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과 옷 입기의 상관관계(1)
어느 날 인터넷 포털 사이트 메인에서 발견한 문구.
“남친 설레게 하는 여리여리 스타일! 남친, 나만 보인대.”
“썸을 내 남자로 바꾸는 데이트 룩!”
20대 모델의 발그레한 얼굴 사진이 작게 보이는 온라인 여성 의류 쇼핑몰의 광고 문구였다. 클릭 이후의 결과를 예상 못한 건 아니지만, 호기심이 발동했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정답으로 제시하는 데이트룩이 뭔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결과는 예상대로 바비인형 같은 몸매의 여자들에게나 어울릴 법한 허리 잘록 들어간 미니 드레스 일색이었다. 너무 전형적인 성형 미인들이 전형적인 룩을 입고 있어서 흥미롭기도 했지만, 불편하기도 했다. ‘꼭 이래야 하나?’라는 질문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물론 남자들에게 ‘데이트 하고 싶은 여자’의 고정 관념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이를테면 긴 생머리, 하얀 피부, 가냘픈 몸매에 풍만한 가슴과 엉덩이, 어쩐지 순해 보이는 표정의 여자가 살구빛 립스틱을 바르고 살짝 입을 벌린 채, 프릴 달린 참한 원피스에 하이힐을 매치하고 체인 백으로 스타일링을 마무리한 모습.
그러나 모든 여자가 피팅 모델 같은 얼굴과 몸매를 타고나지도 않았고, 전형적인 데이트 룩을 자연스럽게 소화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션 잡지나 스타일링 처방을 제시한 책, 그리고 TV의 패션 전문 채널에서는 남자들이 좋아하는 ‘데이트룩의 정답’이 따로 존재한다는 말을 심심찮게 접할 수 있다.
이런 ‘정답’을 접하면서 여자들은 ‘남자들은 촌스러운 여자를 좋아하나봐’라며 무시하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러나 이 ‘정답’을 부인하며 살기가 쉽지만은 않다.
요즘 세대는 이 시리즈를 잘 모르겠지만, 내 세대에게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 주연의 영화 <Before Sunrise> 시리즈는 반드시 봐야 할 영화 목록에 꼽힐 정도로 명작에 속한다. 1995년 <Before Sunrise>, 2004년 <Before Sunset>, 그리고 2013년 <Before Midnight>이 개봉했다.
나는 20대 초반에 <비포 선라이즈>를 봤는데 그 땐 사람들이 이 영화가 좋다고 아무리 말해도 뭐가 뭔지 하나도 몰랐다. 여배우가 특별히 예쁜 것도, 남자배우가 특별히 잘생긴 것도 아니었고, 별다른 스토리 없이 둘이 떡진 머리에 똑같은 옷으로 밤새 얘기만 하다 영화가 끝나기 때문이다.
그러다 우연히 2014년 <비포 미드나잇>을 보게 되었다. <비포 미드나잇>에선 미국에서 결혼했던 제시가 자신의 결혼 생활을 포함한 미국 생활을 청산하고, 마침내 셀린과 결혼하여 성공한 작가이자 쌍둥이 자매의 아빠가 되어 있다. 넷은 그리스로 여행을 간다.
제시는 여행 직전, 공항에서 전처와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미국으로 배웅하고 예민해져있는 상태이다. 셀린은 그런 그의 모습이 불만이다. 그에 대한 불만에 엄마가 되고 나서 자아를 상실해감에 대한 스트레스까지 더해져 셀린은 제시에게 마구 퍼붓는다. 듣고만 있던 제시는 피곤해하다가 결국 이렇게 말한다.
내 인생을 통째로 당신에게 줬어. 남은 50년 동안에도 당신 모습을 견딜 자신 있어.
사람들은 <비포 미드나잇>을 보며 ‘똑똑한 여자의 진상 퍼레이드’라는 식으로 혹평을 했지만, 나 역시 정신없는 육아의 현장 속에서 자아를 잃어가는 듯한 위기를 경험해본 터라 흥미롭게 지켜봤다. 그런데 그녀가 그렇게 ‘진상’을 떨어도 그가 그렇게 그녀를 최고의 매력녀로 대하는 마지막 장면까지 보고 나선 앞의 두 시리즈가 궁금해졌다.
