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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리 Aug 01. 2017

누구나 한 번은 공주가 되어야 한다

자존감과 옷 입기의 상관관계(1)


01 “그런 건 하지 마라”


내가 고3 2학기 때, 엄마는 고3인 나만큼이나 공부를 열심히 하셨다. 그리고 엄마는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일어일문과 편입에 성공하셨다.


엄마가 중학생이었을 때 외할머니께서는 어려운 집안 사정을 이유로 엄마의 꿈을 외면하셨다. 엄마는 인문계 여고 진학 후 문학을 공부하고 싶어 했다. 외할머니는 당신의 딸이 장학금을 받을 만큼 실력과 열정이 있음을 믿지 않으셨다.


내가 어릴 때 엄마는 그 시절 얘길 하시며 늘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를 원망하셨다. 엄마의 설움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오고도 엄마의 편입에 대한 내 반응은 ‘왜 이제 와서?’였다. 그러나 이후 엄마는 보란 듯이 석사까지 마치셨다.


돌아보니 엄마의 편입은 배움의 열망을 누려보지 못한 설움과 결핍을 그제야 채우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었던 것 같다. 두 딸을 모두 대학에 보내고 드디어 기회가 오자, 평생 기다려온 결정을 그제야 행동으로 옮기신 건지도 모르겠다.



몇 년 전 조원선의 노래 <도레미파솔라시도>를 듣고 경쾌한 멜로디에 함께 흥얼거리다 어딘지 익숙한 가사가 마음에 박혀버렸다. 노래를 좋아하던 소녀가 가수의 꿈을 얘기하자 벌어진 어색한 상황이 가사 속 스토리이다.


“그런 건 하지 마라.”


노래 속 어른들은 소녀의 꿈을 존중하지 않는다. 그러나 노래 속 화자는 고백한다.


‘어쩔 수 없다. 그러니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겠다’


난 어릴 때 미술학원에서 그림 그릴 때가 참 좋았다. 그림을 계속 그리고 싶다고 하자 내가 공부로 성공하길 원하셨던 엄마는 나의 꿈을 외면하셨다.  


그러나 좋아하는 것을 향한 열망은 ‘하지 마라’는 훈계에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하지 마라’라는 말에는 ‘나도 어쩔 수 없다’는 독백만 남는다.


어른들은 어린아이의 그 열망이 반복적으로 억제되면 결핍으로 남게 되고, 그게 평생 간다는 걸 까맣게 잊은 채 어른의 권위로 아이들을 훈계한다. 그렇게 시작된 그 결핍은 평생 간다는 걸 자신도 충분히 경험했으면서도.



02 나의 핑크 사랑


언젠가 대학원 후배 L이 페이스북에 핑크 마우스, 핑크 필통, 핑크 펜 등 핑크 일색의 사무용품들이 옹기종기 모인 사진을 올렸다. 그 사진 아래 달린 그녀의 멘트가 인상적이었다.


“핑크에 대한 나의 집착은 어디서부터 온 것인가?”


그녀의 사진을 보고 있자니, 핑크만 보면 본능적으로 손이 가던 20대 시절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핑크 립글로스로 입술을 반짝였었고, 핑크 카디건을 입고 다녔으며, 청바지 아래에 핑크 스타킹을 매치하였다.


그리고 30대가 되고 마름모꼴 퀼팅이 아름답게 빛나는 핑크 샤넬백을 잡지에서 발견했을 땐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이미 검정 샤넬백을 갖고 있었지만, 나의 다음 샤넬백은 핑크가 될 거라며 그 사진을 옷장 안에 붙여두고 오래도록 감상했다.


20대 시절 내가 그리도 핑크를 충분히 ‘누려봐서’ 그런지, 지금은 핑크색의 무언가를 보더라도 구매하게 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난 여전히 핑크를 버리지 못했다. 내 필통을 열어보면, 핫핑크 수성 펜이 오래된 옛 친구처럼 나를 반긴다. ‘안녕, 어서 나를 써줘’라며.


후배 L의 사진에 ‘라이 킷’은 하지 않았지만, 이후 핑크를 마주할 때마다 나의 핑크 사랑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정체가 무엇인지 혼자 묻게 되었다.


어릴 때부터 난 예쁜 게 좋았다. 특히 옷을 좋아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나는 언니로부터 옷을 물려 입어야 했다. 전혀 내 취향이 아닌 옷 혹은 이미 싫증난 옷을 입을 수밖에 없었기에 내 마음은 그 옷들을 온전히 입은 적이 없었고, 옷 입기가 행복하지 않았다.


