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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쉬의 인사이트 May 16. 2021

제 삶 자체였으니까

영화 <베일리 어게인>

현재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26.4%가 반려동물과 함께 살고 있다고 한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반려동물을 기르는 가구는 591만 가구에 달한다. 2019년 기준으로 반려견 수는 약 598만 마리, 반려묘 수는 약 258만 마리로 추정된다. 한 집에서 여러 마리를 기르거나 개와 고양이를 같이 기르는 가구가 있으므로 대략 반려동물 인구 1500만 명 시대를 맞이한 것으로 추론해 볼 수 있다. 계속해서 출산율이 감소하고 1인 가구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반려동물과 함께 생활하는 문화는 더욱 가파르게 확산될 것으로 예상된다. 사람에게서 느끼는 온기와 정서를 반려동물에게서 찾고자 하는 이런 경향은 시대적 흐름이 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가족처럼 정을 나누며 살갑게 지내던 반려동물이 사고를 당하거나 병에 들어 혹은 노환으로 갑자기 죽었을 경우, 주인이 느끼는 상실감과 괴로움이 너무 크다는 데 있다. 개나 고양이는 아무리 좋은 것을 먹이고 정성껏 길러도 사람보다 현저히 수명이 짧기 때문에 언제고 죽음을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개와 고양이의 수명을 평균 15년으로 가정했을 때 위 통계를 대입해 보면 연간 약 57만 마리의 반려견과 반려묘가 사망하는 셈이다. 사랑하는 반려동물이 죽은 뒤에 경험하는 충격과 고통 등 정신적 후유증을 펫로스 증후군(Pet Loss Syndrome)이라고 한다.


주로 나타나는 증상은 좀 더 잘 돌보지 못했다는 죄책감, 죽음 자체에 대한 부정, 죽음의 원인에 대한 분노, 끊임없이 이어지는 슬픔 등이다. 이런 증세가 계속되면 우울증, 불안감, 불면증, 대인기피증 등이 나타나면서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겪게 된다. 이를 가볍게 생각해 제때 대처하지 않으면 증상이 악화할 수 있다. 보통 2~3개월 정도 애도 기간이 이어지지만, 1년 이상 이런 증상이 지속되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는 반드시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증상이 아주 심하면 복합 비애(Complicated Grief, 사별 후 나타나는 정상적인 애도 과정을 벗어나 지속적인 심리적, 신체적 부적응을 야기하는 과도한 비애 반응) 또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생명을 위협할 정도의 극심한 스트레스를 경험하고 나서 발생하는 심리적 반응)로 발전할 수 있다. 극심한 고통을 참지 못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다. 반려동물이 인간에게 미치는 정서적 영향이 어느 정도기에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아주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 사람은 예쁘게 생긴 강아지나 재롱떠는 고양이를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만지고 싶고 안아주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사랑스럽기 때문이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우울할 때조차 그렇다. 이는 성신 건강에 대단히 좋고, 정서적 치유에도 도움이 된다. 미국 워싱턴주립대학교의 한 연구에 따르면 반려동물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가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서적 안정감을 느끼게 해 주기 때문에 같이 있기만 해도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효과가 생기는 것이다. 정신적으로만 효과가 있는 게 아니다. 신체적으로도 도움을 준다. 반려동물과 함께 정기적으로 산책을 하거나 공원에 나가 운동을 하고, 반려동물에게 먹이를 주든가 목욕을 시키기 위해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면 보호자인 사람에게 이로움을 준다. 뿐만 아니라 질병 예방에도 도움을 준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에 따르면 반려동물을 키우면 차분한 감정과 유쾌한 기분으로 인해 자연스레 혈압이 낮아지고 콜레스테롤이 감소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펫 세러피(Pet Therapt), 즉 동물 매개 치료(Animal Assisted Therapy)가 새로운 치료법으로 각광받고 있다. 애완동물 또는 반려동물을 이용해 사람의 질병을 치료하는 체계를 일컫는다. 애교 많고 깜찍한 반려동물과 함께 생활하게 되면 삶에 대한 의욕과 자신감을 잃었던 환자가 다시 이를 되찾을 수 있다. 또한 스스로 반려동물을 돌보고 용변을 치우면서 자신의 삶에 대한 의미와 가치를 재발견하기도 한다. 주변 사람에게 상처를 입었거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사람들을 돕는 치료 방법으로 좋은 대안이 되고 있다.


이처럼 생명과 감정을 가진 반려동물은 무생물이나 다른 존재가 줄 수 없는 특별한 정서, 즉 감동, 기쁨, 위안, 공감 등을 줄 수 있는 대상이다. 오래 같이 지내다 보면 당연히 가족 같은 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별이 힘들고, 죽음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프랑스 브르타뉴 쉬드 대학의 객원 연구원인 심리학 박사 세르주 치코티는 '인간과 개, 고양이의 관계 심리학(원제: Pourquoi les gens ont-ils la meme tete que leur chien?)'이라는 책에서 반려동물이 죽었을 때 보호자가 느끼는 감정을 남자는 가까운 친구를 잃었을 때와 같은 고통을, 여자는 자녀를 잃었을 때와 같은 고통을 느낀다고 표현한 바 있다.


반려동물이 죽은 다음 상실감을 빨리 떨쳐 버리기 위해 서둘러 다른 반려동물을 입양하는 것은 좋지 않다. 시간을 가지고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 어린아이의 경우 반려동물이 죽은 후 곧바로 다른 동물을 데려왔을 때 생명의 가치나 죽음에 대해 별 것 아닌 것으로 가볍게 생각할 우려가 있다. 가급적 전에 키웠던 반려동물과 같은 종의 동물은 피하는 게 좋다. 같은 종의 반려동물을 입양하면 죽은 반려동물에 대한 그리움이 더 증폭될 수 있다. 사람도 그렇듯 반려동물 역시 같은 종이라도 성격과 기질이 다 다르다.


자칫하면 죽은 반려동물과 살아 있는 반려동물을 자꾸만 비교하면서 기대와 실망을 반복하게 될 수도 있다. 늘 곁에 두고 정을 나누며 애지중지하던 반려동물이 죽음을 맞았을 때 느끼는 허전함과 쓸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언제까지나 침울한 기분으로 살 수는 없다. 더구나 펫로스 증후군에까지 빠진다면 결코 바람직한 상황이 아니다. 반려동물과의 삶과 죽음으로부터 배우고 깨달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을 배우고 깨닫는다면 반려동물과 함께했던 즐거운 시간과 반려동물의 죽음으로 인해 느꼈던 아픔들이 내 인생에 피와 살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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