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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쉬의 인사이트 Jun 07. 2021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역사를 만들고 있는가

제18회 서울환경영화제

2004년 처음 개최된 서울환경영화제(이하 SEFF)는 전 세계의 시급한 환경 문제를 다룬 국내외 우수한 영화들을 관객들에 소개하며 환경과 인간의 공존을 모색하고 미래를 위한 대안과 실천을 논의해왔다. 올해 18회를 맞은 SEFF는 6월 3일(목)부터 6월 9일(수)까지 개최된다. 특히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 환경에 대한 문제 인식이 고조되고 있는 만큼, 서울환경영화제 측은 이 부분에 대한 깊은 책임감을 갖고 다시 한번 영화제의 의미를 깊이 되새김과 동시에 보다 성장한 모습으로 관객들을 궁금하게 한다.


영화제 포스터에도 메시지가 담겨 있다. 포스터 중앙에 위치한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는 소녀는 지금보다 더 푸르렀던 과거의 자연을 회상하는 동시에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기후변화로 북극의 빙하가 녹아 갈 곳을 잃은 북극곰은 우리에게 익숙한 풍경이고, 멸종위기에 처한 다수의 해양동물 또한 자리하고 있다.


제18회 서울환경영화제의 포스터는 일상이 잠시 멈춘 현재, 우리의 일상을 돌아보면서 더 먼 미래로 나아갈 원동력을 얻기 위해 준비하는 시점을 소녀의 표정으로 표현했다. 환경과 인간이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는 우리의 모습을 포스터 속 소녀의 모습에 투영해 앞으로 변화된 환경을 위해 노력하고자 하는 의지를 담았다.

개막작 <우리는 누구인가>

개막작


미래 세대는 우리를 어떻게 생각할까? 절망적인 시선으로 돌아보지는 않을까? 우리는 우리가 누구였는지에 대해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역사를 만들고 있는가? 올해 서울환경영화제의 개막작인 <우리는 누구인가>는 여섯 명의 중요한 현대 사상가 및 과학자들과의 강렬한 만남을 통해 세계의 현 상태를 진단한다. 알렉산더 거스트(우주인), 실비아 얼(해양학자), 데니스 스노워(경제학자), 마티유 리카르(분자생물학자, 수도사), 펠와인 사르(경제학자, 사회학자), 재니나 로(철학자)는 그들의 여정으로 관객을 초대해 깊은 통찰력이 드러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관객은 우주인의 시선으로 푸른 지구를 바라보고 바다 깊숙한 곳으로 내려가는 몰입감 있는 잠수함 탐사에 참여한다. 티베트의 불교 수도원을 거닐고 후쿠시마의 오염 지역을 조사하며 세계정상회의 참석해 기후변화와 세계경제의 연관에 대해 듣는다. 세계의 현재를 바라보는 이 감동적인 모습들은 다양한 관점의 조합을 통해 우리의 연결성을 드러낸다. 매혹적이고 찬란한 장면으로 지구의 깊이를 포착하는 경험을 선사하는 <우리는 누구인가>는 지구를 위한 변화의 가능성과 희망을 전한다.

다큐멘터리 <그레타 툰베리>

에코볼루션: 세상을 바꾸는 방법


올해 SEFF의 슬로건은 생태 환경을 의미하는 '에코(ECO)', 변화와 혁명을 의미하는 '에볼루션(Evolustion)'과 '레볼루션(Revolution)'을 혼합한 '에코볼루션Ecovolution'. 전대미문의 팬데믹 현상으로 일상이 멈춘 지금, 즉각적이고 대대적인 환경의 대전환을 이루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에코볼루션: 세상을 바꾸는 방법> 섹션에서는 혁명의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물결을 일으키는 공동체를 찾아간다.


<그레타 툰베리>는 3년 전 홀로 등교 파업을 벌이기 시작한 한 소녀가 전 세계적인 청소년 기후 운동을 촉발하게 되는 과정을 가까이 담는다. <왓슨: 바다 파수꾼>은 그린피스와 시계퍼드의 창립자인 폴 왓슨 선장이 목숨을 걸고 바다를 지켜온 일대기를 통해 해양 보호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한다. <아마존 최후의 숲>과 <화이트 큐브>는 금광 개발과 삼림 파괴로 인해 절멸의 위기에 처한 아마존의 한 부족과 반세기 넘게 서구의 착취를 견딘 콩고의 팜 야자 플랜테이션 마을이 오랜 파괴에 맞서 생존권을 되찾는 노력을 들려준다.


