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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리 Mar 02. 2017

나는 시각장애인이자 프로 주부예요.

김유리가 만난 지구인 9 _ 1급 시각장애인 박정희



 그녀는 남편의 팔을 잡고 만나기로 약속한 커피 집에 들어섰다. 밝은 갈색의 눈동자가 더듬거리며 장애물을 살폈다. 백발이 성성한 그녀의 남편은 복잡하게 놓인 그녀가 테이블이나 사람에 부딪히지 않도록 이리저리 인도했고, 천천히 내 앞에 앉혀 주었다. 내가 건넨 명함을 읽기 위해, 그녀는 얼굴 바로 앞에 명함을 바짝 가져다 대다가, 아, 잘 안보이네요, 라며 명함을 크로스백에 집어넣었다. 그녀의 갈색 눈동자가 유난히 반짝여서 시각장애인인 것을 한눈에 알 수 없었다. 혹시 저도 잘 안보이세요? 그녀와 마주 앉은 테이블이 작아서 바짝 당겨 앉았는데도,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화장대에 비친 얼굴도 잘 안보여요. 밤하늘의 별은 아주 어렸을 때 본 게 다구요. 사람은 아주 조금 보여요, 아주 조금. 






          

Q . 지금 하시는 일은 뭔가요?    


A . 주부예요. 30년 넘게 살림했어요. 눈이 잘 안 보인다고 하면 집에 가만히 있는 줄 아는 사람들이 있는데, 시각장애 있어도 집안 살림 다 해요. 익숙한 공간이니까. 시부모님, 남편, 애 둘까지 여섯 식구 살림을 혼자 다 했어요. 애들 대학 보내고 시집 장가 다 보내고, 지금은 퇴직한 남편이랑 둘이 살아요. 두 명 살림도 만만치 않아서, 남편 뒷바라지 하다보면 하루가 다 가요.   


  

Q . 언제부터 시력이 나쁘셨어요?   

 

A . 아주 어릴 때부턴데, 야맹증부터 시작됐어요. 애들끼리 숨바꼭질 하다가 날이 저물면 난 그때부터 잘 안 보이는 거예요. 초등학교 들어가니까 나만 칠판 글씨가 잘 안보여요. 공부도 못하고 학교 왔다 갔다만 한거죠. 근데 옛날이라서 그런지, 눈이 나쁘면 안경을 써야 한다는 생각을 못했어요. 중학교 올라가니까 필기해야 할 양은 많아지는데, 나는 수업시간에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가 수업 끝나면 친구 꺼 보고 적어야 했어요. 선생님한테 매일 야단맞았어요. 수업 시간에 뭐하다가 이제 베끼냐고. 그제야 어머니한테 잘 안보여서 선생님한테 혼난다고 말씀드렸어요. 중학교 2학년 때였어요.  


  

Q . 그때 안과를 처음 가신 거예요?   

 

A . 네. 눈 나쁜 걸 그때서야 알았다고 어머니가 많이 우셨어요. 그렇게 안경을 꼈는데, 맨 앞에 앉아도 그렇게 잘 보이진 않았어요. 그래도 그때부터 공부를 좀 했어요. 기초가 부족해서 잘 따라가진 못했어도.  


  




Q . 결혼하기 전의 생활은 어땠어요?   

 

A . 부산시 경찰국 북부산 면허계에 취직해서 근무했어요. 그때는 시력이 지금처럼 나쁘지는 않아서 그렇게까지 불편하진 않았어요. 안경 끼면 0.4였어요. 야근하면 어머니가 버스정류장에 마중 나오는 정도였어요. 결혼하고 나서 내가 망막색소변성증(이하 RP)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어렸을 때 홍역을 심하게 앓았는데, 그때 망막에 상처를 입은 것 같아요. 빛이나 사물이 각막을 통과해 망막에 맺히는데, 망막에 녹이 슬기 시작했다고 생각하면 돼요. 80년대에 서울에 있는 안과에 가서 진단을 받았어요. 의사가 참 냉정하게 얘기했어요. 당신은 RP를 앓고 있고, 시력이 점점 더 나빠지다가 결국 실명할 거라고요. 희망을 걸고 거기까지 간 사람한테 참.   


  

Q . 시력이 점점 더 나빠지면서 어떤 일이 생겼어요?    


