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최유리 Aug 22. 2017

나의, 나에 의한, 나를 위한 헤어스타일

정체성과 옷 입기의 상관관계(2)


01 이별 후 미장원?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내가 누군가에게 ‘결혼하자’는 말을 한 것이. 그러나 그때 우린 너무 어렸다.

내 결핍을 모르던 그 때의 나는 감정 기복이 심했고, ‘빵꾸 난 학점’ 커버와 대학원, 그리고 군대 문제가 미해결이었던 그는 한없이 미래를 두려워했다. 나의 서운함과 그의 두려움이 엇갈려 우린 반 년 만에 헤어졌다.


우산을 써도 소용없을 만큼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8월 어느 날 우리는 헤어졌다. 나는 밤새 울었건만 그래도 갑작스런 이별에 많은 눈물을 흘렸고, 그 역시 평소 그 답지 않게 많은 눈물을 흘렸다.


헤어지던 날 그는 내게 일곱 장짜리 편지를 줬다. 만나는 동안 상대방을 향한 감정 표현은 늘 내 몫이었는데, 뒷북도 이런 뒷북이 없었다. 통통했던 나는 급격히 살이 빠졌고, 그와의 이별 흔적이 채 지워지기 전 졸업 앨범 속 내 얼굴엔 슬픔이 가득했다.



대학 시절 나는 상당히 다양한 헤어스타일을 시도했었다. 오렌지 컬러의 탐스러운 웨이브도 해보고, 블루블랙 컬러의 단발머리를 찰랑거리기도 했으며, 짧은 커트를 시도해보기도 했다. 돌아보면 그때 난 무엇이 나를 확인케 해주는 내 헤어스타일인지 몰랐다.


그와 만났을 때도 역시 난 그 짧은 기간 동안 머리를 세 번이나 바꿨다. 어떤 머리를 했을 때가 제일 예쁘냐는 내 질문에 그는 늘 싱글벙글 웃으며 흘리듯 말했다.


넌 어떤 모습이어도 예뻐.


난 그 무심한 말을 무관심이라 오해했고, 여느 때처럼 서운해 했다.


이별 후 몇 주 지난 그 해 가을. 난 그의 7장짜리 편지에서 그의 진심을 봤다. 난 그와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그러나 수화기 너머의 그는 짧은 거절의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내가 그렇게 사랑했는데 내가 그렇게 붙잡았는데 나를 뿌리쳐버렸던 그의 냉정한 말 한마디가 너무 너무 아팠다. 그는 지금도 ‘나쁜 놈’이 되어 내 기억 속에 살고 있다.


4학년 2학기, 대학원 준비와 20학점을 듣는 빡빡한 스케줄을 소화하며 나는 그를 잊으려 했다. 나는 혼자서도 강한 ‘새로운 나’로 변하고 싶었다. 어느 날 미용실에 갔다.


머리 어떻게 해드릴까요?


그 익숙한 질문에 난 대답을 못했다. ‘새로운 나’를 찾고 싶었지만, 단지 그 ‘나쁜 놈’ 때문에 변화된 모습은 내가 원했던 ‘새로운 나’가 아니었던 것이다. 결국 난 머리끝을 살짝 다듬고, 내 원래 머리에 윤기를 더해달라는 말만 했다.




02 ‘이별 후 머리를 자르다’에 욱 하다



3년 후. 평소 좋아하던 가수의 새 음반이 나왔다는 소식에 별 생각없이 CD를 구입했다. 그런데 그 속에 실린 노래 한 곡에 내 심장이 멎는 듯 아픔이 다시 살아났다. 노래는 박정현의 <미장원에서>였다.


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가수의 목소리만큼이나 여렸던 3년 전 내 감정이 되살아나버렸다. 남자를 잊고 더 강한 자신으로 살기 위해 머리를 자른다는 노래를 수 백 번 반복하여 듣던 내 안에선 분량을 다하지 못했던 슬픔이 다시 몰려왔다.


그러나 내 슬픔이 기력을 다할 때 즈음, 노랫말에 동의할 수 없다는 정체모를 감정이 슬픔에 묶여있던 내 이성을 점차 깨웠다.


