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 우울증이 찾아왔다. 내면의 기초 대사가 멈추었다. 일상을 이어나갈 힘이 없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누구 한 명 공감을 수혈해 주기만 하면 다시 힘낼 수 있을 것 같았으니. 친구나 지인을 만날 때면, 간절히 SOS를 쳤다. 제발 내게 공감해 달라고. 나를 구출해 달라고.
"넌 너무 예민해서 탈이야."
뜻밖에도 이런 말이 돌아왔다. 누굴 만나도 이런 일이 반복되었다. 지구 밖으로 쫓겨난 듯 외로웠고, 홀로 벗은 듯 수치스러웠다.
'모두들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는데, 난 정말 혼자 유난떠는 이상한 사람일까.'
그러던 어느 날 서점에서 책 한 권을 발견했다.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크리스텔 프티콜렝, 부키). 내 얘기였다. 생각이 수많은 가지로 뻗어가는, 과하게 예민한 사람. 이런 사람은 대부분의 사람들과 사고와 감정 패턴이 달라 공감을 얻기 힘들다.
이 책에서 받은 가장 큰 위로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혼자가 아니라는 것. 그건 내가 외계인이 아님을 의미했다. 그것만으로도 힘이 되었다. 평생 비정상 취급을 받았는데 나 같은 사람들이 똑같은 지점에서 똑같이 괴로워하는 모습이라니. 예민한 나를 처음으로 '귀엽다'는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 책에서 얻은 가장 큰 충격이자 수확은 '평생 나는 나 자신과 결혼했다'걸 배웠다는 거다. 공감은 타인이 해주는 건줄로만 알았지, 내가 나에게 해줄 수 있다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 부끄러웠다. 난 공감해줄 사람을 찾을 때까지 사람 바꿔가며 구걸하기만 했다. 그런데 내가 찾던 그 사람이 나 자신이었다니. 내가 받고 싶던 그 공감,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은 나를 가장 잘 아는 나였다.
'최유리씨의 화는 도대체 어디 갔죠?' 상담 선생님이 내게 던지셨던 첫 질문이었다. 나는 화를 낼 줄 몰랐었다. 화를 내도 된다는 걸 알게 된 후, '화난다'에서 나를 들여다 보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다. 내가 겪었던 사건을 써 보고, 그 때 내가 느꼈던 다양한 감정에 대해 손 가는 대로 썼다. 글 쓰는 내가 '나 이거 화나' 라고 말하면, 그걸 읽는 또 다른 나는 '그래?'라고 듣고 '왜 그런데?' 라고 물어 주었다.
'분노'는 개인의 가치, 본질적 욕구, 기본적인 신념을 보호하고자 하는 의지(레스 카터, <<당신 생각은 사양합니다>>에서 재인용)이다. 수동적인 관점에서 분노는 나 다울 수 있는 영역을 누군가가 침범해 들어왔을 때 느끼는 감정이며, 능동적인 관점에서 분노는 누군가의 영역을 내가 침범해 들어가고 싶었으나 그것에 실패했을 때 느끼는 감정이다.
그러니 '화가 머리 끝까지 났을 때'는 나의 가치, 나의 본질적 욕구, 내가 가진 신념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때이기도 하다. 나를 힘겹게 했던 일과 그 때의 감정에 대해 글을 쓰기. 그건 나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육아서에서는 부모가 아이와 나눌 수 있는 이상적인 대화법이 소개 된다.
"엄마, 나 오늘 학교에서 O랑 다퉜어."
"응? 넌 웬만해선 싸우는 거 안 좋아하잖아. 우리 A가 왜 그랬을까?"
"으응.... O가 내 뒷자리에서 다리 떨면서 내 의자를 계속 발로 차잖아. 그럼 내가 수학 문제 풀 때 집중할 수가 없어. 하지 말라고 했는데, O가 미안하다고 안하고 뭐 그런 일로 그러냐고 해서 화가 났어."
"듣고 보니까 엄마도 그럴 때가 있어. 우리 A는 뭔가 집중할 때 혼자 있고 싶은 거구나. 교실에선 혼자 있을 수 없으니까 책상이나 의자, 몸을 다른 사람이 건드리지 않는 걸 원했나보네."
"맞아. 엄마 난 내 조용함을 방해받을 때마다 이상하게 화가 나."
"이상한 거 아니야. 사람마다 싫은 건 다르니까."
"엄마는 내 맘 잘 알아준다."
"그럼 앞으로 O랑 안 놀거야? O랑 같이 놀면 재밌다고 했잖아."
"음... 맞어. O랑 노는 건 재밌어. 앞으로도 같이 놀고 싶어. 오늘 내가 좋게 말할 수도 있었는데 그렇게 못했어. 앞으로 나는 누가 내 의자를 발로 차면, 조용한 게 나한텐 중요하다고 화 안 내고 말할래. O한테는 내일 내가 말해보지 뭐."
