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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샤넬백!
By 최유리 . Aug 08. 2017

놈코어는 패션 트렌드일까?

자존감과 옷 입기의 상관관계(2)

01 사치의 진화


대부분의 온라인 여성 의류 쇼핑몰에서는 도매 시장의 상품을 선택하여 판매한다. 브랜드 제품보다 아무래도 인지도나 퀄리티 측면에서 경쟁력이 높다고 볼 수 없다 보니,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사진으로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창출하기 위해 상당히 애를 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여성 의류 쇼핑몰 사진에서 소품으로 가장 자주 등장했던 건 샤넬백이었다. 쇼핑몰의 피팅 모델들은 백화점, 카페, 호텔 혹은 도시 거리에서 샤넬백을 걸치고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며 포즈를 취했다.


나는 쇼핑몰 사진의 샤넬백이 만들어낸 고급스러움을 늘 갖고 싶어 했고, 그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소비하기 위해 많은 옷을 샀다. 그런데 거기서 한발 물러나기 시작한 내게 한 가지 재밌는 현상이 포착되었다.


뜻밖의 소품인 잡지가 샤넬백을 대체해버린 것이다. 사진 속 피팅 모델의 손에는 <보그>나 <하퍼스 바자>가 아닌 <킨포크(KINFOLK)> 혹은 <어라운드(AROUND)>가 들려있다.


나도 종종 구입해서 읽어보는 <어라운드>. 여기엔 여타의 잡지에서 우리가 봐온 것과 같은 핫한 레스토랑, 블링블링 한 옷, 획기적인 뷰티 아이템을 소개하는 글과 사진을 찾아볼 수는 없다.



대신 제주도 스쿠터 여행의 즐거움, 영화 속 인물의 좌절과 극복에서 엿본 행복의 정의, 도심 속 작은 공원이 우리 삶에 주는 의미, 평범한 여성이 이국땅에서 만난 5살 아이와 나눈 낯선 우정. <어라운드>에는 이러한 이야기가 깊이감 있는 사진들과 함께 담겨있다. <어라운드>의 한편에는 조그맣게 이런 글이 적혀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당신 주변의 시간은 조금 느리게 흐릅니다.”


독자가 책을 읽는 동안만이라도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잠깐의 여유를 누려보길 바라는 마음을 이렇게 담았나 보다. 평범한 일상에서 오는 행복을 조근조근 속삭이는 잡지가 샤넬백을 대체하고 있는 현상.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이건 낯선 현상이 아니다. 과거부터 사람들은 상류 계급을, 한가함을 가진 자들 즉 ‘유한(有閑)’ 계급이라 부르며 그들의 시간적 여유를 부러워해왔다. 이 같은 맥락에서 최근 사치는 ‘비싼 것 갖기’에서 ‘우아하게 살기’라는 형태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는 하나 ‘우아하게 살기’라는 사치의 진화, 일명 ‘킨포크 라이프’는 바다 건너 휴양지의 고급 리조트로 향하는 사람들이나 제주도에서 텃밭을 가꾸며 사는 한정된 사람들의 전유물은 아니다.


누구나 유한계급은 될 수 있다. <어라운드> 편집자의 바람처럼, 우리가 평범한 일상을 벗어날 수 없다 하더라도 잠깐 짬을 내어 공원에서 산책하거나 카페에 들러 책을 읽음으로써 여유를 누리려는 발상 전환만 한다면.


그러나 뭔가 불편한 감정이 남는다. <어라운드>는 왜 쇼핑몰 피팅 모델의 한 팔에 들린 채 상품 구매를 제안하는 도구로 사용되어야 했을까. 소품용 샤넬백이 텅 비어있었던 것처럼 사진 속 모델은 잡지 속 글 한 편 제대로 음미하며 읽었을까.



02 패션 트렌드, 놈코어


지금은 시들해졌지만, 한 동안 패션계에서 가장 트렌디했던 룩을 꼽자면 다름 아닌 놈코어 룩을 들 수 있다.


놈코어(normcore)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평범함을 뜻하는 노멀(normal)과 철저함을 뜻하는 하드코어(hardcore)의 합성어이다. 소박하고 평범한 것을 입었으나 멋스러운 사람들을 쿨하다고 보는 시각이 놈코어 룩에 반영되어 있다.  


