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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ri Aug 21. 2023

아이를 낳은 이유

안정적인 삶이라는 허상

아이를 낳고 나서 2-3개월 간, 아이는 정말 천사 같은데 내 상황은 말이 아니었다. 수면부족과 젖몸살로 몸이 너무 아픈데 남편이 너무 바빠 육아는 거의 혼자 했고 어떤 일로 인해 2주간 매일 울며 잠들 정도로 내 인생 최저점을 경험했다. 출산 후 5개월이 지나 정신을 어느 정도 가다듬고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3개월 후에 추적검사를 받아야 하는 심각한 증상이 발견되면서 심장도 좋은 편이 아닌 상황에서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건강한 엄마로 아이 옆을 지켜주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러한 일련의 일들을 겪으면서 인간의 삶이라는 게 참 연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견고해 보여도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는 게 사람 인생이다.


개인적인 일과 더불어서 내 유튜브 피드에는 눈앞으로 다가온 기후변화, 국민연금 고갈, 우리나라의 미친 사교육과 높은 청소년 자살률, 초등학생들이 당한 교통사고 등의 영상들이 끊임없이 추천되어 나왔다. 기후변화 하나만 봐도 식량난과 전쟁이라는 키워드와 연관이 되어있어 알면 알수록 심란했고 무기력해졌다. 많은 뉴스에는 아이를 낳지 않는 게 현명한 거고 아이를 낳는 것은 부모의 이기심 때문이라는 댓글들이 공감을 많이 받았다. 그 댓글창을 보고 있으면 우리나라가 저출산인 이유는 현명하고 똑똑한 사람들이 출산을 선택하지 않아서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행복이 보장된 사람은 없다. 지금이 안 좋은 시대처럼 보여도 조금만 더 일찍 태어났어도 전쟁이나 당시 기술로 치료가 안 되는 질병 등으로 더 쉽게 죽을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 세대에서 기후변화로 인한 식량난으로 죽는 거나 이전 세대에 전쟁으로 인한 식량난으로 죽는 거나 한 개인의 입장에서는 크게 다를 게 없다. 또, 우리나라에서는 돈 많고 똑똑한 금수저면 행복할 것 같지만 재벌집 딸로 태어나도 자살을 선택하거나 마약 중독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이미 우린 봐왔다. 내가 해마다 안좋아질 기후변화를 걱정하지만 사실 내일 차 사고로 허무하게 죽을 수도 있는 게 참 아이러니하다.


이런 생각들을 계속하다 보니 “안정적인 삶”이라는 게 허구이듯, 정해진 불행이라는 것도 없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의 삶이 불안정하다면 행복이나 불행은 결국 우리의 몫이 되기 때문이다. 다만, 부모가 끊임없이 아이에게 불행을 가르치고 잘못된 가치관을 주입시킨다면 그 아이가 불행해질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은 맞는 것 같다. 전 세계 17개국을 대상으로 삶의 가치를 물어보았을 때, 한국만 유일하게 ‘물질적인 행복’을 1순위로 선택했다고 한다. (다른 나라들에서 가장 응답이 많은 건 ’ 가정‘이었다.) 또, 복수응답이 가능했음에도 불구하고 단일응답을 한 비율도 가장 높았다고 한다. 이 얘기에 어떤 사람들은 우리나라에서는 ‘돈’에 가정이나 건강 같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느니 이유를 갖다붙이긴 했지만 솔직히 나로서는 그건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었고 ‘남들보다’ 혹은 ‘남들만큼’ 살아야 행복하다고 느끼는 우리나라 대중들의 가치관을 잘 보여준 결과라고 생각했다.


우연히 ‘이터널 선샤인’의 한 장면을 오랜만에 보게 되었는데, 조엘의 기억 속에서 클레멘타인이 이제 이 기억마저 지워지면 어떡하냐는고 묻는 장면이었다. 클레멘타인에게 조엘은 ‘Enjoy it'이라는 말을 한다. 모든 사람의 인생은 죽음으로 끝나고 언제 어떻게 그 죽음이 찾아올지 모르기에 연약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살며 즐기는 것이다.


나는 ‘엄마’가 되고 싶어서 아이를 낳았고, 이건 누가 보면 이기적인 선택이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아기가 세상에 나온 이상 이 아이가 세상에서 제대로 된 의미를 찾고 행복할 수 있는 방법들을 같이 찾아주고 싶다. 아이가 방긋방긋 웃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 웃음을 어른이 될 때까지 최대한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내 인생을 소중히 누리고 하루하루를 보내야겠다는 결심이 선다. 그래서 당장은 뒤편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문제들이 있지만 그 부분은 하나님께 맡겨두고, 내 작은 아기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예쁜 모습들을 최대한 머릿속에 새기며 이 아름다운 시간을 누리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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