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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리 Apr 21. 2017

“예쁜 친구를 보고나면 우울해서 옷을 사요.”

<박사 논문 엎고, 스타일링 도와드려요> 여섯 번째 컨설팅 스토리


#1 “예쁜 분을 본 날은 우울해서 옷을 사요.”


안녕하세요. 컨설팅 도움을 받고 싶어서 연락드립니다. 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1. 현재 저의 상태
저는 학교에 다니고 있다가 이번 학기 도중에 휴학한 학부생이고 나이는 스물 셋이에요. 저는 입학한 후 쭉 연극을 해왔고 그동안 그것으로 저에 대한 자신감을 채워왔던 것 같은데, 이제 마냥 연극만 할 수 없는 나이가 되고 진로나 가족과의 관계 문제에 대한 고민이 겹치면서 심한 우울감을 갖고 휴학을 하게 되었어요.
원체 좀 낯을 가리는 편이고 자존감이 낮아 다른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는데, 그런 마음을 좋은 외양으로 감추고 싶은 건지 계속해서 화장품이나 옷을 사고 싶은 욕구에 시달려왔던 것 같아요. 인터넷에서 옷을 많이 구매하고, 시간이 지나면 그중에서 대부분의 옷을 버리고, 또 옷을 많이 사고…….  이런 식의 소비 패턴을 반복해왔습니다.
2. 체형/피부톤/머리
키는 163cm에 50kg 정도에요. 마른 편이지만 몸매가 좋진 않은데. 허리가 길고 다리는 상대적으로 짧은 몸이에요. 특히 저는 상체에 약간 콤플렉스가 있는데, 중고등학교때 자세가 좋지 않았어서 약간 어깨가 굽어 있거든요. 그래서 딱 붙는 옷을 입으면 가슴은 작은데 통 허리에 배만 튀어 나와 보여 안 예뻐요. 피부는 웜톤이고, 보통입니다. 많이 희지도 많이 어둡지도 않아요. 지금 머리모양은 뱅 스타일의 짧은 숏컷이에요. 머리 때문에 전반적으로 중성적인 스타일을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3. 도움 받고 싶은 부분
음……. 무엇보다도 지금은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옷을 버릴지도 잘 판단하지 못하는 것 같고, 항상 계획 없이 막연하게 인터넷에서 옷을 사는 이런 모습들이 가장 문제인 것 같아요. 어울리는 스타일을 찾는 것, 그리고 그에 따라 합리적인 소비를 하는 방법, 이 두 가지에 대해 조언을 얻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를 통해 제 자존감을 좀 회복하고 싶어요.


이런 저런 장벽에 부딪혀 졸업을 못하고 학기 도중에 휴학을 한 학생이라고 자기를 소개한 OO양. 자존감을 회복하고 싶다는 그녀의 말이 나를 설레게 했다. 나 역시 자존감의 문제를 극심하게 겪었었고, 그것을 극복하는 꽤나 긴 과정을 겪었던 터라 동지 같았다.


약속 시간과 장소를 정하기 위해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던 중 한 가지 흥미로운 질문을 받았다. 자신보다 자신을 더 잘 아는 남자친구가 있다며, 남자친구와 함께 가도 되겠느냐는 질문.


OO양을 그토록 아껴주는 남자친구가 있음이 너무도 부럽고 그 둘의 관계가 예뻤지만 나는 그녀 스스로가 자신의 자존감을 극복하도록 도와야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혼자 나올 것을 부탁했다. 그녀에게 남자친구의 존재가 굉장히 크구나, 남자친구에게 정서적으로 너무 많이 의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저런 궁금증이 들었다.


약속 장소에 나갔다. 그녀도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인사를 나누고 그녀를 살펴보았다. 그녀의 스타일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멋져 보이기까지 했다. 그녀는 낯을 가렸다. 이렇게 낯을 가리는 사람이 어떻게 컨설팅 신청을 했을까 사뭇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그녀의 외모 역시 그녀 자신이 글에서 소개한 것과 비교했을 때 나쁘지 않았다.


그녀는 소위 아시안 뷰티라고 불릴만한 얼굴을 가졌다. 작은 얼굴에 홑꺼풀의 가로로 긴 눈. 그러나 정작 그녀는 극심한 외모 콤플렉스에 시달려 왔단다. 어쩌다 예쁜 여자를 만나고 나면 우울함이 밀려와 인터넷 쇼핑몰에서 옷이나 화장품을 잔뜩 구입했다고.


내 눈에 그녀는 참 예뻤다. 조근 조근 작은 목소리로 지금껏 살아온 여정을 내 앞에 풀어놓는 우아한 말투와 몸짓. 마치 연인마냥 바로 옆자리에서 나란히 앉아서 그녀를 근거리 관찰하던 난 절로 그녀에게 빠져들었다.


그녀를 만나기 직전까지 듣고 있던 그녀의 ‘나만의 곡’, 퓨어 킴의 “Puer Tea”라는 곡이 ‘그녀 자신이구나.’를 느꼈다. 자신의 외모 콤플렉스에 대해서 덤덤히 얘기하는 그녀의 말을 잠시 가로막고 나는 그녀를 향해 얘기했다.

 “그런데 OO양, 너무 예뻐요.”

