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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리 Feb 03. 2020

'멋 냈다'가 '멋있다'가 되기까지

'건강한 의생활'을 위한 제안


어릴 때부터 내 꿈은 옷 잘 입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언니가 입던 옷을 입었고, 멋진 옷을 입는 부잣집 애들을 부러워했다. 어린 시절의 불만은 평생의 굶주림이 되었다. 옷 투정을 할 때면 엄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른 돼서 네 마음대로 입어

돈을 벌게 되며 꿈은 실현(?)되었다. 내게 ‘마음대로 입기’란 내 돈을 누군가의 허락 없이 옷에 쓰는 것이었다. 그러면 텅 빈 마음이 채워질 것 알았다. 10년이 지나고, 그때 산 비싼 옷에는 곰팡이가 피었다. 꽉 찬 옷장 앞에서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입을 옷이 없었다. 내 옷장은 망한 옷장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옷을 잘 입고 싶었다. 다시 10년이 지났을 때 그 한숨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옷장은 왜 망했을까?’


두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하나, 옷을 바라보는 관점이 왜곡되어 있었다. 굶주림에 시달린 사람이 폭식에 빠지듯, 나는 마음의 굶주림을 채우기 위해 쇼핑중독에 빠졌다. 비싸고 화려한 옷으로 나를 과장하려 하면서도, 한편으론 그런 나를 자책했다. 그럴 때면 옷을 더 샀다.


폭식에 죄책감을 느낀 사람이 음식을 좋아하는 것까지 멈추고 금식해야하는 건 아니다. 그에겐 ‘건강한 식생활’이 필요할 뿐. 쇼핑중독에 빠진 나도 자책하며 옷을 즐기는 걸 죄악시할 필요가 없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고, 그런 내가 좋아하는 옷을 절제하며 즐기는 라이프스타일. 내게 필요한 건 과도한 미니멀리즘이 아니라 ‘건강한 의생활’이었다.


둘, 나는 옷 입기를 이성의 영역이라 여긴 적이 없었다. 패션은 당연히 감각의 영역이었다. 사실 옷을 ‘마음대로 입기’란 치밀한 계산 끝에 가능한 건데.


‘마음대로 입기’에 필요한 과정은 무엇일까. ‘마음대로 먹기’의 과정을 먼저 떠올려보았다. 먹고 싶은 메뉴를 정하면, 냉장고 속 재료를 점검하여 장을 봐오고, 레시피에 따라 요리를 한다. 결과물을 음미하는 것은 감각과 본능의 영역이지만, 메뉴 결정, 장보기, 요리하기는 전적으로 이성의 영역이다.


과거 내 ‘마음대로 입기’ 과정을 돌아보았다. 내가 선망한 스타일은 잡지나 쇼핑몰에서 ‘이게 유행이에요’ 알려주는 것이었고, 옷장 속 옷을 체크한 적은 없었다. 또 옷을 살 때면 왠지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옷을 골랐다. ‘어떤 옷과 입어야 하지?’ 뒤늦게 떠오른 질문은 재빨리 휘발시켰다. 내 옷장이 망한 건 당연했다. 내가 원한 건 ‘마음대로 입기’였지만, 내가 한 건 ‘내 마음은 모르겠고, 그냥 옷장 터질 때까지 살게’였다.


‘건강한 의생활’의 주인이 되기로 한 후, 제대로 ‘마음대로 입기’로 했다. 과거의 실수를 바탕으로 5 단계를 밟아 갔다.


1 단계는 나를 아는 단계이다. 과거의 난 ‘내가 원하는 옷은 이게 아닌데’라며 많은 옷을 버리고도 ‘내가 원하는 옷은 뭘까?’ 묻지 않았다. 그 질문으로 옷을 사기보단 중요한 일이 생기면 옷을 샀다. 옷이 메시지 표현 수단이기 때문이다. 보통은 그 메시지란 것이 ‘나 잘 살아’이지만, 실은 ‘난 어떤 사람이야’에 가깝다.