티셔츠, 후디스, 데님, 트레이닝팬츠, 스니커즈, 슬립온과 같이 슈퍼마켓에 잠깐 음료수만 사러 나갈 정도로 간편한 복장이 디자이너 브랜드의 런웨이에 등장하면서 놈코어는 본격적으로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다.


놈코어라는 용어는 날카로운 통찰력이 빛나는 사이버 펑크(cyberpunk) 작가 윌리엄 깁슨(William Gibson)의 소설 <패턴 인식(Pattern Recognition)>(2004)의 주인공 케이스 폴라드(Cayce Pollard)의 인물 묘사에서 처음 등장하였다.


케이스는 회색 스웻 셔츠에 펑퍼짐한 리바이스 501 청바지를 입지만, 자신의 옷에 붙은 로고는 가위로 자르든 사포로 문지르든 집요하게 제거한다. 그녀는 거리에서 만나는 미쉐린 맨을 보면 패닉 상태에 빠져버릴 정도로 브랜드나 로고를 혐오한다. 그녀는 왜 로고 혐오주의자가 되어버렸을까?


그녀는 감각의 예민함과 관찰력의 뛰어남은 우리가 미국 드라마 속 주인공으로 잘 알고 있는 탐정 몽크와 견줄 정도인 것 같다. 그런 자신의 장점을 잘 살려 그녀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공유되는 쿨한 것이 무엇인지 한 발 앞서 포착하고, 그것을 헌팅하여 글로벌 마켓에 소개하는 쿨 헌터(coolhunter)로 일한다.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공유되던 특별한 문화가 트렌디한 상품으로 재탄생하여 전 세계 이곳저곳에서 소비되지만, 결국은 사라져 버리게 되는 과정을 누구보다 생생하게 목격하는 사람이 케이스인 셈이다.


케이스가 로고를 집요하게 제거했던 행동은 트렌드를 계산적으로 조작하고 유포하여 대중에게 그것을 소비하라고 강요하는 시장 권력에 대한 저항이자, 자신의 특별함을 고집하는 하나의 의식 행위로 보인다. 자신의 물건이, 컨베이어 벨트 위에 올라가서 상품화하고 소멸되는 그 메커니즘에 처음부터 속한 적 없었다, 그런 물건을 사는 평범한 사람들과 자신은 질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표현하기 위한 행위인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아우라(aura)’를 이렇게 정의했다.


“거리가 주는 독특한 현상(the unique phenomenon of a distance)”


케이스는 트렌드 소비 메커니즘으로부터 거리를 둠으로써 자신만의 ‘다름’, 나아가 자신만의 ‘아우라’를 확보하고자 했던 것이다. 윌리엄 깁슨이 소설을 발표한 지 10년이 더 지나고 놈코어 룩이 하나의 흐름(trend)으로 등장한 지금. 케이스처럼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은 케이스만큼 현명한 사람들이 늘어난 것으로 봐야 할까.


아니면 펑크, 인디, 힙스터 같은 하위문화(subculture)가 케이스 같은 쿨 헌터에 의해 글로벌 마켓에 유입되고 더 이상 하위문화라 칭하기 난감할 정도로 트렌드로 소비되었다 사라지는 것처럼, 놈코어 역시 곧 사라지고 말 트렌드로 봐야 할까.



03 놈코어의 아이콘들



놈코어 룩을 보여준 실존 인물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스티브 잡스였다. 그는 무려 12년 동안 뉴발란스 스니커즈, 리바이스 청바지, 그리고 검은색 이세이 미야케 터틀넥 셔츠만 입었다.


옷차림만으로는 그가 아름다운 것에 무관심한 사람이었을 거라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는 그를 포함한 인간이 아름다움에 끌리는 존재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이러한 시각은 애플에서 제조한 모든 상품의 외관, 유저 인터페이스(UI), 서체, 제품 박스 그리고 애플 스토어의 인테리어에서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나는 1995년에 촬영된 한 시간 분량의 인터뷰 영상에서 그의 탁월함에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남들이 겨우 당시의 트렌드를 좇을 때 그는 1995년 당시, 우리가 현재라 부르는 미래를 정확히 예견하고 있었고, 그 맥락에서 사람들의 더 나은 삶을 가능케 하는 것이 무엇일지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그것의 중심에 있기를 꿈꾸고 있었다.


