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하인드] 타인의 세계로 들어가는 가장 조심스러운 노크
나의 작업은 언제나 두 번의 셔터가 필요하다. 첫 번째 셔터는 쉽다. "이 공간 좀 찍을게"라고 말하고, 정돈된 부엌이나 거실의 전경을 찍으면 된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나는 카메라를 들고 잠시 숨을 고른 뒤, 집주인에게 세상에서 가장 무례하고도 난감한 부탁을 건네야 한다.
"저기... 수납장 문이랑 서랍들, 전부 다 활짝 열어봐 줄 수 있어?"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약속이라도 한 듯 똑같다. 0.5초간의 정적. 그리고 흔들리는 눈동자.
"으악! 안 돼! 안이 얼마나 엉망인데!" "미쳤어? 거긴 진짜 판도라의 상자야." "잠깐만, 나 정리할 시간 10분만 줘. 아니, 30분."
친구도, 누나도, 심지어 매일 밥을 해주시던 어머니조차도 내 부탁 앞에서는 붉어진 얼굴로 손사래를 쳤다. 닫혀 있는 문짝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그들은 필사적으로 그 안의 세계를 사수하려 했다. 마치 자신의 가장 부끄러운 치부를 들키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때 깨달았다. '공간의 문을 연다'는 것은, 단순히 가구를 여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방어기제'를 해제하는 일이구나.
우리는 누구나 타인에게 보여주고 싶은 '편집된 삶'을 산다. 거실 테이블 위에는 읽지도 않는 영자 신문이나 예쁜 꽃병을 올려두지만, 서랍 깊숙한 곳에는 다 쓴 건전지와 고지서, 짝 잃은 양말들을 구겨 넣는다. 닫힌 문은 사회적인 가면(Persona)이고, 그 안의 무질서함은 날 것 그대로의 나(Real Self)다. 그러니 누군가에게 "문을 열어달라"는 말은, "너의 가면을 벗고 민낯을 보여줘"라는 말만큼이나 폭력적이고 두려운 제안일지 모른다.
하지만 긴 설득 끝에 마지못해 문이 열리는 순간, 팽팽했던 긴장감은 의외의 지점에서 허무하게 무너진다.
막상 열린 찬장 안에는 괴물도, 판도라의 재앙도 없다. 그저 3년 전 사은품으로 받은 촌스러운 머그컵, 배달 올 때마다 모아둔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 유통기한이 간당간당한 통조림 햄, 그리고 라면 스프들이 뒹굴고 있을 뿐이다.
"아, 진짜 보여주기 싫었는데..." 집주인은 민망한 듯 뒷머리를 긁적이지만, 나는 그 순간이 가장 좋다. 완벽해 보이던 타인이 '나와 똑같은 사람'으로 느껴지는 순간. 그제야 우리는 킬킬대며 서로의 '지저분함'에 대해, 아니 '치열하게 사느라 미처 돌보지 못한 흔적'들에 대해 수다를 떨기 시작한다.
나의 렌티큘러 작업은 이 '무장해제'의 과정을 기록하는 일이다. 왼쪽에서 볼 때는 빈틈없이 완벽해 보이지만, 시선을 옮기면 와르르 쏟아지는 살림살이들. 나는 일러스트레이터의 펜 툴(Pen tool)로 그 찌그러진 냄비와 비닐봉지들을 아주 정성스럽게, 보석을 세공하듯 그려낸다.
"당신이 감추고 싶어 했던 그 무질서함이, 사실은 이렇게나 알록달록하고 예쁜 삶의 증거라고."
오늘도 나는 남의 집 찬장 앞에서 쭈뼛거리며 묻는다. "거기 문 좀 열어봐 줄래?" 그것은 당신의 가장 솔직한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나만의 조심스러운 노크다.