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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ri May 04. 2016

AI와의 사랑도 사랑일까

<그녀> 감상문

티스토리에 2014/8/23에 올린 글

계속 추천받았던 영화 'Her'을 드디어 보았다. 먼저 많은 생각들을 하게 해 줬다는 차원에서 무척 마음에 드는 영화였다. 본 후의 생각은 두 가지의 포인트로 나뉘었는데 하나는 무분별하게 발전되어가는 기술에 대한 두려움이었고, 또 하나는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한 혼란스러움이었다.(이 글에서 말하는 '사랑'은 'Eros', 즉 'Romantic Love'다.)


대학원을 공대 계열로 가고는 1년이 지난 시점에 든 생각이 기술의 발전 속도에 그와 관련된 윤리의식이 따라잡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었다. 공학 쪽은 내가 배워왔던 분야와는 사고 자체가 많이 달랐다. 특히 프로젝트를 하면 디자이너로서는 프로젝트 성공 지표가 결과물의 상품성, 사용자들의 선호 코드를 얼마나 잘 읽어냈는지, 사용자들의 삶을 더 윤택하게 만들어줄 수 있었는지 등에 달렸다고 하면, 이쪽은 (당연하지만) 구현이 가능한지에 치중되어 있었다. 물리학자와 공대생이 주인공인 미국 시트콤 빅뱅이론에서 '그걸 왜 만들어?'라고 물었을 때 '할 수 있으니까'라고 대답하던 그들의 사고방식이 공대에서 많이 느껴졌다.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진행한 Sim Sensei라는 프로젝트를 알게 되었다. 컴퓨터 앞에 있는 사람의 얼굴 표정을 인식하면서 온라인 상담을 해주는 AI들이 상담받는 사람의 표정에 맞게 반응을 자연스럽게 하도록 하는 프로젝트인데, 영상을 보니 AI의 반응이 정말 사람 같았다. 카메라가 달린 컴퓨터 앞에 사람이 '이런 일이 있었는데요...'하고 얘기를 하면 가상 에이전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음..."하고 사람처럼 소리를 내기도 하고 화면 앞의 사람이 웃으면 살포시 따라 웃어주기도 한다. 이미 일본의 아키하바라 오타쿠들은 2D세계에 빠져 프로그램 속의 여자아이와 사귀고 결혼도 하고 있는데, 기술의 발전이 계속해서 이렇게 공감해주는 AI들이 나타나면 이건 오타쿠들에게만 한정되는 일이 아니게 될 것이다.



영화 얘기로 돌아와서, 영화에서는 주인공인 테오처럼 OS와 사랑에 빠지는 일은 아예 없는 일은 아니다.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는 이슈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사회적인 타부(Taboo)도 아니다. 그리고 영화를 보면 그의 사랑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마음을 공유하고, 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함께 해결해 나가기도 하고, 있는 그대로의 서로를 받아주며 사랑이라고 정의 지을 수밖에 없는 형태의 관계를 주인공과 OS는 맺는다. 테오의 친구 에이미는 이 세상에 있는 짧은 시간 동안에 하고 싶은 대로 하라면서 그 관계가 진짜인지 아닌지는 그 관계 안에 있는 사람끼리만이 정의 지을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 부분에 있어서는 나 역시도 공감하지만 모든 사랑의 형태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는지의 문제는 기독교인으로서는 애매하고 어려운 부분이다. 예전에 사랑을 정의 지을 때, 사랑에는 의지가 포함된다는 얘기를 했었다. 이것은 순전히 기독교적인 관점의 '사랑'이라, 고린도전서의 사랑장을 레퍼런스로 가져왔었다. 그리고 성경에서는 사랑은 남녀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정의된다.


AI까지 갈 것도 없이 동성애에 관해서도 오랫동안 고민을 해왔다. 요새는 동성애를 반대한다고 하는 것이 오히려 커밍아웃처럼 느껴지는 시대에 살고 있어서 섣불리 이 주제를 얘기했다가는 수많은 비난을 듣는다. 또한 생각이 정리된 상태로 말을 한다고 해도 바닥을 치는 한국 기독교 평판에 크리스천의 입장을 열린 마음으로 들어줄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한 생각도 든다. 크리스천의 입장은 심플하다. 하나님이 안된다고 하신 동성애에 관하여서 반대표를 들고 시작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내가 정리해본 결론은 동성애가 왜 안되는지 보다는 성경에서 벗어난 방식의 타인의 사랑에 대해 취할 나의 태도였다. 나의 결론은 타인에 대한 사랑 없이는 그 사람의 사랑에 간섭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나는 동성애나 AI에 대한 사랑이 하나님의 성전인 자신의 몸을 해치는 흡연이나 폭식보다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나를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이 나의 폭식을 비난한다면 아마 너나 잘하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그 타인이 내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고 그 사람이 나에게 의견을 물어본다면 그때는 솔직하게 내 생각을 얘기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상대가 누구든, 어떠한 것이든, 대상에 대한 마음의 끌림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것이 다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람들 중에는 동물, 어린아이, 인형 등에 호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인형은 피해를 보는 대상이 없기 때문에 넘긴다 쳐도, 동물과의 사랑과 성관계는 질병을 낳고, 어린아이와의 사랑은 일방적인 폭행과 트라우마로 이어진다. 여기서 전에 얘기한 사랑에는 의지가 들어간다는 부분이 나오게 된다. 사랑이 끌림(감성)과 의지(이성)로 이루어져있다고 한다면 사람은 자신의 의지로 누군가를 사랑을 할 수도 있고, 사랑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가끔은 왜 하나님께서 이토록 세상을 오묘하게 만드셨을까, 왜 이리 세상은 혼란스러울까 알고 싶다. 왜 끌리는 감정이 남녀 사이에서만 생기는 것이 아닌, 동성 간에 생기게도 허락하시고, 사물에 생기게도 허락하시고, 인간같이 생긴 2D속 캐릭터들에게도 생기게도 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렇게 시작하면 이 세상엔 이해되지 않는 일들 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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