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존성 인격장애를 지닌 사람은 스스로 인생에 대한 결단을 내리지도 개척해가지도 못한다. 누군가가 좋은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을까 기대하고, 인생까지도 타인에게 맡겨버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무방비 상태로 말에 귀를 기울이고 순순히 그 말에 따르게 된다. 멀쩡해 보인던 사람이 사이비 종교에 빠지고, 불법 다단계에 들어가고, 테러리스트가 된다.
심지어 그들 중에는 유복한 가정환경에 자라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사람도 적지 않다. 왜 그들은 자신에게 허락된 자유를 모두 포기한 채 꼭두각시처럼 조종당하는 길을 선택한 것인가. 우리는 흔히 나약한 마음을 지녔거나 타인에게 쉽게 의존하는 사람이 심리 조작에 잘 걸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성향을 지닌 사람이 심리 조작에 걸릴 확률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심리 조작은 보다 더 교묘하고 다양한 요인들의 복합 작용으로 이루어진다.
9.11 테러가 발생한 뒤 미국에서는 테러리스트가 자라온 환경과 그들의 심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그전까지 테러리스트는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고 사회에서 소외당하는 사람일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는데, 실제로는 풍족한 생활을 하며 대학까지 나온 이들이 많았다. 또, 지극히 평범해 보이던 사람이 갑자기 사이비 종교 집단에 들어가 가족과 연을 끊고 물건을 팔러 다는 경우도 종종 접한다. 최면에라도 걸린 듯 자신이 속한 집단의 목표를 이념으로 삼아 교주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다섯 가지의 공통점이 있었다. 늘 타인의 눈치를 보며 지나치게 상대방을 배려한다(의존성 인격장애), 모든 정보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다(높은 피암시성), 높은 이상을 꿈꾸는 한편, 마음속에 열등감을 지니고 있다(불균형한 자기애),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려 정신이 약해진 상태다(스트레스와 갈등), 주변에 믿고 의지할 대상이 없다(취약한 지지 환경).
이 중에서도 특히 의존성 인격장애 문제를 심리 조작에 걸린 사람들의 가장 큰 공통점으로 지적하고 있다.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결정하지 못해 상대방에게 판단을 의존하고 항상 타인의 안색을 살피는 것이다. 오히려 자기를 대신해 결정해줄 사람이 없는 상황에 불안을 느끼는 경우까지 발생한다. 특히 오늘날처럼 개인의 소외감이 심해지는 현대 사회에서는 불안정한 내면을 다스리기가 더욱 힘들다. 똑같은 환경에 높이더라도 심리 조작에 잘 걸리는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취약한 마음밭을 지닌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심리 조작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정보 입력을 제한하거나 과잉되게 한다(제1의 원리), 뇌를 지치게 만들어 생각할 여유를 빼앗는다(제2의 원리), 구제를 확신하고 불멸을 약속한다(제3의 원리), 사람은 사랑받고 싶어 하며 배신을 두려워한다(제4의 원리), 자기 판단을 불허하고 의존 상태를 유지시킨다(제5의 원리).
일본 정신의학계의 권위자인 오카다 다카시는 위와 같이 심리를 조작하는 다섯 가지 원리를 통해 심리 조작이 고도의 기술을 체계적으로 활용하여 이루어지고 있음을 밝힌다. 테러 집단이나 사이비 교단은 심리 조작을 위해 조직원들을 '터널'과 같은 환경에 가둬놓는다. 인민사원의 교조 짐 존스가 미국 가이아나에 세운 '존스 타운'은 그야말로 허울 좋은 수용소였다. 심리를 조작하는 사람들은 의존적이고 애정을 갈구하는 이들을 강하게 몰아세우며 점점 주체성을 상실하게 만듦으로써 다른 생각이 들어갈 자리를 차단한다. 심리 조작의 본질은 '속이는 행위'이다.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대부분 두려움과 증오, 불안 등이 내재되어 있다.