어쩌다 엄마에게 불만을 표출할 때마다 내게 돌아온 반응은 이런 것이었다.

“벗겨 놓은 것도 아닌데 왜 맨날 옷 타령이냐?”

“엄마는 다른 엄마들처럼 옷도 안 사 입고 너희 교육비에 투자를 이만큼이나 하잖아!”


내가 고른 내 옷을 입고 싶다는 감정은 점차 수치심의 대상이 되어갔다. 유치원에서 핑크색 프릴 점퍼를 입고 해맑게 노래를 부르던 난, 사춘기가 되자 비싸고 예쁜 옷을 입은 다른 아이들을 질투했다.


어른이 되고 돈을 벌기 시작하자 난 쇼핑에 빠졌다. 특히나 그때 핑크에 집착했던 건 어린 시절 경험한 결핍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릴 때 가장 예뻐 보였던 색깔인 핑크, 가장 예뻐 보였던 레이스 잔뜩 달린 드레스를 충분히 누려보지 못한 결핍.


“아니야, 넌 꽤 예쁜 옷 많이 입고 다녔어.”


중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절친 S의 증언이 나의 잠정적 결론을 흔들었다. 생각해보니 내 옷이 모두 형편없진 않았다. 대학 시절에도 난 친구들이 부러워할 만큼 꽤 비싼 옷을 입고 다녔다.


그럼 나는 왜 늘 불만 가득한 얼굴로 엄마를 졸라댔으며 나는 왜 20대가 되자 화려한 레이스, 플라워 프린트, 벨벳, 망사 스타킹, 핫핑크의 공주풍 취향을 과하게 표현했을까. 부모님 말씀처럼 단지 내게 낭비벽이 있어서, 내 성격에 문제가 있어서였을까.   



03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것


“애들이 뭘 안다고”


어른들이 무심코 내뱉는 말이다. 그러나 내가 아이를 낳아 길러보니 아이는 그 나름의 세계가 있고, 그 나름의 이유와 감정이 있다.


언젠가 부모 교육 세미나에 참석했다가 부모로서 가장 중요한 임무가 ‘감정 공감’ 임을 배웠다. 부모가 내 편이라는 정서적 안정감이 한 아이를 건강한 자존감을 가진 성인으로 성장시킨다.


그러나 아이를 향한 부모의 임무 수행이 유지되기란 그리 쉽지 않다. 아이들은 종종 떼쓰기, 보채기, 엉엉 울어버리기, 퇴행으로 어른들을 곤란하게 한다. 많은 어른들이 이런 걸 목격할 때마다 이렇게 묻는다.


‘넌 대체 왜 그러니?’


그러나 아이들은 자기가 왜 그러는지 명확히 표현할 정도로 감정 인지능력이 탁월하지 않다. ‘넌 도대체 왜 그러니?’ 어른들의 이 질문은 질문이 아니라 어른의 권위에 함부로 저항하지 말라는 신경질 섞인 협박일 뿐이다. 알고 보면 아이들이 원하는 건 그리 큰 것이 아니다.


‘아. 엄마가 이거 안 사준다고 하니까 섭섭했구나’


아이들은 자신이 왜 그런 성가신 행동을 했던 건지 어른의 그 말 한마디를 듣고 나서야 안다. 아이들의 떼쓰기는 소통과 공감의 요구인 것이다. 그러나 어른들은 당장 편리를 위해 어른의 권위로 그 소통과 공감의 요구를 단절시킨다.


나는 아이를 키울수록 배운다. 어른들이 성가셔하는, 아이들의 떼쓰기 이면의 감정 공감이야말로 아이가 스스로를 가치 있는 사람으로 인식하게 한다는 것을. 협박과 회유의 유혹이 내 머릿속을 스칠 때마다 난 내 어린 시절의 결핍을 떠올리며 아이를 향해 웃는다.


‘그런 친구 만나면 도움이 안 된다, 같이 놀지 마라’, ‘그런 남자 만나면 고생한다, 만나지 마라.’ ‘그런 옷을 입으면 안 된다. 그 옷 입지 말고 다른 옷 입어라’, ‘그런 일 하면 가난하게 산다. 그런 일 말고 다른 일 해라’


어릴 때 내가 참 자주 듣던 ‘안 돼’의 다양한 표현이다. 이 모든 말은 딸이 상처받거나 위험에 처할 것을 걱정하여 하셨던 말씀이다. 그러나 그건 온전히 내가 판단해서 결정할 내 몫이다.


