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라는 말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뭔가 애매한 것 같아서. 시작은 했는데 끝까지 해보지 않은, 매듭짓지 않고, 뭔가 제대로 한 것 같지 않아서.
그래서 매사에 ‘이게 최선인가?’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 대답이 ‘맞아’ 일 경우 거기에서 오는 흡족함, 무엇보다 후회라는 찌꺼기가 남지 않아 좋은데, ‘아니’인 경우 내가 그 일을 하기 위해 쏟은 작은 노력까지도 다 부정하게 된다.
0 아니면 100. 중도를 모르는, 이걸 내 성향이라 할지 내 기질이라 할지 환경적으로 형성된 내 성격이라 할지 잘 모르겠지만, 그런 나에게 요즘 ‘이렇게 계속 살아가는 게 맞나?’ 하는 의문과 변화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무엇에든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 통할 때도 있었다.
최선을 다했더니 대학 생활 내내 과탑을 유지했고 (이건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다), 최선을 다했더니 이 나라 저 나라로 떠나 원하는 여행과 자원봉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최선을 다했더니 다른 사람들은 여러 번 떨어진다는 시험에도 한 번에 합격했고, 최선을 다했더니 내 손이 거치는 대부분의 일에 인정받았다.
인간관계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보다 남을 먼저 두고 생각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내 말과 행동에 주의를 기울이는 노력을 가치롭게 여겼고, 적절한 때에 상대방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이 나의 큰 기쁨이었다. 그렇게 모든 순간이 진심이었고, 그 진심이 통하는 듯했다.
특출 나게 타고난 능력은 없지만, 마음먹은 방향에 노력과 책임감을 더했더니 이루어진 일들이었다. 그래서 “그래, 뭐든 하려면 이렇게 제대로 해야지“ 가 내 인생을 이끌어가는 한 줄이 되었다.
그러나 그 한 줄이 점점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아무래도 내 나이의 앞 숫자가 바뀌어서 그런지 모르겠다. 체력이 예전 같지 않다. 좋아하는 드라마는 첫 회부터 마지막 회까지 밤을 새워서 끝장을 내고 아침으로 라면을 먹어도 끄떡없었던 때가 있었지만, 이제 밤을 새우는 것은 응급상황이 아니라면 일상에서의 옵션이 아니다.
아침형 인간이라 일찍 일어나는 것에 늘 자신 있었지만,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출근하는 새로운 직장에 아직 적응이 안 된다. 어디 앉기만 하면 어디 기대기만 하면 그렇게 눈이 감긴다. 마치 저녁 드라마 보려고 소파에 앉기만 하면 잠에 들던 우리 엄마처럼. 결국 쉬는 날 아침이면 아이가 내 머리끄덩이를 잡아끌어야 겨우 일어난다.
이 와중에 집안일은 끝이 없다. 방금 쓸고 닦았는데 뒤 돌아보면 먼지. 방금 정리했는데 아이의 작은 손짓 하나에 온 사방이 전쟁터. 방금 설거지 끝냈는데 싱크대에 다시 쌓인 아슬아슬한 그릇 탑. 그래도 어떻게든 끝내겠다고 용쓰다가 지치고 예민해져서 퇴근하고 기분 좋게 들어온 남편까지 힘 빠지게 만들었던 날은 셀 수 없다.
사는 나라가 바뀐 것도 내가 느끼는 변화에 한 몫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직장도 다니고, 동네 분들과 이웃하며 살고, 가족과 틈틈이 좋아하는 여행도 다닐 수 있을 정도의 여유가 있지만, 뭔가 아직 ‘외국인’ 같다. 너무 다양한 인종이 섞여 사는 곳이라 내가 꼭 배우고 따라야 해야 하는 특정한 문화가 없어서 편한 것도 있지만, 정을 붙이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아직 내가 이곳의 한 구성원이라 느껴지지 않는다. 최악은 한국에 들어가도 내 스스로가 이방인처럼 느껴진다는 것.
인간관계라고 뭐가 다를까. 마음 가득히 가깝다고 생각했던 사람들과의 연락도 이제는 뜸하다. 애매했던 관계들도 정리하니 친구 목록이 한눈에 다 들어오는데 그마저도 다들 해외 여기저기에 흩어 살고, 비슷하게 육아하느라 바빠서 몇 달에, 아니 일 년에 한 번 겨우 소식을 전한다. 새로운 친구를 조금씩 사귀고는 있지만 아무리 영어를 할 수 있어도 마음이 다 전달되지 않는 아쉬움이 있다. ‘구수하다’라는 말이 직역될 만한 단어가 없어 그 느낌을 전하지 못했을 때는 얼마나 개탄스럽던지. 진짜 그 국물이야 말로 찐이었는데.
그래도 단연 가장 ‘제대로‘ 안 되는 게 육아가 아닐까 싶다. 몸이 힘들고 이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아예 손에 잡히지 않는 느낌이랄까. 매 순간 통제 밖에 있는 아이가 가만히 있지도 않으니 어디 다칠까 무서워 염려하다 결국 화를 내고 아이가 울면 같이 속상하고 뭐 그러다 엉덩이 털 난 사람들처럼 둘 다 웃고 금세 다시 소리 지르고. 이런 짜릿한 일상이 또 있을까. 아이를 재우는 것으로 하루 육아의 끝맺음이 나름 있지만, 0-100의 범주로 평가해 보았을 때 애매하게 67, 43 뭐 맨날 그런 느낌이다. 다들 나같이 육아하고 있을까?
그렇게 매일 없는 에너지도 다 짜내서 나에게 맡겨진 것을 ‘제대로’ 해보겠다고 노력했지만 그 애씀이 어디에도 닿지 않는 것 같았고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힘없이 쓰러지기 일쑤였다.
낙담해 있는 나에게 남편이 말했다.
“그 정도면 정말 충분해. 당신에게 무리되지 않을 만큼 적당히 해. 그래도 괜찮아.”
처음에는 이 말이 나를 과소평가하는 것 같아 싫었다. 아니 할 수 있다는데 그 의지를 뚝하고 꺾어버리는 것 같아서 “당신이 하고 싶지 않은 거면서 나도 하지 말라고 하지 마”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러나 지나간 시간들을 천천히 곱씹어보며 깨달았다.
”아, 내가 인정하지 않고 있었구나.“
나를 둘러싼 환경, 관계, 역할이 다 달라졌는데 나만 제자리였던 것이다. 한결같은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 생각해 할 수 있는 노력을 쏟아부었지만, 지금 내 모습은 고집부리는 것에 불과했다. 그래서 남편의 조언대로 내가 지금 그리고 오늘 한 것이 예전만큼 내 성에 차지 않아도 나름의 의미대로 ‘충분하다’라고 생각을 바꾸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이제는 나의 ‘적당히’가 나의 ‘최선’이라는 새로운 정의가 내 삶에 자리하게 되었다.
예전의 나로부터 도태된 것이 아닌 나는 새로운 삶의 속도에 맞춰 변해가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