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음악을 좋아한다. 어떤 음악을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대답하기 곤란할 정도로 다양한 음악을 좋아한다. 그러나 누구의 음악을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고민할 것도 없이 한 명의 아티스트를 꼽는다.
김동률.
1993년 연세대 1학년이던 그는 절친 서동욱과 함께 <대학가요제> 대상을 거머쥐었다. 그리고 1994년 <기억의 습작>이 수록된 '전람회' 1집을 발표했다. 앨범에 수록된 모든 곡의 가사와 멜로디, 그리고 그의 목소리는 당시 고2였던 나의 가슴을 울렸다.
'연세대에 진학해서 이 오빠들을 만나겠어!'
딱 그 나이다웠던 꿈을 생각하면 그냥 웃음이 나지만, 세월이 지난 지금도 그의 음악을 사랑하는 팬으로서의 마음만큼은 변함이 없다.
나는 두 권의 책을 쓰며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기 위해 많은 음악을 들었다. 1998년의 음악이 필요했던 어느 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1998년 음반을 틀었다. <김동률 1집> CD를 밀어넣고, 첫 곡이 나온 순간 그만 웃음이 나와버렸다.
'풋, 이렇게 못 불렀었나?'
내가 이렇게 생각했던 이유는 따로 있다. 2014년 11월. 나는 김동률의 전국 투어 콘서트 <동행>의 부산 티켓을 겨우 손에 넣고 두 명의 친구에게 부산행을 제안했다. 우리 셋은 한걸음에 여행을 겸하여 부산으로 달려갔다.
떨리는 목소리로 첫 곡 '고백'을 부른 후 가수는 그 해가 자신의 데뷔 20주년이라고 밝혔다. 내 친구들은 음악 하나만으로 꽉 채운 공연이 감동 그 자체일 수 있음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나는 당연하다는 듯 '진짜 아티스트니까' 라며 씩 웃었다. 그날 본 40대의 김동률은 20년 전 '오빠' 김동률보다 멋있었다.
집에서 콘서트의 감동을 돌아보니, 그 감동이 컸던 이유 중 하나는 그의 목소리 때문이었다. 비록 몇 번 가사를 잊어버리기도 했지만, 심장을 울리는 그의 목소리 덕분에 가사와 멜로디, 아름다운 편곡, 그리고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빛이 났다. 누가 뭐래도 노래의 중심은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내가 1998년의 그의 목소리에 '풋!' 했던 건 무리가 아니다. 김동률은 뛰어난 보컬리스트로 꼽히는 가수가 아니다. 그에게는 가수보다는 아티스트로서의 정체성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그는 직접 곡을 쓰고, 가사를 쓰며, 편곡까지 하는 진짜 아티스트다.
그는 노래의 완성도만 생각하며 노래를 만든 나머지 자신이 만든 노래를 부르면서도 '트리플 악셀 같은 노래'라며 힘겨워한다. 그러나 평론가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그의 음악에 담긴 감성을 목소리로 표현하는 건 김동률이 아니면 김동률만큼 못할 거라고.
"(김동률은) 아주 꽉 막힌 사람이에요."
콘서트 중간 휴식 시간이 되자 스크린에 띄워진 스텝 인터뷰 영상에서 소속사 사장님이 남긴 명언이다. 꽉 막힌 사람. 달리 말하면 자기 주관이 뚜렷한 사람이란 뜻이다.
2부 공연에서는 그의 데뷔곡 <꿈속에서>를 들을 수 있었다. 나는 지금 그의 음악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20년 전 데뷔곡을 들으며 그가 지난 세월 동안 지독하게 자신을 지켜왔음을 느꼈다. 독창적인 멜로디, 자기 감성에 충실한 가사, 그리고 기교없는 깊은 목소리로 그는 자기 음악을 20년이나 지켜오고 있었다.
<김동률 1집> CD가 한바퀴를 다 돌아 마지막 곡 '동반자'가 나왔을 무렵. 나의 비웃음은 감동이 되어 있었다. 그가 그 음반 이후 오랜 기간 자신의 목소리를 얼마나 갈고 닦아 왔는지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가수로서의 정체성에 소홀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데뷔 20주년을 맞은 콘서트에서 그렇게 멋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는 자신이 만든 '작품'이 '부르다'의 대상임을 잊지 않았다.
절대 다작하지 않고 콘서트도 자주 하지 않지만, 세월이 선물해준 지혜를 더해 자기 음악을 발전시켜 왔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노래로 표현하기 위해 '부르다'의 역량을 갈고 닦아 왔다는 것.
그 점이 아티스트 김동률이 20대 꽃미남 아이돌보다 빛나는 비결이라 믿는다.
