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라슨(Erik Larson)은 『In the Garden of Beasts』라는 소설에서 나치 정권 하에서 미국 외교관 집안이 겪는 경험들을 상세히 묘사한다. 숨 막히는 나치 정권의 탄압 하에서 많은 유대인들은 수용소에 끌려가 죽음을 맞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도 빈번했다. 이는 나치 정권에 대한 저항의 표현이기도 했지만, 명백한 죽음의 공포 앞에서 필연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는 절망감, 불안과 우울에 기인한 산물이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당시 베를린의 한 신문사에서는 1932-34년 사이 독일에 거주하던 유대인들의 자살률을 10만 명당 70.2명으로 집계하여, 발표했었다.
그리고 2018년, 한국 80대 이상 노인의 자살률은 10만 명당 69.8명(남성은 138.5명)으로 나타났다. 70대는 10만 명당 48.9명이었다. 이는 그나마 2011년의 10만 명당 116.9명에 비해 많이 감소한 수치이다(2012년 제초제인 파라콰트의 판매를 정부에서 금지시킨 이후 크게 감소했다). 자살에는 수많은 요인들이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자살률을 단순히 비교하는 것은 학술적으로 큰 의미는 없다. 하지만, 이를 통해 한국 노인들이 현재 처한 환경과 그들이 받는 스트레스의 심각성을 어림짐작할 수는 있다.
보건 복지부 조사 결과에 따르면, 노인들이 자살을 시도하는 가장 큰 원인은 정신과적 원인이었다(31.6%). 그 뒤를 경제적 원인(25.7%), 그리고 신체적 질병(18.4%)이 뒤따랐다. 사실, 이 세 가지 원인은 너무 밀접하게 관련이 되어있기 때문에, 하나를 떼어서 이야기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또한, 자살을 생각하는 가장 큰 원인은 생활비 문제, 즉 경제적 이유(27.7%)라고 한다. 실제로, 한국의 노인 상대빈곤율은 50%에 달하며, 이는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복지가 잘 되어 있지 않은 미국의 21%에 비해서도 월등하게 높은 수치이다. 한국에서, 노인들은 경제적으로 완전히 소외된 계층인 것이다.
자살 생각은 어떤 연령대에서건 자살을 예측하는 주요 지표 중 하나이지만, 노인에서는 특히나 중요하다. 왜냐하면, 노인은 자살을 시도할 때에, 젊은 사람에 비해 더 치명적인 수단을 사용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입원 병동 환자들 중, 가장 죽음에 가까운 자살 시도를 했던 환자들은 모두 노인들이었다. 한 할아버지는 스스로의 얼굴에 총을 쏴서 얼굴의 절반 가까운 부분이 손상되었었고, 한 할머니는 스스로의 가슴에 칼을 여러 차례 찔러서 사경을 헤맸었다. 두 환자 모두 우울증 병력이 없다는 것 또한 공통점이었다. 또 다른 할머니는 긴장증적 우울증(catatonic depression)으로 한 달간 식음을 전폐하고, 20kg 이상 체중이 감소한 채로, 병동에 입원했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자살을 막을 수 있는가라고 묻는 다면, 이미 앞서 말한 조사 결과들에 이미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자살 생각을 비롯한 자살의 위험요소들을 사전에 감지하고, 자살 수단을 억제하고(mean restriction method; 파라콰트 판매금지와 같이 자살의 수단을 통제하는 정책으로, 자살 예방에 큰 역할을 한다), 정신과적 치료의 접근성을 증가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것만으로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그리고, 이는 정신과의 영역을 넘어서는 거시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 글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노인 자살이 우리 사회에 매우 큰 문제이고, 그 문제의 심각성에 비해 사람들에게 너무나 알려져 있지 않다는 점이다. 노인은 어느 나라에서건 자살률이 가장 높은 집단이지만, 한국 노인의 자살률은 OECD 평균 노인 자살률의 세 배 이상이다. 한국이 OECD 국가들 중에서 가장 높은 자살률을 보이는 것은, 높은 노인 자살률 때문이라고 말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이에 대해서 쉬쉬할 것이 아니라, 더 깊은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다.
2021년을 살아가는 한국의 노인들은 어린/젊은 시절 한국 전쟁의 트라우마를 경험한 어르신들부터 한국 전쟁 직후의 폐허에서 태어난 어르신들을 포함한다. 그리고, 이들은 세계 어떤 나라보다 격변하는 사회를 생존해왔다. 그 사람의 젊은 시절을 들여다보지 않고 그 사람의 현재를 평가하지 말라 했었다. 꼰대라고 무작정 비난하기 전에 그들이 살아왔던 사회 문화가 지금과 어떻게 달랐는지를 고려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노인들이 탑골 공원에 출근해서 배식을 받는 모습을 보고, 혹은 무임 지하철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낸다고 비판하고 연민하기보다는, 그들이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게 건설적이지 않을까. 그들이 얼마나 사회적으로 고립되어있고, 경제적으로 비참한 상황에 놓여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한국 노인의 높은 자살률은, 세대, 좌우를 불문하고 우리가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되는 비극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현재, 또는 미래의 우리 부모님들, 그리고, 미래의 우리 모습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