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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리 Apr 25. 2017

"난 이번에 무슨 색 가방을 사야 할까?"

잇 아이템이 아니라 토털룩을 입는 법

나는 자넬라토 포스티나 백을 사랑한다. 스몰 사이즈의 자넬라토 포스티나 백은 바네사 브루노의 스팽글 백 다음으로 내가 사랑하는 가방이다. 


나는 1년간 블랙의 자넬라토 포스티나 백을 정말 열심히 들었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벌써부터 모서리 부분에 구멍이 날 기미가 보이는 것이었다. 


이럴 경우 나는 블랙백에 구멍이 더 날 때까지 들기보다는 다른 색상 백을 구입해서 블랙과 번갈아듦으로써 블랙백을 더 오래 아껴 드는 편을 선택한다. 그런데 나는 새로 구입할 백의 색상을 결정하기까지 매우 고심했었다. 


가방의 브랜드나 디자인은 고민할 것이 없었다. 이미 포스티나 백은 나의 정체성과 라이프스타일에 딱 맞는 백이었으니까. 나는 맘에 드는 아이템 하나 있으면 소위 ‘깔별 구매’를 사랑한다. 그래서 난 오로지 자넬라토 포스티나 백 안에서 무슨 색을 택해야 할지만 고민했다. 


‘웬만한 색상의 백은 이제 다 갖게 된 것 같은데 화사한 핑크를 사볼까?’ 그런 생각을 하던 나는 이내 정신을 차렸다. ‘핑크 같은 컬러를 5만 원짜리 가방도 아니고 이 비싼 가방으로 사려고 하다니!’라며 스스로 버럭. 


화사한 핑크나 스카이 블루는 팬톤(pantone) 사의 영향으로 2016년 S/S의 가장 핫한 컬러였다. 그러나 이런 색상 아이템을 갖는 것은 가방보다 훨씬 저렴한 스카프나 셔츠 같은 것으로 얼마든지 가능하다. 


게다가 색상이 주는 분위기가 어느 한쪽으로 편향될수록 그 아이템은 자주 활용할 수 없는 법. 더구나 매일 바꿔들 수 없는 비싼 가방의 색상을 화사한 분위기의 것으로 선택해봤자 자주 들 수 없어 후회만 할 뿐이다. 쉽게 떼가 타기도 하고. 


나는 온갖 예쁜 색상을 머릿속에서 지우고 초심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가방의 무게와 디자인, 재질은 차치하고 색상만 고르는 상황이니 우선 옷장 속에 있는 옷과 패션 아이템으로 내가 만들어낼 룩, 더 정확히는 옷장 속에 있는 내 물건들로 만들어낼 배색을 먼저 고려하기로 했다. 


내가 평소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배색이 있고 내 옷장 속 아이템으로 가능한 배색이 파악된다면 가방 색상 고르기는 의외로 쉽다. 내가 그런 사고 과정을 거쳐 가방이나 신발을 선택했을 때 후회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루는 A님과 상담을 하던 중 카멜 색의 버킷 백이 갖고 싶어 혼이 났었다는 얘길 들었다. 만약 A님이 카멜 색상의 버킷 백에 매료되었다면, 그 가방에 매료된 것이 맞을 수도 있지만, 그것 말고 다른 가능성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녀는 그 가방이 존재했었던 토털룩 사진 속 배색에 매료되었을 수 있다. 


만약 그 카멜 버킷 백이 카키색 보머 재킷 + 화이트 티셔츠 + 미디엄 블루 부츠컷 진 + 화이트 스니커즈를 입은 모델의 손에 들려 있었다면, 그녀는 아마도 카멜 색 버킷 백 하나에 끌린 것이 아니라 카키 + 화이트 + 블루 + 카멜의 배색에 끌렸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 조합은 매우 훌륭한 조합이고 만약 웜톤 피부라면 도전해봄직한 배색이다. 그러나 그녀가 이 룩에 매료되었다고 해서 반드시 사진 속의 그 카멜 백을 사야 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A님이 자신의 옷장을 뒤졌을 때 미디엄 블루 진과 화이트 티셔츠, 그리고 카멜색 트렌치코트, 그리고 카키색 머플러를 갖고 있다면, 검은색 가방을 들더라도 사진 속 룩과 유사한 배색을 만들어낼 수 있다.


감상자 단계에서 토털룩을 냉정히 감상할 때 하나하나의 아이템을 보기보다는 나는 배색에 눈여겨보려고 애쓰는 편이다. 어떤 색상과 어떤 색상이 만났을 때 나는 매료되는지를 보는 편이다.


그래서 나는 잡지를 넘기다가 소파 광고 컷에서도 멋있는 배색을 발견하곤 한다. 