아름다움은 자신을 아는 것에서 출발한다. '나는 누구인가'에 답할 수 있고,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가만히 있어도 특유의 아우라를 뿜어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가 패션을 대할 때는 그렇지 못할 때가 많다. '나는 누구인가'에 답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것에서 '입다'를 시작하기보단, 어찌된 영문인지 '지금 가장 핫한 게 무엇인가?' 질문을 던지고 트렌드, 브랜드, 타인의 시선에서 '입다'를 시작해 버리고 만다.
드라마 속 주인공, 인플루언서, 쇼윈도의 마네킹이 '이게 지금 핫한 거야. 죽이지?' 묻는 말에 '아니, 별론데.' 단호히 답하지 못한다. 그래서 우린 첫 사랑 아이콘 그녀와 닮고 싶어 그녀가 입었던 블라우스를 사보기도 하고, 결혼식에 들고 갈 백 하나 없다며 신세한탄 하기도 한다.
트렌드, 브랜드, 타인의 시선. 그것으로 옷장을 채웠을 때를 돌아보면 난 별로 기쁘지 않았다. 그 때 산 옷 치고 내 옷장에 남은 옷은 없다. 10년 간 숱하게 옷을 버려왔어도 10년 동안 별로 변한 게 없었다. 나는 내게 '나는 누구인가?' 질문하지 않고 답을 몰랐다.
이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기 위해 나를 성찰하고 적지 않은 글을 썼다. 이제 난 '나는 누구인가'에 '조용한 말괄량이'라 답할 수 있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조용한 말괄량이'로부터 '입다'를 시작한다. '조용한 말괄량이'는 내게 트렌드와 브랜드,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는 자유를 선사했다.
지금의 난 '냉정한 감상자'의 시각으로 토털룩이 주는 스타일리시함에 집중하고, '명민한 컬렉터'로서 나를 표현해줄 옷을 골라 옷장을 채운다. 그렇게 옷장을 채운 지난 몇 년의 여정이 준 기쁨은 내가 샤넬 백을 마침내 가졌을 때 느꼈던 기쁨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나는 내 옷장에서 불필요한 것을 버리고, 내 옷장의 컨셉을 만들었으며, 내 옷장을 내가 아닌 것들로부터 지켜왔다. 그런데 옷은 '사다'의 대상일 뿐 아니라 '입다'의 대상이기도 하다.
'진정한 나'가 되려면 내 옷장 컬렉션에서 작품을 만들어 그것을 소화해 내야 한다. 옷은 '입다'의 대상이기에 우리는 나만의 룩을 만들어 내는 '창의적 작가'가 될 수밖에 없다. 나는 나 자신을 위한 스타일리스트이기도 한 것이다.
우리는 무의식 중에 어떤 역할에 충실해지려 한다. 학생 혹은 직업인으로, 누군가의 이성 친구 혹은 배우자로, 그리고 자녀 혹은 부모로. 그러나 정작 '나'라는 역할에는 무관심하다.
'나'라는 역할에 무관심하니 내게 옷을 입히는 스타일리스트라는 역할에는 당연히 무관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나의 정체성, 나의 외양, 나의 라이프스타일, 그리고 그날 내가 경험할 소통의 맥락을 고려하여 나를 아름답게 표현해줄 나만의 룩을 내게 입히는 것. 그건 나라는 스타일리스트 외에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만약 지금까지 자기 자신을 스타일리스트로 고용하지 않았다면, 지금부터 시작이다. 어려운 선택의 순간, "1, 2, 3 중 어떤 룩으로 입어야 할까요?'라는 글로 일면식 없는 타인에게 내 옷의 결정권을 넘기지 말자. 나라는 스타일리스트를 믿고 나를 가장 잘 표현하는 옷을 골라 나 자신에게 입힐 때 '진정한 나'로 살아갈 수 있으니 말이다.
물론 첨엔 쉽지 않다. 아무리 자신의 작품이라도 그것을 능숙하게 소화하는 건 연습과 훈련이 필요한 법. 김동률은 가수 5년차 음반에서는 다소 부족한 가창력으로 골수 팬인 내게 조차 비웃음을 샀지만, '부르다'를 갈고 닦은 결과 자신의 '트리플 악셀' 같은 노래들을 이젠 라이브로 훌륭히 부른다.
'입다'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지금은 미숙하고 어색하지만, 스타일링 실력을 매일 갈고 닦는다면 10년 후엔 지금보다 나은 스타일리스트가 되어있을지도 모른다.
절대 많이 사지 않고, 때로는 '패션 테러리스트'라는 말도 듣지만, 세월이 선물해준 지혜를 더하여 나만의 컬렉션을 조금씩 만들어 간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나만의 룩으로 표현하기 위해 '입다'의 역량을 끊임없이 갈고 닦아 간다는 것.
그것이 '조용한 말괄량이'인 나를 20대 청춘보다 더 빛내는 비결이 될 거라 믿는다. 10년 후 나는 더 멋있어 져 있을 거다. 진심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