둘 사이에 어떤 스파크가 튀었던 걸까. 내가 뭣 모르고 흘렸던 앞의 두 영화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유부남인데다 미국인인 제시는 자신의 원래 인생을 버리고 유럽까지 날아와서 그녀에게 자신의 삶을 통째로 내주었을까.
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비포 선라이즈>와 <비포 선셋>을 다시 보았다. 나는 특히 그가 그녀에게 반한 듯한 눈빛을 보내는 순간에 주목했다. 그는 그녀의 어떤 모습에 빨려 들어갔을까.
<비포 선라이즈>에선 부다페스트의 할머니를 뵙고 자신이 사는 파리로 돌아가는 기차를 탄 23살의 소르본느대 학생 셀린이 등장한다. 셀린에게 매력을 느낀 미국 청년 제시는 미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기위해 비엔나에서 내린다. 그리고 셀린에게 자신과 같이 내릴 것을 제안한다.
그녀가 입은 옷은 쇼핑몰이나 패션 잡지에서 말하는 데이트 룩이 전혀 아니다. 그녀는 66 정도 되어 보이는 다소 통통한 몸매, 몸에 비해 작은 가슴, 평범한 면 티셔츠를 입고 롱 드레스를 겹쳐 입었다. 그냥 장거리 여행에 방해가 되지 않을 편안한 옷차림이다. 화장도 거의 하지 않은 맨얼굴에 머리도 부스스하다. 셀린은 제시를 향해 윙크를 하지도 않고, 립글로스 바른 입술을 살짝 벌리지도 않으며, 어깨를 드러내거나 엉덩이를 내밀지도 않는다.
제시가 그녀를 말없이 바라보기만 한 순간들은 셀린이 자신의 비행기 공포증에 대해서 말할 때, 13살짜리 소녀의 무덤 앞에서 10년 전 자신의 느낌을 털어놓았을 때, 쇠라 전시회 포스터 앞에서 쇠라 작품에 대한 자신의 감상을 말할 때였다. 셀린은 외적인 여성성을 드러내며 유혹하기는커녕, 그저 자기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랬을 뿐인데 제시는 그녀에게 빠져든다.
제시는 주로 듣기만 하지만, 셀린은 밤에 공원에서 말한다. 일출을 보거나 여행을 할 때 함께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몰라 고독했었다고. 그러나 제시와 함께하는 그 순간만큼은 행복하다고. 둘이 함께 하는 그 순간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셀린은 제시가 말이 없어도 그녀의 마음을 읽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부모의 이혼에 상처받고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며 살아온 제시는 그녀에게 이렇게 고백한다.
너랑 있으면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아
어쩌면 제시는 그동안 자기 자신을 감춘 채 살아가다가 그녀 앞에서 비로소 자기 자신이 되는 경험을 했는지도 모른다. 둘은 그 날 밤 사랑을 나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둘은 ‘성인다운 이성적인 결정’을 떠올리며 재회를 망설인다.
서로의 만남은 무산됐고 9년의 세월이 흘렀다. <비포 선셋>에서 재회한 두 사람. 작가로 성공적 데뷔를 한 제시가 출간 기념 강연회차 들른 파리에서 둘은 만났고, 둘은 너무 반가워한다. 그리고 기억의 파편을 모으고 감정이 되살아남을 느낀다. 그러다가도 9년 전처럼 그놈의 ‘성인다운 이성적인 결정’ 앞에 망설인다.
“자기 수염의 붉은 빛 털도 기억나. 떠나기 전 그 새벽 햇살에 빛나던 모습……. 그 모습이 그리웠어. 나 진짜 웃기지?”
<비포 선셋>에서 제시가 그녀에게 가장 그윽한 눈빛을 보내던 순간은 유람선에서 셀린이 제시에 대한 자신의 기억을 말할 때였다. 다소 오버라고 반응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으나, 제시는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미소를 그녀에게 보내어 주었다.
