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독박 육아? 독점 육아!

by 파파북쓰

어느 순간부터 독박 육아라는 단어를 많이 접하고 있다. 보통 독박이라고 하면, 화투 놀이인 고스톱에서 많이 듣는다. 먼저 점수를 얻어 ‘고’를 부른 사람이 이후 다른 사람의 득점으로 인해 혼자서 나머지 사람의 몫까지 물도록 하는 법칙(출처. 네이버 국어사전)을 독박이라고 한다. 쉽게 말해 혼자 뒤집어쓰거나 감당한다는 말이다.


흔히 육아에서는 아이를 혼자 돌보는 것을 독박 육아라고 표현한다. 듣기에는 2010년쯤부터 이 말이 유행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제는 흔히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독박이란 단어가 부정적인 느낌이 들어서 ‘독박 육아’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외벌이하는 집의 아빠들을 ‘독박 회사원, 독박 돈벌이, 독박 경제활동’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아마 뉴스나 연예인같은 사람이 이런 말을 쓰면 여기저기서 달려들 것이다. 하지만 독박 육아라는 말에는 관대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집안일과 육아에는 관심이 없는 남편들 때문에 ‘독박 육아’라는 말이 생기지 않았을까라는 추측을 해본다. 내가 알기에는 많은 남편들이 육아에도 신경쓰고 집안일도 많이 하고 있다. 단지 주된 양육자가 엄마일 뿐이라고‘독박 육아’라고 하는 것은 아빠입장에서 불편하지 않을까.


우리 집처럼 아빠가 아이를 돌보고 엄마가 경제활동을 한다고해도 마찬가지 기분을 느낄 것 같다. 독박 육아라는 말로 육아를 하지 않는 부모가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면 좋겠다. 우리 집은 내가 육아를 하고있지만, 그렇다고 아내가 육아를 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놀기만 하는 것도 아니다. 아내도 우리 가정을 위해 열심히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데, 그것도 육아의 한 부분이다. 아이에게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도 육아가 아닌가. 직접적인 도움은 아닐지라도 간접적인 도움도 도움이다. 막상 경제적으로 힘들면 육아에서도 걸림돌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경제활동도 육아라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퇴근 후, 주말에도 아이들과 함께 놀고 못한 집안 일을 하기도 한다. 이런 사람을 앞에 두고 독박 육아라며 으름장을 놓는다면 기분이 나쁠 것이다. 으레 독박 육아라는 단어가 통용된다고 자꾸 사용하는 것보다는 다른 단어를 쓰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입장이 바뀐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를 낳았을 때 나는 월급쟁이였고, 아내는 휴직하고 아이를 돌봤다. 퇴근하고 집에 와서 최대한 아이와 놀아주려고 했고 씻기고 밥먹이고 남은 집안 일도 많이 했다. 하루종일 일하고 집에 오면 피곤해서 그냥 쉬고 싶었지만 아내도 고생했을 것이라 생각하여 쉽게 쉬지 못했다. 집에만 있는 아내가 더 편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했다. 사람들에 치이고 일에 치이며 스트레스 받는 나보다 집에서 아기만 보는게 덜 힘들거라 생각한 것이다. 아내가 아기와 있으면서 있었던 어려움을 이야기해도 100% 공감하지 못한 적도 많다.


입장이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역지사지’를 몸소 체험했다. 편할 것만 같았던 아이와의 시간은 마치 지옥문이 열린 듯했고, 집안 일은 끝이 없었다. 아이는 내 마음과 달랐고, 내가 세웠던 계획에 따라오지 않았다. 럭비공처럼 튀는 아이를 쫓아다니다보면 내가 준비한 시간은 없던 일이 되었다. 집안 일인 설거지, 빨래, 청소, 정리 등은 끝이 없었다. 끝도 없지만 그것을 할 여유가 없던 날도 많았다. 육아를 하기 전에는 퇴근하고 집에 왔을 때 어지러져 있는 방, 쌓여있는 설거지 등을 보면 답답할 때도 있었다. 하루종일 집에 있으면서 저거 하나 할 시간이 없었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 당시에는 집도 좁았기에 잠깐만 신경쓰면 될 일이라 생각했다. 이런 걸로 싸우지는 않았지만 이해하지 못한 날이 많았다. 막상 내가 해보니 집안 일은 해도 티가 나지 않고, 끝이 없었다. 빨래를 한지 얼마 안된 것 같은데 세탁물은 계속 쌓였다. 설거지를 했는데 뒤돌아보면 그릇이 쌓였다. 분명 책을 제자리에 꼽고 청소기를 돌렸는데 순식간에 어질어져 있다. 지옥에 갔다온 뫼비우스의 띠처럼 미친듯한 제자리 걸음이었다. 집이 좁아서 그런가라는 생각도 해봤지만, 오히려 집이 넓어질수록 제자리 걸음은 오래 지속됐다. 직접 경험을 해보니 아내의 지난 행동들과 말이 이해가 됐다. 나를 키운 어머님을 존경하게 됐다. 언제나 정리되어 있고 깨끗한 과거의 우리 집이 엄청난 노동의 결과였다는 걸 몸소 경험하니 어머니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갓난 아이와 함께 고생했을 아내에게도 고마웠다. 많이 내색하지 않았지만 얼마나 큰 스트레스를 가지고 있었을지 가늠하기 힘들었다.