대규모 공업단지에 사는 한 가족의 선택에 대한 이야기인, 마을을 관통하는 도로 개발에 맞서 도시의 진정한 가치를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숨은 지혜 찾기>. 이천 명의 사람들에게 캐리커처를 그려준 화가의 이야기인 <니얼굴>. 모두, 거대한 변화는 한 사람, 한 공동체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혁명을 일으키고 세상을 바꾸는 방법은 나 하나가 변화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다큐멘터리 <66미터>

기후위기, 기후비상, 기후재앙


기후변화의 심각성은 이제 위기와 비상사태를 지나 재앙의 단계로 향하고 있다. 2015년 파리기후협정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는 비판 아래, 지금 당장 전 지구적인 노력을 쏟아붓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지점에 다다르리라는 경고등이 켜졌다. 지구는 이제 '온난'해지는 게 아니라 '백열(白熱)'하고 있으며, 하얗게 불타는 과정에서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의 생존을 위협하는 여섯 번째 대멸종이 닥칠 것이라는 경고이다. 더 이상 정치, 경제 이해관계와 자본의 논리에 얽매여 있을 여유가 없는 데 누구도 이견을 제시하지 않는다. 문제는 어떻게 하느냐이다.


<기후위기, 기후비상 기후재앙> 섹션에서는 해수면 상승으로 닥칠 위험을 진단하고 <66미터>, 물과 식량 부족으로 증가하는 기후 이주민의 현실을 살펴본다 <기후 엑소더스>. <차(車)세대 연료 대결>과 <탄소저감비행 프로젝트>는 화석연료를 대체할 수소 에너지의 미래를 비롯한다. <기후위기 시대의 단상>과 <슬픔과 극복의 태피스트리>는 기후변화로 인한 낙담과 공포감, 죽어가는 지구에 대한 슬픔을 기후행동으로 변화시키는 과정에 대한 내밀한 기록을 들여다본다.

다큐멘터리 <군산전기>

이야기하는 풍경


인간은 공간(空間, 아무것도 없는 빈 곳)을 채워 의미를 부여하는 동물이다. 세계를 '개척'하고 지도를 그리고 지명을 붙이는 장소 지정 활동은 문명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된 환경 파괴의 역사와 다름없었다. 더 이상 야생, 즉 인간 중심 관점으로 본 '아무것도 없는 빈 곳'이 남지 않은 지구에서, 이제 우리는 이미 생성된 장소를 부수고 해체하여 더욱 자본 집중적인 곳으로 바꾸는 데 몰두한다. 올해 한국환경영화부문의 뚜렷한 경향을 보여주는 재건축, 도시 재개발, 구도심 재생에 관한 영화들은 한국에서 이 같은 장소의 가치 변형이 얼마나 비인간화, 반환경화되어 있는지를 조명한다.


거주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 개인의 이야기가 장소의 역사가 된 동네, 도시 한복판에 기적적으로 형성된 생태 공원, 추억이 서린 신공항 건설 예정지는 모두 한순간에 불도저에 밀리고 말 것이다 <군산전기>, <봉명주공>, <사상>, <작년에 봤던 새>. 이 외에도 다양한 주제의 '공간의 시학'을 보여주는 작품을 묶었다. <네메시스>는 기차역이 교도소로 탈바꿈하는 시간을 압축해 보여주면서 이 변화에 인류학적 가치를 부여한다.


성(聖)과 속(俗)의 싸움에서 환경적 중요성을 주목하는 <성스러운 공원>, 사람이 떠난 '유령 마을'의 풍경을 들여다보는 <저무는 마을>, 과거의 영광만이 남은 폐허에서 사랑의 찬가를 들려주는  <셰익스피어 인 아시엔다>는 모두 다양한 관점으로 공간을 분석하고 장소의 의미를 찾는다. 건축과 문화를 모방하는 것이 삶 자체를 바꿀 수 있는가 질문하는 <아메리카빌>과 바다를 건더는 오래된 나무의 여행을 따라가 보는 <뿌리 없는 정원>을 통해 공간을 채우기, 장소에 뿌리내리기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본다.

