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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rikim Jul 26. 2021

다수결이라는 폭력

강자의 잘못된 정치는 약자에게 폭력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본인이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를 키우는 여성인 나는 꽤 사회적 약자에 속하지 않나?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뉴스가 끝나갈 무렵에서야 겨우 비춰주는 힘든 이웃들의 현실을 볼 때면 내가 힘든 건 정말 아무것도 아니고, 나는 꽤 '잘' 살고 있는 것이었다며 반성하곤 한다.


뉴스에서 헤드라인을 뽑는 일 조차 다수에게 큰 화제가 되는 것들이 먼저 나오게 된다. 판자촌의 폭염보다 여름철 전기료 인상이 먼저 소개되기도 한다. 다수의 관심을 받는 뉴스에 밀려 소수의 인권이 걸린 뉴스는 스포츠뉴스의 바로 앞에 속전속결로 소개되고 넘어가기 일쑤다. 소수에게는 언론에 제보할 힘도 시간도 없고, 무상으로 자기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 소수의 인권을 보호하는 사람들의 힘도 한계가 있다. 본인의 삶이 퍽퍽해지고 소수를 위해 내미는 손길도 점점 줄어든다.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의해 굴러가는 사회. 매체는 다수가 원하는 것들을 제공하고, 시청률로 발생하는 수익을 취한다. 양질의 미디어를 제작할 수 있는 시간과 자본이 주어진다. 다수를 향하는 매체는 날로 그 힘이 강해지고, 소수를 향한 노력들은 점점 흩어지고 약해진다. 매체로 정보를 수집하는 요즘 사람들에게 소수의 열악한 상황을 알리기는 이처럼 어렵고 더 어려워진다. 


나에게는 약자를 위한 복지시설보다 내가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마트나 쇼핑몰이 더 중요하다. 퍽퍽한 삶 속에서 한 푼이 아까운 내게 마트는 질 좋은 식료품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어 합리적 소비를 할 수 있게 해 준다. 약자 복지시설은 내가 이용할 수 있는 게 아니라면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당연히 복지시설 이용객보다 마트 이용객이 현저하게 많고, 다수의 사람들은 복지시설보다 마트를 선호할 것이다. 약자 복지시설의 건립을 반대하기 위해 가로수마다 현수막이 걸리고, 다수의 사람들이 서명운동에 동참한다. 이런 다수의 움직임은 그 지역의 선출직 공무원에게 큰 임팩트로 다가온다. 다수가 원하는 공약을 내세울 때 득표할 확률이 높을 것이며 정치인의 생명을 유지하려면 다수를 위한 선택을 하게 된다. 한 지역의 정치는 그렇게 다수가 '잘'살 수 있는 방향으로 또 흘러간다. 


강자만 남은 사회에서 나는 계속 다수의 강자에 속해있을 수 있을까? 다수결의 냉정하고 차가운 시선이 화살이 되어 언제고 나를 향할 수 있다. 내가 '잘' 살기 위한 정치는 결국 미래의 나에게 또는 내 가족에게 독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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