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되면 널 더 사랑할게

by 설안

뜨거운 게 좋다. 사랑이라는 게 활활 타오르는 것보다 지속되는 안정감이 좋다지만, 여전히 뜨거운 것을 사랑한다. 그래서 겨울이 가고, 봄이 오고 다시 뜨거운 여름이 되면 사랑하기 가장 좋은 때라고 막연한 생각을 하곤 한다.


녹음에 생기는 푸른빛의 힘이, 뜨겁게 타오르는 살갗이,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쏟아지는 비가 나를 종종 안달 나게 한다.


나이를 먹으면서 누군가를 온전히 사랑하는 일에 겁이 나는 순간들이 많다. 여름이 오기까지도 무려 세 개의

계절을 지나 맞이해야 하는 것인데 이 세계에서 가장 연약한 인간이 변하지 않는 사랑을 유지한다는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그 기적을 참 이루고 싶다. 사랑 앞에서 쉽게 허물어지고, 사랑이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다고 외치고 싶은데, 편협한 마음들이 자꾸 그 말을, 그 마음을 가로막는다. 나와 같은 마음이 아니면 어쩌나 하며 지레 겁먹어 한 발자국 미리 물러나 있기도 하며, 혼자서도 잘 있어야만 한다는 이상한 압박감으로 스스로를 더 외롭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그 사랑을 잘 해내기 위해 나는 '나'를 더 잘 사랑해 낼 것이다.


뭇사람들이 마음의 여유는 통장 잔고로부터 나온다는 우스갯소리를 종종 한다. 그런데 사랑이야말로 온전히 마음의 여유로부터 나온다. 내가 기꺼이 더 사랑해 줄 수 있는 마음. 내가 기꺼이 힘듦을 감수할 수 있는 마음. 보채지 않고 그 사람의 시간과 속도에 맞춰 기다려 줄 줄 아는 마음. 이런 마음들을 나열해 놓고 나면 별 거 아니어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상당히 많은 시간과 마음을 쏟아야 이뤄낼 수 있는 마음이다.


그런 마음들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나'를 그 누구보다 잘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 너무 뻔한 이야기 같아도 결국엔 '나'를 사랑하는 것이 타인을 더 사랑할 수 있게 만드는 힘 그리고 여유가 된다. 각자의 방법으로 각자의 방식으로 우리는 '나'를 사랑한다.


'나'를 사랑하는 마음들은 켜켜이 쌓여 '너'에게 까지 닿는다. 뜨거운 여름을 더 뜨겁게 맞이하기 위해 두 살갗이 맞닿아 부벼지고 부벼진다. 서로 끈적이는 것의 불쾌함도 잊은 채 풀내음과 땀으로 범벅되어 서로를 바란다.


우리는 결코 혼자 살아갈 수 없다. '나'를 사랑하던 마음들을 확장하여 '너'를 사랑하게 되었을 땐, 뜨거운 볕 아래 쉽게 허물어져 내리는 옷가지들처럼 쥐고 있던 모든 것들이 스르르 풀어헤쳐진다. 그 헤쳐진 마음들이 삶에서 여유가 되고, 영원한 안정을 얻는다.


여름을 코 앞에 둔 나는 아끼는 잠옷을 입고, 젖은 나무 향이 가득 퍼지는 향초를 피우고 사랑에 대한 글을 적고 있는 '나'를 사랑한다. 오후 1시쯤 오전에 한바탕 러닝을 하고 나서 땀에 흠뻑 젖은 모습의 사진을 아이처럼 보내주는 '너'를 사랑한다. 잎이 푸르러진 것을 조금도 놓치고 싶지 않아 목을 잔뜩 뒤로 젖힌 채 나무를 바라보며 멍청히 걸어가는 '나'를 사랑한다. 어린 조카를 돌본답시고 어딘가 어색한 포즈로 아이의 밥을 먹이는 영상을 보내는 '너'를 사랑한다.


각자의 삶 속에서 각자의 시간을 보내며 서로를 공유하는 '나'와 '너'를 사랑한다.


이렇게 차곡차곡 푸르른 마음들을 모아 잎을 만들고 그것들이 쌓여 나무를 이루고 여름이 되기까지 차분히 서로의 시간을 더 초록으로 물들일 것이다.


그 여름을 내가 결코 쥘 수 없다고 해도 여름을 더 , '나'를 더, '너'를 더 온전히 사랑하고 싶다.


매년 여름이 오면 널 더 사랑할게.

keyword
팔로워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