부모의 ‘안 돼’가 아니어도 우리는 스스로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 어떤 사람을 멀리해야 하는지는 성인이 되며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안 돼’는 아이를 당장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할 수는 있겠다. 그러나 이 말은 실상 아이를 보호하는 데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 말이다. ‘안 돼’는 ‘건강한 자존감’ 형성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건강한 자존감


그것은 성인이 되어 부모에게 일일이 말할 수 없는 다양한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굳건히 보호하는 방패가 되어준다. 그러나 난 내가 들었던 수많은 ‘안 돼’ 때문에 나에게 그런 방패 같은 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줄 알았다.



핑크는 사랑과 인정의 색이다. 아이가 태중에 있을 때 아이를 따뜻이 감싸던 핑크는 세상에 나온 아이들을 여전히 끌어당긴다. 핑크에 대한 알 수 없는 끌림을 경험하며 우리 각자는 이런 말을 수백 번 외쳤던 건지도 모른다.


“엄마, 나를 사랑해 줘.”

“난 엄마에게 있는 그대로 사랑받고 싶어.”


내가 어른이 되어서도 공주 패션과 핑크 샤넬백을 마음에 품었던 건 내가 어떤 모습이든 누군가로부터 있는 그대로 사랑받고 싶다는 강한 열망의 표현이었던 것 같다. ‘안 돼’라는 말에 겉으로는 어쩔 수 없이 순종하며 자라왔지만, 난 진심 어린 공감을 받아본 적이 없었고 내 존재는 존중받은 적이 없었다.


오랫동안 나에게 핑크는 내가 원하는 옷을 입고자 하는 욕망,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자 하는 욕망에 대한 ‘공감 결핍’을 의미했다. 내가 원하는 옷을 많이 사고도 난 행복하지 않았고 내 자존감은 어그러진 그대로였다. 결국 난 30대 후반 우울증을 만났다.



04 공주가 되어본다는 것



참 신기했다. 가르쳐준 적도 없는데 어느 날부터 아이는 ‘핑크’를 가장 예쁜 색상으로, ‘드레스’를 가장 예쁜 옷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아이가 네 살이던 해에 하루는 아이가 자전거를 타고 등원하겠단다. 나는 그 날 아이를 자전거에 태워 등원하는 순간을 사진에 담았다. 찍고 보니, 핑크 자전거에 핑크 헬멧, 핑크 선글라스, 핑크 후디스…… 사진을 본 순간 ‘너무 핑크인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러다 이내 따라온 생각. ‘너무 핑크이면 안 되나?’


우리 집에 사는 ‘어린 사람’에겐, 어리지만 자기가 원하는 대로 자신을 표현할 권리가 있고, 그것에 대해 엄마에게 무조건적 정서적 지지를 받을 권리가 있다.


아무리 엄마인 내 눈에 핑크 일색인 게 과해 보인들 어떠리. 핑크 이외에도 자신의 마음을 끄는 색상은 다양하며, 드레스가 아니어도 자신을 아름답게 표현해줄 옷이 다양함은 커가면서 실수를 통해 스스로 배워갈 테니까.


자신의 핑크 사랑에 엄마가 보내준 정서적 지지로 행복하면 그만인 것이다. 그것이 아이의 무의식에 남아 ‘사랑 받은 사람’이라는 자존감으로 자신을 건강하게 지켜줄 테니까.



아이는 만화영화 속 공주들을 보며 자신도 공주라고 말한다. 그리곤 내가 드레스를 입고 찍은 사진을 보며 엄마도 공주였냐고, 엄마는 공주였을 때 뭐했냐고 묻는다. 아이의 맑은 눈빛을 바라보며 말없이 웃어 줬지만, 속으로 말했다.


사실은 말이야…… 엄마는 공주가 되어 본 적이 없어


공주가 되어본다는 것. 그것은 단지 외모를 화려하게 치장해보는 것이 아니다. 그건 만화영화 속 어린 공주들이 어른들에게 ‘가치 있는 사람’으로 존중받듯, 내가 갖는 감정이 아무리 유치한 것이어도 ‘가치 있는 사람’으로 존중받는 경험이다.


여자라면 누구나 한 번은 공주가 되어야 한다며 어릴 때는 촌스러운 공주 옷을, 결혼을 하면서는 웨딩드레스를 입는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진짜 공주가 되어 보았을까?