물론, 그 사람 땜에 내 머리를 바꾼다는 건, 노래 가사처럼 ‘이제 강해지겠다’라는 선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사람 땜에 내 머리를 바꾼다는 건 ‘난 여전히 약해요’라는 인정이기도 하다. ‘차라리 구속받고 싶다’는 말은 ‘당신 없이는 같은 머리로 살 수 없다’는, ‘당신 없이는 더 이상 내가 나일 수 없다’는 말이다. 가사를 되새길수록 노래 속 화자의 의존적 태도에 난 동의할 수 없었다.


타인에 의해 생겨난 감정 때문에 자기 머리를 자른다는 가사에 반감이 커짐과 동시에 3년 전 헤어스타일에 변화를 주고 싶지 않던 내 감정을 조금 더 명확히 인지하게 되었다. 나는 그 ‘나쁜 놈’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내 외모를 바꾸어야 한다는 게 내키지 않았던 것이다. 3년 전 내가 머리끝만 살짝 다듬고 나와야 했던 마음이 뭔지 그제야 알게 되었다.


그 사람 땜에 내 맘이 다쳤던 것도 싫은데, 그 사람 땜에 다친 내 맘을 애써 극복하려 지금껏 내게 어울려왔던 내 헤어스타일까지 포기해야 한다는 것은 나 자신에게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머리카락은 내 것이고, 아무도 내 머리카락을 변화시킬 권리가 없다. 누군가에게 사랑받으려, 누군가에게 벗어나려 내 머리를 바꾸는 일은 앞으로도 하지 않겠다.


그 이후로 난 온전히 내 판단에 의해서, 미적인 이유나 편의상의 이유로 머리에 변화를 주었다. 내 머리는 온전히 나의 것이니까.


15년 전에 구입한 CD를 꺼내어 노래를 다시 들어보았다. ‘이런 게 자유라면 차라리 구속받고 싶다’는 노랫말에 난 여전히 동의할 수 없다. 다른 사람을 만나면 이번엔 그 사람이 맘에 들어 할 머리를 하겠단 말인 건지. 여자란 늘 누군가로부터 감정의 지배를 받는, 그 감정으로부터 독립하지 못하고 자기 머리 하나도 맘대로 못하는 의존적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건지.


그렇다고 그 때의 내 반감이 여자가 남자를 배격해야한다는 이성에 대한 혐오로 귀결되진 않았다. 나의 머릿속은 남성 대 여성의 대립이 아니라 의존 대 자존의 대립으로 분주했다.


여성은 남성에게 사랑 받아야 하는 존재도 아니고, 남성은 여성에게 보살핌을 제공해 줘야하는 존재도 아니다. 물론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자신을 사랑하고, 홀로 온전히 존재할 수 있을 때 누굴 만나든 서로 좋은 에너지를 주고받을 수 있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타인에게 억지스런 감정 표현을 요구하지 않는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야말로 타인의 아픔을 덤덤히 감싸줄 여유를 갖는 건강한 사랑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숱한 만남과 이별을 반복해온 지금의 내가 얻은 결론이다.


어쩌면 20대 초반의 내가 머리카락을 자를 수 없었다는 건, 늘 부모님과 남자 친구에게 의존적이었던 나를 벗으려는, 그래서 자존을 하려는 어떤 열망의 표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넌 어떤 모습이어도 예뻐’라던 내 기억 저편의 그 놈. 자신이 좋아하는 외적인 여성의 틀에 나를 가두려고도 하지 않았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좋아한다고 7장짜리 편지에 구구절절 뒷북쳤던 그 놈은 따지고 보니 ‘나쁜 놈’이 아니었다. 그놈에게서 내 결핍을 채우고 나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려다 실패한, 의존적인 내가 그놈을 ‘나쁜 놈’이라 불렀을 뿐.


나는 누구인가?


30대 후반, 우울증을 만나며 나는 치열하게 질문했다. 늘 의존적이기만 했던 나를 벗고, 조금씩 ‘자존’이라는 것에 대해 알아갔다. 나의 우울증은 어른이 되고도 자존을 하지 못한 내가 ‘이제 그만!’을 외치는 일종의 징후였다. 자존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어른이라는 걸 나는 그 때까지 몰랐다.