아이가 밖에서 좋지 않은 일을 겪었을 때 부모는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어떤 감정이 들었는지 먼저 물을 수 있다. 아이가 부모의 질문을 듣고 자신이 느낀 감정이 어떤 것인지 답하면, 부모는 먼저 감정을 읽어준다. 그런 다음엔 왜 그런지 물을 수 있다.
아이들은 대부분 "그냥"이라고 별 이유 없다고 답하지만 이유를 단번에 설명하는 건 어른에게도 힘들다. 천천히 물어봐주고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주면, 아이는 언젠가 이유를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이 사건의 최종 의사결정은 아이의 몫으로 남겨 둔다. 아이에게 스스로 이일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묻고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부모는 지지하는 거다.
나는 부모와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었다. 우리 세대 부모들은 대화가 시작됨과 동시에 대화를 종결시키는 능력이 대단하셨다.
"맞았니? 바보 같이 왜 맞았어? 너도 때리지 그랬냐?"
"앞으로 걔랑 놀지 마라"
"뭐 그만한 일에 화를 내니? 그래 가지고는 친구 못 사귄다."
어린 시절 나는 감정에 공감받는 경험도, 내 감정의 기저에 존재하는 가치관/욕구/신념을 파악할 기회도, 의사결정의 기회도 갖지 못했다. 이제 어른이 된 내가 이런 시절을 거친 내면 아이를 다시 불러오고, 가장 이상적인 부모가 되어 다정히 말을 거는 것. 난 글쓰기로 그걸 경험했다.
손 가는 대로 내가 경험한 일과 감정을 쓰는 나는 어린아이인 나이고, 그 글을 읽고 다정히 물어봐 주는 건 어른인 나다. 그 어른의 질문을 다시 글로 옮기고 어린아이가 되어 답을 글로 쓰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나의 가치관과 욕구와 신념을 만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어떤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가장 나다운 결정인지 알아차리게 된다. 난 그것이 나를 치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 믿는다.
글쓰기로 우울증에서 벗어났고, 나를 만났다. 그리고 이젠 작가가 되었다. 작년엔 팬 분이 나에게 "작가님을 지켜드리고 싶었어요"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 말을 들은 순간 '화난다'까지는 아니었지만 왠지 모르게 불편했다. 그날 저녁 나는 집으로 돌아와 그날 있었던 일과 감정을 어린 아이와 부모의 대화법으로 메모장에 기록해 두었다.
(아이) "나 K님한테 '작가님을 지켜드리고 싶었어요'라는 말을 듣고 기분이 이상했어."
(부모)"근데 그건 호의잖아. 너를 너무 좋아하셔서 하신 말씀이야. 그런데 왜 기분이 이상하기까지 했을까?"
(아이) "뭐랄까. 그 말에 내향적인 사람에 대한 편견이 전제된 것 같아서. 내향적인 사람이 모두 약한 건 아니잖아. 난 내가 의존적인 사람으로 보이는 게 싫은가봐."
(부모) "그럼 K 님과 앞으로 안 볼거야?"
(아이) "아니. K 님은 자칭 '영원한 팬'인데 고맙다는 말씀을 드렸어야 했어. 근데 마음이 복잡해서 그 말 하는 건 잊었네. 고마운 마음과 이상한 마음을 잘 정리해서 답해드리고 싶어."
그리고 몇 달 후 이 메모를 발전시켜 한 편의 글을 썼다. 글을 완결하기 전까지는 내가 뭐라고 결론을 내릴지 몰랐다. 내가 결론을 내릴 수 있었던 건 기승전결의 글쓰기 과정에서 나에게 끝까지 묻고 답했기 때문이다.
기(사건)-승(감정인지)-전(감정 기저의 가치관/욕구/신념 발견하기)-결(의사결정)
평생 일기를 써 오셨다는 분들과 글쓰기를 함께 할 때마다, 지금까지 미해결로 남았던 묵은 감정이 완결된 한 편의 글을 쓰는 경험으로 속 시원히 풀렸다는 간증(?)을 듣곤 한다.
일기를 매일 써도 '모르겠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라는 문장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는 이유는 전(감정 기저의 가치관/욕구/신념 발견하기)-결(의사결정)이라는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아서가 아닐까.
나의 화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다정히 물어봐 주는 것. 그건 <<당신이 옳다>>에서 정혜신 박사님이 말씀하신 '다정한 전사'의 몫이다. 난 '다정한 전사' 역할을 해줄 타인을 찾지 못했다. 대신 나 자신이 '다정한 전사'같은 부모가 되어 글을 썼다. 그 글쓰기가 그때의 나를 살렸고, 나를 작가로 만들었다.
http://blog.naver.com/sujy62/221990699976
본문에서 소개한 짧은 메모를 발전시킨 글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brunch.co.kr/@yurigin/1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