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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rikim Jul 27. 2023

이직 6개월

30대 중반 임출육 경단녀 디자이너 생존기

나는 디자인만으로는 먹고살기 힘든 연차와 연령에 도달했다. 철야+임금미지급의 최악의 설계사를 뛰쳐나와 다신 건축쪽 쳐다도 안본다고 냅다 웹으로 전향해서 꼬인 경력에 임출육 겪느라고 다시 프리랜서 전향하고, 주어지는 일에 최선을 다하다보니 전공이랄게 없어진거다.

나이는 30대 중반, 프로젝트실무를 진행해야 하는 과장급 나이인데 경력은 <이거저거 안해본거 없음~>이지만 내가 보기에도 심도가 없어보였다. 그래서 길을 잃었다고 생각했으며, 디자이너로 살아가야하는 내 미래에 대해 계속해서 걱정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공인중개사를 하기엔 디자인이 주는 즐거움을 포기할 수 없었다.


요즘 젊은 MZ세대들은 디지털 노마드 한다고 다들 회사밖으로 뛰쳐나가는데 난 역시 기성세대인가 회사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자소서쓰고 포폴채우는 일도 그랬지만 인스타그램계정운영은 필수라길래 또 열심히 콘텐츠 짜는 생활도 했다. 면접도 보고 최종합격도 하고 내 자존감을 세워줄 일들은 꽤나 많았지만 쉽게 이직처를 결정할 수는 없었다.


현실적으로 많은 디자이너들 사이에서 떨어지는 스펙으로 디자이너로 살아남으려면 조금 섬세하게 방향을 설정할 필요가 있었고, 그 길을 위한 발판이 되어줄 만한 이직처가 필요했다.


내게 필요한 경력은 기획과 마케팅이라고 생각했다. 내 경력에 이제와서 대기업, 중견기업의 디자인팀의 과장급으로 점프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회사가 디자인팀, 디자인실을 갖고 있으려면 규모가 어느정도는 있어야 하고, 아쉽게도 그 정도 규모의 회사에서는 나를 원하지 않는다. 눈을 한단계 낮춰보면 어떨까? 그런 회사에서는 디자인팀이 없고, 디자이너의 최종 직급은 과장에서 멈추게 된다. 작은 회사여도 서비스 혹은 제품에 대한 효과적인 판매와 매출증대를 위해 마케팅팀은 두는 경우가 있지만 그 안에 디자이너의 파트가 있는 것이 대부분이라 그 팀을 리딩 하려면 기획력, 마케팅스킬이 필요할 수 밖에 없다.


자소서를 쓰면서 어려웠던 부분이기도 한데 또렷한 수치 없이 내 디자인에 대해 성과를 설명해내기가 어려웠다. 마케터의 경우 본인이 기획한 프로모션을 통해 일정 비율 판매를 증가시켰다는 성과를 쉽게 얘기하지만 그 프로모션에 필요한 디자인물을 그저 마케터가 떠먹여 주는대로 시각적인 부분만 디자인했다면 그 프로젝트의 성공에 대해 쉽게 내 것이라고 말하기가 어렵다.

난 기획력이 있는 디자이너, 시각적으로 사람을 홀려내 매출에 큰 임팩트를 줄 수 있는 기획자로 성장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직처에 대한 목표설정을 해 두었고, 그에 걸맞는 회사를 찾기위해 자소설을 쓰고 계속해서 면접을 봤다. 내 장점은 과몰입인데 (infp 특) 인하우스 디자이너에 특화되어있다고 생각하는바 마케팅팀이 꾸려져 있는 규모의 회사에 들어가고자 했다.

회사의 규모에 따라 팀의 구획은 조금씩 달랐다. 경영/마케팅 팀이기도 했고, 기획/마케팅 팀이기도 했다. 가장 희망했던 업종은 병/의료였는데 엔데믹 시대에 꼭 필요한 분야였고, 정밀한 기획과 디자인이 필요한 분야라 꼭 배워보고 싶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연락은 오지 않았다. 기회가 된다면 현 업종에서 경력을 쌓고 재도전 하고도 싶다.


내 이직처의 업종과 그 업종의 매력, 디자이너가 하는 일에 대해서는 추후 설명하겠지만 이직 6개월이 넘어가는 지금, 나는 회사의 매출증대를 위한 마케팅 포인트들에 대해 디렉팅을 맡아서 하고있다. 카피를 짜는 일이나 디자인물에 대한 컨셉을 세우는 일을 하고 있다. 아주 재밌고 아주 힘들다. 배울게 많다. 시각적인 실무 작업보다 업체협의, 타부서협의, 파워포인트에 기획서, 보고서를 제작하는 일을 더 많이 하게된 것 같지만 분명히 성장하고 있음을 느낀다.


이직 1년이 될 무렵, 내 기획과 디자인에 대한 성과를 매출에 대입해 끝내주는 숫자로 표현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 물론 나 혼자 한 것은 아니고 우리 팀이 한 것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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