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기능이 우선이야.
나는 4차 산업혁명 이후 기술의 발전과 맞물려 디자이너로써 길을 잃었음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디자이너로 살아온 내 시간에 대한 자존심에 그간 잘 따라가고 있다고 정신승리해왔지만 최근 숨이 차올랐고 마침내 인정해버렸다. 아직 인생의 1/3 정도밖에 (발전된 의학기술이 나를 100살까지 살게 해줄거라 믿으며) 살아내지 않은 나는 2/3을 준비해야하고 제2의, 제3의 직업은 생각해 본 적 없는 나는 디자이너로써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에 내 시간을 조금 할애해 보기로 했다.
그 중 한 챕터로 과거로부터 배우기를 시작해보려한다. 역사는 반복된다라는 말이 여기에도 통할지는 모르겠지만 앞길이 캄캄한 내게 작은 이정표가 되어 줄 것이라고 믿어본다. 역사는 기록된 과거이며 상대적으로 성공적인 흐름들만 기록되기 마련이다. 평균이 실종된 현시점에 얼마나 적용이 될지, 현대의 디자인들은 후대에 어떤 역사로 기록될지는 알지 못하지만 결국 어떤 흐름들이 중점이 되었는지는 알아볼 수 있을 것 같다.
1. 산업혁명
디자인이라는 개념은 산업혁명과 함께 등장하였다. 디자인은 라틴어 데시그나레가 그 어원이며 그리다, 설계하다 정도의 뜻을 갖고 있다. 물론 산업혁명 이전에도 그려온 것들은 많았지만, 흔히 디자인사에서 디자인의 태동을 산업혁명을 기준으로 두는 이유는 기계에 의한 대량생산이다.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연료에 의해 자동으로 움직이게 된 기계로 찍어내는 제품들이 만들어지면서 그에 맞추어 설계되고 그려진 그림들이 디자인이 된 것이다. 요즘에도 BX 기획을 할때는 인쇄에 용이하고 어디에나 적용이 가능하도록 디자인을 하는게 산업혁명부터 이어져내려온 역사의 반영이라 할 수 있겠다. 분명히 모바일을 통해서 총천연색으로 볼 것이지만 1도로 도식화를 만들어 두어야 어디에나 찍어내어 사용자로 하여금 더 다양한 BX를 경험할 수 있게한다.
2. 반대운동
예술의 고결함을 무시하고 있다며 찍어내는 방식으로 만들어낸 조약한 산업혁명의 결과물들을 비판했다. 허나 4차산업혁명까지 거치며 우리는 아주 세밀한 부분까지 기술을 통해 대량으로 양산해 낼 수 있게 되었다. 문제는 취향의 다양화로 다시금 가내수공업 방식의 다품종 소량생산된 내 취향을 꼭 맞춘 제품들이 인기를 끌고 있기도 하다. 대량생산된 제품에 비싸기도 하지만 현대의 사람들은 본인의 취향에 부합하는 제품들을 구매하는데에 큰 돈을 쓰기도 한다. 물론 18세기보다 경제적인 여유가 사회 내에 보편화 되어있기 때문에 가능한 선택이다.
3. 예술사조의 변화
사물을 새로운 시선에서 해체하고 다시 조립하고자 하는 예술가들의 고뇌로 큐비즘 등의 새로운 사조가 흥행하였다. 또는 사회적인 이유에서도 예술가의 그림들이 그들이 겪어온 시간을 담아낸다. 지금은 취향의 문제로 갈리는 것들이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다. 아니지. 어쩌면 지금의 디자인들도 시간이 흐른뒤에는 그 어떤 멋드러지게 이름붙은 사조로 평가받고 있을지도 모르지. 예술사에 한 획을 그은 뱅크시처럼.
4. 바우하우스
기능적인 디자인의 종점. 근현대디자인 시기의 시작으로 생각된다. 물론 내 집 인테리어를 아르데코 스타일로 꾸미고 싶다하더라도, 디터람스의 디자인을 비난할 사람은 없어보인다. 그렇다면 지금 시점은 어떤가. 바우하우스 이후의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였는가. 라고 묻는다면 잘 모르겠다. 여전히 우리는 기능을 강조하고 기능에 충실한 디자인을 해나가고 있다. 그 기능이라는 범위가 매체의 다양화덕분에 디테일하고 차마 디자이너가 학습되지 못한 새로운 기능이 출연하여 머리를 복잡하게 하고있을 뿐이다.
5. 그래서 어떤 기능을 필요로 하는 디자인이냐고.
생활속의 디자인들은 어떠한 기능을 추구하고 있을까. 인력시장의 구인프로세스에 대해 깊게 고민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저런 디자인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으며, 취향에 따른 디자이너의 의견이 기능보다 상위에 있을 수 없기 때문에 계속해서 UX에 의거해 이런식으로 디자인이 될 수밖에 없다. 근본적인 기능과 유저의 경험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해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