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이 편하니 살이 찐 건가?
이혼을 결정하기 전까지 맘고생이 엄청 많았다
뭐든 결정하기 전까지가 힘든 법.
심지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 중에 하나인 이혼이니 맘고생이 보통 심했던 게 아니다
이혼이라는 과정이 힘들었다기보다는 그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결혼생활이 힘들었다는 말이 더 맞을 수도 있다.
이혼을 할까 말까 고민하는 과정.
결정을 재촉하는 사람과 망설이는 사람 사이에서 서로 상처 주고 스트레스를 받는 과정이 난 너무 힘들었었나 보다.
1년여를 계속 고민하고 망설이는 과정에서 살이 무려 10kg이나 빠졌었다
밥을 먹어도 소화가 안되고 이유 없이 살이 빠졌었다
처음 오랜만에 봤던 친구가 해 준 '날씬해졌네' 라는 말을 들었을 땐 기분이 좋았다
속도 모르고 날씬해졌다고 부럽다고 하는 친구에게 웃으며 대답해야 했었던 내 속을 그 친구는 알까?
처음 2~3킬로가 빠졌을 땐 주변에서 보기 좋다는 말에 이런 말로라도 위로를 받아야지 하면서 웃어넘겼다
그러다 하루에도 1~2킬로씩 빠지기 시작하니까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날씬해졌다고 칭찬하던 지인들은
그즈음부터 병원에 가봐야 하는 거 아닐까?
갑작스럽게 살이 빠지면 위험한 병이 있을 수도 있다는데
병원 가서 검진받아봐
라는 말로 걱정스럽게 쳐다보기 시작했다.
불과 2달 만에 3킬로 정도가 무섭게 빠지기 시작했을 때 나마저도 큰 병이 생긴 게 아닐까 무서운 맘에 암 초기 증상들을 검색하기도 했었다.
살짝 겁이나는 맘에 (전) 남편에게
"나 살이 너무 심하게 빠지는 거 같아 뭔 문제가 생긴 건 아니겠지?"라고 얘기했더니
돌아온 남편의 대답은
"병원가면되지 그걸 왜 얘기해 "라는 성의없는 대답이 돌아왔을 때
저놈에 주둥이를 확~ 이란 말이 가슴 저 깊은 곳에서 부글부글거렸다.
그때까지도 이혼을 결정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싸우지 말고 내가 참지라는 생각에 뒤돌아 혼잣말로 욕하고 말았었다.
스트레스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무서운지 몸으로 직접 체감한 1년이었다.
이혼을 하고 난 후 결혼 15년 만에 처음으로 늦잠을 자도 미안하지 않았던 첫 주말을 맞았을 때 갑자기 눈물이 나기도 했었다.
남들에게 평범한 이런 일상을 누리기까지 먼 길을 돌아왔다는 회한과 이제 이리 살 수 있다는 행복감.
그렇게 조금씩 마음이 편해졌다.
이혼함으로 오는 스트레스도 있었지만 이혼함으로 얻은 평안도 있었는데 나에게 아직까진 평안이 더 컸나 보다
저녁에 드라마 보면서 홀짝홀짝 마셔대는 머리가 띵해질 정도로 시원한 캔맥주 한잔이 너무 행복하다.
아들과 함께 손을 잡고 동네 한 바퀴를 돌면서 수다 떠는 시간이 너무 행복하다.
주말에 늦잠을 자고 일어나 대충 챙겨 먹으면서 시작하는 아점이 행복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미안하지 않는 지금이 너무 행복하다
그래서.. 살이 찌기 시작했다.
정해인을 보고 위로받는 그 저녁, 이정재를 보고 몰입했던 그 저녁, 박나래와 함께 웃던 그 저녁과 함께했던 내 친구 같은 캔맥주 한 캔이 내 배에 켜켜이 쌓여 살이 되었다.
아들과 함께 운동을 시작해보려 한다.
사랑하는 캔맥주도 안녕을 해야 할 것 같다.
마음의 평안을 얻고 비만도 얻었으나 난 행복하다.
마음 급하게 먹지 않고 천천히 덜어내려 한다.
해인아 미안!
이제 맨 정신으로 널 마주하려 하니 그전처럼 몰입을 하지 못하겠지만 내 마음은 변함없단다.
누나 날씬해져서 다음번 너의 작품을 기다리고 있을게.
누나 이번 생에 착한 일 많이 할 테니까 다음 생엔 나랑 결혼하자꾸나
네가 나라를 두 번 정도 팔아먹을 죄를 지어야만 나랑 결혼하는 형벌을 받게 되겠지만...
또 혹시 모르니.. 기대 해려 한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