그를 남과 ‘다르다’고 표현해주는 것은 옷이 아닌 생각이었다. 그가 내세운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라는 애플의 철학이 잡스 없는 애플을 앞으로 얼마나 지탱시켜 줄지는 잘 모르겠지만, “다르게 생각하라”가 잡스 개인의 아우라(aura)의 근원이었음은 분명하다.


인터뷰 영상이 촬영된 당시 그를 쫓아낸 애플은 파산 직전이었고 그가 경영하고 있던 넥스트는 별다른 성공을 거두지 못한 상태였지만, 자신의 생각을 밝히는 그의 눈은 끊임없이 빛나고 있었다. 인터뷰 영상에서 인터뷰어는 잡스에게 마지막으로 이런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히피(hippie)입니까, 너드(nerd)입니까?”


잡스의 답은 히피였다. 기존의 권위와 다른 뭔가를 새롭게 만들어내고 그것을 타인과 공유함으로써 즐거움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히피이다. 잡스는 인터뷰에서 자신이 매료되었던 어떤 정신(spirit)을 제품에 불어넣고 동료들 혹은 매킨토시 사용자들과 그 정신을 공유함을 진심으로 자랑스러워했다.


비록 히피라는 별칭을 스스로에게 붙이지도 않았고 히피도 아니었는지 모르겠지만, 잡스의 ‘다르다’ 선배로 파블로 피카소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피카소는 자신의 우상이었던 벨라스케스를 뛰어넘는 거장이 되고 싶었다. 그는 철저히 선배들을 모방하고 분석하고 해체함으로써 누구도 걷지 않은 길을 개척했다. 피카소 역시 생 제임스 스트라이프 티셔츠 혹은 펑퍼짐한 면 티셔츠 정도로 소박한 옷차림을 즐겼다.


아마도 장발을 하고 청바지를 입고 마리화나를 피워댐으로써 ‘다르다’를 표현했던 1960~70년대 히피들이 하수였고, 라벨을 다 잘라내던 케이스가 중수였다면, 잡스와 피카소는 생각과 작품으로 ‘다르다’를 표현하는 고수 중의 고수가 아니었을까.


히피가 기존의 권위에 저항하고 남들과 ‘다르다’에 집중하는 사람들이라면 너드는 남들에게 관심이 없고 남들과 다르기 위해서 애쓰지 않으며 오로지 자신의 탐구 세계에만 관심을 쏟는 사람들이다. 흔히 너드는 우리말로 ‘괴짜’라고 번역된다.


그래서 잡스나 피카소처럼 차원 높은 방식으로 ‘다르다’를 표현하는 사람들은 옷으로 다르다를 표현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놈코어 룩을 입게 되는 반면, 너드들은 처음부터 옷에도 관심이 없어서 본의 아니게 놈코어 룩을 입는다.


자신을 너드라고 소개한 마크 저커버그. 면 티셔츠와 헐렁한 청바지, 검정 바람막이 그리고 슬리퍼가 평상시 옷차림이다. 그는 매일매일의 난제를 해결하는데 많은 에너지를 투자해야 하기 때문에 옷 고르는 것에 시간을 빼앗기고 싶지 않다는 말로 자신의 룩을 변호한다.     


너드는 자신에게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는데 방해가 되는 것이면, 온 세상이 가치 있는 것이라고 평가하는 것이라도 거부해버리는 초연함을 보인다. 마크 저커버그보다 선배 너드인 스티븐 호킹은 작위를 거절했고, 호킹의 선배인 아인슈타인은 프린스턴대 교수직을 거절했다.


너드는 히피처럼 다르려고 애쓰지 않고 오히려 남과 다르다는 것에서 오는 결과를 거추장스러워한다. 그래서 자신을 감추고 자신을 세상과 고립시켜버린다.


저커버그는 사용자가 개인정보를 공개하여 연결됨을 추구하는 ‘페이스북’ 대표이면서 정작 자기 개인정보를 공개하지 않는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그것은 저커버그가 너드이기 때문이다.


그가 평범하게 입은 채 푸드 트럭에서 산 음식을 아무렇지도 않게 길바닥에 앉아서 먹는 것도 어쩌면 자신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서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천재성과 넘치는 위트를 입은 너드의 아우라는 아무렇게나 막 입고 다닌다고 해서 가려지지 않는다는 것을.


놈코어가 트렌드가 되기 훨씬 전부터 놈코어 룩을 입어온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살펴보니 놈코어 룩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놈코어 룩은 옷으로 ‘다르다’를 표현하지 않고도 아우라를 뿜어낼 수 있는 사람들의 룩이다.



