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없는 환대

by 설안

아무 대가 없이 주는 사랑은 사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마음이 아니다. 특히 요즘엔 인간은 원래 이기적인 존재라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만연하게 퍼져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는 이유 없는 환대를 베푸는 단 한 명의 존재가 있다.

어떠한 계산도 하지 않고, 어떠한 호의도 바라지 않는 단 하나의 존재.


어릴 때부터 외로움을 많이 타던 나는 그렇게나 동생이 갖고 싶었다. 막연히 '혼자보다는 둘이 더 재밌겠지.'라는 단순함으로부터 비롯된 생각이었다. 동생을 낳아달라고 조를 때마다 손사래를 치던 부모님이었지만 내가 7살이 되던 해, 지금의 동생이 태어났다.


어릴 적 좋아하던 가수의 이름을 따서 이름에 꼭 '준'을 넣자고 했다. 한 어린 생명에게 내가 의미를 부여한 한 글자의 이름이 들어간다는 건 꽤나 의미가 큰 일이었다.엄마가 되어본 적도 없으면서 마치 엄마인 것 마냥 나라는 존재가 동생에게 든든한 울타리이기를 바랐다. 지금보다 어릴 때는 그 책임감이 더해지곤 했는데, 어릴 적 부모님과 떨어져 살아야 하는 상황도 분명한 이유기는 했으나 내가 겪었던 억압과 불안을 겪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이었다.(사실 돌아보면 억압도 아니다. 유난스러웠던 어린 시절은 다음에 기회가 되면 한 번 이야기해보려 한다.)


그래서 동생이 부르면 언제든 달려갔다. 20대 초반, 친구랑 술을 한잔하고 있을 때도,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하던 순간에도 동생이 필요하다 그러면 약속 있던 상대에게 양해를 구하고 동생을 택할 정도였다.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다.)


그렇게 애착을 갖고 살던 시간들을 보내던 중 동생이 23살이 되던 해, 크게 부딪히는 일이 한 번 있었다.

갑작스럽게 허리를 다친 동생이 너무도 걱정된 엄마는 여지없는 헌신적 사랑으로 매번 병원에 태워주고 태워가곤 했는데, 동생은 그러한 엄마의 사랑이 유난이라며 신경질을 내기 일쑤였다. 결국 그게 시발점이 되어 병원에서 집에 오는 길에 엄마와 동생이 크게 다퉜고, 그 과정에서 동생이 엄마 차에서 갑자기 뛰쳐나갔다는 사실이 내가 참을 수 없는 발작 포인트였다.


그 사실을 알게 된 후 집에서 마주한 동생에게 화를 잔뜩 누르며 말했다.


"사과해. 엄마한테 똑바로 사과해."


내 말에 동생의 동공이 유난히도 흔들렸으나, 동생은 입을 앙다문 채 끝까지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화가 목 끝까지 차오른 나는 더는 참을 수 없어 끝내 고함을 질렀고, 동생은 그 길로 깊은 동굴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 후 우리는 약 6개월간 서로 마주 하지 않았으며 어떤 대화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긴 시간은 서로에게 처음 있는 일이었다. 종종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기는 했으나 나도 무언가 알 수 없는 해방감을 느끼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더 이상 무언가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안일하고도 교만한 생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몇 개월의 시간이 더 흘러, 동생에게 먼저 연락이 왔다.


"배고파. 밥 해줘."


동생만의 화해하는 방식이었다.

생각해 보면 내가 고등학교 때 집을 뛰쳐나왔을 때도 내 동생은 늘 같은 방식으로 내 마음을 풀리게 했다.


"누나 집에 언제 와?"


그 짧은 말에 나는 쉽게 무장해제 되곤 했다. 내가 먼저 손 내밀고 감쌌다고 생각했던 동생은 '어쩌면 항상 나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존재였던 게 아니었나.'라는 생각과 동시에 나는 너무도 이기적인 사람임을, 결국 온전히 사랑을 주지 못했음을 자책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하고 동생이 좋아하던 김치볶음밥을 만들어줬다. 그간 어떻게 지냈는지, 엄마랑 이야기는 잘했는지, 그런 투박한 안부와 이야기들을 삼킨 채 잘 먹는 동생을 보며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서로의 상한 감정에 대해 더는 묻지 않았다. 가족이라는 깊은 결속력을 넘어서 서로가 서로를 잘 알기 때문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잘 알기에 더는 묻지 않는 것. 그건 어쩌면 정말 깊은 관계여야 일어날 수 있는 마음이다.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있기 때문에 무조건적인 깊은 관계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관찰해 온 애정의 시선들이 말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는 시간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시간들이 쌓이면, 결국 '나'의 감정보다는 그저 '네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 만이 남는다. 진정한 사랑이라는 개념은 어쩌면 이런 형태일지도 모른다. 어떠한 계산 없이 상대가 잘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 잘 잤으면 하는 마음 같은 것. 너무 일상적이라서 잊고 지내는 그런 마음의 본질적인 형태들.

'이유 없는 환대'라는 것은 인간이 결코 가질 수 있는 마음이 아니라고 감히 생각한다. 그러나 때로는 우리에겐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우연한 상황이 주어지기도 하고, 그런 마음을 갖게 만들 수밖에 없는 존재가 나타나기도 한다.


내가 말한 단 하나의 존재는 이미 알겠지만 내 동생이다. 사랑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임을 깨닫게 하는 존재.


이렇게 배운 단 하나의 사랑이 더 큰 사랑으로 확장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 사랑으로 더 많은 사람과 상황을 포용할 수 있기를, 오늘도 그렇게 이유 없는 환대를 행하기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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