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비교적 인간관계가 단순하고 회사에서 보는 동료들 빼고는 별로 연락을 하고 지내는 사람이 없다
내가 안부를 잘 묻는 편이 아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에게 안부를 물어오는 사람도 적은 편이다
불편하거나 외롭진 않다
나름대로 나만의 시간 안에서 무한한 안정감을 느끼는 타입이라 오히려 그 적막의 시간이 내겐 피난처 같은 느낌이다
그런 나의 생활에 새벽에 울리는 전화벨은 필시 부모님의 응급상황인 거다
월요일 새벽 5시 당장 죽을 것처럼 고통스러운 목소리로 엄마의 전화가 왔다
밤새 복통이 너무 심해서 죽을 것 같다고...
나는 당장 119 불러서 응급실 가야 한다고 119 부르겠다고 했더니 아빠가 기다릴 시간 없을 것 같다며 바로 응급실에 모시고 가셨다
아빠에게는 엄마와 병원의 조합은 PTSD이다
엄마가 몇 년 전 죽을 고비를 넘기고 여러 번의 위급 상황과 입원생활을 반복 하신 후 많이 쇠약해 지셨다
신장기능은 거의 무너져 당장 신장투석을 들어간대도 이상할 일이 아닌 상태인데 가까스로 몇 년째 그 경계에서 잘 버텨주고 계신다
아빠에게 엄마와 병원의 조합은 공포이고 두려움이고 불안이며 우울이다
다행히 입원할 정도는 아니셔서 복약하고 외래진료 보기로 했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통증에 괴로워하는 엄마를 보며 아빠는 또 깊은 우울에 빠졌다
오랜 병에 급격히 쇠약해진 엄마와 세상 어딜 가도 허세와 배짱으로 두려울 게 없었던 아빠의 힘없음에 나도 모르게 가슴이 죄여왔다
부처님이 성밖을 나와 죽어가고 병들어가는 사람들을 처음 접하고 삶의 무상함에 불교에 귀의했다는 말이 난 내내 이해가 가지 않았었다
내 부모가 아프고 내 부모가 나약해진 모습에 가슴이 무너지고 그들의 세월의 고단함이 한꺼번에 밀려오자 과연 삶이란 것의 무상함을 느꼈다
그들은 왜 그렇게 힘든 인생을 감내하고 살도록 태어난 걸까
왜 인간은 정해진 수순처럼 늙고 병들고 고통받으며 생을 마감해야 하는 걸까
피할 수 없다면 과연 그 힘듦을 어떤 자세로 받아들여야 할까
이제야 부처님이 그 광경들 속에서 느껴던 감정의 기반이 사랑 이었나보다 라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 성문 밖 아프고 늙고 죽어가는 이들은 남이어서 무심했는데 싯다르타에게 그들은 부모였고 아우였나보다 그리 사랑해서 아팠나보다. 그래서 내가 내 부모의 일이 되어서야 아픈걸 느꼈는데 그는 그들을 사랑해서 그리 아팠구나 싶었다
오늘부터 엄마를 위해 새로운 기도를 시작해야겠다
이달 말 잡힌 검사결과가 부디 희소식이게 해달라고 관세음보살님께 빌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