픽션 <붉은 땅>

폐허를 짓는 동안에


아무리 원치 않아도, 현대 문명사회를 사는 우리는 모두 환경 파괴에 기여하고 있다. 매일 밥상에 올라오는 식료품부터 휴대폰과 자동차에 이르는 필수 하이테크 기기에 이르기까지, 대규모로 생산하고 빠르게 소비되는 모든 물자는 태생적으로 환경 착취에 의존한다. 지구에는 이미 너무 많은 인간이 살고 있고, 화석연료에 기반한 산업, 화학 물질을 이용해 공장식으로 생산하는 농축산·어업, 그리고 모든 것을 떠받치는 자본주의라는 파괴적인 체제에서 인간 문명은 모든 것을 불태우며 굴러가고 있다.

각각 프랑스, 일본, 콩고에서 일어난 사건을 다룬 <붉은 땅>, <미나마타 만다라>, <독성 거래>를 통해 무책임한 기업에 의해 환경이 파괴되고 그 결과 개인이 고통받는 일이 얼마나 보편적인지 알 수 있다. <패스트 패션>은 우리가 쉽게 사고 금방 버리는 값싼 옷이 만들어지기까지 치러야 하는 진짜 비용을 계산한다.


<오페라> <거짓말의 경제학> <우리는 누구인가>는 전체적인 관점에서 지구의 현 상태를 진단하면서 민주주의와 자유, 환경을 파괴하는 대기업의 책임을 논하고, 지구의 가장 큰 위협 요소인 인류의 정체를 묻는다. 그리고 마침내 인류에 의해 지구가 생명력을 다했을 때 우리에게 남아있을 유산은 무엇일지 상상한다 <최후의 언어>.

다큐멘터리 <퍼머컬처: 먹고 심고 사랑하라>

지구가 동날 때까지


전문가들은 코로나19로 모든 국가의 경제가 악화되어 식량의 생산과 공급이 감소할 것이라 진단한다. 이로 인한 대규모 식량난이 닥칠 것이고 저소득 국가와 빈곤 계층을 중심으로 기근이 확산하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코토나 사태 이전에도 이미 세계 인구 증가와 부의 불균형으로 인한 빈곤의 확대, 과도한 농경에 따른 지력의 쇠함, 그리고 기후변화로 인한 이상기후와 물 부족 현상 때문에 식량 위기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은 계속되었다.


무엇보다 인류는 농경이 시작된 이래 끝없이 환경을 파괴하며 지속이 불가능한 방식으로 식량을 생산해왔다. 비로소 지구가 동날 때가 온 것이다.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선택된 단일종 재배로 인해 작물 종자의 다양성은 급감했다. 살충제의 대량 살포는 내성을 가진 더 강력한 곤충을 만들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즉 계속해서 화학 약품을 팔기 위해 살충제 회사들은 유전자변형작물을 만들었다.


가히 육식 중독이라 할만한 우리의 식단을 유지하는 데는 고통 집약적인 공장식 축산이 필수이다. 마지막 남은 물고기 한 마리까지 낚아 올리기 위해 우리는 바다의 모든 것을 죽이고 쓸어 담는다. 그리고 이렇게 많은 희생을 거쳐 생산된 음식의 상당량은 허망하게 쓰레기로 버려진다. <지구가 동날 때까지> 섹션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반성하고 해결 방법을 탐구하는 영화들을 모았다.

다큐멘터리 <군다>

공존하는 세상


동물과 식물이 인간을 위해 살아있는 게 아님에도, 우리는 생명체를 통제하고 우리의 편의를 위해 이용하는 것을 당연시한다. 모든 생명이 생명답게 살 수 있는 지구를 만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에 대한 해답을 고민하며 모두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낙원을 꿈꾸는 작품을 모았다. 어미돼지 군다와 새끼들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일상, 닭과 소가 뛰노는 생츄어리의 모습을 아름다운 화면으로 담은 <군다>를 통해 '고기' 이전에 생명인 이들의 삶을 새삼스럽게 다시 생각한다.


<방랑견(犬)문록>에서는 도시를 공유하는 길거리 동물들을 잘 보살피는 것으로 유명한 이스탄불을 찾아가 떠돌이 개들의 눈높이로 인간군상을 바라보는 경험을 해본다. 한국의 길거리 동물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동네를 통째로 부수는 바람에 몸을 숨길 골목과 밥을 나눠주는 사람이 사라지자 길고양이들은 더 이상 살아갈 곳이 없다 <꿈꾸는 고양이>. 마찬가지로 북극곰도 고향을 잃었다. 기후변화로 북극의 얼음이 점차 녹아가고 이들은 땅 잃고 먹이 잃은 난민이 되어간다.