문득 이토록 예쁜 그녀를 미소년 같아 보이게 하는 숏컷 헤어가 궁금해졌다. 혹시 “나는 ‘예쁘다’의 범주에서 아예 처음부터 벗어나 있고 싶다”는 그런 반발심에서 선택한 헤어스타일이 아닌지 물어보았다. 그녀는 동의했다.


이어서 그녀는 덧붙여 말했다. 그녀는 “넌 왜 머리를 그렇게 하고 다니니?”라는 어머니의 핀잔에 대한 반발심이 겹쳐 짧은 머리만 고집해 왔었다. 난 그런 그녀가 안쓰러웠다.

“OO양, 이런 예쁜 내면을 외모로 좀 표현해도 괜찮아요. 나는 얼굴은 인형 같은데 온갖 욕설 내뱉는  20대 친구들보다 OO양이 훨씬 예뻐.”

그녀의 남자친구 얘기가 궁금했다. 둘은 어떤 관계인 건지 많이 궁금했다고. 얼굴이 어두워지며 부모님이 남자친구와 만나는 것에 대해서 전혀 지지를 보내지 않으신다는 것이 현재의 우울함을 가중시키고 있단다.


그럼 남자 친구의 어떤 면에 좋으냐고 물어봤다. 그녀의 얼굴에 갑자기 화색이 돈다.

“남자 친구와 같이 있을 땐 제가 저 자신일 수 있어요.”

 나는 그녀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소리를 지를 뻔했다. 내가 생각하는 남녀 간의 진짜 사랑. 그게 바로 그녀가 남자친구와 나누고 있는 사랑이었으니까. 둘의 사랑 내가 지지하노라고. 둘의 사랑 끝까지 갔으면 좋겠다고. 아낌없이 응원해주었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옷을 구입하는 경향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왜 오프라인 쇼핑이 힘들었을까? 그녀의 대답은 이랬다. 막연히 옷이 없다는 생각이 들면, 매장에 들어가지만 매장에는 너무 예쁜 옷들이 많단다. 그래서 여기 저기 기웃거리기만 하다가 하루가 다 가고, 피팅룸에 가는 것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냥 집에 돌아오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녀는 거의 오프라인에서 옷을 산 적이 없었다. 점원들이 따라다니면서 ‘어떤 스타일 원하세요?’ 묻는 것도 싫고. 그래서 온라인에 올라와 있는 걸 샀단다. 온라인 옷은 저렴하니까 현실 감각 없이 구입했고, 그러다 보니 사고 버리는 일이 반복되었다.


연극을 하는 것이 왜 좋은지, 연극을 통해서 어떻게 부족한 자신감을 채울 수 있었는지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가만히 조용조용히 말하던 그녀에게 갑자기 손동작이 생겼다. 그리고 상당히 긴 흐름으로 이야기를 이어 나간다.

“사실 연극을 하는 캐릭터는 자기가 아니잖아요. 사실 아무리 연기를 잘해도 그 사람이 빙의가 되기는 어렵잖아요. 근데 저는 그 연극의 묘한 긴장, 캐릭터와 배우와 배역 사이에 긴장이 되게 좋아요. 제 삶을 살고 제 일상을 살 때의 저는 아무리 해도 잘 존재가 안 되는. 내 진심을 말하거나 내가 나이고 싶다는 욕망들이 잘 성립하지 않는. 내 뜻대로 안되고 내 삶이지만 많은 것들이 타인의 의지에 의해서 굴러가는 그런 부분이 있거든요. 근데 연극무대에서 다른 사람을 연기할 때는 내가 얼마든지 이 사람이어도 되고, 더욱 이 사람이어야 하고, 또 이 사람이고 싶은? 이 배역에 묶여 있음이 나를 자유롭게 해요. 내가 하는 말과 행동들이 내 삶에서 하는 말과 행동들보다 훨씬 진실한 느낌을 받아요. 진심을 말하고 싶은데, 이 배역으로 있을 때 아주 진심을 잘 말하는 것 같거든요. 그래서 너무 편안해요. 그런 상태 때문에 연극을 좋아하고 연극에서 배우로 연기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 인물로서 진실한 모습으로 연기하는 것이 좋다는 그녀. 시간이 지나고 그녀가 내게 진짜 마음을 열어 보일 만큼 라포(rapport)가 형성되고 나자, 그녀가 한 가지를 고백해온다.


사실 나를 만나러 오기까지의 심정이 복잡했단다. 옷에 대한 자신의 마음이 이중적이어서. 외모에 신경을 쓰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지만, 틈만 나면 스마트폰으로 예쁜 옷을 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그래서 컨설팅을 신청하면서도 뭔가 복잡한 마음이 엉켜있었단다.

“내가 자꾸 옷을 사고, 옷을 보고 꾸미고 싶어 하는 마음이 드는데, 저는 그걸 ‘나는 하는 것도 없이 겉치장만 보나?’ 이런 생각이었던 거죠. 제가 뭔가 의미 있는 다른 일을 하기 보다는 앉아서 (스마트폰으로 단골 쇼핑몰) 옷이나 보고. 그런 거나 하는 제가 한심했었어요. 근데 학교 게시판에 올라온 언니 글을 보고 덜컥 하고 싶다는 맘이 들었죠. 나는 너무 해답을 찾고 싶었으니까. 내가 그동안 사실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는데 여기에 공식적으로 ‘시간을 쓰겠다’, ‘도움을 받겠다’ 이렇게 (선언)하는 게 ‘아 내가 이렇게 해도 되나?’(라며 주저하게 했어요.) 본격적으로 나의 욕망을 인정하는 건데, ‘하면 안 될 것 같은 마음’ 때문에 불안했어요. 그런데도 신청해놓고 너무 설레었어요.”