제시의 미소는, 그녀가 혹시나 그를 만날지도 모른다는 설레임에 골라 입고 온 (클로에나 바네사 브루노 풍의) 아름다운 검은 색 민소매 탑 때문에 지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건 9년 전 자신이 사랑했던 그 모습 그대로 변함없이 나이들어 있는 셀린의 모습이 너무도 반갑고 여전히 매력적이어서였다. 그녀는 그녀 자신이었을 때 제시에게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여자였던 것이다.
그는 비행기 시간이 아슬아슬한 타이밍인데도 그녀에게 노래를 청한다. 그녀 자신이 좋아하는 뭔가를 할 때 가장 그녀다운 모습으로 빛나는 것을 제시는 보고 싶었던 거다. 그는 결국 비행기를 놓치고 그녀를 택한다.
언젠가 한 대기업의 사보를 도서관에서 발견하고 훑어보다, 이중섭 화백의 부인인 이남덕 여사의 인터뷰를 발견하고 신선한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이중섭의 어디에 반했느냐는 질문에 대해 그녀는 너무도 확신에 찬 어조로 이렇게 답했다.
모든 것에!
내가 그 기사를 읽은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이중섭의 사랑이라는 테마로 전시회가 열렸다. 아쉽게도 전시 관람은 못했지만, 전시 기념 도록을 구하여 작품으로 남겨진 두 사람의 사랑을 볼 수 있었다. 사랑하는 여인에 대한 자신의 뜨거움, 그리고 두 사람의 소통의 깊이가 그의 작품 안에 온전히 존재했다.
그 중에서 내 시선이 가장 오래 머물렀던 그림은 양답뱃갑 은지에 그린 <사랑>이란 작품이었다. 그림은 야했다. 그러나 선정적으로 느껴지기보단, ‘두 사람의 소통이 이만큼이었구나’가 보여 가슴이 따뜻해졌다. 이중섭 화백 역시 이남덕 여사에게서 그 시대 많은 남성이 바라는 여성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사랑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둘은 서로의 세계를 소통했고, 그 누구보다 뜨거웠다.
그림 속 이남덕 여사의 모습은 전형적인 미인이 아니라 그녀 자신이었다. 그러나 사랑하는 남자와 소통을 나누는 그 순간, 지긋이 눈을 감고 한 손으로 남자의 볼을 부드럽게 매만지는 그녀의 모습에서 뭔가 특별한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그녀는 그렇게 자기 남자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당신을 느끼는 것이 정말 좋습니다.
언젠가 패션 채널에서 남자들이 싫어하는 룩 베스트 5를 본 적이 있다. 그 5위 안에는 레깅스, 어그부츠, 밀리터리룩, 비니, 호피무늬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만약 내가 카모플라주 패턴 재킷에 비니를 쓰고 레깅스에 어그부츠를 착용한 채 가장 나다운 생각을 털어놓았을 때 나를 향해 그윽한 눈빛을 보내는 남자가 있다면?
그렇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나의 소울 메이트이며, 통상적 의미에서의 데이트룩의 정답은 그 상황에서 무용지물이 된다. 내가 입었을 때 가장 심리적으로 편안하고, 내면의 나를 가장 잘 드러내는 옷차림, 그리고 내면의 나를 가장 잘 드러내는 내 표정과 말. 그 모든 것이 어우러진 가장 ‘나’ 다운 룩이 최고의 데이트룩이 아닐까.
바비인형 같은 몸매의 여성이 참하게 차려입은 전형적인 데이트룩. 아마 통계적으로 많은 수의 남자들이 좋아하는 외양은 맞을 것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의 본질이 좁고 깊은 소통에 있다면, 여성들이 많은 남성들의 눈을 골고루 즐겁게하기 위해서 외양을 가꿀 필요가 있을지 궁금해진다.
여자가 사랑에 빠지면, 영화 속 셀린의 백만불짜리 미소처럼 이중섭의 그림 속 이남덕 여사의 은근한 미소처럼 저절로 아름다움이 풍겨져 나오는 법이다. 그 결과 자기를 알아봐주는 특별한 한 사람에게 비밀스런 여성스러움을 표출할 수 있으니, 억지로 타인들이 정해놓은 ‘여리여리 스타일’ 데이트 룩에 따라갈 필요는 없지 않을까?
