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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쉬의 인사이트 May 15. 2021

만국의 햄이여 단결하라.
숙성의 맛을 만끽하는 망원동

사진=소금집델리

'소금(salt)'. 화학명은 염화나트륨, 분자식은 NaCl. 학창 시절에 배웠다. 나트륨과 염소가 같은 비율로 결합돼 이뤄지는 정육면체 결정이다. 우리 사회의 식생활 특성상 염분 과다 섭취를 염려하는 목소리가 많지만 소금은 인간이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수인 무기질이다. 소금은 인류와 오랫동안 불가분 관계를 맺고 있다. 고대 종교의식에서 소금은 중요한 제물로 사용됐고, 변하지 않는 소금의 성질 때문에 계약을 맺거나 충성을 맹세할 때 소금이 징표로 사용되곤 했다. 로마에서는 군인이나 공무원에게 봉급을 소금으로 줬다고 해서 영어에서 급여를 의미하는 샐러리(salary)는 소금(salt)이 어원이라고 할 수 있다.


소금의 용처는 이처럼 다양하지만 가장 크게 진가를 발휘하는 분야는 요리에서가 아닐까 싶다. 단맛이나 신맛 등과 달리 다른 재료로 대체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짠맛을 내는 물질이 소금이다. 하지만 소금이 짠맛만 내는 건 아니다. 소금의 또 다른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식재료가 부패하지 않고 오래 두고 먹을 수 있게 도와주는 일이다. 소위 염장(鹽藏) 기능이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 소금이 없었다면 제철이 아닌 시기에 다양한 식재료를 맛보기 어려웠을 것이다. 소금이란 참으로 오묘한 신의 선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소금집 델리(SALT HOUSE DELI)', 음식점 이름에 '소금'을 붙일 정도로 이곳 메뉴는 소금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 집에서 맛볼 수 있는 요리는 소금을 사용해 만든 수제가공육을 베이스로 한 음식들이기 때문이다. '소금집'은 온라인을 통해 맛있는 수제 가공육을 만드는 집으로 입소문이 난 지 이미 여러 해가 됐지만, 망원동 뒷골목에 델리점을 오픈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식도락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빠른 속도로 새로운 맛집으로 호평받고 있다.

전용 주차장이 없어서 망원동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5분여를 걸어서 식당에 가야 한다. 평범한 주택가 건물 2층에 세 들어 있는 작은 가게였지만, 외견부터 특별한 맛집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식당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은 다음 많은 사람이 즐겨 찾는다는 몇 가지 메뉴를 주문해 맛을 보았다.


사진=소금집델리

샌드위치 종류인 '잠봉 뵈르(Jambon Beurre)' '파스트라미(Pastrami)', 그리고 '베이컨&에그 플래터(Bacon&Eggs Platter)'를 소개한다. 잠봉 뵈르는 바삭한 바게트 빵 사이에 제주산 흑돼지로 만든 햄, 부드러운 아메리칸 치즈를 끼워 넣은 심플한 샌드위치다. 담백한 햄의 맛과 부드러운 치즈, 바게트가 서로 조화를 이루며 맛을 잘 살려준다. 파스트라미는 살짝 산미가 있는 발효 빵 사이에 소금에 절인 소 어깨살 고기, 치즈, 겨자소스, 집에서 만든 피클 등을 넣어 만든 샌드위치다.


잠봉 뵈르와 파스트라미가 잠봉 뵈르보다 조금 더 촉촉하고 풍성한 맛을 지닌 샌드위치라고 할 수 있다. 두툼한 훈제 베이컨에 수란, 바삭한 감자가 곁들여진 베이컨&에그 플래터는 식사용으로도 좋지만 와인 안주로 함께하면 좋을 맛이었다. 소금집의 대표 요리들을 맛보면서 들었떤 첫 느낌은 '다시 오고 싶다'였다. 그동안 햄, 베이컨, 소시지 등 가공육보다 야채류를 즐겨온 저지만 소금집은 좋은 음식 맛과 편안한 분위기, 절제된 서비스, 정갈함이 이런 느낌을 들게 했지 싶다.


사진=소금집델리

가게 주인장은 동갑내기 두 사람으로 요리는 한국계 미국인인 조지 더럼 대표가 담당하고, 브랜딩과 마케팅은 장대원 대표가 책임을 맡고 있었다. 두 사람은 지금 요리를 놓고 공동으로 사업을 하고 있지만, 첫 인연은 음악, 첼리스트인 더럼이 어머니의 모국인 한국을 찾아왔다가 작곡을 하며 음악 활동을 하던 장 대표와 만나 의기투합해서 밴드를 결성했고, 이런 인연이 이어져 요리 사업고 함께하고 있는 것이다. 음식업을 함께하게 만든 동기도 앨범 제작비 마련을 위해서였다고 한다.


더럼 대표가 첼로 연주자이면서도 요리에 지대한 관심이 있어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요리학교를 졸업했다는 사실에 착안해 제대로 된 베이컨을 만들어보자며 시작한 게 음식 사업이었다. 이들이 생각한 '제대로 만든' 요리란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슬로 푸드(slow food). 패스트 푸드(fast food)의 대명사처럼 되어버린 햄, 베이컨, 소시지, 샌드위치의 고정관념을 완전히 바꿔버린 것이다. 햄이나 베이컨을 공장 기계식이 아니라 수제로 만들고, 서두르지 않고 충분한 시간을 들여 숙성시켜 맛을 낸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격'이 다른 패스트푸드라고 할 수 있는데, 장대표는 이를 '간편하게 즐기되 오랜 시간 정성을 들여 가공함으로써 시간이 주는 숙성의 맛을 음식에 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사진=소금집델리

소금집 요리에서는 '소금의 맛'이라는 걸 특별히 느끼게 해준다. 흔히 먹는 요리에 들어가는 소금은 주로 음식 간으로 배어 있는데, 이곳 요리에서 소금은 짠맛도 맛이지만 소금 자체가 주는 살아 있는 맛을 온전히 느끼게 해 준다. "소금은 재료가 상하지 않도록 해주지만 동시에 원재료 맛을 수면 위로 끌어올려주고 적절하게 숙성하도록 도와주는 기능을 한다." 요리를 책임지고 있는 더럼 대표가 소금을 중시하는 이유였다. 두 대표가 음식을 바라보는 관점이 비슷해서인지 이 집에서는 많은 패스트푸드 식당에서 볼 수 있는 서두름이 없다. 그보다는 맛있는 이국적인 음식을 즐기면서 여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이 집만의 강점이기도 하다.


음악과 요리, 언뜻 보기에 서로 먼 거리에 있어 보인다. 그러나 두 사람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면서 요리와 음악은 섬세함과 예리함, 창의성 발휘하는 측면에서 공통점이 많다는 생각을 했다. 평범함에서 평범하지 않은 것을 찾아내는 눈, 발상의 전환, 고객 요구를 읽어내는 예리함 등에 힘입어 이들이 음악에서뿐만 아니라 요리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성산동에 수제 가공육 공방을 두고 있고, 망원동에는 소금집 델리라는 음식점을 오픈해 자신들이 만든 가공육과 어울리는 요리를 선보인다. 많은 분이 음식업에 뛰어들지만 성공하는 사람은 극소수인 요식업 시장에서 장 대표와 더럼 대표는 차별화와 틈새시장을 잘 공략해 순항하고 있다. 모든 건 하기 나름이라는 교훈을 새삼 배운다.


소금집델리 망원(SALT HOUSE DELI)
장소 서울특별시 마포구 망원1동 5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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