A . 처음엔 5급 장애인이었다가, 3급이었다가, 지금은 1급이 됐어요. 시야가 점점 좁아졌죠. 뿌연 비닐에 구멍 몇 개 뚫어놓은 것 같은 형태로 세상을 봐요. 지금은 시야가 15도 밖에 안돼요. 


똑바로 서 있으면 내 가슴께 아래는 전혀 안보여요. 위도 마찬가지고요. 마트 같은데 가면 애들이 막 뛰어다니잖아요. 난 피할 수가 없고, 애들이 나한테 부딪혀 넘어지면 애 엄마들이 ‘어른이 먼저 보고 피해야지’하면서 면박을 줘요. 그때마다 장애인이라고 설명할 수가 없어요. 겉보기에는 멀쩡해보이거든요. 


 거리에서 아는 사람이랑 마주쳐도 난 안보이니까 그냥 지나치거든요. 사람들이 건방지다고, 인사 안 한다고 오해를 해요. 목례만 하면 누군지 잘 몰라요. ‘안녕하세요’하고 목소리를 들려주면 누군지 알고 인사를 받아요. 익숙한 우리 집 말고 남의 집에 가면 꼼짝도 못하지만, 집에 있을 때는 명절음식까지 척척 다 해내지요. 주변에 있는 시각장애인들을 보면, 깜깜하게 안 보이는 분도 지붕 고치고, 페인트 칠하고, 보일러 수리 까지 다 해요. 익숙하지 않은 곳이 낯 설 뿐 이예요. 




Q . 실명이 됐을 때를 생각하세요?   

 

A . 죽을 때까지는 희미한 불빛이라도 보고 싶다고 늘 기도해요. 사실 진행이 늦긴 해요. 내 나이쯤 되면 다 실명 하거든요. 교회를 평생 다녔는데, 하나님 은혜라고 생각해요. 오늘 아침에도 기도했어요. 이대로 유지만 하게 해달라고. 조금만 보게 해달라고. 아주 조금이라도.  










     

 빛이라도 보게 해달라는 기도는 얼마나 애달픈가. 그녀에게 언제나 세상은 부옇고, 추상적인 덩어리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녀 곁에 있는 사람들과 가족들의 목소리는 하나하나 빠짐없이 기억한다. 아마 그녀의 집 부엌은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할 것이고, 그녀의 손이 닿지 않은 구석이 없을 것이다. 헤어지기 전, 그녀는 선물로 가져왔다며 종이 가방에 든 샌드위치 한 박스를 건네주었다. 자신이 직접 만든 것이라고 했다. 비닐 랩으로 야무지게 싼 샌드위치의 감자 샐러드 안엔 시각장애인이 칼로 썰었다고 믿겨지지 않는 재료들이 빼곡히 담겨 있었다. 잘고 균일한 크기로 썰린 당근과 달걀, 뭉친 곳도 없이 잘 으깨진 감자 속까지. 어떻게 이렇게 예쁘게 만드셨어요? 내가 경탄하자, 그녀는 쑥스러워 했다. 이런 거 뭐 아무것도 아니에요. 눈으로 보고 써는 게 아니니까 더 잘 썰어요. 프로 주부의 내공을 나는 너무 얕본 것이다. 샌드위치는 특별히 맛있었다. 속 깊은 엄마의 손맛이었다. 



        

                              

 [김유리의 지구인 프로젝트]


「김유리의 지구인 프로젝트」는 
 부산문화재단의 문화다양성 확산을 위한 무지개다리 사업 일환으로 추진됩니다. 
 우리가 속칭 ‘소수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어쩌면, 인종이나 민족, 장애, 성별, 외모, 학력, 가족 구성, 지역, 사회적 신분 등 
 사회가 정한 틀에 의해 소수자로 분류된 건 아닐까요. 
 김유리의 지구인 프로젝트는 우리 모두 다 소수자라고 생각 합니다. 
 그래서 ‘부산에 살고 있으면서 사회적 편견을 경험한 40인의 지구인 에피소드’를 기록해 
 그동안 깨닫지 못했거나 무관심 했던 우리 안의 배타성에 대해 함께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부디 40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서 마음에 작은 파도가 일렁이기를 소망해 봅니다.  

                                                                      _ 부산문화재단 × 김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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