심리를 조작하는 사람들이 그러한 심리를 이용해 원하는 행동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파블로프의 가설은 극단적인 상황에서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을 하는 이들의 행동 원리를 설명해준다. 최면술과 암시로 대표되는 심리 조작은 초기에는 심리 질환을 치료하는 데 사용되었다. 프로이트 또한 치료에 최면술을 사용했지만 부작용을 염려해 해석을 통한 치료법을 개발하였고, 이것은 융을 거쳐 정신분석학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이후에 실제로 심리 조작 기술을 악용하는 이들이 나타났고, 그들은 사이비 종교를 만들거나 최면을 걸어 은행 강도가 되게 하거나 추기경을 세뇌시켜 권력 구도의 재설계를 꾀하기도 했다.
냉전 시대에는 정보기관과 국가가 직접 나서 심리 조작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전쟁 포로를 신문하거나 실험 대상으로 한 연구나 군인들을 자유자재로 조종해 기밀을 빼내는 활동에도 이용되었다. 주로 국익을 위해 비윤리적인 목적으로 연구되던 심리 조작은 전체주의 심리학과 행동주의 심리학으로 발전하게 된다. 냉전이 끝나자 세뇌 연구는 급속도로 쇠퇴했고, 보이지 않게 사회 구석구석으로 퍼져 나가 보편화된 기술로써 대중의 잠재의식을 자극하여 원하는 결과를 얻는 데 사용되고 있다.
심리 조작은 생각보다 단순한 형태로 사회 곳곳에 침투해 있다. 오늘도 많은 사람이 길거리에서 '도를 아느냐'며 접근하는 이들을 만나고, 다단계에 빠진 주변 사람들을 경계하고, 권력의 선동을 의심한다. 심리 조작의 덫은 이처럼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호시탐탐 우리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인간이 자신의 연약한 본성을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상처 받기 쉽고 고독한 현대인이 심리 조작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면역력을 기르는 것만이 해결책이다.
여담으로 심리 조작에도 다양한 형태와 단계가 있다. 널리 알려져 있는 전형적인 심리 조작은 독재자나 컬트 교주가 부하나 신도를 심리적으로 지배하거나, 정보기관이 첩보원을 세뇌해서 조종하는 것이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범위까지 확대하면, 악질적인 권유나 사기와 같은 영업 활동으로 물건을 판매할 때도 심리 조작 기법이 사용된다. 온갖 횡포를 부리는 자기중심적인 상사나 폭력적인 남편이 부하직원이나 아내를 마음대로 지배하는 것도 심리 조작이다.
부모가 아이들을 지나치게 속박하거나, 한 사람을 욕하고 따돌려서 심리적으로 몰아세우는 왕따도 심리 조작의 일종이다. 오래전부터 사용된 심리 조작 기법 중 하나는 '~인 척하는' 것이다. 이 기법의 중요성을 맨 처음 지적한 이는 '군주론'을 쓴 마키아벨리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는 신의나 성실을 정말로 갖추어 있을 필요는 없지만, 갖추고 있는 척을 해서 그렇게 여기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인 척해서 상대의 마음을 열게 하면, 원하는 대로 행동하게 하는 일은 식은 죽 먹기다. 어떤 시대에도 사용되는 상투적인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심리 조작이 마음을 조작할 의도로 사용되었을 때는 지극히 비인간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악질적인 심리 조작은 주체적으로 생각할 수 없게 하며, 집단이나 리더에게 의존하고 있는 상태를 계속 유지시키려고 한다.
한 개인으로서 성취해야 할 자립을 방해하는 기법인 것이다. 무언가를 마음의 지주로 삼고 의존하는 사람은 거기에서 벗어나려고 할 때, 반드시 상반되는 마음 사이에서 흔들리게 된다. 의존 상태에서 벗어나서 자립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한편, 의존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는 불안감을 느끼고 자립해서 살아갈 자신도 잃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