만약 사람과 사람 간의 소통, 그리고 남녀 간의 사랑이 시각적인 즐거움만 주고받는 것으로 끝날 정도로 경박한 것이라면, 세상에 사랑을 나눌 사람은 소수의 사람들로 제한될 수밖에 없다. 피트니스 클럽에서 중력과 싸워가며 만든 몸으로 완벽한 핏의 수트를 소화하고 비싼 차를 타는 남자들. 그리고 절제된 식단을 지켜가며 가꾼 몸매를 드러내줄 미니 드레스를 입고 체인 백을 두른 여자들. 그 사람들만 사랑을 할 자격이 있는 건 아니다. 이는 상상만 해도 끔찍한 현실이다.
그러나 세상은 아름답다. 못난이에 패션 꽝이지만 서로 죽고 못하는 커플을 나는 길에서 참 많이 본다. 아무리 남들이 혀를 끌끌 차도 둘의 세상이 아름답다면 그걸로 된 거다. 그들은 인간이 정신적인 존재임을 증명해주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어쩌면 ‘데이트 룩의 정답’은 온라인 쇼핑몰에서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서 만들어낸 억지스런 스타일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물론 데이트 룩은 온라인 쇼핑몰의 특성마다 다르다. 우아한 청담동 며느리룩을 제시하는 곳도 있고, 소녀 같은 첫사랑 룩을 제시하는 곳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제시하는 ‘정답’을 따라간다고 해서 50년을 더 견뎌줄 남자, 나의 ‘모든 것에!’ 반할 남자를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Good communication is as stimulating as black coffee and just as hard to sleep after.
앤 머로우 린드버그가 했던 말이다. ‘통했다’는 느낌을 경험하고 나면 잠을 못 이룰 정도로 흥분되고 그 울림이 그만큼 오래도록 지속된다는 것이다. 제시와 셀린의 짧은 만남과 이중섭 부부의 사랑은 짧은 순간의 통함과 그 여운의 오램을 말하고 있기에 나를 설레게 했다.
시각적인 즐거움에서 시작된 흥분과 소통의 즐거움에서 시작된 흥분. 우리가 진정 원하는 관계는 무엇에서 오는 흥분을 지향하는 것일까?
우리가 알아왔던 데이트 룩의 정답. 어쩌면 그건 가장 나쁜 데이트 룩인지도 모른다. 자신을 바비인형, 청담동 며느리, 첫사랑 소녀 등으로 표현하여 남자의 마음을 얻는데 성공한다고 한들, 그가 사랑한 게 단지 내가 입은 옷이 표현한 이미지였다면, 그 남자에게 365일 24시간 그 이미지 그대로의 모습을 보일 자신이 있는 여자들은 몇이나 될지 궁금하다.
게다가 상대가 진짜 내 모습을 좋아하는 건지 아니면 바비인형 같은 여자, 청담동 며느리나 소녀같이 순종적인 여자를 좋아하는 건지 판단해야 하는 번거로움까지 내가 떠맡아야 한다면 전형적인 데이트 룩이란 가장 불편한 룩이 아닌지.
외모에서 풍기는 시각적 매혹의 유효기간이 몇 달이고, 진정한 인간의 소통의 유효기간이 70년이라면 우리가 집중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건 온라인 쇼핑몰에서 제시하는 정답 같은 데이트 룩이 아니라, 진실한 소통에 필요한 가장 나다운 내면, 즉 나의 정체성이다.
만약 소개팅 첫날 데이트 룩의 정답으로 갖춰 입었던 내가 지금껏 만나온 남자가 나와의 소통의 한계에 부딪혀 ‘싫증났다’며 이별을 통보한다면, 그건 울어야 하는 순간이 아니라 정체성으로 소통하는 새로운 관계에 대해 생각해봐야 하는 순간이다. 그리고 그 남자에겐 시원하게 이렇게 말해주자.
바비 인형이나 껴안고 살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