04 놈코어와 놈코어 룩



뉴욕의 트렌드 분석 기관인 케이홀(K-Hole)의 설립자 에밀리 세갈(Emily Segal)은 놈코어 스타일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이렇게 설명한다.


“달라 보이려 하는 것에 대한 환멸이 존재합니다. 사람들은 어떤 지위를 성취함으로써 주위의 모든 사람과 달라져야 한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피로를 느낍니다.”


이와 같이 트렌드에 대한 환멸과 피로감에서 오는 하나의 저항 문화로서 놈코어를 바라보는 시각이 존재하기도 하지만, 패션계에서는 ‘놈코어 룩’으로 한정시켜 보거나 90년대 룩이 유행하는 것뿐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기도 했다.


2015년 한 패션 잡지에서 ‘놈코어도 이제 지겹다’는 에디터의 독백 같은 글을 보았다. 어쩌면 지금까지 하위문화의 패션 코드가 케이스와 같은 쿨 헌터에 의해 패션 산업으로 유입되어 트렌드가 된 후 얼마 안 가 사라지던 것처럼, 하나의 하위문화이던 놈코어 역시도 그 절차를 밟고 있는 듯하다.


트렌드라는 것이 돌고 도는 것을 관망하다 보니 문득 떠오르는 경제학 법칙이 하나 있다. ‘세이의 법칙(Say’s law)’.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


물론 이 논리는 대공황 이후 많은 비판을 받으며 주춤해져 버렸다. 그러나 ‘트렌드에 뒤지지 않으려면 이것을 사라’는 명령과 함께 계산적으로 트렌드를 유포하면 사람들이 새로운 것을 사게 되는, 윌리엄 깁슨이 비판한 이 메커니즘을 보고 있자니 세이의 법칙이 꼭 틀렸다고 볼 수는 없다.


온갖 트렌드에 지친 사람들에게 쿨한 것으로 인식되어 온 놈코어까지도 놈코어 룩이라는 트렌드가 되고 상품으로 소비되었던 현상은 패션계의 스마트함으로 인정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하위문화의 패션 코드가 트렌드가 되기 이전부터 뼛속까지 그 문화를 자기 정체성과 동일시해온 사람들에게 트렌드는 사실 아무 의미가 없다. 마치 카우보이 룩이 반짝 트렌드로 지나간다 하더라도 그 룩은 여전히 카우보이의 정체성과 일치하는 것처럼.


특정 트렌드의 근원인 하위문화의 정신을 모른 채 단지 그것을 패션 트렌드로만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모든 룩은 지겨워질 수밖에 없다. 놈코어의 정신을 입은 적이 없다면, 놈코어 룩은 특유의 밋밋함 때문에 재미없고 지루한 옷차림일 뿐이다.


만약 지금처럼 놈코어 룩이 시들해지고 맥시멀리즘이 트렌드로 떠오른 것을 잡스가 보았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당연히 전혀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에게 그의 옷차림, 아니 그의 아우라는 처음부터 그의 것이었지 트렌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놈코어 룩이 지겹다는 그 에디터의 독백은, 잡지 속 글 한 편 제대로 읽어보지 않은 채 단지 소품으로 잡지를 들어 보임으로써 ‘고급스러움’을 가장하는 쇼핑몰 사진의 허세와 별반 다르지 않게 다가온다.


에리히 프롬이 말했듯 현대의 소비자인 우리는 ‘나는 소비한다 = 나는 존재한다’라는 공식으로 자신의 실체를 확인한다. 그러나 사람의 생각과 정신은 물건을 가진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걸 나는 경험에서 배웠다.


내가 샤넬백을 소유했어도 관습을 파괴하고 새로움을 창조하려 했던 가브리엘 샤넬의 정신을 체화할 수 없었듯, 화이트 스니커즈를 신고 회색 후디스를 입는다고 해서 놈코어의 정신을 체화할 수 있는 건 아닐 것이다.


내게 촬영 소품으로써 <어라운드>의 인기나 트렌드로서 놈코어 룩의 유행은, 물건을 가짐으로써 스스로가 위너임을 증명하고 만족하는 소비주의 시대의 익숙한 풍경으로 다가온다. 촬영 소품이 샤넬백에서 <어라운드>로 바뀌었어도 소비주의는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에게 친근한 미소를 보내고 있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자본주의 이전의 인간은 객체와 상호작용하며 객체를 창의적으로 누릴 수 있는 고급한 권력의 주인이었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등장 이후 인간은 그 권력을 자발적으로 버리고 ‘단순히 소유의 관점에서 직접적이고 일방향적 만족’을 추구하게 되었다.


