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유리 Aug 02. 2021

당신은 어떤 스타일리스트인가요?


Photo by Chalo Garcia on Unsplash



01 ‘나’ 담당 스타일리스트 


김원준의 <쇼>와 임상아의 <뮤지컬>.  옛날 노래 맞다. 그러나  삶이라는 무대의  주인공은 바로 나임을 강조하는 메시지가, 신나는 멜로디를 타고 우리 어깨를 들썩이는  노래임도 맞다. 회사의 노예가 되지 말고 ‘경제적 자유’를 얻으라는 메시지가 유행처럼 번지는 걸 생각해 봐도, 내 인생의  주인으로 산다는 건 신나는 일이다.


“행복을 원한다면, 자기 자신으로 사세요!”


이 문장을 달리 말하면 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다. 


“행복을 원한다면, 자기 삶의 각본, 연출, 연기 모두 본인이 맡으세요!”


우리는 ‘나’ 역을 맡은 주인공이다. 나는 박사 논문을 멈출 결심을 하기 전까지 각본과 연출까지 내 몫임을 몰랐다. 감독님들도 무서웠고 나에게 맞지 않는 스토리 속에 들어가 연기하다 보니, 내 연기는 엉망이었다.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살아가려면, 우리는 ‘나’의 삶이라는 작품의 주연 배우임과 동시에 작가이자 감독으로 살아야 한다.


그렇다면 의상은 누가 담당해야 할까? 당연히 나이다. 우리는 ‘나’ 역을 맡은 배우에게 옷을 입히는 스타일리스트다. 매일 아침의 ‘오늘 뭐 입지?’는 ‘오늘 나 최유리에게 어떤 옷을 입히지?’라는 스타일리스트의 고민과 같으니까.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어떤 스타일리스트일까? 그리고 스타일리스트의 진짜 역할은 뭘까? 만약 드라마에서 배우가 극 중 역할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촬영장에 등장하면, 감독은 해당 배우의 스타일리스트에게 한 마디 할 것이다. 


‘캐릭터 분석을 제대로 안 하셨네요.’



02 스타일리스트의 일 


스타일리스트의 일은 그 인물로 살아갈 수 있는 옷을 권하는 것이다. 우리는 배우 ‘나’에게 인물 ‘나’로 살아갈 수 있는 옷을 권하는 스타일리스트일까? 아니면 겉보기에 멋진 옷을 권하는 스타일리스트일까?


우리는 ‘어울리는 옷’을 찾아 헤맨다. 옷을 사놓고도 자주 방치하기도 한다. 남들이 보기에 아무 문제가 없어도 내면의 내가 그 옷이 틀렸다고 말하기 시작하면 더 이상 그 옷에 손이 가지 않는다.


단지 ‘어울리는 옷’은 배우의 외모만 알고 배우가 연기할 인물은 파악 못한 스타일리스트가 고른 옷과 같다. 배우가 극 중 인물의 내면과 인물이 처한 상황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등장할 때 그 연기는 진정성을 상실한다. 내가 ‘나’로 살아갈 수 없는 옷을 입었을 때 내 삶 역시 그렇지 않을까? 내가 ‘나’로 온전하지 못할 때, 타인과의 커뮤니케이션은 물론 삶의 전반에서 왠지 모르게 자신이 없어진다.


우리는 유능한 사람, 매력적인 사람임을 증명하기 위해 ‘외모도 전략’이라며 시술이나 비싼 옷에 투자한다. 그러나 정말 높여야 할 것은 코 높이나 옷의 가격이 아니라 ‘나’라는 인물 분석에 투자하는 시간이다.


‘저는 에스프레소 같은 사람입니다’


화려한 스펙에 이런 모호한 표현만 존재하는 자기소개서는 경쟁력이 없다. 마찬가지로 아무 컨셉이 없고 비싸기만 한 옷은 ‘나’의 가치를 높일 수 없다. 나는 오랫동안 ‘나 = 패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래서 화려한 프린트가 있는 옷, 특이한 옷, 다양한 색상의 옷을 샀던 것 같다. 그 옷을 입었던 마음은 꽤 오래도록 텅 빈 채로 있었다. 아무리 옷을 사도 내 내면이 채워지지 않았기에 옷을 사고 버리길 반복했다. 그때 내 스타일리스트는 ‘나는 누구인가?’가 아니라 ‘패셔너블한 여자가 되기 위한 옷은 무엇인가?’에만 관심을 가졌다. 