그러면 왜 옷에 대한 관심이 ‘하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이었을까 궁금했다. 그녀는 가정환경을 예로 들었다. 부모님 두 분이 모두 고등학교 선생님이라 외모를 가꾸는 것에 대해 보수적인 편이다.


그녀의 얘기를 듣다 보니 나는 그녀가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예술가형 인간(에니어그램 4번)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나도 그랬지만 예술가형 인간의 정신세계는 독특한 것이기 때문에 부모의 이해를 받거나 부모로부터 정서적 지지를 받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다.


그것은 자기 속의 아름다움을 창출하고 표현하고자 하는 예술가형 인간을 움츠려들게 한다. 당연히 자존감도 낮을 수밖에. 그러나 그런다고 표현하고자 하는 본질적 욕망은 사라질 수 없다.  


아마도 연극은 그녀에게 대리만족을 느끼게 해주는 통로가 되어 주었을 테지. 그녀가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그녀 자신이었다. 남자친구와 연극에 대한 그녀의 생각으로부터 그녀에게 가장 큰 욕망은 그녀 자신이고 싶은 욕망임을 읽을 수 있었다. 그녀에게 옷은 그녀 자신을 표현하고 싶은 욕망의 대상이지 않았을까?


무엇이 그녀를 그녀 자신으로 표현하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이 되었느냐고 물어봤다.

“저 자신의 자의식이 가장 큰 것 같아요. 그런데 그 자의식을 만들어온 것은 ‘지금까지 그렇게 살지 않았다’는 모범생으로만 살아왔던 관성적인 시간, 경직되어 있는 우리 집 분위기, 나에게 너무 부담으로 다가왔던 부모님의 기대였죠. 입으로 강요하진 않았지만 나를 우리 학교까지 얌전히 오게 만들었던 저희 집 분위기 같은 게 있거든요.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던 그런 것들? 그리고 내가 S대에 왔기 때문에 내가 어느 정도 충족을 시켜드려야 할 것 같은 것도 있었고. 우리 학교 출신자로서의 나의 미래와 관련해서.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것과 결부지어서 앞으로도 뭔가 성과를 내야 할 것 같은 약간의 강박. 이런 게 크지 않나 생각해요.”


나도 그랬다. 난 늘 '곧 박사'라는 내 몸에 안 맞는 옷이 그렇게 거추장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 눈치만 보며 너무 오랫동안 맘 놓고 벗지를 못했었다. 난 그녀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2 “저를 인정하고 사랑해요.”


일주일이 지나고 둘째 날 약속 장소에 나타난 그녀. 나의 응원과 지지를 받아서였을까? 그녀는 표정이 밝아져서 나타났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자, 생활에 약간의 변화가 생겼단다. 아침마다 수영하고, 지인들 중 연락이 소원해졌던 사람들을 일대일로 만나고 있다고.


그리고 시간나면 독립영화 상영관에서 하는 영화들, 학회에서 하는 영화들, 홍상수 영화들을 본단다. 인상 깊은 영화가 뭐냐고 물어봤더니 홍상수 감독 영화 중 <옥희의 영화>를 든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최근작으로 올수록 재밌는, 묘한 유머 코드가 좋단다. 나는 씩 웃으며 “역시 삐딱해, 내 꽈야.” 라고 맞장구를 쳐줬다.


둘째 날 숙제 중 하나는 별칭을 정해오는 것. 그녀의 별칭은 이것이었다.


시크한 빙구

그녀보다 구세대인 내게 ‘빙구’라는 단어가 낯설었다. ‘빙구’란 흔히들 말하는 푼수이다.


그러나 그녀에게 ‘빙구’란 타인의 모남을 공감해줄 수 있는 따뜻함을 가진 사람이지만, 푼수인 자신을 향한 타인의 무시를 좌시하지는 않는, 자신을 보호할 줄도 아는 건강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녀는 자신을 “스스로 좀 서툴고 느리다”고 표현하지만 그런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한다고 말했다.


사실 그 별칭을 정하는 것이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3개월 안에 죽는다면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 지금 하고 있는 일 중에 그만 둬야 할 일도 함께 적어보라고 했다. ‘빙구’양의 버킷 리스트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남자 친구와의 누드촬영이었다.


나는 첫날 그녀로부터 남자 친구가 좋은 이유를 들었을 때처럼 로맨스 드라마를 보는 십대 소녀마냥 두 손 모아 얼굴을 붉히며 즐거워했다. 마치 에덴동산의 아담과 이브 같이 누구의 속박도 받지 않는 아름다운 곳에서 둘이서 예쁜 사랑을 하고 싶다는 소망. 그런 소망이 버킷 리스트에 있는 것 같았다.


버킷리스트에서 또 인상 깊었던 건 연극. 역시 표현하고자 하는 본능이 있는 그녀에게 연극은 살아있음을 확인케 해주는 통로이구나 싶었다.


