 얻었다고 해요. 살면서 그런 게 큰 힘이 돼요. 내가 누구를 만나든지, 어떤 일을 겪든지 두려워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한번 호흡을 가다듬은 후 방법부터 생각하는 거죠. 


     




Q . 한국으로 돌아와서의 삶은 어떤가요?  

  

A . 여행 하다 거제도에서 냉면 가게 하시는 사장님 부부를 만났어요. 사장님이 제의를 하셨고, 우리도 노후 대비해서 기술이 있어야 하니까 그 사장님 밑에서 본격적으로 냉면 만드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남편이 조리사 자격증이 있어서 냉면을 만들고, 저는 서빙을 해요. 계절 음식이기 때문에 비수기엔 여행을 할 수 있어서 좋고요. 우리 남편이 미술을 했으니까 손기술이 좋아요. 사리를 말아도 너무 예쁘게 말아서 내요. 손님이 그걸 보시고 정갈하다, 하실 때가 너무 좋아요. 


   

Q . 다시 여행을 떠나시나요?   

 

A . 이번 비수기에 베트남 종단을 계획하고 있어요. 기대하고 있어요.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가치 있게 사는 거예요. 내 삶을 우울해하지 않고 계속 에너지를 끌어낼 수 있는 삶을 사는 거. 그 과정에 내 도움이 필요한 사람 있으면 도울 수 있는 거고요.  







        

그녀와 남편이 일하는 냉면 집 2층의 카페에서 인터뷰가 이루어졌다. 인터뷰를 마치고 가게로 내려와 따뜻한 수제비갈비탕과 비빔냉면을 먹는 사이, 그녀의 남편이 인사를 하러 주방에서 나왔다. 말씀 많이 들었어요, 라고 인사를 건네는 동시에 그녀는 수화로 나의 첫마디를 통역해주었고, 남편은 내 카메라를 보고 ‘소니a55는 좋은 카메라예요.’라고 말했다. 그가 사진가라는 걸 잠시 잊었던 나는 괜히 ‘풍경 사진이 잘 안 나온다’고 딴 소리를 했다. 그가 웃으며 다시 말했다. ‘풍경은 보정이 필요해요.’ 그가 보는 뷰파인더는 어떤 색깔로 가득 차 있을까. 그의 세상은 또 어떤 새로운 것들로 가득 차 있을까. 다음엔 그를 인터뷰해야겠다, 나는 후루룩 소리를 내며 비빔냉면을 먹었다. 매콤하고도 달콤한, 오감을 만족시키면서도 개성이 진한 맛, 그와 그녀가 한 그릇 정갈하게 담아낸 삶이 혀 위로 미끄러지듯 흘러들었다.    






        

                              

 [김유리의 지구인 프로젝트]


「김유리의 지구인 프로젝트」는 
 부산문화재단의 문화다양성 확산을 위한 무지개다리 사업 일환으로 추진됩니다. 
 우리가 속칭 ‘소수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어쩌면, 인종이나 민족, 장애, 성별, 외모, 학력, 가족 구성, 지역, 사회적 신분 등 
 사회가 정한 틀에 의해 소수자로 분류된 건 아닐까요. 
 김유리의 지구인 프로젝트는 우리 모두 다 소수자라고 생각 합니다. 
 그래서 ‘부산에 살고 있으면서 사회적 편견을 경험한 40인의 지구인 에피소드’를 기록해 
 그동안 깨닫지 못했거나 무관심 했던 우리 안의 배타성에 대해 함께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부디 40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서 마음에 작은 파도가 일렁이기를 소망해 봅니다.  

                                                                      _ 부산문화재단 × 김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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