03 진짜 내 머리




나는 5년째 같은 머리를 고수하고 있다. 귀밑 3센티미터를 넘기지 않는 짧은 단발의 굵은 웨이브 펌은 사각인 얼굴형과 숱이 없는 가는 모발을 커버해주고, 아무렇게나 막 탄 가르마는 삐딱한 게 좋다는 내 정체성을 반영한다. 난 누가 어떤 머리로 드라마에서 빅 히트를 쳐도 그저 시큰둥하다.


이 머리는 30대 후반 ‘나는 누구인가’를 질문할 무렵부터 유지되고 있다. 사람들은 내 헤어스타일에 대한 인상이 강하다고 말한다.


‘평범한 머리라고는 볼 수 없다.’

‘자유에 대한 갈망이 보인다.’

‘가르마는 일부러 그렇게 한 거야?’

‘그런데 너한테 정말 잘 어울린다.’


사실 내 머리가 그리 특별한 건 아니다. 요란한 이름이 붙은 특수한 열펌도 아닌 그냥 웨이브펌을 한 단발머리일 뿐이다. 자유에 대한 열망이 극대화될 무렵, 손가락으로 대충 탄 내 가르마는 점점 삐뚤어져 갔고 내 옷은 전형적 여성성을 벗어났다. 어쩌면 완전한 일탈은 아니지만 ‘여성스럽다’, ‘모범생 같다’는 전형성으로부터 살짝 탈피해보는 삶. 그게 늘 내가 원하는 삶이었다.


내 머리 어때?


나는 나의 삶을 살아도 되는지 몰라 늘 누군가에게 묻고 확인받으려 했다. 그건 나의 고민에 누군가를 동참시키고 그로부터 내 존재를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그러다 우울증을 만나자 나는 내가 하던 거의 모든 일을 멈추고 ‘나는 누구인가’에 묻고 답했다. 나는 그때 내가 자유로운 영혼임을 확인했다. 그러자 난 누군가의 사랑을 받기 위해 애쓰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영혼을 꿈꾸는 나를 인정하고 허용해 주기로 했다.


지금도 머리 손질을 하다 가끔 내가 목격하는 것은 기존의 가르마가 너무 확고하여 원래 머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참하고 단아한 여성이 되려 애썼던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내게서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님을 확인하고 씩 웃는다.


원래 가르마로 돌아가면 내 머리는 지극히 평범해진다. 그런 머리를 마주할 때마다 다시 의존적이고 고분고분한 사람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고, 모범생의 전형적 삶으로 회귀해야할 것 같으며, 남들의 사랑을 받기 위한 그 틀 안에서 안전하다고 느끼는 그런 사람이 될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이내 지그재그 나다운 삐딱함을 가르마로 더한다. 누군가를 따르거나 누군가에게 의존하려는 걸 매일 거부하고 있음이 그런 내 헤어스타일에 반영되어 있어 참 재미있다. 그러고 보면 지금의 나를 둘러싼 외양을 구성하는 것 모두는 그냥 선택된 것이 없다. 다 내 정체성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제 난 누구에게도 어떤 머리일 때 내가 제일 예뻤느냐고 묻지 않는다. 언제 봐도 그냥 나다울 때가 제일 만족스럽고 제일 아름다움을 다름 아닌 내가 잘 알기 때문이다. 누구의 평가도 필요없다. 적당히 흐트러진 내 머리에 대해 누군가로부터 ‘멋있다’는 피드백을 받을 때면 약간의 미소를 지을 뿐이다.


내가 누군가의 사랑을 받기 위해, 혹은 누군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리고 때로는 누군가의 인정을 받기 위해 어떤 틀에 머무르려는 삶을 버리자, 나는 내 헤어스타일에서도 결정권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내 머리는 나의 정체성을 표현해주는 가장 나다운 스타일로 정착하게 되었다.


머리 어떻게 해 드릴까요?


언젠가부터 난 미용실에서 이 질문을 받은 적이 없다. 자리에 앉으면 딱 내가 원하는 대로 내 머리를 해주신다. 물론 내가 가는 곳은 청담동 유명 헤어샵이 아니다. 원장님이 직접 샴푸해주시는 우리동네 작은 미용실. 내 머리는 그곳에서 만들어졌다.


나의, 나에 의한, 나를 위한 헤어스타일.


내면의 나를 표현해 주었기에, 외적으로 내면의 나를 확인할 수 있기에 나는 내 헤어스타일을 사랑한다.

















이전 04화 데이트 룩의 정답
brunch book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굿바이, 샤넬백!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