그러고 보니 내겐 그녀의 ‘빙구’임을 확인케 해주는 재미난 그 무엇이 있었다. 나는 그녀가 쓰는 SNS의 이모티콘이 늘 재미있었다. 대부분이 20대인 신청자들이 SNS에서 사용하는 이모티콘이 나는 아직도 낯설고 불편하다. 언어는 언어로 표현하고 싶다는 약간의 고지식함이라고나 할까.


대부분의 신청자들은 자주 쓰는 이모티콘이 정해져 있다. 강아지가 나오는 이모티콘인데, 강아지가 우는 이모티콘과 강아지가 땀 흘리는 이모티콘이 주로 등장해서 내가 늘 재밌어하곤 했다. 그런데 ‘빙구’양은 매우 개성 있는 이모티콘을 쓴다. 손과 발이 달린 동그란 공과 땅콩 같은 애들이 썸즈업(Thumbs up)을 하기도 하고, 만세만세를 부르기도 한다.


그게 궁금해서 이모티콘에 담긴 사연을 들어봤다. 뜻밖의 이야기를 한다. ‘대생원(대학생활문화원 - 교내 학생들의 적응, 학업, 대인관계, 진로, 정서적 문제 등을 돕고자 운영되고 있는 기관)’에서 자살 충동을 느끼는 친구들의 자살 방지를 위한 문구를 공모한 적이 있었단다. 그녀가 쓰고 있는 SNS 이모티콘이 그 때의 상품이었다.


나는 그녀가 어떤 문구로 응모했었는지가 궁금해졌다.

“제가 힘들어보니까 “힘내 잘 될 거야.” 이런 말은 하나도 소용이 없더라구요. 제가 쓴 건 “옆에 있을게” 이거였어요. 저는 저한테 필요했던 말을 썼던 것 같아요.”

‘빙구’라는 그녀의 별칭. 그건 아마도 그녀에게 진심으로 그렇게 대해주는 사람이 적었기 때문에 오히려 그녀가 받지 못했던 그 부분을 채워주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소망을 표현한 별칭이 아닐까.


두 번째 숙제는 Farfetch, Net-a-porter, shopbop과 같은 패션 앱에서 한 번도 입어보진 않았지만 ‘왠지 끌리는 룩’을 골라오는 것이었다. 무채색의 깔끔한 룩들도 많았고, 코트를 입은 룩이 많았다. 바둑판 코트도 몇 개나 골라왔고, 따뜻한 색감의 알록달록한 체크 무늬 코트도 있었다. 왜 이렇게 코트를 많이 골라왔냐고 했더니, 곧 겨울이고 외투가 필요한데, 본인은 패딩보다는 조용한 느낌의 코트가 좋단다.


그녀의 ‘왠지 끌리는 룩’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미디엄 길이의 꽃무늬 개더스커트에 화이트 셔츠를 매치한 룩이었다. 에덴동산의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시크한 빙구”의 정체성이 그 룩에 있는 것 같았다.



#3 미소년 대신 ‘시크한 빙구’ 입기


세 번째로 그녀를 만난 날. 이제 어느 정도는 그녀가 누구인지 파악이 되었다. 이제는 냉정한 ‘감상자’로서 트레이닝을 거칠 차례. 나는 그녀와 함께 패션앱 속 토털룩을 보며 ‘반대의 법칙’, ‘빼기의 법칙과 더하기의 법칙’, ‘색상 조화의 법칙’이 적용된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비교하고, 분석했다. 그래서 우선 그녀가 스타일리쉬함을 시각적으로 익힐 수 있도록 도왔다.


어느 정도 트레이닝을 거친 후 나는 그녀의 얼굴과 몸을 찬찬히 훑어보며 이제 외모를 어떻게 가꾸어 나갈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먼저 모델 장윤주의 사진과 한국 최고 미녀의 대명사 정도 되는 여배우의 사진을 비교해 줬다. 여성스러운 원피스를 입어도 얼굴이 풍기는 분위기에 따라 어떻게 달라 보이는지, 여성스럽고 화려한 얼굴의 여배우보다는 모델 장윤주의 얼굴이 러블리한 옷에서부터 매니쉬룩까지 더 다양한 분위기를 소화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빙구’양의 내면은 아름다운 감성으로 가득한 반면, 그녀의 얼굴은 가로로 긴 눈 때문에 다소 날카로워 보일 수 있었다. 내가 ‘빙구’양에게 했던 말,

“‘빙구’양, ‘빙구’양 얼굴은 장윤주 같은 얼굴이에요. 내가 입으면 얼굴이 너무 여성스러워서 꽃 있는 옷 입으면 엄청 촌스러워지는데 ‘빙구’양은 그냥 예뻐 보일 것 같아요.”


그녀의 ‘왠지 끌리는 룩’ 속의 꽃 스커트가 머릿속을 스쳤다. 그런 옷은 ‘빙구’양 성격상 안 입어봤을 텐데 고정관념을 깨고 나올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그리고 ‘빙구’양에게 일단 머리를 길러보잔 얘길 했다. 쑥스러운 듯 웃으며 그러겠단다.


무엇보다도 얼굴에 뭔가 여성스러운 느낌을 가미할 수 있는 것을 더하면 얼굴 분위기도 중화하고 내면도 표현할 수 있겠다는 의견을 냈다. 작은 꽃이나 나비 같은 귀걸이를 착용하자는  말을 하자 그녀의 얼굴이 밝아지는가 싶더니 이내 살짝 어두워진다. 켈로이드 증후군이란다.