 <얼음 없는 집>, <사라지는 곰들의 땅>, <호기심과 통제의 박물관>에서는 역사적인 관점으로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사유해본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동물원, 박물관이라는 정복과 아카이빙, 통제로 귀결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자연을 통제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존재하도록 해야 한다. 파괴가 아니라 존속을 위해 숲 속에 관찰 카메라를 설치하는 사람들을 따라가 본다 <숲 속 관찰 카메라>.


픽션 <토토리! 우리 둘만의 여름>

지구별 놀이터


<지구별 놀이터> 섹션에는 아이와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모험 영화, 지구라는 놀이터에서 희망을 키워나가는 작품들을 모았다. 콩깍지에서 나온 완두콩들이 온갖 위험을 헤치며 텃밭 정원을 가로지르고, 알에서 깨어난 아기 새가 엄마를 찾아 씩씩하게 맹크로브 숲을 탐험하는 <완두콩의 모험>, <슘의 오디세이>는 세상으로 갓 나온 새 생명들의 호기심 가득한 모험을 담는다. <불꽃놀이>에서는 우리나라 숲 속 여기저기 숨어있는 정체가 무엇인지 모를 물체들이 한 곳에 모여 하늘을 수놓는 불꽃놀이로 산화한다. 지뢰에 대해 쉽게 알리는 작품이다.


캠핑 도중 다친 아빠를 구하기 위해 어린 두 소녀가 슈퍼히어로로 변하는 <토토리! 우리 둘만의 여름>은 산속에서 헤매는 어려운 상황에서 절망하지 않고 지혜를 모으는 아이들의 성장기이다. 실화에 바탕한 <아름다운 여행>은 오염이 심한 지대를 지나가는 이동 경로 때문에 위험에 처한 철새를 구하기 위해 새들과 함께 하늘을 나는 한 소년의 감동적인 이야기이다.


그 외에도 어린 시절 신비와 모험의 장소였던 테마파크의 쇠락한 현재를 둘러보며 지나간 시간을 추억하는 <다이빙 호스>, 지구 생태계를 닮은 폐쇄된 구조물에서 사람이 살 수 있는가를 시끌벅적하게 실험했던 사건을 조명하는 <지구우주선 1991>은 모두 레트로 감성이 충만한 작품이다. 또한 대자연의 신비와 미지의 세계에 꾸준히 경외를 바쳐 온 베르너 헤어조크의 신작 <파이어볼: 외계에서 온 방문객>에서는 운석의 경이로운 정체에 대해 알아본다.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대표작 <확대>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특별전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는 인간과 환경의 관계를 면밀하게 탐구한 최초의 시네아스트이다. 그의 영화는 '인간을 둘러싼 모든 것으로서의 환경', 즉 존재를 정의하는 풍경을 다룬다. 스토리부터 배경까지, 모든 구조와 배치가 인물과 공간의 근원적인 관계를 다루는 데 기여한다. 인물들은 항상 주변 공간에 의존하며, 이 상호의존성의 긴장을 유지하는 것이 그의 영화의 주요 쟁점이다.


이를 나타내기 위해 안토니오니는 많은 영화적 요소를 제거하거나 포기하며, 그 결과 스토리는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된다. 인물들을 둘러싼 빈 공간, 위협적인 풍경의 의미는 관계의 단절, 무관심, 공허와 같은 미완성된 서사로 나타나고, 인물들은 까닭 없는 불안감, 심리적 긴장을 경험한다. 이렇든 공간은 영혼의 상태를 조건 짓고 인물들의 감정은 풍경에 반영된다.


안토니오니는 나아가 인간과 환경의 융합을 수행한다. 인물들은 사람을 흡수하고 삼켜버리는 추상적인 공간에 매혹당하고, 스스로 증발해버리는 '사라짐'의 모험을 체험한다. 기후변화를 비롯한 압도적인 환경 문제로 세계가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나의 존속을 의심하게 되는 존재론적 불안이 엄습하는 지금, 그의 작품 세계를 재조명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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