그러던 중 우울증을 만났다. 초유의 비상사태를 맞은 내 삶의 제작진 모두는 ‘최유리 라는 인물은 누구인가?’라는 주제로 긴 회의를 했다. ‘최유리’라는 인물의 버킷리스트, 왠지 끌리는 룩, 오랫동안 좋아해 온 음악 등 사소한 것에서 이 인물을 탐구했다.


결국, 작가와 감독이 최유리로 교체되었다. 작가 최유리는 먼저 시나리오를 수정했다. 작가는 ‘최유리’라는 인물에게 꼭 맞는 스토리를 선사해 주기로 한 거다. 그럼 스타일리스트는 뭘 했을까? ‘최유리’의 스타일리스트는 ‘최유리는 누구인가?’ 질문하지 않았고, 답을 몰랐다. 패션에만 관심을 가졌으니 스타일리스트는 50점짜리였다. 제작진과의 회의 후 스타일리스트는 고심 끝에 ‘최유리’에게 별명을 붙여 보았다.


‘조용한 말괄량이’.


‘조용한 말괄량이’는 ‘최유리’ 역의 배우가 입을 옷의 컨셉이다. 이제 스타일리스트는 배우가 ‘조용한 말괄량이’로 살아갈 옷을 입히는 것에 집중한다. ‘조용한 말괄량이’라는 별명은 스타일리스트가 패션을 초월하여 스타일링을 할 수 있게 해줬다.   



03 나에게 내 삶을 선물해 주자 


우리에게 오래도록 사랑받는 배우는 상류층 역할만 맡는 뛰어난 외모를 뽐내는 배우가 아니라, 극 중 인물로 제대로 살았기에 여운을 남기는 배우이다. 우리가 ‘나’라는 인물 탐구를 패스한 채 매력 있고 유능한 사람이 되고자 할 때 부리는 게으름. 그건 멋져 보이는 누군가의 겉모습을 따라 하는 것이다.


물론 모방은 좋은 시작이다. 그러나 모방에서 끝난다면 문제가 있다. 따라 고른 옷을 입고 타인의 패셔너블함을 빌렸을 때 난 잠깐의 시선 집중은 경험했지만 허탈했다. 그 옷을 입은 나는 가짜 삶을 사는 것 같았다.


‘나’라는 인물을 가장 그 사람답게, 그리고 아름답게 표현해줄 옷을 입히는 것. 담당 스타일리스트 외에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나에게 나로 살아갈 수 있는 옷을 입힌다는 것. 그건 나에게 내 삶을 선물해주는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어떤 스타일리스트였을까.


대답을 못 해도 괜찮다. 지금부터 시작이니. 가벼운 마음으로 인물 탐구도 하고, 스타일링 법칙도 조금씩 익히면 된다. 혹시 알까? 10년 후엔 지금보다 나은 스타일리스트가 되어 있을지. 그래서 배우에게 역할에 꼭 맞는 옷을 골라주어 그 배우가 멋진 연기로 사랑받도록 할 1등 공신이 되어 있을지. 내가 ‘조용한 말괄량이’라는 역할을 찾은 건 6년 전이다.


나는 6년 전에 비해 훨씬 ‘조용한 말괄량이’에게 꼭 맞는 옷을 잘 골라주는 스타일리스트가 되어 있다. 지금 내가 옷을 아주 잘 입는지는 잘 모르겠다. 가끔 누군가로부터 ‘패션 테러리스트’란 댓글을 받기도 하니까. 물론 그 분은 인물의 캐릭터는 안중에도 없고 극 중 주인공의 패션 스타일이 자기가 추구하는 것과 다르다고 채널을 돌리는 분이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내가 앞으로도  ‘조용한 말괄량이’의 스타일리스트로서 역량을 키우길 멈추지 않을 거란 사실이다. 그것이 앞으로 늙어만 갈 내가 20대의 나보다 다르게 빛나는 비결이 될 거라 믿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만의 머스트 해브 아이템은 무엇인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