그렇다고 포기할 내가 아니다. 그녀에게 디테일이 전혀 없는 화이트 셔츠를 입고 칼라에 꽃이나 진주 목걸이를 착용해보는 것도 얼굴의 분위기를 중화시켜줄 거라고 얘기해주었다. 그러자 그녀는 곧바로 미소 지었다.


그녀가 애용하는 버건디색 부츠가 나쁘진 않았지만, 질이 좋은 것으로 업그레이드하자는 얘기도 하고, 너무 가지런하여 정돈된 헤어스타일보단 가르마를 반대로 타서 약간 흐트러진 느낌을 주면 상대방에게 소통 욕구를 유발시켜 좀 더 멋져 보인다는 얘기도 해주었다.


그리고 약간 작은 가슴 때문에 콤플렉스가 있다는 그녀에게 내가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시쓰루(see through) 룩에 도전해 보자고. 그녀는 두 눈 동그랗게 뜨고 손사래를 쳤지만 내가 제안하는 시쓰루는 그리 과한 건 아니다.


검정 브라를 입고 살짝 비치는 화이트 셔츠를 헐렁하게 입는 것에 도전해 보는 정도. 가슴이 큰 사람의 시쓰루룩은 절대 시크하지 않다. ‘반대의 법칙’ 때문에 글래머러스한 사람이 자신의 몸을 옷으로까지 표현해버리면 과하게만 보일 뿐이다.  


그녀의 쇼핑 리스트는 겨울용 코트, 화이트 셔츠, 아이보리 스웨터, 여성스러운 액세서리, 기본 앵클부츠, 검정 코팅진, 겨울용 검정 슬랙스, 플라워 프린트의 스커트 정도이다.



#4 오프라인 쇼핑에 도전하기


2주 후 ‘빙구’양과 잠실 롯데월드몰에서 만나기로 했다. 학부생인 ‘빙구’양의 경제 사정을 고려해서 쇼핑리스트의 모든 것을 구입하는 것을 목표로 정하지는 않았다.


한 번도 시도하지 않은 옷이나 아이템을 걸쳐 보는 시도를 하고, 오프라인 쇼핑을 어떻게 하는 건지 실제로 경험하는 것, 쇼핑리스트를 작성하고 옷을 구입하는 방식을 실습해보는 것. 그것이 쇼핑 장소에 가게 된 ‘빙구’양과 내가 수행해야 할 과제였다.


나는 그날 ‘빙구’양을 위한 선물을 가져갔다. 내 옷장에 걸려있기만 했던 황토색 플레어스커트. 내 피부톤을 이해하지 못한 채 구입했다가 어울리지 않아서 걸어놓기만 했던 옷이다. ‘빙구’양에게 여성스러운 스커트를 입혀보는 것이 내 나름대로 주어진 과제였기 때문에 ‘빙구’양의 피부톤이 웜톤인 것을 반기며 선물을 챙겼다.


쇼핑장소에 미리 와있던 ‘빙구’양은 다소 긴장한 모습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오프라인 매장에서 옷을 구입한 적이 거의 없었으니.


‘빙구’양은 자라에 방문하여 꽃이 수놓아진 검정 원피스 드레스와 내가 선물로 가져간 황토색 플레어 스커트를 입어봤다. 나는 긴장한 ‘빙구’양에게 말했다.

“빙구양, 피팅룸에 들어가면 반드시 사진으로 남겨 와야 해요. 알았죠?”

피팅룸에 들어간 빙구양은 한참 후에 나왔다. 그녀가 피팅룸에서 찍고 나온 사진을 봤다. 내 눈에 꽃이 수놓아진 원피스 드레스는 그녀에게 정말 잘 어울렸다.


그러나 그녀는 매우 불편했나보다. 내가 선물한 황토색 스커트를 입고 찍은 사진도 봤다. 사진 속 그녀는 플레어스커트의 잘록한 허리와 플레어에 다소 압도된 모습이다.


그렇게 사진을 확인하며 자라에서 나와 유니끌로로 향했다. 먼저 남성용 화이트 셔츠를 구입했다. 촉감이 부드럽고 좋아서 거의 모든 여성 신청자들에게 구입을 권유했던 셔츠이다. 그녀는 셔츠의 촉감이 좋다며 입어 보자마자 구입을 결정했고, 헐렁한 사이즈의 니트가 멋스럽다는 내 말을 믿고 XL 사이즈의 아이보리 니트도 구입했다.


오전 쇼핑을 끝내고 허기진 배를 채우러 갔다. 컨설팅을 받기 시작하고 4주 정도 되었는데 그 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물어봤다. 그녀는 일주일 전에는 옷장 정리를 했다.

“제가 옷장을 다 엎었거든요. 제 옷 중에 7할은 버린 것 같아요. 전에는 몰랐는데 상담 받으면서 배운 기준을 적용해서 보면, 너무 옷들이 질도 좋지 않고, 이 옷만 보면 괜찮은데 다른 옷과 매치하기가 쉽지 않은 그런 옷들이 너무너무너무너무 많더라구요. 아깝긴 한데 앞으로도 안 입을 거라서 그냥 놔두는 것보다는 비우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떤 옷들을 버렸느냐고 물었더니 디테일이 많은 옷이란다. 옷을 버리면서 앞으로는 어떤 옷을 사야겠다는 생각을 했냐고 물었다.