회색 패브릭 소파에 노랑 쿠션과 은은한 스카이 블루의 쿠션이 놓인 걸 보고, 스마트폰에 저장해 둔 적이다. 그때 나는 그 소파와 쿠션에 매료된 것이 아니라 그 그레이+옐로+스카이블루의 배색에 매료되었던 것이다. 


그때 그렇게 저장해두었지만 ‘나는 다음에 소파와 쿠션을 고를 때 이것과 똑같은 소파와 쿠션을 사야겠어’라는 계획을 세우지는 않았다. 그보다 나는 내 옷의 배색을 그와 유사하게 시도해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바로 이렇게.



고백하건대, 내가 핑크 핸드백에 잠시 마음을 두었던 이유는 내가 한 번씩 들어가서 스타일링 센스에 감탄하며 구경하는 국내 인터넷 여성 의류 쇼핑몰에서 본 어떤 룩 때문이었다. 지난겨울에는 아이보리 코트에 핑크 핸드백을 매치한 룩이 너무나도 예뻤었다. 


내가 최근에 가방 색상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핑크색 가방을 마음에서 깨끗이 비웠다고는 하나, 아이보리와 핑크의 조합을 마음에서 비우진 않았다. 나는 그래서 다가올 겨울을 위해 원래 내가 가지고 있던 아이보리 코트에 매치할 계획으로 cos 미국 공식 홈페이지에서 세일 중인 핑크 울 머플러를 구입했다. 


핑크 머플러는 40달러에 구입했지만 자넬라토 핑크 핸드백은 50만 원이 넘으니, 나는 훨씬 저렴하게 동일한 배색을 입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배색의 영감은 어디서나 받을 수 있다. 과자 봉지에서도 누군가의 명함에서도, 아동용 의류의 디스플레이에서도. 우리는 왠지 끌리는 색을 제공한 어딘가로부터 똑같은 아이템을 살 것이 아니라 배색만 훔치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핑크 대신에 선택해야 했던 가방의 색상은 무엇일까? 나는 그때 초심으로 돌아가 한 가지만 생각했다. 내 가방 색상은 내가 가진 옷들로 가능한 배색에 이질감 없이 쉽게 첨가할 수 있는 색상일수록 이상적이라는 것. 


그래서 결국 내가 가장 최근에 선택한 가방은 (역시나) 애매해서 아무 데나 애매하게 잘 어울리는 애매한 색의 것이었다. 


그레이도 아닌 듯 베이지도 아닌 듯한 이 오묘하고 애매한 색은 무채색과도 잘 어울릴 뿐 아니라, 베이지, 스카이블루, 핑크처럼 원색에 밝은 회색이 섞인 정도의 차분한 색상과도 두루두루 잘 어울린다(그리고 결정적으로는 오염이 타도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다음 사진에서 보듯이 아이보리 코트와 핑크 머플러 룩에도 무리 없이 잘 어울린다. 


핑크, 옐로 그린, 스카이블루, 아이보리 색상을 이겨낸 나의 선택은 가방 색상만 본다면 조금 싱겁다. 그러나 난 내가 고심 끝에 선택한 나의 가방이 난 내 옷장 속의 다른 아이템과 얼마든지 잘 어울릴 것이라 확신하며 구입했다.


단독으로 예쁜 가방 하나를 사는 게 목적이 아니라 내 그림에 필요한 퍼즐 조각 하나를 골라 채워 넣는 것이 내 목적이기 때문이다. 


특정 아이템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배색을 입는다는 생각으로 스타일링을 하고 쇼핑 리스트를 짠다면, 비싼 핑크 코트를 하나 사는 대신 핑크 머플러를 둘러줘도 저렴하게 핑크를 즐길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난 다양한 토털룩 속 배색을 보면서도 오로지 내가 완성시킬 내 그림만 생각하며 내 패션 아이템의 색상을 한정시켰고, 옷장 속 아이템의 색상들과 무리 없이 어울릴 수 있는 가방의 색이 무엇일지 가늠했다.

 

난 이번에 무슨 색 가방을 사야 할까?

라는 내 질문에 대하여 오랜 기간 실수에 실수를 거듭하여 내가 얻어낸 결론. 가방 색상을 정해야 할 때 지금껏 내가 해온 질문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렇게. 


내가 가진 옷장 속 아이템을 활용했을 때, 평소 내가 좋아하는 배색을 완성시켜줄(혹은 무리 없이 어울릴) 가방은 어떤 색일까?

나는 잇 아이템이 아니라 조화로운 토털룩을 입었을 때 멋진 사람이 될 수 있다는 확신. 


그것이 비싼 명품 걸치지 않고도 내가 당당한 이유이다.









사야할 옷과 사지 말아야할 옷, 살 때 편한 옷보다 입을 때 편한 옷이 뭔지 콕 찝어 알려드릴게요.

옷 살 때 쇼핑몰 사장님이 안 알려주는 쇼핑 꿀팁. 모두모두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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