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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옆집언니 Sep 16. 2019

다시 싱글의 명절 보내기

별거 없다 장소만 바뀌었을 뿐

추석 연휴 잘 보내셨나요?


이혼하기 전엔 명절이 그렇게 길더라고요

(전)시댁은 차례를 지내지는 않았지만 연휴 내내 시부모님,우리식구, 도련님네 식구들이 먹을 음식을 모두 집에서 하셨던지라 차례도 안 지내는데 기름 지옥에서 벗어날 수 없었죠


이해심이 많으신 편인 (전) 시어머님은 그래도 꼭 일을 마치고 나면 "오늘 너무 고생했다. 힘들어서 어쩌니. 내일은 늦잠도 잠자고 늦게 아침 겸 점심 먹자"라고 해주셨어요

물론 세상은 늘 공평해서 그와 맞먹는 크기로 (전)시아버님은 음식을 만들고 있는 중인데도 새로운 음식을 하라 주문하시고 허리펼새없이 전을 부치는 며느리에게 술상을 봐달라 재촉하셨지만 그래도 뭐 그정도쯤이야 웃으면서 받아줄수 있을만큼 (전)시어머님의 대처가 몹시 고마웠죠


각종 부침, 불고기, 갈비, 잡채, 나물, 만두, 김치, 먹을만한 고깃국과 각종 고기류의 준비를 하려면 꼬박 하루하고도 반나절을 허리 펼 수가 없었지만 음식 장만은 사실 그 이후 닥쳐올  설거지와 몇 번이고 차리고 치우고를 반복하는 상차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죠


저 또한 그렇게 평범한 명절에 시달렸던 며느리였던 시절이 있었네요



이혼을 한 후엔 명절 전날에 아들은 시댁 본가로 보내고 저는 친정에 가서 친정엄마, 아빠와 장도 보고 음식 준비도 하고 있습니다

아들은 하루전날 쯤 본가에 가서 지내다가 명절 당일저녁이나 다음날 점심전쯤 외가에 와서 보냅니다.

아들편에 (전)시부모님은 바리바리 과일과 반찬들을 보내주십니다.

물론 손주 먹이려고 보내시는 거겠지만 그 한귀퉁이 어디쯤 며느리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조금이나마 있겠거니 생각하고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처음엔 친정에서 전을 부치고 있는 제가 그리 낯설 수가 없더라고요

다행히 친정부모님은 제가 이혼한 사실을 잊을 만큼 유쾌하게 잘 받아주셨어요

엄마, 아빠랑 같이 시장도 보고 순대국밥도 한 그릇 먹고 하루 종일 음식 준비를 하고 나면 아빠가 고생했다고 낙지 탕탕이와 숙회를 해주시면 엄마, 아빠, 나 이렇게 셋이 둘러앉아 술도 한잔하고 옛날 얘기도 하고 한바탕 웃고 서로 흉도 보면서 고단한 하루를 마감하곤 합니다.


장소만 바뀌었지 명절 준비는 늘 같네요




이혼을 하고 나면 많은 부분들이 많이 바뀌더라고요

인간관계의 변화도 생기고 나의 뜻과는 달리 멀어지는 사람들도 생기곤 합니다


나의 마음 터 놓을 곳이 줄어들고 때로는 혼자 가슴앓이하는 날도 많아지고요

이제 더 이상 고민과 걱정을 나눌 나의 배우자가 없으니까요

저야 뭐 원래 이혼하기 전에도 전남편과 고민을 나누거나 했던 사이는 아니어서 별다른 체감은 못하고 있지만 이혼을 하고 보니 정말 어느 한 곳이라도 가슴 터놓을 대나무 숲이 필요하더라고요


어떤 힘듦과 어려움을 털어놓아도 내 탓이라 하지 않고 묵묵히 들어주는 대나무 숲이 꼭 필요해요

그것이 종교가 될 수도 있고, 일기가 될 수도 있고, 저처럼 가상의 나의 작은 방일수도 있고요

다행히 저에겐 저의 아픔을 보듬어 주고 걱정말라고 더 행복해질꺼라고 응원해주는 친정엄마, 아빠, 그리고 고모들과 고모부들이 계셨습니다.

그중 가장 힘이 되었던건 치매에 걸리신 우리 할머니가 하신 


"얼굴도 못생긴 주제에 어디 우리 손녀딸한테 감히 이혼을 하재!! 잘했어 키도 작고 맘에 안들었어. 
시집이야 또가면 되지 그게 뭐 그리 대수야!!"

울 할머니 역시 대인배셔






제가 힘들지 않게 제가 외롭지 않게 늘 이혼하기 전과 다름없이 웃고 수다 떨고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으니 걱정 말고 행복하라고 응원해주는 부모님이 계셔서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많은 경우 이혼을 하면 친정과 또는 친한 지인들과 의절을 하게 되는 경우들이 있더라고요

그런 경우 이혼의 아픔보다 몇만 배의 고통으로 다가올 것 같아 전 사실 너무 걱정이 되더라고요

세상 어떤 비난과 상처에도 마지막 달려갈 수 있는 곳이 가족이었으면 좋겠는데 그게 생각처럼 쉽지 않은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물론 우리 아이들에게도 반쪽짜리 쉼터가 되겠지만 공간이 따로 분리되었을 뿐 저에게 달려와도 저는 100%의 진심으로 안아줄 것이고 아빠에게 달려가도 똑같이 보듬어 주리란 걸 알고 있기에 조금이나마 미안한 마음을 접어볼까 합니다.


이혼을 했던, 하지 않았던, 지금 행복하던, 위기를 겪고 있던 모든 부부에겐 고비가 있더라고요

그리고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도 꼭 한 군데 정도는 대나무 숲을 만들기 바랍니다.


명절 때마다 철딱서니 없이 달려가 "엄마, 아빠 나 왔어~"라고 말해도 한결같이 안아주는 저희 엄마, 아빠가 그렇듯 저 또한 그런 엄마가 되려고 오늘도 다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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