“배운 대로? 디테일보다는 색상매치에 더 신경을 써야 될 것 같고 ‘이런 느낌을 산다’는 착용 가능한 것들을 정해놓는 기준이 생길 것 같아요. 상의는 하의보다 베이직하게? 디테일은 얼굴에서 멀리?”


내가 선물한 허리 잘록한 황토색 플레어스커트에 압도당한 것 같은 그녀에게 한 가지 팁을 알려줬다.

“사실 내가 그 플레어스커트는 다른 색상도 가지고 있는데, 한 번도 그 스커트의 허리를 드러내놓고 입은 적이 없어요. 상의는 오늘 유니끌로에서 구입한 아이보리 스웨터처럼 헐렁하고 약간 긴 니트를 매치하면 끝의 플레어만 살짝 드러나죠. 상의를 그렇게 중성적으로 입으면 부담스럽지 않게 입을 수 있을 거예요.”

그녀는 내 말에 알았다며 한 번 그렇게 입어보겠단다.


식사를 마친 우리는 다시 자라에 들러서 장난스럽게 온갖 신발과 액세서리를 걸쳐봤다. ‘어울리지 않을 거야.’라고 지레 겁먹기 보다는 일단 걸쳐 보고 사진 찍어 보기로 했다.


검정 바지와 네이비 스웻셔츠, 갈색의 박시한 코트를 입고 온 그녀의 심심한 룩에 과한 징이 박힌 부츠를 보태자, 그리 과하지도 않고 뭔가 살짝 에지만 더해진 느낌. ‘빙구’양은 신기해했다.


그리고 공주풍의 꽃 디테일이 아낌없이 들어간 금색 머리띠를 발견하고, 내가 먼저 착용해봤다. 이제 그녀의 차례다. 그녀도 나의 장난스런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고, 수줍게 웃었지만 싫어하지 않는 눈치다. 그녀의 숏컷 헤어와 머리띠는 묘하게 어울렸다.


망고에 방문해서는 검은 색 코팅진을 건네주며 도전해보라고 했다. 입어보는 거야 아무런 제약이 없는 SPA 브랜드라, 역시 입고 사진을 찍고 나왔다.


그녀와 많은 옷을 입어본 후 헤어지며, 오늘 찍은 사진들을 집에 가서 잘 살펴보고, 느낌이 어떤지 생각해보라고 했다.


그녀와 헤어진 후 늦은 밤, 그녀가 사진을 보내왔다. 그날 구입한 아이보리 스웨터와 황토색 플레어스커트를 함께 매치한 사진이다. 집에 가서 같이 입어보고 너무 예뻐 깜짝 놀랐다며. 그녀에게 너무 무리한 하루였을까 마음이 불편했던 나도 그제야 안심이 되었다.



#5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졌어요.”


2주가 흐르고, 다시 그녀와 만났다. 화이트 셔츠와 아이보리 스웨터, 그리고 황토색 스커트를 입은 ‘빙구’양. 참 예뻤다.


스커트 입은 소감이 어떠냐고 물었다. 그 동안 다리를 드러내는 것이 부끄러워 치마를 거의 안 입었단다. 머리를 짧게 하고 부터는 특히나 더. 그런데 자신의 숏컷 헤어에 스커트가 묘하게 잘 어울렸다며 기분이 좋은 눈치다. 그날 걸쳐봤던 꽃 머리띠나 꽃 원피스 드레스 사진도 나중에 보니 다 자신에게 의외로 잘 어울렸다고 얘기한다.


컨설팅 이후 남자친구가 어떤 이야기를 해주는지가 궁금해졌다. ‘빙구’양이 옷장을 비우고 적은 옷을 돌려 입고 있지만, 이전보다는 더 심적으로 정도 안정된 상태로 변해서 보기 좋다고 얘기한단다. ‘빙구’양의 심적으로 안정된 상태가 어떤 상태인지 궁금했다.

“밖에 나갈 때 사람들이 내가 옷 입은 거 다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거든요. 그런데 사실 사람들이 그렇게 쳐다보지도 않거니와 남이 옷 입는 것을 그렇게 신경 쓰지도 않아요. 제가 옷 입는 것이나 나가는 것에 자신감이 생겨서 불안하지 않아요.”


컨설팅을 신청했던 당시 마음이 이중적이고 복합적이었던 점에 대해서 다시 물어봤다. 지금은 정말 잘했다고 생각한단다. ‘나는 외모만 신경 쓰는 애’라고 책망하며 자신의 욕망을 외면하기보다는 욕망을 솔직하게 바라보고, 그러한 욕망을 가진 스스로의 삶을 어떻게 건강하게 꾸려나갈 것인지를 생각할 수 있게 되어 오히려 좋았다고.

“저희가 여기에서 ‘나는 어떤 옷이 필요하니까 어떤 옷을 사자’이런 얘기만 한 게 아니잖아요. 내가 왜 옷을 사고 싶고, 내가 왜 꾸미고 싶고, 나는 어떤 사람이고, 이런 것들은 사실 나에게 안 어울렸고, 이런 것들은 나에게 어울릴 수 있고, 옷은 어떻게 사야하고. 이런 저의 생활이나 저라는 사람에 대해서 말을 많이 했잖아요. 그런 건 필요했던 건데 처음엔 막연히 불안감이 컸던 거죠.”