 

‘나를 누구로 표현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선 ‘나는 누구인가?’에 답해야 한다. 내 옷이 표현할 메시지는 바로 내 정체성이다. 그리고 정체성은 장기적으로 옷장의 컨셉이 된다. 이런 결론에 도달한 이후 나는 정체성 탐구를 꽤 오래 거쳤다. 그 과정에서 내향적이며 자유로운 영혼임을 알았고 ‘조용한 말괄량이’라는 별명을 찾았다. 나는 이 과정을 ‘용감한 성찰자’ 단계라 부른다.


2 단계는 안목을 높이는 단계이다. 나는 어떤 옷을 사야할지, 어떤 옷을 사면 안 되는지 궁금해 하지 않았다. 옷 대부분을 버리고 나서야 그게 궁금해졌다. 미술품 컬렉터들은 평생 품고 살 작품을 사기 위해 정말 긴 시간을 들여 안목을 높인다. 평생까지는 아니어도 5년 이상 품고 살 옷을 사려면, 그리고 과거의 나처럼 옷장 앞에서 한숨을 쉬지 않으려면 우리에게도 이 과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패션 잡지나 방송에서 자주 발견되던 전문가의 팁을 묶어 ‘스타일링 4 법칙’으로 정리했다. 반대되는 것끼리 믹스 매치하면 이상하게 멋있다는 ‘반대의 법칙’, 뺄 것 다 뺀 옷에 디테일을 더하면 활용도가 높아진다는 ‘빼기 더하기의 법칙’, 약간의 흐트러짐이 있을 때 더 멋있다는 ‘여백미의 법칙’, 조화로운 배색법을 옷에 적용하면 좋다는 ‘색상조화의 법칙’. 법칙을 정리하고 안목을 높이자 누군가의 옷이 왜 이상한지, 왜 멋있는지에 대한 판단이 빨라졌다. 옷을 사지 않은 채 냉정히 안목을 높이는 이 단계는 ‘냉정한 감상자’ 단계이다.


3단계는 잘 사는 단계이다. 옷장 컨셉을 알고 패션 안목을 충분히 높였다면, 쇼핑해도 좋다. 과거 내가 쇼핑에서 실패를 거듭했던 건 1단계와 2단계를 건너뛰었기 때문이다. 물론 나를 표현하면서도 소장 옷과 조화를 이룰 옷을 가려내기란 쉽지 않다. 옷을 살 때 이성을 동원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발상 전환만 해도 진짜 재밌다. 나는 이 단계를 ‘명민한 컬렉터’ 단계라 부른다.


4단계는 나를 표현하는 단계이다. 나는 늘 나에게 어울리는 옷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나에게 어울리는 옷은 바로 내 정체성에 어울리는 옷이었다. 예술가가 자신의 세계를 작품으로 표현하듯, 나는 ‘조용한 말괄량이’를 토털룩으로 표현하는 창작활동을 한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고 나를 과장하거나 억누르지 않으면서 외관상으로도 멋지게 표현하는 것이다. 이 단계는 ‘창의적 작가’ 단계이다.


5단계는 내 삶의 주인이 되는 단계이다. 어떤 옷을 입어야 할지 안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아는 법. 나는 ‘조용한 말괄량이’가 무엇을 입어야할지 고민하던 끝에 지금의 일을 만났다. 이 단계는 ‘진정한 나’ 단계이다.


여기까지 온다는 것, 그리고 진정으로  ‘마음대로 입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옷 잘 입는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었기에 이 과정을 즐길 수 있었다. 이제 옷은 사는 즐거움보단 입는 즐거움의 대상이다.


있는 그대로의 나여도 좋다는 건강한 자존감, 내 정체성을 옷으로 표현하고 타인과 소통하겠다는 마음. 그게 바로 ‘건강한 의생활’의 시작이다. 누군가는 트렌드를 강요한다. ‘건강한 의생활’은 마음대로 입자는 거다. 제대로 말이다.






이 글은 필자가 월간 <나라경제>에 기고한 글입니다.






사야할 옷과 사지 말아야할 옷, 살 때 편한 옷보다 입을 때 편한 옷이 뭔지.

옷 살 때 쇼핑몰 사장님이 안 알려주는 쇼핑 꿀팁. 모두모두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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