엄마의 뒤늦은 공부와 나의 옷에 대한 집착. 대상은 달랐다. 그러나 그 안에는 상한 감정을 치유하고 싶은 열망이라는 공통분모가 존재한다. 그 집착은 어른들의 공감을 원하는 아이들의 떼쓰기, 엉엉 울기와 같은 ‘성가신’ 감정 표현과 다르지 않다.


어쩌면 엄마와 나는 그 열망을 상기시키는 각자의 대상에 집착하며, 어린 시절 자신에게 공감이 필요했었다고, 지금도 그 공감이 필요하다고 외쳐온 걸지도 모르겠다. 따뜻한 공감의 말은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될 수 없다.


엄마는 대학원을 마치신 후, 동네 노인복지관과 동사무소에서 일어와 일본 문화를 가르치신다. 엄마는 배움의 갈증을 뒤늦게나마 해소하신 기쁨을 표출하듯 즐겁게 일하신다. 그러나 엄마는 항우울제와 수면제를 복용하셔야만 잠을 이루신다.


당신께서 스스로 원하는 것은 다 이루셨지만, 그거로는 충분치 않았나 보다. 내가 그렇게 월급 대부분을 쇼핑에 쓰고 옷장이 터져나가도록 옷을 샀어도 내면의 나는 늘 울고 있었던 것처럼.


내가 우울증에 논문을 중단하고 치료를 받으며 내 삶 전체를 돌아보던 힘겨운 과정을 거치는 동안 부모님은 나의 아픔에 공감을 표현하신 적이 없다. 대신 논문을 중단한 내게 실망감만 표현하셨다.


“너의 인생은 성공하지 못했다.”


그 말에 난 일주일 간 앓아누웠다. 그러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 한마디에 앓아누울 정도로 내가 평생 붙들고 있던 것이 부모님의 인정과 지지였음을 처음으로 확실히 깨달았다.


내겐 부모님의 지지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를 스스로 인정해주는 자기애가 필요할 뿐이었다. 논문을 써서 교수가 되지 않더라도, 그리고 그로 인한 부모님의 인정이 없더라도 난 이미 소중한 사람인 것을 그전까진 몰랐다.


그리고 어린 시절 모진 말로 언니와 나를 키우셨던 부모님께 사과를 받고 싶었다. 거듭된 요구에도 엄마는 소통과 사과를 거부하셨다. 생각 끝에 난 수첩을 펼쳤다. 엄마를 향한 편지를 수첩에 쓸 자유는 내게 존재했으니까.


엄마. 엄마도 공주가 되어본 적이 없었지요?

그때 할머니가 뭐라고 하셨든, 엄마는 공주가 되어볼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어요. 이제 그걸 덮어 두려고만 하지 마시고, 내면의 자신과 화해하시는 게 어때요? 그리고 저에게 정식으로 사과해주세요. 공주가 될 자격이 있었던 엄마의 둘째 딸에게 따뜻하게 말 못 해서 미안했다고. 그때 ‘엄마가 잘해보려고 그랬다’, ‘네가 너무 예민해서일 뿐이다’, ‘너는 원래 성격에 문제가 있었다’라고 회피하지 마세요.

엄마, 딸에게 사과한다고 엄마로서의 인생이 실패를 뜻하는 건 아니에요. 오히려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사과하지 않는 엄마가 성공하지 못한 엄마가 아닐까요. 할머니는 엄마에게 사과하지 않고 돌아가셨지만, 엄마는 더 나은 엄마가 되어 주세요.

할머니보다 나은 엄마. 그게 엄마가 진정 원하셨던 거니까요.


엄마께 이 수첩을 보여드리진 않았지만, 난 이 편지 이후 옷에 집착하던 어그러진 나를 버리고, 진짜 나를 입기 위한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었다. 나는 공주풍의 과한 옷을 옷장에서 모두 쫓아내고 박사 논문은 깨끗이 포기했다. 옷장 문 안쪽에 붙어 있던 핑크 샤넬백도 그 때 즈음 사라졌다.


몇 년이 지난 지금, 난 새로운 삶의 주인이 되었다. 그런 내게 최근 핑크 아이템이 다시 하나 둘 늘고 있다. 어느 날은 핑크 스트랩 시계를 차고, 어느 날은 핑크 머플러를 두른다. 이제 난 핑크로부터 ‘엄마,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줘’가 아닌 이 말을 떠올린다.


“최유리, 있는 그대로의 너를 사랑해.”


난 그렇게 하루하루 나로 인해 공주가 되어간다. 누구나 한 번은 공주가 되어야 한다. 그 한 번을 난 평생으로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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