그녀의 자존감이 정말로 건강해졌는지 궁금해서 옷에 집착했던 과거의 모습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질문해 보았다. 스스로가 단단해졌다면, 과거의 과오에 대해서도 여유 있게 바라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렇게 안 했으면 제가 이렇게 컨설팅을 받으려고 안 왔겠죠. 사실 외양만 집착한다고 생각해서 이걸 숨기고 싶고 억압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외양으로부터 인상이라는 건 받잖아요. 그래서 결국 그게 나라는 사람과 뗄 수 없는 부분인 거잖아요. 그래서 제가 외양에 집착하고 매몰돼 있기도 했지만 그런 경험이 없었더라면 외면과 내면을 잘 조화시켜서 나를 드러낼 줄 아는 방법을 고민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여전히 예쁜 분을 만난 날 우울한지 궁금했다.

“아니요. 이제 그렇지 않아요. 그런 생각은 이제 안하게 됐어요. 다른 사람 눈을 의식하는 것도 줄어들고 다른 사람 쳐다보는 것도 줄어들었어요. 제가 원래 다른 사람을 많이 관찰했었어요. ‘저 사람 예쁘다’는 것도 있지만, (외향적이고 성격 좋은) ‘저 사람은 어떻게 말하나?’, ‘저 사람이 다른 사람들 속에 어떻게 있나?’, ‘저런 매력은 어디서 나올까?’ 이런 것을 저는 되게 열심히 봤었거든요. 내가 그렇게 못한다는 생각에 쳐다봤던 것 같아요. 지금은 그런 것이 줄어들었어요.”


그녀의 열등감의 기저에는 자신의 내향적 성격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자기 부인이 존재했던 것 같다. 그래서 이전의 그녀에게는 타인과 의사소통에서 막힘이 없는 사람이 곧 예쁘고 매력적인 사람이었던 것이다. 늘 어떤 모임에 나가서 자신의 내향적인 성격 탓에 한 마디도 못하고 돌아왔는데 그녀는 그럴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고 오면서 ‘나는 뭐가 문제지?’라는 스스로의 성격에 대한 책망을 했었다.


결국 스스로의 ‘내향성=매력 없음’이라는 자책이 외모에 대한 자신감 상실로 드러났었던 것이다. 자신이 매력적인 외양이라도 갖춘다면 타인과의 소통에 능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바람에서 외양에 집착하게 되고, 옷을 많이 사고, 사더라도 디테일이 과한 옷을 사는 모습으로 드러났었단다. ‘내가 이 정도는 돼.’를 말로 표현할 줄 모르니까 옷으로라도 표현했어야 했다고.


지금은 어떠냐고 하자, 그것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났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제 어느 정도는 그걸 놓게 됐단다. 그녀가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다. 나 역시도 내향적 인간인지라 그녀에게  내향적 인간임을 자랑스러워하라고 다독여줬다. 외향적 인간이 갖지 못하는 통찰력을 우린 가지고 있다고.


한편, 그녀에게 쇼핑과 스타일링에 대한 생각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물어봤다. 그러자 우선 ‘빙구’양은 오프라인에서 옷을 살 용기가 이제는 생겼단다.

“전에는 ‘내가 이걸 사야겠다.’ 생각하고 가는 게 아니라 막연히 그냥 ‘어 옷이 없다. 어떻게 하지?’ 라고 생각하고 갔죠. 지금 생각해보면, 일단 무슨 옷을 골라야할지, 그 생각이 없이 가니까 당연히 옷을 못 고르는 거죠. 그런데 지금은 일단 내가 가지고 있는 옷들을 고려하고, 지금 예를 들면 추워지고 있으면 어떤 것, 더워지고 있으니까 어떤 것, 여기에 이런 색상이 없는 것 같네 하고 아이템을 몇 가지 정해서 가거나 인터넷에서 미리 보고 갈 수 있겠죠. ‘심플한 쇼핑 원칙’에서도 말씀하셨던 것처럼 옷장에 뭐가 있고, 내가 어떤 룩을 입길 원하고, 뭘 사야겠다는 거. 그걸 이제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그에 덧붙여 SPA 브랜드의 피팅룸 활용법과 사진 활용법을 익히게 되어서 좋았단다.

“SPA 피팅룸은 나와서 지인들한테 보여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피팅룸을 이용하는 거지? 라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사진을 이용하니까 너무 좋은 거예요. 나중에 생각해서 살 수도 있고, 당장 사지 않아도 되고. ‘이렇게 하면 되는 거구나!’라는 요령이 생겼어요. 그런 게 좋았어요.”


쇼핑하던 날 입어본 옷 중에서 구입하진 않았지만, 꼭 구입해 보고 싶었던 옷에는 어떤 옷이 있었냐고 물어봤다.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검정색 코팅진이요!”

상의가 아닌 하의인데다가 검정색의 심플함과 광택의 화려함이 더해져 자신의 내향적이지만 예쁜 걸 좋아하는 성격을 드러낼 수 있는 최적의 아이템이었단다.


그 얘길 하며 ‘여백미의 법칙’이 자신에게 매우 유용한 팁이었다고 밝혔다.