마르크스의 말이 맞다면 우리가 생각과 정신을 생산이 아니라 소유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순간, 생각과 정신을 창출하고 누릴 수 있는 인간만의 고급한 권력을 자발적으로 포기하는 것이다.


내가 마침내 샤넬백을 가진 후 경험했던 허탈함, 그리고 촬영 소품 <어라운드>를 보았을 때 느꼈던 불편함은 우리 안에 존재하는 그 권력을 잃고 싶지 않다는 조용한 외침이었는지도 모르겠다.



05 자기표현의 진화



놈코어의 핵심은 룩이 아니라 아우라이다. 아우라의 결과 무심한 룩이 탄생한 것일 뿐. 사람들이 놈코어 룩에 열광하는 것은 어쩌면 놈코어의 아이콘이 보여주었던 아우라에 대한 선망을 ‘따라 입기’로 드러내는 건지도 모른다.


놈코어 없는 놈코어 룩은 아우라 발하기를 아우라 갖기로 치환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아우라를 발해본 적 없는 사람이 남의 아우라를 선망하며 따라 입어본 옷에 싫증내기 마련. 게다가 아우라 없는 놈코어 룩은 긴장감을 상실한 꾀죄죄한 모습으로 보이기 십상이다.


‘사치’의 의미가 비싼 물건 갖기에서 우아하게 살기로 진화하였듯, 나는 놈코어를 마침내 우리가 비싼 옷이나 지위가 아닌 자기 정체성으로 특별함을 표현하게 된, ‘자기표현의 진화’로 보고 싶다. 샤넬백을 소유하지 않더라도 스티브 잡스가 아니더라도, 나만의 세계를 표현하는 내가 바로 특별한 사람이라는 발상 전환만 한다면 아우라는 누구든지 발할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렇지만 무소유가 답이라고 말하고 싶진 않다. 고도로 분업화된 사회의 일원인 내가 소유에서 완전히 벗어나 존재할 수 없음은 쿨하게 인정한다. 다만 패션 희생자로서의 오랜 방황 끝에 마침내 ‘조용한 말괄량이’라는 정체성을 찾은 지금, 내 정체성을 표현해줄 언어로서 옷을 바라보고 그에 합당한 옷을 소유하는 명민함이 필요함을 이젠 안다. 그것이 내가 찾은 무소유와 소비주의 사이의 타협이다.


‘조용한 말괄량이’ 룩


내가 ‘조용한 말괄량이’를 표현하는 화이트 셔츠 드레스와 보헤미안 벨트, 술 달린 앵클부츠, 스팽글 박힌 가방을 걸치고 집을 나설 땐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고 눈에서 레이저가 나온다. 남들이 몰라줘도 비싼 명품이 아니어도  ‘나만 좋으면 됐지. 뭐 어때?’ 라는 내 생각은 종종 ‘멋있다’는 찬사로 돌아오곤 한다. ‘조용한 말괄량이’ 룩이 전형적인 놈코어 룩에서 벗어나 있더라도, 놈코어의 정신과 통하는 면은 있는 셈이다.


내가 누군지 알고 나를 사랑하며 가장 나다운 옷을 입어 아우라를 발하는 것.

그것이 내겐 놈코어이다.


나는 트렌드로서의 놈코어 룩이 지더라도 어떤 정신으로서의 놈코어는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진심으로 따라 하길 바란다. 그리고 오래도록 지속되었으면 좋겠다.



참고문헌

김난도 외.(2015). 트렌드 코리아 2015. 미래의 창. p.369.
Benjamin, W. (2008). The work of art in the age of mechanical reproduction. Penguin UK. p.224.
Steve Jobs, The Lost Inverview - https://youtu.be/TRZAJY23xio
http://www.vogue.co.uk/news/2014/03/21/normcore-fashion-vogue---definition
Fromm, E. (1988). 정성환 역 (2016) 소유냐 삶이냐, 홍신문화사. p.45.
Ollman, B. (1976). Alienation: Marx's conception of man in a capitalist society. Cambridge University Press.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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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뭐 입지? 패션-보다-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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