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예쁘잖아

by 설안

어릴 때부터 끊임없이 사랑을 해왔다.

여전히 사랑을 '잘' 하고 싶어서 치열히 고민한다.

가끔 왜 사랑하는 것까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냥 나라는 사람이 이런 사람임을 인정하기로 했다.


'나'와 '너'가 영원히 합쳐진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거라고 다짐했던 그 시간들 아래는 사실 언제나 불안이 있었다. 연약한 인간 둘이 만나 사랑을 하는 것들이 결국 서로룰 움켜쥐게 될 때 우리는 다시금 도망치고 싶어진다.


신형철의 시화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첫 시선의 놀라움, 창가에서의 그리움, 첫 산책의 설렘, 그 모든 '첫'들이 지나고 나면 연인들은 멀어진다는 것. '서로를 마시는' 행위인 키스조차도 이렇게 변질된다.


사랑을 하면서 사랑을 잃어간다라는 아이러니한 말의 깊은 뜻은 사실 서로를 소유하고 싶어지는 순간 달아나고 싶은 마음도 공존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조금씩 숨겨갔다.


상대가 나를 손바닥 위에 앉히고 싶어 할 때면 그냥 그 시간에 앉아 주었고, 얹히는 마음들도, 혼란스러운 마음들도 '바쁘니까 나중에 이야기해야지.'라는 말들로 미루고 미뤘다. 결국 그 미뤄 뒀던 것들은 썰물처럼 밀려들어와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 사라졌던 서래처럼 기억 속 흔적만 남은 채로 멈춰 있다.


공허한 시간들이 연속될 때쯤 우연히 킨츠키라는 수업을 듣게 됐다. 킨츠키라는 것은 깨진 도자기를 옻칠로 이어 붙이고 금가루나 은가루를 통해 깨어진 곳을 수리하는 일본의 전통적인 기술을 이야기하는데, 친한 언니가 급작스러운 일로 가지 못하게 됐다며 깨어진 두 개의 컵을 나에게 던져놓고 간 것이다.


낮잠을 늘어지게 자던 토요일, 미적거리며 일어났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여름 탓에 유독 습하고 더운 날이었다. 망원시장을 지나 지하로 내려가니 어색한 공기 속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다. 나는 조용히 그 틈에 끼어 앉았다.


수업이 시작되고, 선생님은 각자가 가지고 온 물건에 대한 이야기를 해달라고 했다. 왜 깨졌는지, 가지고 온 물건들이 자기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묻는 말에 사람들은 소중한 보물을 꺼내놓듯 이야기를 풀어냈다. 신기했다.


‘이렇게나 작은 것에 이토록 마음을 많이 쏟는다니.’


내가 이야기할 차례가 왔을 때, 나는 멀뚱한 표정으로 잠시 말하기를 주저하다 그냥 친한 언니가 컵을 깨 먹어서 왔다고 단조롭게 말했다. 순간 내게 어울리지 않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어딘가 굉장히 따뜻해 보였고 서로의 깨어진 컵이 귀엽다며 이야길 건네기도 했다. 내겐 그런 이야기를 나눌 마음의 여유 따윈 없었으나 이제는 꽤나 사회성이 탑재된 인간이기 때문에 적당히 맞추고 수업에 열중했다.


워낙 손재주가 없는 터라 별 기대 없이 깨어진 컵의 조각들을 맞춰 나가며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손을 움직였다. 처음에 시작하자마자 조각들이 잘 붙기 위해선 컵들의 깨어진 면들을 긁어내야 한다고 했다. 어느 정도 상처를 입혀야 서로 잘 엉겨 붙을 수 있다고.


'서로 엉겨 붙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상처도 필요했다. 분명히.'


순간 드는 생각들을 뒤로한 채 깨어진 컵의 단면들을 거칠게 긁고, 조각들을 붙이고, 붙여진 조각들의 표면을 매끄럽게 갈아내는 과정을 지나 컵은 어색한 온전함을 남겼다.


어색한 온전함은 컵에게 없던 사연도 만들어주는 것 같았다. 컵 하나 이어 붙이기도 이렇게나 공을 들여야 하는데 사람과 사람은 오죽했을까 싶은 생각과 동시에 오랫동안 잊고 있던 영화 <연애다큐>가 떠올랐다.


"이거 딱 붙여놓고 나서 이걸 보니까 무슨 생각이 제일 먼저 든 줄 알아? 봐봐. 안 예쁘잖아."

<연애다큐 중, 구교환>



안 예뻤다.


선생님은 깨어진 것들은 다시 붙일 수 있다고 했다. 물건이 망가졌다고 버리고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쓰임새 있는 형태로 만들 수 있다고 했다.


근데 결국 그 컵이 처음 가졌던 모습처럼 예쁘지는 않았다.


너무 행복할 때, 항상 그 사랑에 대해 의심해 보는 습관이 있다. 이게 진짜 온전한 것인지 아니면 어색한 온전함인지 되짚어 보는 습관이 생겼다.


아직 내 사랑엔 ‘깨어짐’의 것 들을 회복할 용기는 없다. 서래처럼 모든 상처들을 끌어안고 바닷속으로 뛰어들어갈 수는 없다. 다만, 깨어지지 않게 더 많이 부딪혀보며 단단해지기를 계속 반복할 것이다.


사랑을 견고히 할 수 있는 충분한 숨 쉴 틈과 사랑의 언어들을 쌓아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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