“화이트나 아이보리 같은 백지 같은 깔아줄 만 한 것을 배치하면, 다른 걸 좀 포인트를 주듯이 색상배치도 좀 유연하게 할 수 있고. 그것도 저한테는 정말 유용한 것 같아요. 요즘 이 아이보리 스웨터 정말 많이 입고 한 두 번 빨았어요. 아이보리 스웨터도 하나 더 사야겠다는 생각하고 있어요.”


한 번은 얼굴이 여성스러운 ‘우아한 4차원’님이 아이보리 스웻셔츠를 입은 사진을 보고 ‘빙구’양도 스웻셔츠를 구입하고 싶다고 한 적이 있었다. 나는 스웻셔츠가 남성적인 아이템이기 때문에 ‘빙구’양에게 스웻셔츠는 구입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것에 대해서 기분 나쁘지 않았는지 물었더니, 그렇진 않고 자신의 얼굴과 옷의 성격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되었다고. 그리고 내 말에 수긍을 곧바로 하게 되었었단다.


그녀의 말을 듣고 보니 들었던 생각. 그 동안 그녀는 자존감만 낮았지, 나이에 비해 정말 똑똑한 친구구나. 어쩜 20대 초반의 나이가 믿기지 않게 이렇게 똑똑한지. 그녀는 정말 내면도 아름답고, 외면도 아름답고, 이제 자신을 사랑할 줄도 알게 된 사랑스런 여성이 되었다.


그날 나는 그녀를 위해 두 가지 선물을 챙겨 나갔다.


첫 번째. 쇼핑하던 날 그녀에게 잘 어울렸던 자라의 꽃 드레스가 떠올라 나의 옷장을 뒤져 꽃 프린트의 셔츠 드레스를 챙겨 나갔다. 꽃 드레스를 입는 데는 아무런 자격요건이 필요하지 않다고, 충분히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본인이 받아들이는 마음으로 바뀌는 게 우리 코스의 핵심이라고. 나는 그녀의 버킷리스트로부터 에덴동산이 연상되었다고 밝히며 그녀에게 그 옷을 꼭 입혀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녀도 나와 함께 모델 장윤주의 룩을 보며 여성스러운 옷이 얼굴이 사랑스러운 사람보다는 자신이 입었을 때 더 예뻐 보일 수 있는 옷이라는 생각은 했었단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한번 입어보죠.”

나는 꽃무늬 셔츠 드레스 위에 아이보리 니트를 덧입어보자고 제안했다. 잠시 후 내 예상은 적중했다. 숏컷을 한 긴 눈의 그녀가 입으니 정말 잘 어울렸다.



두 번째 선물은 꽃목걸이였다. 은으로 꽃잎을 만들고, 진주로 술 부분을 장식한 꽃목걸이는 12년 전에는 아꼈던 것이고, 내게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젠 그것이 내 것이 아님을 안다. 켈로이드로 귀걸이를 착용하지 못하는 그녀를 위해 선물해줬다. 화이트 셔츠 버튼을 다 잠근 상태에서 버튼 다운 셔츠의 단추 구멍에 걸이를 매치하니 자라에서 착용해봤던 꽃 머리띠보다 더 고급스러운 느낌이다.


마지막으로 ‘시크한 빙구’라는 이름에 맞게 컨설팅이 잘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그녀의 총평이 궁금했다.

“저는 그 ‘시크한 빙구’라는 이름을 생각을 할 때, ‘빙구’는 좀 더 제 내면에 초점을 맞추는 것 같아요. 옷에 둘러싸인 저라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옷과) 합쳐져서 저라는 사람의 외면으로 드러날 거 아니에요? 룩은 좀 시크하고 세련되면 좋을 것 같은데, 옷에 싸여진 나라는 사람이 좀 더 부드럽고 마음 따뜻한 사람으로 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지은 이름 같아요. 그래서 저는 한두 포인트 말고는 중성적인 룩을 입지만 플레어 치마라든가 이런 거를 매치하는 룩으로 갈 것 같고. ‘시크한’이 이름에서 떨어져 나갈 거라는 생각은 잘 안 들더라구요. 맘에 들어요. 오히려 제가 전처럼 머리도 짧게 하고 옷도 남자같이 입으면, 그건 전혀 안 시크해 보이고 그냥 남자애처럼 보이고 더 별로였다고 생각해요. 시크하고 싶어서 그렇게 했었던 건데 저한테 별로 많이 어울리거나 저의 매력을 더 보여줄 수 있게 해주지는 못했을 것 같아요. 저는 지금 상담을 받고 추천받은 룩들이 맘에 들거든요. 부족할 순 있겠지만, 앞으로도 내가 이런 방향을 갖고 옷을 사거나 매치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좋아요.”


그녀의 버킷리스트에는 ‘학교 타이틀을 버리고 싶다’도 포함되어 있었다. 학교 이름이라는 거추장스러운 옷이 아니라 진짜 자기, ‘시크한 빙구’를 앞으로도 입고 살아갈 그녀. 졸업도 취업도 미해결이고 미정인 그녀에게 이제 스펙, 졸업, 취업 보다 더 고차원적인 과제가 남았다.


‘시크한 빙구’에 딱 맞는 미래를 스스로 찾아가는 것. 그리고 남자친구와의 에덴동산을 지키기 위해 용기 있는 한 걸음 한 걸음을 디디는 것.


잘 할 것이다. 내 미련했던 20대 시절보다 10배는 똑똑한 그녀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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