서로 힘든 그 시기에 나도 ‘독박 육아’라는 말을 하곤 했다. 독박이라는 말을 통해 내 힘듦을 정당화하고 나타내고 싶었던 것 같다. 계속 쓰다보니‘나 독박썼으니까 건들지마’, ‘나 좀 이해해줘’, ‘너만 편한 건 안돼’, ‘너도 독박써봐’라는 마음들이 생겨났다. 이런 상황에 대해 억울한 마음도 들었지만 아내가 하고 있을 회사에 대한 고충도 생각해보면서 많이 배려를 하려고 했다. 집에서만큼은 웃을 수 있기를 바라며, 회사에서는 사회생활에 집중할 수 있기를 바랐다. 사회생활의 어려움을 나도 알기에 가능했다. 피곤해서 집에 오자마자 잠드는 아내를 보면서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피곤했을까 안타까웠고 주말에도 피곤해하는 모습을 보며 휴식을 주기도 했다. 아내도 육아의 어려움을 알기에 많이 도와줬다. 서로가 욕심을 부리지 않고 역지사지를 경험했기에 배려할 수 있었고 아이 둘을 잘 키울 수 있었다. 차츰 내 입에서 독박 육아라는 말도 사라졌다.


서로 입장이 바뀌는 경험을 한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사용하는 단어를 통해 관점을 바꾸는 것도 좋다. 그 단어는 ‘독점 육아’다. 대부분 처음 들어본 단어가 아닐까. 이 단어는‘독점육아, 독박육아 그리고 나눔육아(박창홍 강사)’라는 강의를 통해 알게 됐다. 관점을 바꿔 육아를 바라보라는 것이다. 보통 아내는 ‘알아서 해줬으면’, ‘하기 싫은 건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남편은 ‘육아는 어렵다’라고 생각을 한다. 그러면서 서로 욕심을 부리고 욕심이 다툼이 된다. 이런 어려움을 관점을 바꿔 바라보면서 이겨내는 것이다.


독박 : 왜 나 혼자서 애들을 보고 놀아주고 밥해줘야 하는 거지?

독점 : 애들이 커가는 이 시기를 나만 보고 있구나. 남편(아내)은 회사에서 일을 하느라 못보니까 얼마나 아쉬울까


현 상황을 어떤 안경을 쓰고 바라볼 것인가에 따라 독박이냐 독점이냐로 나눠진다. 긍정적인 부분을 바라보면서 독점이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다. 자녀가 커가는 모습을 나만 독점할 수 있는 것이다.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자란다. 성장속도가 남다르다. 쑥쑥 커가는 모습, 발전하는 모습을 내 눈에 담고 기억할 수 있다는게 얼마나 큰 축복인가. 첫째가 처음 걸었을 때가 생각난다. 2m 정도 되는 거리를 혼자서 걸어오는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열심히 걸어 내 품에 안길 때를 직접 마주했기에 아직도 기억에 난다. 아내가 쓴 일기나 동영상을 통했다면 생생하게 기억이 남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이 때 아내와 함께 있었기에 독점은 아니지만 아내가 없었다면, 내가 없었다면 그것을 마주한 사람은 그 순간을 독점한 것이다. 이렇게 관점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달라질 수 있다. 나는 독점육아라는 말을 듣고 많은 위안을 받았다. 이미 아이들이 많이 컸지만, 앞으로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하기에 힘들 때도 많을 것이다. 내 관점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긍정적이고 평생 간직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큰 위로와 위안이 되었다. 육아는 어렵다. 그렇기에 긍정적인 관점, 해피바이러스를 불러올 단어를 사용한다면 어려움이 한층 덜 할 것이다. 나는 ‘독박 육아’보다는 ‘독점 육아’가 좋다. 독점 육아라고 생각하면 기분도 좋고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한결 나아진다.


오래 전에 써놓은 글을 올립니다

꾸준하게 글을 쓰려는 시도는 어느새 멈췄네요.

써야지 하면서 알썼던 글을 다시 써보려합니다. 짧은 글이라도 하나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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